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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동학 화성의숙서 주체사상 싹틔워적으로 적을 제압하는 동아시아 역사, 이제 더이상 희생양되지 말야 한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9.01.07 23:59

 

손병희 인재양성교육 오늘날도 소중한 귀감

근대사는 잘난 양반이 아닌, 차별 천대받던

서얼, 상놈들이 변혁하고 발전시킨 역사

이이제이전술에 당하는 역사 이제 끝내야

 

▲서기2019.01.05. 서울 종로구 안국역 2번 출구 건너편에 위치한 <광화문아침> 의백학교에서 손윤 의백학교 이사장이 '동학혁명과 3.1혁명의 진실'을 주제로 심화학습 강의하고 있다.

서기2019.01.05. 서울 종로구 3호선 안국역 건너편에 위치한 <광화문아침> 의백학교에서 의암 손병희, 백범 김구 정신을 잇는 심화학습 수업이 있었다. 이날 강의 두편이 있었는데 첫번째는 조병현 의백학교 지도교수가 맡았다. 두번째 시간에는 손윤 의백학교 이사장이 이끌었다.

손 이사장은 이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령, 김일성이 만주 길림성 화전현에 있었던 화성의숙이라는 곳에서 잔뼈가 굵었다고 털어 놨다. 화성의숙은 동학, 천도교에서 세웠다고 한다.

최동호라는 독립군 장군이 있었는데 천도교인으로서 만주에서 활약한 정의부 소속이었다. 그가 화성의숙에서 김일성을 가르쳤다고 손 이사장은 상기되어 전했다.

그에 따르면 김일성은 여기서 동학사상을 접했을 수 밖에 없고, 동학은 민족과 자주를 얘기하는데 오늘날 북조선의 국시노릇하는 주체사상이 여기서 나왔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인지 현재도 북조선은 천도교를 우대하고 천도교에서 나온 청우당도 존재한다. 최동오 장군은 김구의 한국독립당에 부주석도 역임한 민족주의자다. 그는 현재 북조선 애국열사릉에 묻혔다고 한다.  

또 최동오 장군의 아들, 최덕신과 그의 처, 류미영 부부가 군사정권의 탄압으로 북으로 망명했는데 각별한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독립투사 류동렬 장군의 외동 딸인 류미영씨는 지난 서기2016년 11월에 사망했다.

당시 북조선 보도에 따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이었고, '천도교 청우당중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당시 양형섭 최고인민위원회 부위원장, 지금 남북, 북미 대화 사령탑을 맡고 있는 김영철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참석하여 애도했다. 또 김정은 위원장도 애도화환을 보낸 것으로 확인된다.

사회장으로 치러졌고 북조선 당국은 큰 애도를 표시했다. 남편 최덕신과 현재 북조선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당시 양형섭 부위원장은 애도사에서, "애국애족의 길을 걸으면서 민족의 대단합과 통일성업에 헌신하여온 명망있는 여성정치활동가, 귀중한 동지를 잃은 슬픔을 금할 수 없다"고 애절한 심정을 표시한 것으로 당시 북조선 당국은 보도했다.

▲만주 길림성 화전현에 있었던 화성의숙. 김일성은 서기1926년에 이 학교에 입학하여 천도교 최동오 장군으로 부터 동학, 천도교를 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학 천도교, 청우당은 북조선 정권 수립시에도 살아남았다. 해방공간에서 북조선도 수많은 당들이 난립했다. 소련군이 해방군으로 들어왔으나 소련군이 밀고 있는 조선로동당 외에 다른 당은 반동으로 몰려 하나, 둘씩 사라져 갔다.

청우당이 살아남은 것은 조선로동당 로선과 같거나 더 진보한 것도 있다. 동학의 자주개벽사상을 잇는 청우당이, 비록 공산주의를 표방하고 있었지만 혁명을 내세운 조선로동당과 결이 같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청우당이 살아남은 데는 다른 이유도 강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풀이된다. 김일성과 동학 천도교와의 인연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손 이사장이 천도교와 김일성과의 인연을 상세하게 밝힌 이유는 동학, 천도교가 근대사는 물론 현대사에 이르기 까지 우리민족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 알리기 위함이다. 동학이 우리역사에 끼친 것에 비해 너무나 적게 알려져 있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향후 남북일통시대를 맞이하여 73년이상 분단된 채 켜켜히 쌓인 남북 이질화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숙제다. 동학, 천도교와 북조선과의 깊은 인연이 이질화를 극복하는데 한 몫을 할 것으로 보인다.

손 이사장은 이날 심화학습을 ‘이이제이 夷以制夷’로 시작했다. 중국 고사성어에서 나오는 말인데, 오랑캐로 오랑태를 제압한다는 뜻이다. 적으로 적을 이긴다는 말로 풀이된다.

서기19세기 서양열강의 동아시아 침략과 이를 이어받은 일제의 침략전쟁 속에서 파악하려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이 이이제이 전법을 활용한 것으로 분석했다. 수운 최제우를 리조선 정권이 죽였는데 이것을 이이제이 관점에서 보았다. 수운의 동학은 민족, 주체, 척왜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동경대전에도 ‘개같은 왜적놈’이라는 말이 여러번 나온다.

동학 수운은 일본의 적일 수 밖에 없다. 이런 적을 또 하나의 적인 리조선 정권을 이용해서 죽였다고 풀었다

마찬가지로 동학농민전쟁 때 관군이 동학군을 죽였는데 일본이 배후에서 이용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의 형사고소사건도 이이제이로 보았다. 이 소장은 식민사관청산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그를 자신을 식민사학자라고 비판했다고 하여 전 고려대 교수 김현구씨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검찰이 기소를 했고 이 사건을 맡은 당시 서울서부지법 나상훈 1심판사가 유죄판결을 내렸다. 이것도 조선총독부식민사관을 만들어낸 일제가 배후에서 작용한 것으로 파악했다.

