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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정교수, '북한까지 연나라장성 들어왔다' 주장무당의 무구인 '청동검'도 구분 못하는 송교수의 반도식민사관....
오종홍 | 승인 2016.04.21 10:42

교원대학교 송호정교수, 식민사학을 넘어 賣國사학으로 비판받아...

교원대학교 교수 송호정은 중국 연나라의 장성이 북한까지 왔다고 주장해 파란을 일으켰다. 송교수는 20일 한성백제박물관에서 한국고대사학회가 주최한 시민강좌에서 이와 같이 주장했다. 이것은 최근 중국이 우리의 단군과 고구려, 발해 등의 역사를 모조리 중국역사로 강탈해 간 동북공정의 주장과 같다. 즉 진나라 장성이 북한까지 들어와 있다고 한 것과 같다. 또한 매국집단이라고 비난을 받은 동북아역사재단이 그린 역사지도와 유사한 것이다. 송교수는 ‘고조선’의 강역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와 같이 주장하였다.

그는 먼저 고조선의 중심지에 대하여 3개의 견해가 있음을 소개하였다. 고조선은 요동 또는 요서에 있었다는 설, 처음부터 북한 평양에 있었다는 설, 그리고 요동지역에 있었으나 중국 연나라의 침략으로 후퇴하여 현재의 평양으로 이동해 왔다는 설이다. 송교수는 이 세 견해 중에서 고조선 중심지 이동설을 주장했다. 이 견해가 문헌자료와 고고학 자료를 종합적으로 해석할 때 가장 합리적인 해석이라고 덧붙였다. 이 견해의 약점으로는 대릉하 유역의 청동기문화가 고조선 것이라고 해석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차이는 완전히 다른 정도가 아니라서 문제가 되지 않는 다고 하였다.

그는 고조선에 대한 총평을 하는 부분에서 “특히 종족의 분포나 문화권의 범위를 가지고 곧 바로 정치적 영역으로 비약해서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비파형동검문화 분포지역이 고조선의 영토라는 선입관을 버려야 한다. 요서지역을 고조선의 세력권으로 설정하는 것은 현재까지의 연구를 볼 때 문헌 및 고고자료와 맞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한 왕조의 역사는 땅덩어리 가 아니라 그 왕조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논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고조선사를 민족주의 시각으로 연구하는 것을 회의적으로 보았다. 한편 송교수는 단군과 고조선이 근대에 와서야 우리의 의식에 깊이 자리 잡게 되었다고 했다. 또한 단군조선의 역사를 신화로 보고 역사적 사실로 보지 말자고 했다.

▲ 제6회 시민강좌를 하고 있는 교원대학교 송호정 교수, 그는 강의시간 내내 자신감에 넘치는 강의를 했다. 심지어 자신의 '진실된 역사관'을 왜 몰라주냐는 듯이 간혹가다 발을 구르까지 하며 강좌를 이끌어 갔다.

송교수의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하여 수많은 비판과 비난이 터져 나왔다.

첫째, 중국 연나라는 수많은 군소국가가 난립한 전국시대 국가로써 그 존속기간과 강역이 다른 할 거 군소국가와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연나라 장성이 우리나라 서 북한까지 왔다고 하여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이북도 연나라가 차지했다고 본 것이다. 이는 일제식민사관과 중국의 중화패권주의 동북공정사관과 같은 것이다. 송교수가 연나라 장성이라고 본 요동지역의 성은 돌로 된 전형적인 동이족 계열의 성이다. 중국 지나족과는 거리가 먼 문화적 현상이다. 그런데도 사료와 고고유물을 왜곡 해석하여 이것을 연나라 성으로 보고 결국 우리나라까지 연나라 강역이라는 식으로 주장했다. 이에 송교수는 자신이 보기에도 너무 심했는지, 다시 이 발언을 주어 담으려고 하였다. ‘연나라 장성이 서북한 까지 나오는데, 이것은 더 논의를 해봐야 한다.’고 한발 물러났다.

둘째, 송교수의 주장이 앞뒤가 맞지 않아,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고조선중심지 이동설을 주장하면서 요서지역의 청동기 등 유물이 결정적으로 다른 문화가 아니니 이를 근거로 결국 이 지역이 고조선의 초기 중심지 영역이라는 논리를 펼쳤다. 그러나 뒤에 가서는 문화권(청동기)의 범위가 고조선의 영역(정치적)이 아니라고 했다. 더구나 비파형 동검은 고조선의 대표적인 유물이고 이것이 고조선 초기 중심지 ‘영역’을 나타내는 표지유물로 보면서도, 비파형동검 분포지역이 고조선 ‘영토’가 아니라고 했다. 송교수에 의하면 ‘영역’과 ‘영토’가 전혀 다르다는 결론에 이른다.

