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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배신 민주당, 친일지주 한민당서 나왔기 때문친일부패체제 해체해야 한국사회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8.12.09 23:47

 

 

해방공간 미국군정부 식민통치하

리승만의 독립촉성중앙회와 친일지주 한국민주당만 남아

한국독립당 등 광복군 민족주의 정치결사체 제거됨

분단은 소련군에 항복한 일본 관동군이 제공한 측면 강함

해방공간 동아일보 신탁통치 정 반대 보도는 의도된 것

 

▲서기2018.12.08.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가까이에 위치한 의백학교 수업에서 이덕일 의백학교 교장이 '해방공간의 정치사'를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

“리승만정권수립은 맥아더, 하지, 리승만 동경 3인비밀회담서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날짜가 중요하다. 리승만 귀국일은 서기1945.10.16.이다. 상해임시정부 백범 김구는 11월 23일 개인자격으로 들어왔다.”

서기2018.12.08. 의백학교 수업강의에서 이덕일 의백학교 교장이 이 같이 일갈했다. 지난 10월 20일에 문을 연 이후 제8강수업 교수로 나선 이덕일 의백학교 교장은 이날 해방공간 정치지형을 밀도있게 풀어냈다. 이 때 형성된 정치구조가 이후 우리 현대사를 지배했다는 점에서 이 교장의 이날 수업주제는 무게를 더했다. 통한의 현대사를 예고했다.

이 교장은 ‘리승만이 귀국하는 과정에서 일본 동경서 태평양전쟁 사령관 맥아더와 남한 통치자가 된 하지중장을 비밀리에 만났다’면서 이 사건을 이후 해방정국이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 결정하는 변수로 풀었다. 그는 이것을 3자동경비빌회담으로 이름 지었다.

그는 먼저 분단원인을 분석했다. 일본이 항복하기 전 미국은 소련 스탈린에게 대일참전을 요구했다고 한다. 스탈린은 난색을 표했다. 동유럽전선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원자탄을 개발한 미국은 더 이상 소련의 대일전쟁 참여에 매달릴 필요가 없어졌다. 일본 나나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투하되자 일본 항복은 기정사실화 된다.

이에 스탈린은 서기1945.8.9. 일방적으로 대일전을 선언하고 만주와 대한강토로 밀려 들었다. 서기1941년 당시 만주일대에 관동군이 1백만명이었다. 서기1945.8.9. 대일전에 뛰어 든 소련군에 패하여 포로가 된 관동군만 60만명이라고 한다. 소련이 대일참전을 할 당시 관동군 숫자가 최소한 60만명이 넘었다는 얘기다.

소위 ‘무적강군’을 자랑하던 관동군이 순식간에 소련군에 패하고 항복해 버렸다. 소련군 포로가 된 60만명은 시베리아 등 지로 끌려갔다. 이 후 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진 바 없다. 아직도 러시아는 포로된 관동군 60만명 처리에 관한 정보를 내놓기를 꺼려한다.

이 교장에 따르면 이 관동군이 항복하지 않고 버텼더라면 소련군이 쉽게 대한강토에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러면 그 사이 미군이 남북한을 모두 장악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관동군이 너무 쉽게 패하는 바람에 소련군이 파죽지세로 우리나라를 점령해 들어왔고 이에 놀란 미국이 대한강토 38선을 제시하여 이하로는 내려 오지 말도록 요청했다고 한다.

스탈린이 수용했다. 분단 시작이었다. 오키나와에 있던 미군이 뒤 늦게 들어와 38선 이남을 장악했다. 이를 두고 이 교장은 분단원인이 관동군에게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분단도 일본이 저지른 셈이다.

이날 이 교장은 오늘날 일본을 일제전범세력이 장악한 내막도 분석했다. 미국이 그렇게 만들었는데 2차세계대전 이후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이념대결과다. 미국은 2차세계대전을 계기로 세계제국으로 발돋음 한다.

소련과 미국 양축으로 세계역사가 돌아간다. 미국은 원래 중국의 장개석정권이 중국을 장악할 것으로 보고 중국을 소련에 대항하는 반공보루로 삼고자 했다고 한다.

예상을 깨고 존재감 조차도 없던 소수의 모택동이 중국 대륙을 장악하자 동아시아 정책을 급히 변경했다. 일본을 반공보루로 정했다. 일본을 키워 공산주의 세력에 대항하는 방파제로 삼았다.

