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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풍경, 순종즉위 축하위해 '합방'발표연기고종이 개명군주라는 자들은 독립투쟁 전무한 노론 후예들이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8.12.16 23:57

 

청나라 석학, 양계초가 말하는 대한제국 망국풍경,

서기1910년 8월 22일 추밀원회의 열어 22일 ‘합방’ 발표 결의

이 날은 순종즉위 4주년이니 축하연을 연 뒤에 발표하자

이에 일인들이 허락하여 29일로 ‘합방’공포날짜 정해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이 서기2018.12.15. 서울 종로 재동 의백학교강당에서 제9회 강의를 하고 있다. 이날 강의 주제는 '동학과 3.1정신, 우리사회의 친일파청산' 였다.

“합병조약은 데라우치 마사다케와 이완용의 논의 단계를 거쳤고, 17일 데라우치가 일본정부에 전보로 통지했다. 18일 일본정부는 임시 내각회의를 열었고, 22일에는 임시추밀원 회의를 열어 25일 공포하기로 이미 결정했다.

그런데 조선정부가 갑자기 그날이 조선황제의 순종즉위 만 4주년 기념회를 열어 축하한 뒤 발표하기를 청하자 일본인들이 허락했다.

이날 대연회에 신하들이 몰려들어 평상시처럼 즐겼으며, 일본 통감 역시 외국 사신의 예에 따라 그 사이에서 축하하고 기뻐했다. 세계 각국의 무릇 혈기 있는 자들은 한국 군신들의 달관한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대한제국이 망한 것은 일제의 침략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먼저 신식문물을 받아들인 일제가 압도하는 무력으로 집어 삼킨 것으로 배워왔다.

망국 현장을 지켜본 1차사료에 따르면 그렇지도 않다. 위 글은 중국 청나라 사상가 양계초梁啓超가 <량치차오, 조선의 망국을 기록하다>(최형욱 옮김, 글항아리)책에서 밝힌 망국 상황이다.

이제까지 알고 있는 망국 상식과 너무나 다르다. 당시 나라를 책임지는 왕부터 신하들이 일제에게 나라를 자발로 바치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을사오적이니 하며 당시 몇몇 매국관료가 일본과 작당하여 나라를 판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국가 정점에 있던 순종임금마저 매국에 가담한 냄새가 난다. 이미 망한 나라임에도 자신의 ‘황제즉위 4주년’ 기념 축하잔치를 벌이고 있다. 나라 팔아먹은 날짜가 자기 왕 즉위 날짜와 겹치니 뒤로 며칠만 미뤄달라고 구걸하고 있다.

즉위 기념 축하잔치는 벌여야겠다는 것이다. 나라가 망하건 말건, 있건 말건 자신의 개인명예가 중요했다.

서기2018.12.15. 서울 종로 재동에 위치한 광화문아침 협동조합의 의백학교가 9번째 수업을 이어갔다. 이번 수업은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맡았다. ‘동학과 3.1혁명, 우리사회의 친일파청산’을 주제로 수업에 들어갔다.

김 전 관장은 구한말 상황을 조명했다. 당시 지배세력은 사대노예근성에 찌들어 있었고, 피지배세력인 민중은 자주, 주체, 주인정신으로 무장하고 있었다고 일갈했다.

왕과 관료들은 청나라에 의지하고 이것도 여의치 않자 일본에 의지하고 더 나아가 러시아에 국가 운명을 맡겼다. 마지막에 가서는 일본에게 순종 이하 관료들이 나라를 팔아먹었다. 위 량계초 기록은 이날 김삼웅 전 독립관장이 인용한 것이다.

반면에 민중은 동학혁명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반제국주의, 보국안민으로 스스로 힘으로 부패한 지배세력과 외세열강으로부터 나라를 구원하고자 했다.

▲나라 팔아먹은 직후인 서기1910.11.03. 매국노와 그 처들이 부부동반으로 일본 여행을 하면서 동경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들 중 부녀자들은 사진첩에 '관광 및 일본귀부인간의 친목도모' 목적이라고 쓰고 있다. 이들은 '조선귀족관광단' 간판을 내걸었다. 매국노들 모임을 이렇게 불렀다.

