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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의 운수가 다 했으니 새 나라 세워야동학의 폐정개혁안보다 일제가 강제한 이른바‘갑오개혁’을 높이 치고 있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9.01.28 19:49

 

 

동학의 천도는

양반도 천민도 없이 모두 한울님을 모시고

세상의 모든 사람은 근원적으로 모두 평등

동학 죽음관은 환원으로 본래 자리로 돌아간다는 뜻

의암 손병희와 백범 김구,

젊은 시절 반상차별 반대,

빈부귀천 없는 평등사상에 동학입도

▲ 서기1949.6. 백범 김구가 안두희에게 희생된 뒤 국민장으로 장례식이 치러졌다. 사진은 서기1960.06.26.백범 서거 11주기 추도식 장면. 사진 오른쪽 부추김을 받는 노인은 심산 김창숙 선생으로 보인다. 초대 성균관대학 총장을 지냈다. 유림에서 대일독립투쟁을 벌인 인물로 유명하다. 

“맑은 선비, 최류현 한 사람이 공손히 맞절을 하기로 나는 황공하였다. 그는 동학도인이라 선생의 훈계를 지켜 빈부귀천에 차별이 없고 누구나 평등을 대접하는 것이니 미안해 할 것 없다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별 세계에 온 것 같았다. 상놈 된 한이 골수에 사무친 나로서는 동학의 평등주의가 더 할 수 없게 고마웠다.

이씨(리성계 조선왕조) 수가 진하였으니 새 나라를 세운다는 말도 적절하게 들리었다. 입도한 지 수월에 연비가 수백 명이 되었다. 단숨에 평안남북도까지 무려 수천에 달했다.”

이 말은 백범 김구가 18세 때 동학에 입교하게 된 일화다. 당시 김구는 애기접주로 통했다. 김구는 자신은 상놈인데 양반이 자기에게 맞절을 하는 것에 깜짝 놀라 몸둘바를 모른다.

리조선 왕조의 공고한 신분제 계급사회가 얼마나 엄격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구가 안절부절 못하자, 양반은 “동학도인은 선생의 훈계를 지켜 빈부귀천에 차별이 없고 누구나 평등을 대접하는 것이니 미안해 할 것 없다.”고 진정시킨다.

그는 이에 ‘별세계에 온 듯하다’ 고 다시 한 번 놀란다. 그러면서 동학의 평등주의가 더 할 수 없이 고맙다고 감동한다.

이어 동학이 혁명사상을 갖고 있음을 털어놓는다.

“이 씨의 운수가 진하였으니 새 나라를 세운다는 말도 적절하게 들리었다.” 리조선 왕조가 다 하였으니 새 나라를 세운다는 말이 동학도에게서 나오고 있음을 증언하고 있다.

리조선 왕조를 해체, 타도하자는 의도가 분명하다. 이어 새 나라, 새 체제를 건설하자는 대안도 나온다. 확실히 혁명에 걸맞은 말이다.

그동안 우리는 ‘보국안민輔國安民’이라는 동학혁명의 구호에서 보듯이 임금은 문제가 없는데 신하들이 부패해서 나라가 어지럽고 망국지경이 되었으니 궁궐의 권신들을 내쫓고 임금을 바로 받들자는 사상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국안민에서 볼 수 있듯이 기존의 역사문헌은 기존체제를 인정하는 전제 하에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흐름은 동학혁명 이후 일어나는 의병활동에서도 드러난다. 

구한말 양반출신, 의암 유인석은 명성황후가 일제 만행으로 비명에 가자, 의병을 일으킨다. 그가 의병을 일으킨 목적은 무엇일까.

<의암집>에서 적나라하게 나오듯이 '소중화'를 지키자는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든, 중국을 어버이로 모시고 성리학으로 무장한 강고한 신분제 계급사회를 보전하자는 것이다.

그는 <의암집>에서 중국인 기자와 우리 중시조인 단군을 비교하면서 단군은 기자를 위한 들러리로 풀고 있다. 기자 영광을 위해 단군이 기여했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중국인 기자에 뿌리를 둔 소중화  체제를 지키려고 의병을 일으켜 일제와 싸운 것이다. 그는 말년에 가서도 이 같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또 구한말 의병전쟁의 우두머리, 면암 최익현도 도마위에 오른다. 그가 굳은 의지를 굽히지 않자, 일제는 그를 대마도에 유배시킨다.

면암은 죽어가는 순간까지 소중화, 중국인 기자를 숭배하고 있었다. 기자가 이 땅에 와서 우리가 미개에서 문명개화되었다는 사상을 비친다.

의병을 일으킨 것이 중화사대주의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백범의 일화는 소중화 보존을 위해 일어난 의병전쟁과 반대다. 동학을 새롭게 규정하는 주요 근거로 보인다.