전후 처리를 하면서 일본전범들을 대거 살려주고 정계복귀를 허용했다.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일본우익을 키울 수 밖에 없었고 이들이 일본을 장악하게 했다. 가장 먼저 처형했어야 하는 히로히토 일왕도 그래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원래는 독일의 히틀러나 이탈리아 못솔리니처럼 죽었어야 했던 인물이다.

▲이덕일 의백학교 교장은 이날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실정을 고발했다. '가미가제'라는 말에서도 풍기듯이 일본은 싸움 잘하는 무적강군이 결코 아니라고 강조했다. 다 과장된 것이라고 보았다. 일본군이 이긴 것은 상대편이 워낙 형편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무적관동군으로 알려진 만주일대에 있던 일본군이 서기1945년 이전에도 소련군에게 궤멸된 사례를 대표로 들었다. 사진 배경 오른쪽은 서기1939년 노몬한 전투에서 소련군에 참패하여 포로가 된 일본군이다.  

이 땅의 해방공간도 이런 미국 뜻대로 정리되어 갔다. 리승만은 미국이 일찌감치 낙점해 놨다. 친일지주, 친일관리들이 중심이 되어 한국민주당(한민당)이 곧 창당되었다. 서기1945.9.16.이다. 김구가 들어오기 2개월전이다.

남한을 점령하고 미군정부 식민통치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한민당은 제빠르게 구미유학파들을 미군정부에 보내 남한 정책을 한민당에 유리하게 하도록 했다. 이들은 영어를 잘했기 때문에 미군이 선호했다. 미군정부에게는 우선 영어로 말이 통하는 인사들이 절실했다.

한민당은 상해임시정부를 부정했고 미군이 진주하기전에 만들어진 인민자치, 자주의 인민공화국 정부 타도를 선언했다. 여기에 리승만은 독립촉성중앙회를 만들어 한민당과 연대했다.

서기1946.6.3. 전북 정읍에서 리승만은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하겠다고 발언했다. 미군정부 뜻을 대변한 것으로 분석된다. 남북분단을 기성사실화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드러냈다.

이 교장은 김구 한국독립당(한독당)의 강령도 소개하여 친일파 소굴, 한민당과 비교해주었다. 한독당이 제일 먼저 내세운 것이 토지를 국가가 소유하겠다는 토지국유화 정책이다. 이는 일제 총독부치하 친일부역 매국노들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던 지주체제 토지 해방이다.

이어 교육도 국비로 하겠다고 했다. 국가가 교육비를 담당하겠다는 선언이다. 무상교육이다. 이 두 강령만 놓고 보더라도 가히 혁명적이다. 지금 재벌 등 상위 극소수에게 토지소유 쏠림이 극대화 되고, 교육비로 허리가 휘는 지옥 대한민국 상황을 예견하고 내놓은 정책같다.

그러니 친일지주당, 한민당이 상해임시정부를 거부하고 같은 계열의 인민공화국 타도를 내세웠던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 교장은 당시 정치지형을 크게 좌익과 우익계열로 나누었다. 우익은 한민당과 독립촉성중앙회 등으로 형성되었다. 그는 이 우익에 김구의 한독당도 포함시켰다. 좌익계열로는 박헌영의 조선공산당, 여운형의 조선인민당, 남조선신민당을 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군정부의 탄압아래 좌익계열 정치세력은 설 땅을 잃어갔고 지하에 숨어 들었다. 또 암살 등으로 당수들이 제거되었다. 나중에는 김구마져 희생되었다.

남은 것은 리승만과 친일지주당, 한민당 계열세력이었다. 이 두세력은 대한민국 수립과정에서 연대했다. 나중에 가서는 리승만의 배신으로 한민당이 떨어져나와 야당이 되었다고 이 교장은 분석했다.

이 구도가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고 단언했다. 리승만의 독리촉성중앙회는 나중에 자유당이 되었고, 한민당은 민주당이 되었다고 밝혔다. 리승만의 315부정선거로 촉발된 4월 혁명으로 정치지형이 다시 재편된다. 한민당의 후신 민주당이 여당이 된다.

