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굽이 동학군이 넘어간 길 따라 마침내 위령제를 지냈다.

글: 조정미(보은북접동학혁명기념사업회 사무국장)

 

"혼을 신으로 격상시켜 3번 절을 한 후,

나는 일어나지 못하고 주저앉아 울음을 토해냈다

몸속에서 올라오는 통곡소리가, 떨림이,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휘몰아친다"

 

▲충북 보은으로 집결한 마지막 동학농민혁명군 약2600여명이 관군과 일본군에의해서 몰살, 학살당했다. 원혼으로 떠 도는 동학농민혁명군을 위해 쓰러져간 계속을 찾아 위령제를 지냈다.

  6월 2일 오후 현령과 제물준비를 위한 시장을 보았다. 이미 예약한 시루떡과 머리누름고기를 확인하였다. 과일은 산에서 제사를 지내는 번거로움을 생각해서 즉석에서 씻어서 포장하였다.

수퍼에서는 술, 청수, 야채를 샀다. 이병골은 마을의 애장터이기도 하여 아이들을 위한 과자도 샀다. 동학공원에서 ‘보은취회와 촛불집회의 공공성’이란 주제의 박범의 강의와 대화로 동학서당1강을 마치고 밤늦게 보은 현령의 집에 왔다.

내가 내일을 위한 제문을 준비하는 동안 현령은 위령터 근처에서 채취한 나물들로 고사리무침, 쑥송편 등을 만든다. 아침에 찹쌀밥과 미역국을 준비하기로 하고 잠에 들었다.        

6월 3일 오전9시 동학공원 인내천정자에서 오이 하나씩을 들고 아시반과 무산의 트럭에 올라탄 사람들이 수철령을 넘기 위해 밝은 얼굴로 종곡저수지 입구로 출발한다. 아이들도 여럿이다. 하늘은 청명하다. 박범의 출발묵념으로 123년 전 동학군의 마지막 발걸음을 따라 공식적인 첫 순례를 시작한다.

 숲 입구에서 시원한 옹달샘 물을 마시며 보은취회가 갖는 의미를 되새긴다.  야생 더덕향, 찔레꽃 향기, 숲 향이 싱그럽다. 아이들이 건네주는 산딸기가 달콤하고 비탈진 길을 오르는 사람들의 호흡이 버겁지만 즐겁다.

수철령 고개마루 돌탑에 돌을 얻고 참회나무 그들 아래 앉아 가빠진 숨을 고르니 박범의 산상강의가 시작된다. 120여 년 전 암울한 현실에서 그들이 꿈꾸는 사회를 위해 모였던 흐름은 2017년 민심이 촛불집회 평화혁명으로 이룬 현실에 닿아있음을 생각한다.


  시원한 산바람을 맞으며 내려오는 길은 가볍다. 다랑이 논에 반사된 속리산 자락의 산들이 정겹다. 북암초 정자에서 잠시 쉬다 보니 괴산에서 역사모임을 하고 있는 교사와 학생들 10명이 합류하였다.

세 개 흐름의 물이 만나서 붙여진 세강교를 지나 이병골로 향한다. 도로에서 숲 속으로 50미터를 들어서니 오방색의 천으로 두른 자리에 정갈하게 상이 차려져 있다. 마을 어르신들도 오셨다. 6차례 구술녹취를 하면서 어르신들은 123년 만에 제상을 받는 그분들이 기뻐할 것이라고 좋은 일 한다고 하셨다.  

호신의 사회로 위령제를 시작하였다. 마을 최장자 어르신과 박범이 초에 불을 켜고 이 마을에 들어온 10명의 동학군 중 7명은 일본군에 죽어 여기 묻히고 나머지 3명을 우리집 머슴이라 하여 살려준 어른신의 손자가 첫잔을 올렸다. 박범이 두번째 잔을 올렸다

내가 3번째 잔을 올렸다. 이미 위령제가 시작하면서 나의 눈엔 눈물이 차올랐다. 올라오는 눈물과 떨림은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잠깐 눈이 마주친 윤중이 마음껏 우르라고 하신다. 혼을 신으로 격상시켜 3번의 절을 한 후, 나는 일어나지 못하고 주저앉아 울음을 토해냈다.