김 전 관장은 리조선왕조가 개국부터 외세지향 사대주의로 시작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외세지향, 사대주의를 국시로 삼았다고 정곡을 찔렀다. 이 같이 정면으로 리조선왕조의 실체를 고발하는 학자는 극히 드물다. 차라리 없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리조선 개창설계자라고 하는 삼봉 전도전 조차 철저한 중화사대주의 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의 정신사상을 집대성한 <삼봉집>에서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중국 기자箕子 은덕으로 사람노릇 할 수 있었고, 중국지배없었으면 동쪽 한 구석에서 자기들끼리 치고 받고 싸우다가 날샜는데 뭐 볼 것 있었냐는 식으로 얘기하고 있다.

리조선을 개창한 리성계는 또 어떤가. <고려사절요>부터 <이조선왕조태조실록>에 이르기 까지 얼마나 철저한 중화사대주의자인지 아주 자세하게 나온다. 그가 한 말을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다.

이날 김 전 관장은 이런 리조선의 실체를 확인하고 압축해서 밝혔다. 이렇게 시작한 나라이니 종국이 이미 예견되었다고 보았다.

반면에 피지배자인 민중은 자주적이고 독립적이었다고 밝혔다. 리조선 5백년동안 백성들이 보여준 역사를 사례로 들었다. 임진왜란 때 선조임금은 백성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갔지만 의병이 전국에서 일어나 왜군과 싸웠다고 했다.

또 리조선 말에 외세가 밀려와 위기에 빠졌을 때 동학이 일어나 민중봉기로 구국에 나섰다고 밝혔다. 이에 왕과 대신들은 일본군을 끌어들여 구국위해 봉기한 30만명의 백성을 학살했다.

이들이 나라를 일본에 팔아먹었을 때 민중은 다시 의병과, 의열투쟁, 독립군, 광복군이 되어 싸웠고 임시정부를 조직하여 일제와 전쟁을 벌였다.

▲ 의백하교 수업은 반을 4개로 나누어 모여 진행한다. 강의가 끝나면 질의응답시간을 갖는다. 이어 반별로 대표가 나와 수업한 내용을 정리해서 발표하고 토론한다.

리조선 5백년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역사를 김 전 관장은 이 같이 요약했다. 이어 그는 량계초가 고발한 대한제국 망국상황을 전하면서 “망국 군주의 즉위 기념일 잔치를 벌이는 군주와 중신들의 정신나간 행위” 라며 분노했다.

그는 서기1910년 나라가 망함으로써 ‘4천년 사직이 무너지고 백성들이 유리걸식’하는 시대로 들어섰다고 탄식했다.

이어 망국으로 팔자가 핀 세력들을 고발했다. 조선왕족, 매국노, 귀족 76인데 이들은 일제에게서 작위와 거액의 은사금받았다고 밝혔다. 이것은 흔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날 매국대열에 가담한 또 다른 세력도 드러났다. 유림儒林이다. 리조선왕조 기초를 다지고 5백년동안 버팀목이던 그들이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것이다. 일제가 전국 유림 721명에 일본돈 30만엔의 거금을 분배했다고 한다.

유림 중에는 지배세력이었던 노론이 있는데 이들이 매국을 주도했다고 보았다. 이른바 인조반정이후 이들이 집권당이 되었다. 김 전 관장은 이들이 인조반정이후 3백년간 집권하면서 매국, 망국짓을 벌였다고 잘라 말했다.

나라가 망한 뒤에 민중은 독립투쟁, 광복전쟁을 벌였지만 이들은 독립투쟁한 적이 거의 없으며 대부분 친일부역자였다고 밝혔다. 또 해방 후에는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 및 오늘에 이르기 까지 기득권세력의 뿌리가 되었다고 고발했다.

그는 이어 “이들은 백성을 수탈하고 외세에 빌붙어 축재한 물적기반으로 자제들을 해외에 유학시켜서 신지식을 배우게 하고, 정계, 언론사, 대학, 고위관련, 법조인으로 키우고 학연, 혈연, 지연을 종횡으로 엮어가면서 영원한 양지족陽地族이 되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동학이 우리민족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풀어나갔다. 그는 동학을 왜 그냥 학이 아닌, 동학東學이라고 했는지 동東이 갖는 지정학적 의미를 먼저 밝혔다.