얼마후 박정희가 516반란으로 정권을 잡자 다시 민주당은 야당으로 전락한다. 이 교장은 지금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한민당에서 나왔다고 분명히 했다. 야당인 자유한국당 세력도 당연히 한민당에서 나왔다고 강조했다. 현재 여당과 야당이라는 것이 친일지주당, 한민당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 교장은 지금 더불어민주당이 촛불민심을 저버리고 자유한국당과 '적폐연대'를 아무렇지도 않게 벌이고 있는 것이 다 이유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 대통령도 철썩깥이 공약으로 내세웠고, 더불어민주당 자신도 약속한 연동형비례대표제를 헌신짝 버리듯이 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특정 국민들만의 뜻을 국정에 반영되는 것을 막고 전체 국민 의지를 골고루 반영하는 선거제도다. 소위 ‘될 사람 찍으라’는 말이 있다.

이에 반기를 들고 안된 사람을 지지하는 국민 뜻도 국정에 관철시키겠다는 것이다. 소외된 국민을 없애겠다는 제도다.

이 제도하에서는 사표방지라는 말도 나올 수 없다. 민주주의에 가장 가까이 간 제도다. 그런데 이 제도실행을 대선 공약으로까지 약속해 놓고 이제와서 모른체 하고 있다. 이는 특정세력의 정권나눠먹기고 독재를 계속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이 교장은 이런 양대정치세력의 행태를 역사에서 찾았고 친일지주들이 만든 한민당을 근본 원인으로 분석했다.

본래가 친일부역 매국노 피가 흐르는 양 정치세력이 국민을 속이고 정권을 주거니 받거니 해온 현대사로 풀이된다.

▲ 수업이 끝나고 질의 응답시간이 있었다. 질문들이 쏟아졌다. 전태일 열사 동생, 전태삼 선생이 의백학교 학생으로 참여하여 질문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이날 수업강의가 끝나고 참여한 학생들과 시민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이 교장은 이제 누가 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우리가 주인되어 뜻을 펼칠 것을 강조했다.

촛불혁명이 실패로 돌아가고 있는데 이것도 주인되어 스스로 하지 않고 다른 세력에게 해줄 것을 바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촛불로 박근혜정권을 무너뜨렸지만 이후 정부를 혁명세력이 꾸리지 않았다. 자유한국당과 다르지 않은 더불어민주당에게 맡겼기 때문에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오지 않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지금 상황을 4월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민주당 장면정권상황으로 보았다. 개혁에 지지부진했고, 4월 혁명세력의 뜻도 관철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물러난 리승만 부역세력을 방치했다. 민중이 들고 일어나서 요구할 때나 마지못해서 들어주는 흉내만 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혼돈으로 국정을 끌어가 가다가 결국 박정희 반란을 불러왔다.

지금도 문재인 정권 행태를 보면 다시 반동정권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는 불행한 예단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의백학교는 정치학교임을 이전부터 꾸준히 드러냈다. 이날도 이 교장은 의백학교가 세상을 바꾸는 기지가 되어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모택동이 소수세력으로 1백만 장개석 국민당 군대를 몰아낸 저력을 예로 들면서 지금 우리가 비록 소수지만 뭉치고 지혜를 모으고 행동에 나서면 친일파, 식민사관 체제의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어 문재인정부 역사인식도 지적했다. 지금까지 문재인 정권이 박근혜 정권 때 보다 더 역사면에서 후퇴하고 있는데 역사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식민사관이 뭔지 모른다는 것이다. 한 예로 대일독립전쟁 초기 가산을 모두 팔아 독립투쟁에 헌신한 석주 이상룡선생의 안동 고택인 임청각을 문재인 정부가 복원하겠다는 것을 들었다. 그는 이것이 진일보된 것임은 부인하지 않았다.

다만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며 식민주의 사관 청산을 들었다. 다른말로 역사를 바로 복원하는 것이다. 임청각 복원도 중요하지만 역사복원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북맹이니 문맹이니 라는 말도 있지만 우리사회 가장 지독한 문제가 ‘사맹史盲’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가 현재 사맹상태라는 것이다. 사맹상태를 벗어나도록 의백학교가 역할을 할 것도 주문했다. 사맹타파투쟁이다. 다음 수업은 서기2018.12.15. 전 독립기념관장 김삼웅 선생이 ‘동학과 3.1정신, 우리사회의 친일파 청산’을 주제로 진행한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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