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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는 민족 발상지, 아직 영유권 있다우리 머릿속 영토를 ‘한반도’로 제한한 것은 일제침략 식민사관이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9.01.06 23:54

 

대한민국정부 간도영유권 있음에도 대응 부실

중화인민국화국의 동북공정 공세로 간도상실위기

역사적, 국제법적으로 대한제국 때도 간도는 우리 땅

동북아역사재단의 반역행위, 간도 중국대변인 노릇

▲서기2019.01.05. 서울 종로구 헌번재판소 옆, <광화문아침> 의백학교에서 심화학습수업이 있었다. 조병현 의백학교 지도교수가 간도가 우리 땅임을 주먹을 붉끈쥐며 밝히고 있다.

우리 머릿속에 우리 영토는 어디까지로 각인되어 있을까. 헌법에 나오는 데로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되어 있을 것이다.

학교 수업시간에도 이렇게 가르치고 소위 '한반도(이하 대한강토)' 지도를 끊임없이 보여주며 머릿속에 새겨준다.

만주 광활한 대륙은 고구려, 대진국 발해 때나 우리 땅이었고 이후 이민족에게 빼앗겼고, 지금은 중국 땅이 되었다는 자기 확신 상태다. 무의식 깊은 곳까지 각인되어 있다.

무의식 각인 속에서 지금 우리 땅은 압록강-두만강 선 이남이 다 라고 추호도 의심치 않는다. 정신생활을 이 공간 안에 가두어 놓고 있다. 더구나 남북분단 상태라 북쪽마저 지워버리고 휴전선 이남만 우리머리 속에 있는 실정이다. 일기예보 등 에서도 휴전선 이남만 알려준다.

이런 령토관은 우리 생활 근본에 영향을 준다. 사실상 섬나라 상태인 휴전선 이남만 머릿속에 그리고 사는 것과, 이북을 포함하여 만주까지 현재 우리 땅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생활은 분명히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 생활 구석구석에 잠재의식으로 파고들어 영향을 준다. 더 나아가 국가차원의 외교정책, 국방정책, 경제정책도 다를 수밖에 없다. 개인은 물론 국가차원에서도 70년 이상 휴전전 이남에 국한 시켜 작은 섬나라 수준으로 살아왔다.

그러니 만주 상당부분까지 지금도 우리 땅이라고 해도 인정하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

이런 우리 령토관을 벼락같이 한방에 깨버리는 학자가 있어 눈길을 끈다. 조병현 박사다. 그는 서기2019.01.05. 서울 종로구 안국역 2번 출구 옆에 있는 <광화문아침> 의백학교 심화학습강좌에서 간도가 지금도 분명히 우리 땅임을 밝혔다.

그는 북한학을 전공한 북방영토전문학자로서 자신있게 말했다. 십 수년간 쌓아온 연구 보따리를 심화학습시간을 빌어 자세하게 풀어 놨다.

그는 간도가 국가간의 회담으로 결정된 국경선을 기준으로 확정된 우리 땅임을 분명히 했다.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가 아니라, 만주 대부분을 차지하는 간도지역까지 우리 령토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근거는 차고 넘쳤다.

먼저 역사가 말해준다. 조선(단군)시대부터 발해시대 까지 분명히 우리 강토였음을 상기시켰다. 또 고려시기에도 민족사학에서 밝혀내고 있듯이 고려 땅으로 드러나고 있다. 철령위 위치나, 강동6주 위치, 동북방 경계선인 공험진 선춘령 위치가 새롭게 밝혀져 이를 뒷 받침하고 있다.

리성계 조선에 와서도 서양인들이 그린 지도를 보면 압록강 넘어 상당지역이 우리 강역으로 그려져 있다.

청나라에서 당시 첨단 지도제작 기법을 보유하고 있던 서양 선교사들에게 조선과 청나라간 국경선을 확정짓는 지도를 제작케 했다.

소위 당빌선, 레지선으로 통하는 이 지도들을 보면 압록강을 훌쩍 넘어 만주도 우리 강역으로 표시하고 있다. 이날 조 박사는 서기1910년까지 그려진 서양지도가 1백여개가 되는데 간도가 우리 땅으로 나온다고 소개했다.

