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군최고사령부, 독도와 그 12해리 수역에 일본 어부들 접근하는 것 엄금시키다.

 

글: 장계황(한국역사영토재단이사장, 행정학 박사)

 

 

장계황의 독도이야기 6

연합군최고사령부,

SCAPIN 제677호 부속지도를 작성

일본에서 독도를 분리하여 한국 땅 인정

미군사령부 하지(John R. Hodge)육군 중장,

독도서 어로활동하는 한국인 매우 바람직해

일인들은 들어와서는 안된다고 분명히 함

 

▲ 서기1946년 일본동경에 설치된 연합군최고사령부에서 작성한 SCAPIN 제677호 지도 일부분. 2차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항복한 뒤, 일본이 빼앗은 나라 영토를 되돌려 주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 때 동경에 있던 미국중심의 연합군최고 사령부는 독도가 일본땅이 아님을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지도에서는 영어로 "TAKE"표시하여 일본으로 부터 떼어내 한국영토로 붙여 놓고 있다.

영토를 자국의 영유권으로 인정받는 방법은 역사적 접근 외에도 지리적 접근, 지적학적 접근, 국제법적 접근 등이 있는데 국제법으로 인식과 상황 논리에 의한 독도 영유권 문제를 몇 회에 걸쳐 기술해 본다.

일본이 1945년 8월 15일 연합국에 항복한 후, 동경에 설치된 연합국 최고사령부는 구 일본제국이 이웃나라 영토를 침략하여 빼앗은 모든 영토를 원 주인에게 반환해 주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연합국 최고사령관은 1946년 1월 29일 연합국 최고 사령관 지령(SCAPIN) 제677호를 발표하여 한반도 주변의 제주도·울릉도·독도(리앙쿠르도) 등을 일본의 주권에서 제외하여 한국에 반환하라고 하였다. 연합국의 결정은 아직도 국제법 효력이 있다.

연합국 최고사령관은 뒤 이어 1946년 6월 22일 연합군 최고사령관지령(SCAPIN) 제1033호를 선포하여 일본 어부들의 독도와 그 12해리 수역에 접근하는 것을 엄금하여,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확인하여 주었다.

12해리 수역은 경제수역이 아닌 영해수역으로 독도를 완전히 한국의 영토로 인정한 완벽한 표현이다. 이 당시 SCAPIN 제677호 부속지도를 작성하여 한국과 일본 영토를 구획하였다. 독도를 “TAKE”로 표시하여 그 구역을 대한민국 영토에 포함 시키고 동 문서 제3조에서 “독도” (Liancourt Rocks, 竹島)를 일본 영토에서 분리 제외하여(excluding) 한국에 반환하여야 할 섬으로 구분지었다.

연합국 최고사령관은 1952년 4월 해체 될 때 까지SCAPIN 제677호와 제1033호를 수정한 일이 없으며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연합국 최고사령관이 확인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 독립하여 정부수립과 동시에 주한 미군정(연합국행정대리)으로 부터 한반도와 독도 등 모든 부속도서들을 인수하였다. 대한민국 영토로 인수한 것이니 대한민국의 영토다.

대한민국정부는 1948년 12월 12일 UN총회에서 이 날짜 현재 국민과 독도를 포함한 자기영토를 통치하는 합법적 주권국가로 공인 받았으며 정부수립과 동시에 영토를 확정지은 것이다.

정부 수립 시 연합군 사령관의 영토 확정으로 대한민국 영토는 사실상 확정된 것이며 이는 독도가 포함 된 대한민국 영토를 말한다. 당시 일본의 반대의견은 없었다.

연합군에 의해 일본이 패망하자 미국 주도의 연합군은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식민지배 했던 여러 나라의 주권을 돌려주면서 주권이 미치는 국토인 영토를 함께 돌려주었다.

광복이후 대한국토 남측은 미군정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는데 1948년 미군정은 독도가 한국 땅임을 인정했다.

1948년 6월 8일 오키나와 주둔 미 극동항공대사령부 소속 전투기가 독도에 포격을 가하여 우리어민 14명이 사망하고 23척의 선박이 침몰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미군정청 군정장관 윌리엄 딘(William F. Dean) 소장은 6월 24일자로 극동군최고사령관에게 “리앙쿠르 암(독도) 폭탄 투하” 라는 공문(MGOCG684)를 발송했다.

1. 이 문서에 의하여 약 북위 37도 16분, 동경 131도 50분에 위치한 다케시만 혹은 리앙쿠르 암(독도)의 10해리 동쪽 지점에서 정남북으로 흐르는 가상선의 서쪽 남한의 해안에 폭탄투하 중지를 요청 합니다.....(중략)

3. 리앙쿠르 암(독도) 근처의 수역은 한국 어부들이 이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고기잡이 지역에 해당 합니다. 그 수역은 확실히 세계에서 가장 좋은 품질의 오징어 어장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1947년 그 지역은 11,000톤의 오징어를 생산해 냈습니다.

게다가 1947년 이 수역에서 11,550톤의 다양한 어류가 잡혔습니다. 이 수역은 정어리 새끼 잡이로도 유명한 장소입니다. 다양한 물고기 떼가 돌아올 때 한국 어부들은 그 수역을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W. F. DEAN 미 사령부 육군소장

이 공문을 접한 미군사령부 하지(John R. Hodge)육군 중장은 이렇게 회신한다.

“위 공문서에 포함된 요청에 동의합니다. 이 지역을 한국인 어부들이 이용해야 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입니다”

우리는 일제강점기로부터 벗어났지만 1945년 8월 15일부터 1948년 8월 15일 까지는 미군 중심의 연합군 정부치하에 있었다. 역사적 사실인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으로 부터 항복을 받아 낸 연합군은 다시 대한국토를 통치하다가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에 통치권을 이양해준 것이다.

일련의 이 과정에서 독도는 항상 그 범위 내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그 기간 동안 여러 문서를 통하여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SCAPIN 제677호와 제1033호 그리고 딘 소장의 공문과 하지 중장의 답변은 초지 일관으로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입증 하고 있다.

일련의 사건과 문서는 국제법적으로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알려주는 우리 내부의 문서가 아니다. 한국과 일본이 아닌 제3자가 확인시켜주는 문서다.

이는 국제법적으로 아주 중요한 자료이며 이를 통해 독도는 국제법적으로 대한민국 영토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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