또한 종족분포와 문화권은 정치적 영역이 아니라는 기형적 사고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종족이 있는 곳에 정치가 있을 수밖에 없고 사람이 문화를 이루고 사는데 정치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되냐는 것이다. 결국 종족분포와 문화권을 기준으로 볼 때도 고조선은 요서를 넘어 북경, 하북성, 산동성까지 고조선의 영역으로 나온다. 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서북한과 요녕성 일부만을 고조선의 영역으로 축소하려다 보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앞뒤 모순된 주장을 할 수 밖에 없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셋째, 송교수는 한나라 식민지, 한사군이 현재 평양에 있었다고 하여 지난 시민강좌의 모든 강사들과 견해를 같이 했다. 앞선 강사들이 한 것처럼 한사군 재평양설의 원조를 이성계조선의 소중화, 유학자들에게서 찾았다. 정약용, 한백겸의 주장을 활용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성호이익이나, 박지원 등은 한사군을 요동 등 대륙에서 찾고 있다. 주체사관 유학자들의 견해는 없고 마치 소중화 유학자들의 사관만 있다는 인상을 심어 주었다. 더구나 수산 이종휘 같은 유학자는 고조선 이전에 수천 년 동안 존재한 것으로 보이는 ‘환국’과 ‘신시’ 시대까지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객관적이고 더 합리적인 이런 견해는 전혀 소개하지 않았다.

넷째, 송교수는 고조선이 서기전 7세기경에 개국했다고 했다. 중국의 ‘관자’라는 책을 끌어온 것이다. 그러면서 서기전 108년에 망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10세기경에 개국했다는 식으로 말을 바꾸었다. 송교수에 의하면 고조선은 6~7백년 존속하다가 한나라에게 망하고 한나라의 식민통치를 4백여 년간 받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사서인 삼국유사에는 ‘위서’를 인용하여 최소한 2천년 이상 존속한 나라로 기록하고 있다. 그것도 우리나라 사서가 아니라 중국의 ‘위서’를 인용하고 있다. 또한 고조선의 개국연대인 경인년, 무진년 등이 수많은 사료와 문헌에 나온다. 이 개국연대를 가지고 계산해도 고조선(단군조선)은 최소한 2천년이상 존재한 것으로 나온다. 송교수는 이에 대하여 소강절의 견해를 끌어다가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단군개국 연대를 ‘경인년’이니 ‘무진년’이니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조차도 자신의 반도식민사관에 맞지 않는다고 무시해 버린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송교수는 북한의 단군릉 개건을 연신 언급하며 모두 믿을게 못된다는 식으로 몰아갔다. 일제강점기에 까지 남아있던 단군묘를 발굴하여, 고증을 거쳐 개건한 단군릉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였다. 반면에 일제가 우리나라 침략의 도구로 활용하기 위하여 한나라 식민지 '한사군 재평양설'을 만들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날조 조작한 점제현 신사비, 봉니, 기타 락랑부덤관련 자료를 사실로 인정하였다. 일제가 날조할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저 고조선 형세도 조차도 교과서가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말했다.

한편 송교수는 고조선에 대하여 자료가 빈곤하여 고조선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하면서 중국 사료, 그것도 우리에게 불리한 축소, 왜곡된 사료만 끌어와서 설명하였고, 고고학 표지유물도 반도식민사관의 틀에다 맞춰 해석함으로써 일관되고 통일된 고조선을 갈기갈기 분리 해체시켜 서양과 중국에 한참 뒤떨어진 나라로 만들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심지어 당시 원시수준에 불과한 서아시아 코카서스 지방의 유목민족이 만주일대 까지 와서 만주유목족의 원조가 되었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또한 ‘흉노’, ‘산융’, ‘동호’ 등 문화인류학적으로 우리와 한 형제일 수밖에 없는 겨레를 꼬박 꼬박 ‘오랑캐’라고 반복하여 비하하였다. 이는 중화패권주의 사관과 일치한다. 이는 3회 시민강좌로 나선 고려대 교수, 박대재와 같은 모습이다.

이번 시민강좌에서도 방청객의 질문을 받았다. 그러나 답변의 행태는 지난 시민강좌에서 하는 것과 같았다. 송교수에게 유리한 부분만 답변하였고 질문에 대한 답변시간을 안배하지 않고 구미에 맞는 질문에 대하여 장시간 답변을 하였다. 불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간략하거나 아예 생략해 버리는 행태가 그대로 반복되었다. 그래서 ‘답변은 필요 없으니 질문지를 그대로 한번 읽어만 달라’는 요청도 묵살해 버렸다.

또한 근대한국학의 선구자이자 문헌고증과 실증주의 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단재 신채호 선생을 ‘신채호 아시죠?’라고 표현하는 반면, 일제 총독부사학의 부역자, 이병도의 후학인 전 서울대 교수, 노태돈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단재 신채호 선생을 폄하하는 이 같은 모습은 강단주류사학의 일관된 태도인데, 송교수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시민강좌에는 방청객이 눈에 띄게 줄어있었다.

지난번 강의한 이문영씨의 강의내용을 평가하여 방청객들로 하여금 균형잡힌 역사관을 갖게 하기 위하여 배포한 ‘만들어진 이문영의 한단고기 위서론’ 유인물이 1백부이상 남은 데서도 찾을 수 있었다. 이 남은 유인물은 지하철 시민들에게 절찬리에 뿌려졌다. 다음 시민강좌는 ‘고고학으로 본 낙랑군’ 이라는 주제로 이화여대교수, 오영찬이 강의를 한다.

 

오종홍  koreahit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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