한편 서기1700년경 부터는 서간도 지역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또 북간도 지역은 서기1872년경 우리 나라 사람들의 마을이 들어서고 있었다.

▲ 조 박사가 간도는 지금도 우리 땅이라고 열변을 토하고 있다. 이날 조 박사는 간도 면적이 얼마나 넓은 지, 지도를 보여주어 실감케 했다. 위 사진에 나오는 지도가 간도면적이다. 만주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넓은 땅이 청나라-러시아간, 청나라-일본간 조약 등을 통해서 사라져 갔다.

이 광활한 만주, 곧 간도지역은 대한제국 때까지 관리를 파견했고 이 지역에서 조선인에게 세금을 걷어 조선 행정구역으로 편입시켰다. 이는 명백히 주권이 미치고 있는 우리 령토였음을 뜻한다.

이런 간도가 일제가 서기1905년 우리나라 외교권을 강제로 뺏어가면서 청나라로 넘어간다. 일제는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맺어 청나라에게 불법으로 넘겨준다. 일제는 이 때 간도가 대한제국 령토임을 분명히 하고 이를 기초로 청나라와 협약을 맺었다.

서기1907년 일제는 간도에 조선통감부 간도파출소를 설치하고, 간도가 한국 령토임을 밝혔다. 이를 바탕으로 간도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청나라에 납세의무가 없음을 천명했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는 간도가 분명히 대한제국 령토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일제가 대한제국 외교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하면서 남의 나라 땅을 청나라에 불법으로 팔아먹은 것이 이른바 청-일간 간도협약이다.

조 박사에 따르면 이 간도협약은 불법이라서 무효다. 대한제국 외교권을 박탈한 것 자체가 강압으로 체결된 것으로 무효다. 무효인 외교권 취득을 바탕으로 체결된 간도협약도 자동으로 무효가 된다는 것이다.

특히 2차세계대전에서 일본 패망 이후 중화인민공화국과 일본간 체결된 조약에 따라 무효가 된다. 조 박사는 이날 서기1952년 중-일간 체결된 평화조약 제4조를 근거로 들었다.

이 조약에 “1941년 12월 9일 이전에 일본과 중국간에 체결한 모든 조약, 협약 및 협정은 전쟁 결과로써 무효로 승인한다.”고 되어 있다고 한다. 간도협약은 서기1941년 이전에 중국 청나라와 일본간 체결되었다. 간도협약이 자동 무효가 될 수밖에 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날 조 박사는 국제관습법과 학설, 판례를 증거로 제시했다. 제3자를 위한 조약 효력을 말하는 것인데, “서약은 제3국에게 해롭게도 이롭게도 하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다. <1969년 비엔나 협약>에는 ‘조약은 제3국 동의없이 권리, 의무 창설 하지 못함’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이 규정을 보더라도 제3자인 대한제국이 관계된 간도협약은 무효다.

여기서 간도에 대한 시효가 문제된다. 간도협약이 체결된 이후 100년간 권리주장을 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기한을 넘기면 간도에 대한 권리가 소멸된다는 것이다.

이날 조 박사가 제시한 증거를 보면 소멸시효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조약이나 국제관습법 등 국제법에 따르면 이런 시효제도가 없다. 국제판례도 시효제도를 채택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현재 간도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지배하고 있다. 간도는 반드시 수복해야하는데 현실 문제에 부딛친다.

▲ 이날 의백학교는 제1회 의백학교 수업 심화학습강의를 진행했다. 1회 졸업생들이 예상외로 대거 참여해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조 박사는 이날 간도수복 방안을 다각도로 제시했다. 앞서 중국은 북조선을 점령한 계획을 갖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북한을 지킬려면 간도 령유권을 주장해야’ 한다며 공세적 발상을 내놨다. 이어 ‘간도를 수복하는 것은 결코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며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중국이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임을 상기시켰다. 티벳이나 신강위그르 자치구가 끊임없이 분리독립을 시도하고 있다.

