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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 시작은 조이족 한웅단군영정 앞에 청수모시고 독립투쟁나서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9.01.17 05:27

기사수정: 2019.01.18. 00:25

 

일제침략기 독립투사들 민족사 전문가 수준

대일독립전쟁원천 단군과 철저한 민족사관

<삼국유사>고조선기는 우리민족의 기원전함

홍산문화지 수리부엉이 조이족 한웅의 터전

한웅의 웅 글자에서 조이족의 실체 드러내

 

▲서기2019.01.12. 서울 종로구 3호선 전철, 안국역 2번 출구 건너편 <광화문아침>의백학교에서 심화학습 2차 강의가 열리고 있다. 이날 두번째 강연은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사무총장, 이찬구 박사가 맡았다.

“고대사를 무시하고 모르고 근현대사에 빠지게 되면 균형 잡힌 역사관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독립투쟁과 3.1만세독립투쟁에 참여한 그 세대 사람들은 단군역사를 뜨겁게 안고 살았던 분들이다. 단군역사에 무지하고 어쩌다 그냥 총 들고 나가서 독립 투쟁한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신규식 선생님 같은 분은 매일 아침마다 단군할아버지 영정에 청수 올려놓고 기도하고 나가서 독립 투쟁했다. 그냥 우연히 나라를 구해야 되겠다고 해서 총들고 싸운 그런 독립투사가 아니다. 민족사에 대한 철저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시영 부통령은 <감시만어>에서 보듯이 고대사에 대해서 아주 전문가 이상 학설을 펴고 있다.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고대사부터 현대사에 이르기 까지 민족사에 대해서 철저한 무장이 되어 있지 않았으면 독립투쟁 할 수 없었다.”

이찬구 박사가 이같이 말했다. 서기2019.01.12. 서울 종로 헌법재판소 옆 <광화문아침> 의백학교 심화학습시간에 겨레얼살리기운동본부 사무총장, 이찬구 박사가 참석한 학생과 시민들에게 간절하게 외쳤다.

이 박사는 이날 ‘민족의 기원과 홍산문화’를 주제로 강연했다. 강연시작 부분에서 민족과 역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역사는 늘 현대사였다며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역사라고 주지시켰다. 현대사는 반드시 고대사와 연결되는데 이 시대상황을 정확히 알려면 역사를 알아야 하고 고대사도 같다고 주장했다.

흔히 근현대사만을 중요시하여 여기에 초점을 맞추는데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고대사야 말로 지금 상황을 읽을 수 있는 지침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고대사를 모르고 근현대사만 강조하다보면 균형 잡힌 역사관이 서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눈앞의 이념과 이해관계에 빠져 큰 그림을 못 본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또 일제침략기 독립투쟁을 벌인 투사들이 단순히 나라를 되찾기 위하여 일제와 싸운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혔다. 철저히 민족사관으로 무장하고 있었다고 참석자들에게 심어주었다.

신규식 선생이 독립투쟁에 나가기에 앞서 단군영정 앞에 청수를 떠놓고 기도를 했다고 전하는 장면에서는 비장함 마져 읽혔다. 날마다 이렇게 청수기도로 정신무장을 하고 나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역사학을 장악하고 있는 식민사학계는 독립투사, 단재 신채호 등의 민족사학을 사이비 역사로 매장하며 민족사를 부정하고 있다.

이는 독립투사들을 부정하는 것인데 민족해방전쟁을 모두 부정하는 것이다. 상해임시정부도 부정하는 꼴이며 해방 후 3.1정신과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 수립된 대한민국도 부정하는 것이 된다.

기득권 밥그릇을 지키려고 근현대사를 모두 부정하고 있다. 실제 이들이 벌이는 각종 역사 강좌나 학술회의에 가보면 단군이나 민족을 부정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누가 누가 잘하나 충성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편 해방 후 남쪽은 이승만이 단독정부 수립에 목매달고 있었다. 북쪽에서도 남쪽에서 남한 단독 정부수립으로 기울자, 북쪽 단독정부수립으로 나갔다. 이 때 백범 김구는 삼팔선을 베고 누워 죽을 지언정 단독정부수립에는 협력하지 않겠다고 절규했다.

이 박사는 이날 백범의 이 말을 지난 수업시간에 이어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당시 대부분 여론은 ‘남북이 서로 갈등하여 나누어지겠지만 오래 못갈 것’이라는 것이 우세했다고 했다.

길어봐야 10년 정도 지속되다 통일될 것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백범 김구는 그렇지 않았다. 이 박사는 백범 같이 온몸으로 독립투쟁에 평생을 보낸 투사들은 분단되면 1백년, 1천년 이상 갈 수도 있다고 보았다고 한다.