서학에 대칭되는 개념인데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동방이라고 한 역사 명칭에서 찾았다. 중국역사에서는 우리를 동이東夷라고 했다. 여기에서 시작된 동방, 동국은 여러문헌사료 명칭에서도 등장한다.

그는 동학을 우리 문화, 학문, 철학, 종교, 사상을 집대성한 것으로 풀었다. 그러면서 결코 배타적이거나 국수적이지 않은 시대정신이고 민족사상이며 민족종교라고 단언했다.

이어 불교, 유교, 도교를 모두 포함한 접화군생接化群生의 천도사상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삼국사기>에서 전하는 우리 고유사상, 풍류도를 말한다. 동학이 우리 고유사상을 잇고 있다는 뜻이다.

▲사진은 일본제국주의 일왕이 주는 최고훈장인 '욱일대수장'이다. 훈장 가운데 일제를 나타내는 붉은 태양과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햇살을 표시하고 있다. 또 임진왜란을 일으킨 토요토미히대요시을 상징하고 일본 극우파가 숭배하며 현재 일본내각에도 표시되어 있는 오동잎이 3개잎과 줄기도 새겨져 있다. 일제는 이 훈장을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 등 매국노에게 수여했다. 그런데 지금도 우리나라 고위관료, 경제인, 외교관이 일본정부로 부터 받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사진: YTN 보도화면 갈무리

그는 동학이 서양에서 일어난 수많은 혁명과 종교개혁, 중국의 신해혁명, 러시아의 볼셰비키혁명과 비교해 봐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이들 혁명과는 다른 특징이 보인다며 이들 혁명을 능가하는 것으로 보았다.

혁명과정에서 30만 명의 민중이 학살되었다는 점, 혁명지도자가 3대에 걸쳐 모두 죽임을 당했다는 점, 스승과 제자가 수직관계가 아니라 친구와 같은 수평관계라는 점을 들었다.

그는 동학의 이러한 점 때문에 이후 전개되는 한국 근대사가 역동성이 넘치게 되었다고 풀었다. 리조선 5백년의 강고한 신분제 수직적 폐쇄체제를 근본에서 깨버린 것은 물론이다. 자주독립, 공화제를 표방한 3.1만세혁명도 동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동학 3대 지도자, 의암 손병희가 주도한 3.1만세혁명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증명하는 근거로 그는 의암이 동학 10만 혁명군을 이끈 혁명가라는 점, 개벽, 개화, 제세구민, 인내천, 만민평등에 뿌리박은 종교지도자라는 점, 자주독립을 선포한 3.1만세혁명을 주도한 선각자라는 점을 들었다. 그는 이러한 면모를 갖춘 인물을 우리 근대사에서 찾을 수 없으며 그가 유일하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어 3.1혁명이 갖는 의미를 역설했다. 이날 3.1혁명과 관련해서 밝혀진 사실이 눈길을 끌었다. 우리는 흔히 3.1‘운동’이라고 배웠다. 김 전 관장은 이 같은 말은 원래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당시 3.1혁명이 일어났을 때 각국에서 보도를 앞 다투어 했는데 외국에서 어떤 용어를 썼는지 먼저 소개했다. 중국에서는 조선혁명, 대혁명, 조선해방투쟁이라고 썼다고 한다. 또 우리독립투사들도 ‘혁명’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반면에 일본은 당시 신문에 폭동, 란동, 반란 등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혁명이 운동으로 변질된 것은 리승만 정권에서 제헌헌법을 만들면서 였다고 밝혔다. 친일지주, 친일관리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한국민주당(한민당) 의원들이 '혁명'은 과격하다고 하며 '운동'으로 바꿀 것을 요구하면서 운동으로 바뀌어 헌법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 용어가 공식으로 사용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했다.

이어 해방 후 친일파를 처단 못한 과정을 설명했다.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친일파들이 다시 요직에 기용되어 친일파 처단이 멀어져 갔다. 그나마 제정된 반민족행위처벌법에 따른 활동도 친일관료를 등용한 이승만의 비호아래 탄압받았다.