중국정부와 소수민족간에는 서로 섞일 수 없는 분명한 갈등이 끓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분열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를 그는 ‘중국급변사태’로 이름 지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현재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중심으로 독립하고 간도임시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풀었다. 이어 남과 북이 하나되어 간도임시정부와 합치면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제부터라도 준비하면 충분히 간도를 수복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먼저 정부 차원에서 장기 전략, 전술을 세울 것을 요구했다.

정부가 먼저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국회와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대국민 역사와 영토교육을 은밀하게 해야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일시적 감정에 기초한 대응보다 지속적이고 이성과 논리 그리고 객관성을 확보해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3단계 전략을 제시했다. 먼저 간도연구를 치밀하게 할 것을 제안했다. 이어 이를 바탕으로 대국민 교육을 시킨다.

마지막 단계로 문화적 대응을 강조했다. 문화적 대응은 상시로 간도에 관한 문화행사를 개발해 국민에게 체험시키는 방법이다. 다양한 행사를 만들어 간도와 친하게 만든다. 이를 통해서 간도가 우리와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일부분임을 체화시킨다.

한편으로 조 박사는 간도찾기 방법을 지금 일본이 독도를 집요하게 침탈하는 방법에서 찾았다. 자기 땅도 아닌데도 마치 일본 땅인 것처럼 만들어가는데 그 방법을 간도찾는데 써먹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이 독도침탈을 어떻게 하는지 몇 개 사례를 들기도 했다.

한편 이날 새로운 사실도 나왔다. 서기1860년까지 러시아 연해주도 우리 땅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소위 북경조약으로 청나라가 러시아와 조약을 맺고 불법으로 러시아에게 넘겨주었다고 한다.

또 동북아역사재단의 반역행위도 도마위에 올랐다. 서기2012년 경기도 교육청 소속 교사들이 내놓은 교육용 자료집을 문제 삼았다. 자료집에 간도가 우리 땅임을 적시했는데, 재단이 '간도협약 이전에 우리 땅인 적이 없다'며 수정하라고 교육부에 요구했다는 것이다.

동북공정으로 우리역사를 모두 강탈해 간 중국정부 대변인과 같은 소리를 했다며 통탄했다. 재단은 또 자료집에 단군을 역사로 쓴 것도 문제삼았다. 단군은 역사가 아니라 신화라며 고칠 것을 요구했다.

이날 수업에는 의백학교 제1회 교수요원양성과정을 마친 학생들이 주로 참여했다. 전문가 수준의 수업이 진행되었다.

조 박사 강의가 끝나고 의백학교 손윤 이사장이 강의를 이었다. 손 이사장은 이날 ‘동학혁명과 3.1혁명의 진실’을 주제로 심화학습 두 번째 시간을 이끌었다. 이 소식은 2부에서 전한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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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석재 2019-01-11 09:54:46

    해도 바다 속의 섬처럼 지금의 중국 요녕성과 내몽고자치구 경계인 지금의 나만기.고륜기 지역일 뿐이다.

    조병현이 주장하는 요.심지역.서간도.북간도 지역은 대한제국의 황해도.강원도 땅이였다. 즉 대한제국의 평안도.함경도 땅은 요.심지역 서북쪽에 있었다.

    제대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엉터리 지도질 그만해라.   삭제

    • 신석재 2019-01-11 09:49:56

      참 딱하네.
      간도는 거기가 아니야.
      식민사관.동북공정 지리에 근거하면 되나?

      1911 년 청국이 멸망하는 시기의 요하가 지금의 란하이고 조선과의 국경선인 압록강이 지금의 란하 동쪽 지류 청룡하인데 어떻게 간도가 지금의 요하 동쪽이라고 하나?

      또 1909 년 선통원년 청.일 사이의 간도약개의 대상지는 길림성의 연길.화룡 2 개 현 지역일 뿐이고 대한독립군의 항쟁지역으로 서.북간도라 불린 지역은 청 시기의 봉천성 해룡부.흥경부.봉황직예구 지역이 서간도이고 북간도는 길림성 연길.영안.동녕.밀산 등의 지역이기 때문에 간도를 찾는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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