대한민국 사법당국을 이용해 이 소장을 처벌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대법원 상고심 재판에서 무죄로 최종 확정되었다.

손 이사장은 이러한 적의 이이제이 전법을 각성해서 더 이상 이용당하지 말자고 호소했다.

▲손윤 이사장은 이날 수업에서 대륙에 잠들어 있는 우리 역사도 언급했다. '이이제이'와 관련하여 백이숙제무덤이 있는 곳을 다녀온 경험담도 들려 주었다. 사진은 백이숙제무덤을 표시한 표지석이다.

이어 그는 동학이 어떻게 3.1혁명을 주도했는지 밝혔다. 그는 3.1혁명이 어느날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또 3.1만세혁명이 대한강토 뿐만 아니라 만주, 연해주, 미주 등에서 동시 다발로 일어나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라 철저히 사전준비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 모든 것이 가능한데는 의암 손병희의 노력이 숨어있었다고 강조했다. 의암 손병희는 서기1912년께 향후 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인재양성을 시작했다.

480명이 넘는 인재들을 모아 교육시켜 대일독립전쟁에 대비했다. 그는 포덕53년(서기1912) 천도교에서 발행한 <중앙총부휘보> 내용을 소개하며 거기에 이름을 올린 여러 인사를 거명했다. 3.1혁명독립선언서에 이들 이름이 들어가 있다고 밝혔다.

3.1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발행된 휘보에 그들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 놀랍다고 했다. 의암이 3.1혁명 일으키기 7년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를 하고 있었음을 말한다.

또 3.1혁명 한 참 전에 보성인쇄소를 차린 것이나 조선독립신문을 발행한 것도 3.1혁명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았다.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는데 보성인쇄소가 결정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3.1혁명은 동학, 천도교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의암 손병희 활약을 높이샀다. 의암이 이렇게 할수 있었던 것은 동학수행 내공에서 나온 것으로 파악된다.

손 이사장은 이날 동학, 천도교가 갖는 의미를 여러각도에서 분석했다. 동학은 천도天道인데 우리고유 사상인 홍익인간이라고 일갈했다. 천지인, 삼위일체, 천일합덕, 신인일치 등과 맥이 같다고 보았다.

국통맥이라는 용어를 쓰면서 유교, 불교, 선교, 기독교를 아우르는 동학을 피력했다. 수운 최제우가 받았다는 을묘천서는 고구려 천서인 천부경과 통하는 것이라고 풀었다.

▲대일항쟁 초기 천도교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는 천도교 발행지, <중앙총부휘보>. 이 휘보에는 3.1혁명당시 독립선언문에 이름을 올린 다수의 천도교인이 들어 있다. 천도교가 3.1혁명을 주도했음을 손 이사장은 자신있게 말했다.

의암 손병희가 이런 사상과 수행에 터잡고 있었기 때문에 3.1혁명이라는 거대한 대역사를 일으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의암의 능력은 향자치나 3.1민회에서 발견된다. 의암이 <준비시대>라는 책을 내놨는데 여기서 의암의 경세관을 엿볼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책 재발행 과정도 나중에 들려주었다.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하여 고가를 주고 복사하여 냈다고 했다. 국한문 혼용체로 되어 있는 책을 그가 상세하게 풀었다. 해석하는 과정에서 최대 한자사전인 8만단어 사전을 찾아도 해결이 안되는 한자도 나왔다.

알고 보니 일본식 한자였다. 그러니 중국식 한자사전을 아무리 찾아도 풀리리 없었다. 의암이 한 때 일본으로 숨어들어 일본을 정탐하는 동안에 일본식 한자에 익숙해져 <준비시대>에도 들어간 것이다. 

한편 3.1혁명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세워진다. 중국 상해임시정부외에 서울 한성정부, 연해주에서도 생겨난다. 이후 상해임시정부가 일제에 투쟁하는 대표정부로 자리매김한다. 백범 김구가 끝까지 이끌어 해방을 맞이한다.

손 이사장은 백범도 동학에 뿌리박은 인물로 소개했다. 동학농민전쟁 때 황해도 해주성 전투에서 팔봉접주로 나섰다고 한다. 선봉대에 서서 포수7백명을 지휘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대한민국임시정부도 동학이 녹아 있다. 이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어 상해임시정부를 이엇다고 하니 동학정신에 터잡고 있다.

실제로 상해임시정부를 꾸릴 때 동학 입김이 작용했다고 한다. 독립투사들이 동학, 천도교측 본부인 당시 경성독립단 본부 의사를 반영하여 정부조직을 하겠다고 했다.

이날 백범이 환국하여 천도교당을 방문해서 한 말도 소개했다. “만약 천도교 대교당이 없었다면 3.1운동이 없었을 것이고, 3.1운동이 없었다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없었을 것이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이 없었을 것이다.”

알려지지 않는 굵직한 현대사 한 장면이다. 손 이사장은 자신이 어려서 학교다닐 때 현대사를 왜 안 알려 주느냐고 선생에게 따졌다고 한다.

친일부역자들을 불편케하는 진실된 역사가 밝혀지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백범이 광복 후 천도교당에서 한 말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의백학교 심화수업과정은 1월 매주 토요일에 계속된다. 두 번째 심화학습은 1월 12일 ‘조선의 노론과 대한민국의 노론’을 주제로 이덕일 교장이, ‘우리민족의 기원과 홍산문화’를 주제로 이찬구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사무총장이 맡는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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