몸속에서 올라오는 통곡소리가, 떨림이,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휘몰아친다... 얼마 후 눈물을 닦으며 울음이 채 가시지 않은 소리로 제문을 읽었다. 마친 후 일어나니 여기저기 함께 훌쩍이는 소리와 눈물을 닦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함께 울었다. 계속 잔을 올리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제사음식을 펼쳐 놓아 함께 먹는다. 박범, 윤중, 무산, 아시반의 흥에 겨운 노래가 이어졌다. 123년 만에 처음 위령을 받은 동학군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의미가 있음을 찾아 기억하고 현실을 잘 살아내고자 하는 우리가 만나는 자리였다.

그래서 함께 한 우리는 감응하였으며 이 에너지로 그들이 꿈꿨던 새로운 사회를 다시 이어가고자 하는 걸음에 동화되어 발걸음이 무겁지 않다. 해원상생의 현장이였다. 또한 이 땅에서 3명의 동학군들이 살아서 새 삶을 이어가, 다시 2017년 촛불집회에서 만난 우리는 평화혁명이란 새 역사를 쓰기 시작하였다.

어지러운 나라를 도와 바로 세워서 백성의 평안한 삶을 지향하고자 했던 보국안민의 정신이 되살아나 현실에 발현되었다. 이 땅의 평화가 주체적이고 온전한 나로서 시작되는 첫걸음임을 재인식하면서 노을 속으로 걸어간다. 
  
<위령제문>
124보은취회 동학서당에서 하늘에 고합니다.

단기 4350년 정유년 음력 5월 9일 보은 속리산면 북암2리 산28번지에서 동학의 후예들이 작은 정성을 모아 120여 년 전 새로운 사회를 꿈꾸고 실천하시다 여기에 잠드신 동학영령님들을 모십니다.

1894년 12월 17일, 찬바람 불고 눈 내리는 날, 종곡에서는 전국에서 모인 수많은 동학군들이 죽어 갔습니다. 이 들 중 짚신을 신고 눈밭을 걷고 걸어 수철령 고개를 넘어 북암에 이른 10여명이 뒤따라 온 일본군에게 7명이 죽임을 당해 이 마을에서는 여기에 모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보듬고, 부모를 모시고, 자식을 돌보지 못한 삶의 한과 애달픔과 슬픔이 이제야 우리에게 전해져 여기 모였습니다. 
두 갑자년 전의 보은취회의 꿈은 님들이 하늘이 되어 해원상생의 의미로 오늘의 촛불혁명집회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 땅에서 다시 우리들로 현신하여 계신님들이여
일본군의 총 앞에서도 우리 집의 일꾼이라 말하던 담대한 용기와 여인의 수치심을 잊고 치마 속을 내 주던 우리 이웃의 너와 내가, 우리가, 하늘이 되는 세상, 님들이 외쳤던 ‘사람이 하늘이니’가 이제 꿈이 아닌 현실로 실현되는 세상을 만들고자 다시 시작합니다.

일찍 님들을 기억하지 못함을 용서해주시고 아직 저 세상으로의 길을 잡지 못하고 있는 영령이 계시다면 이제는 모든 원을 놓으시고 마음 편히 가시기 바랍니다. 님들과 함께 한 하늘의 후손이 살아 기억하여 이 땅에 술을 사 들고
있음을 기억해 주십시오. 님들에 대한 고마움에 이 자리 함께한 후예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님들이 곧 하늘입니다. 우리 모두 하늘입니다. 스스로 살리고 서로 살리고 세상을 살리며 이제 님들의 그 길을 이어 가고자 합니다.   

보은124년 땅으로 임한 하늘님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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