임시로 분단된다고 하더라도 결코 인정할 수 없다며 분단을 목숨 걸고 반대했다고 밝혔다. 백범은 오직 통일된 나라를 세우는 것을 원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분단은 이미 70년을 넘어가고 있다.

이 박사는 수업을 본격 시작하기 전에 민족과 단군 이에 터 잡은 민족사가 우리에게 주는 뜻을 이 같이 전했다.

▲이찬구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사무총장이 '민족기원과 홍산문화'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이어 <삼국유사> 고조선 편이 우리민족의 기원을 알려주고 있다고 밝혔다. <삼국유사> 고조선기에는 <고기>를 인용하여 태백산정에 내려온 한웅을 말하고 있다.

이 박사는 이 부분 본문을 새롭게 풀었다. 이제까지 알려진 해석 틀을 깼다. 본문에는 한웅에게 곰과 범이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기도하는 부분의 원문은 ‘상기우신웅常祈于神雄’이다. 통상 ‘늘 신웅에게 기도했다’로 푼다. 이 박사는 완전히 다르게 풀었다. ‘기우신웅상祈于神雄常’으로 해야 맞는다고 못 박았다. 신령한 웅상나무에 기도를 했다고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 <산해경>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이 책에도 웅상이라는 말이 나온다. 또 <단군세기>를 근거로 들었다. 웅상은 곧 한웅의 웅상이라고 나온다고 한다.

그러면서 웅상雄常의 웅雄에 주목했다. 웅雄를 보면 왼변에 팔뚝을 나타내는 굉자와 오른변에 새를 나타내는 새추자로 구성되었다.

이 박사는 카자흐스탄에 가보니 문헌에 팔뚝에 독수리를 앉혀 놓은 그림이 나오더라고 했다. 그는 한웅의 웅자는 새를 숭배하는 한웅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카자흐스탄에서 웅자에 숨겨진 뜻을 밝혀주고 있는 것을 실마리로 이 지역까지 한웅의 문화권에 속한 것이 아닌가 추정했다.

이 박사가 강조하는 중국 홍산문화지에서 나오는 수리부엉이 옥 유물도 한웅족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눈을 돌려 미주지역으로 까지 확대했다.

캐나다 밴쿠버 원주민들이 쓰고 있는 장승(토템기둥)을 제시했다. 이 장승은 나무로 만드는데 맨 꼭대기를 새로 조각해 놓고 있다. 이 박사는 이것을 새가 앉아 있는 우리 솟대와 연결시켰다.

그러면서 아주 옛날에는 한웅나무를 만들어 지역 사람들이 날마다 이 나무아래서 소원을 비는 기도를 했다고 추정했다.

한웅나무라고도 하고 웅상나무, 부엉이나무라고도 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중국 고대 문헌에 자주 나오는 동이족을 조이족이라고 풀었다.

또 조이족은 새이족이라고 하는데 ‘성님’이 ‘형님’으로 통하듯이 ‘새’도 ‘해’로 통한다고 유추했다. 해는 태양이다.

이 박사는 한웅족이 새를 숭배했고 새는 해, 태양을 나타내는 것이라 한웅족은 태양을 섬기는 하늘자손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보았다. 새가 하늘의 전령사도 되지만 그 자체가 천신을 나타내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박사는 이 같은 풀이를 통하여 우리민족의 시원을 한웅족에게서 찾았다. 또 한웅의 신시배달국에 이어 등장하는 단군조선은 조이족과 곰족과 범족이 연합해서 만들어진 나라로 풀었다.

이 새, 곰, 범 3부족 연합체가 단군조선이라는 것이다. 그는 신시배달국과 단군조선의 사이 역사도 명확히 했다. 이 시기를 과도기라고 하면서 우리민족이 시작한 역사라고 주장했다. 이 시기를 약 5백년에서 1천년 가량으로 보았다.

그는 이제 까지 나온 증거를 볼 때 한웅이 실존인물임이 분명함을 알렸다. 이를 이은 단군도 당연히 역사임에 틀림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식민사학은 한웅은 말할 것도 없고 단군도 역사가 아닌 신화라고 한다면서 하루빨리 식민사학을 퇴출시키고 한웅과 단군을 역사로 복원시켜야 한다고 외쳤다.

이날 이 박사는 구한말-일제침략기에 형성된 역사계보에 대한 독특한 견해도 내놨다. 크게 두 인물로 나뉘는데 해학 이기 계열은 한웅파라고 했다.

대종교 나철 계열을 단군파라고 이름 지었다. 대종교 2대 교주 무원 김교원의 <신단민사>가 있는데 이 책에는 한웅이 등장하지 않는다.

반면에 해학 이기를 이은 한암당 이유립은 한웅을 제일 중심에 모신다. 강화도 마리산 개천각에는 지금도 한웅천왕이 중앙에 모셔져 있다.

다음 심화학습은 서기2019.01.20(일) 같은 장소에서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맡아 진행한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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