리조선왕조를 갈아 엎고 새 나라를 여는 혁명이다. 개벽이다. 동학이 혁명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다.

조선개국 4352년 1월 2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옆, <광화문아침>에서 의백학교 심화학습 마지막 수업이 있었다. 첫 번째 수업은 손윤 의백학교 이사장이 나섰다.

‘의백의 철학과 리더십’을 주제로 이끌었다. 백범 김구가 동학에 입도하게 된 일화도 이날 손 이사장이 발굴한 것이다. 그는 이날 의암 손병희 정신과 사상 뿌리를 짚었다.

당연히 동학이 무엇인가가 소개되었다.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가 한알님(上帝)을 만나는 과정이 나왔다.

<동경대전> 포덕문에 나오는 것이었다.

“뜻밖에도 사월에 마음이 선뜩해지고 몸이 떨려서 무슨 병인지 집중할 수도 없고 말로 형상하기도 어려울 즈음에 어떤 신성의 말씀이 있어, 문득 귀에 들리므로 놀라 캐어물은 즉 대답하시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세상 사람이 나를 상제라 이르거늘 너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시기를 ‘내 또한 공이 없으므로 너를 세상에 내어 사람에게 이 법을 가르치게 하니 의심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라’

묻기를 ‘그러면 서도로써 사람을 가르치리이까’ 대답하시기를 ‘그렇지 아니하다 나에게 영부 있으니 그 이름을 선약이요, 그 형상은 태극이요, 또 형상은 궁궁弓弓이니, 나의 영부를 받아 사람을 질병에서 건지고 나의 주문을 받아 사람을 가르쳐서 나를 위하게 하면 너도 또한 장생하여 덕을 천하에 펴리라’”

수운 사상은 한알님을 만났다는 것이고 <동경대전> 논학문에서 계속해서 나오듯이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 사상이다. 이는 한울님 마음이 곧 너의 마음이라는 뜻이다. 하늘과 인간이 같다는 평등사상이 여기서 나온다.

▲손윤 의백학교 이사장이 심화학습을 이끌고 있다.

손 이사장은 이것을 천도라고 하여 동학이 천도교로 이름을 바꾼 근거가 여기서 나온다고 밝혔다.

그는 “양반도 천민도 없이 모두 한울님을 모시고 있으므로 세상의 모든 사람은 근원적으로 모두 평등하다는 ‘시천주侍天主’의 새로운 가르침은 당시 새로운 삶의 질서를 꿈꾸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적극적인 호응을 받았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의암 손병희 정신과 사상의 핵심을 짚어 주었다. “육신은 오래 살아야 1백년이요, 성령은 영원하고 불생불멸이다. 성령이 지속적인 주체적 존재라면 육신은 의존적인 일시적인 객체다.

우리의 참된 삶을 성령생활에 치중하여야 하는데 고생스럽다. 육신에 치중하면 안락할 것이나 일시적이다.

대신사(수운 최제우)는 육신의 안락한 삶을 버리고 성령의 삶을 택하였다. 수도자가 육신의 안락한 삶을 버리고 성령의 참된 삶으로 바꾸려면 먼저 고생을 낙으로 알아야 한다.”

이어 “내가 항상 몸을 성령으로 바꾸라 하였으니 그대들을 죽으라 한 것이 아니요, 영생하라는 것이다.”

또 “성심수련으로 본래의 성을 바꾸라. 후천개벽의 시기에 처한 우리는 먼저 각자의 성신부터 개벽하여야 하느니라, 만일 자기의 성신을 자기가 개벽하지 못한다면 포덕광제의 목적을 어떻게 달성할 것이냐?”

의암이 이런 정신으로 동학과 3.1혁명을 이끌었다고 밝혔다. 또 백범 김구도 마찬가지다. 앞서 밝힌 것처럼 백범의 대일독립투쟁 원동력도 동학사상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도를 간 백범 김구와 사도를 간 매국노 이완용을  비교하여 울림을 주었다.

그는 '잠시 죽지만 영원히 사는 길' 내세웠다. 백범이 서기1949년 6월 안두희에게 희생 되어 장례식을 치를 때, 1백만 인파가 모였다.

반면에 서기1926년 이완용이 죽었을 때는 관련자 1천3백 명이 모였을 뿐이라고 했다.

또 백범은 효창공원의 국가현충시설에 안장되었다. 반면에 이완용은 후손들이 폐묘해 버렸다. 백범이 한 평생 바른 길을 간 것과, 사익을 위해 매국행위를 한 이완용을 비교해 마지막 심화학습을 깊이 있게 했다.  

이번 마지막 심화학습은 토요일에 하던 것을 바꿔 일요일에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외로 많은 방청객들이 몰려와서 관심을 보였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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