결국 반민특위도 이승만의 사주 하에 친일경찰의 습격으로 해체되었다. 반민특위를 ‘빨갱이’로 뒤집어 씌워 해체한 것이다. 친일부역자 청산이 무산되는 바람에 해방 후 73년이 지나가고 있지만 친일부역세력이 우리 사회 지배세력으로 군림하고 있다.

▲서기2018.12.13. 선상방송매체, 와이티엔(YTN)은 지금도 일본정부에게서 일제침략 상징, 일본제국주의를 나타내는 '욱일대수장'을 받고 있는 인물들을 고발했다. 사진은 이 훈장을 그동안 받은 인사들이다. 우리나라 지배세력 대표격들이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에 적시된 인물들 외에 외교관, 경제인 등 부지기수가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얼마전 국군 장성들 모임인 성우회 회원들이 일본 전범이 만든 사사카와 재단의 돈을 받고 해외여행다닌 사실이 드러나 경악케 했다. 이 나라는 사실상 일본이 지배하고 있다는 지적이 설들력을 얻는다. 구한말 나라 팔아먹고 일제 은사금, 작위 받고 매국귀족들 모임 만들어 일본에 부부동반여행한 매국노들과 겹쳐진다. 사진:  YTN 보도화면 갈무리

김 전 관장은 이날 마지막으로 격언 하나를 소개하면서 수업을 마무리했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

이 말은 폴란드 아우슈비츠 유태인 집단수용소 현관에 붙어 있는데 조지 산타냐가 쓴 글이라고 한다.

다음 수업은 이찬구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사무총장이 ‘통일철학과 다민주주의 시론’을 주제로 진행한다.

이날 김상웅 전 독립기념관장의 강의를 풀어보면 우리는 아직 망국 상황이다. 우리는 나라를 되 찾은 적이 없다. 나라를 되찾은 줄 알고 있었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얘기다. 광복된지 73년, 정부를 수립한지 70년이다. 이게 속임수라는 것이다.

나라가 망했고 일제가 일본제국으로 만들어 식민통치했다. 서기1945.08.15.은 식민통치자 임무교대였을 뿐이다. 일제 조선총독부에서 미국군 정부로 그리고 다시 일제를 대신한 친일부역자가 지배하는 대한민국 정부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돌아가는 대한민국 상황을 보면 그때와 본질에서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외관만 바뀌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지금 사실상 나라 없는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다. 외국에 나가 위험에 처 했을 때 다른 나라와는 달리 우리 외무공관이 취하는 태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알아서 생존하라는 태도다.

일개 탐욕스런 기업에 불과한 이재용 삼성 앞에서는 국가 공권력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 무정부 상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삶 현장에 파고들고 있다.

▲서기2018.12.11. 태안화력발전소 거대석탄운반띠에 빨려들어가 몸과 머리가 두동강 난 채 희생된 고 김용균 로동자. 그는 희생되기전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서 살인적 작업환경개선을 요구하달라며 면담을 요청했다. 묵살되었다. 오른쪽은 고 김용균 로동자가 작업장에서 끼니로 먹던 컵라면 등 유류품이다. 석탄가루로 시커멓게 때묻은 수첩에는 작업내용과 애로사항이 써져 있었다. 그는 식민통치 제2기시대에 식민지 노예나 다름 없는 비정규직으로 살다 희생되었다. 지금 식민통치 지배자는 일제를 대신하여 정치권력을 쥐고 흔드는 삼성 등 거대 재벌 기득권 세력이다.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로동자가 정부에 구원을 외쳤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왔고 머리와 몸이 두 동강 난 채 시컴헌 석탄가루 자욱한 어둠속에서 죽어갔다.

세월호 참사로 3백명이 넘는 생령들이 구조가 저지당한 채 수장되었다. 사회안전망 파탄으로 전국 곳곳에서 화마로, 수마로, 인재人災로 죽어가고 있다. 언제 죽음이 닥칠지 모른다. 지뢰밭을 걷고 있다.

동아시아 문명을 밝히는 거대 역사유적을 영국장난감 회사에 팔아먹어도 대통령에서부터 정부 누구도 저지하지 않는다. 정상국가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만행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다.

무주공산, 무책임주의, 무정부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구한말 망국 상황을 넘어서고 있다. 우리는 망국亡國을 넘어 야만의 세월을 살고 있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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