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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해양성, 허황옥은 어디서 왔나우리역사는 대한강토를 넘어 대륙과 해양으로 뻗어 나갔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8.11.07 23:47

 

이찬구 박사,

‘한웅천왕 상징하는 조이족, 수리부엉이상

대륙 내몽골자치주 홍산문화서 나와’

김명옥 교수,

‘일제 총독부 식민사학, 줄기차게 단군역사 부정

남한사학계도 이들 역사관 추종, 북한은 단군역사인정’

최원태 고대사연구가,

‘고조선과 전국시대 연나라 국경선은 북경과

현재 난하를 크게 넘지 못해

국내강단사학은 연나라 장성 현 요하일대로 과장’

장재진 교수,

‘가야불교는 기복신앙, 생활실천 불교로 전래 가능성 높아

전래는 허황후가 가야지역에 온 시기인 서기48년경으로도

잡을 수 있어’

▲서기2018.11.02. 서울 종로구 재동에 위치한 의백학교에서 (사)미사협(미래로가는바른역사협의회) 산하 '한국바른역사학술원'이 주최하는 학술주제발표회가 열렸다. '한국사의 대륙성과 해양성'을 주제로 잡았다. 발표자와 토론자가 모두 나와 종합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 역사학계를 장악하고 있는 제도권 강단사학은 우리역사 강역이 대한강토(한반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본다. 역사 시작부터 지금까지 이 땅에서 진행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땅을 벗어나 대륙과 해양으로 간 역사는 유령취급한다. 대륙도 우리 강역이었다는 중국 1차사료까지 무시한다. 국내 사료인 <삼국사기>에 나오는 대륙역사는 말할 것도 없다. 잘못되었거나 과장되었거나 믿을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이러다 보니 그들이 쓴 현행 국사교과서도 대륙과 해양으로 나간 역사는 거의 찾아 볼 수없다. 예를 고구려는 모본태왕 2년(서기49년)때 중국 산서성 태원까지 정벌했고, 다음 태조태왕 3년(서기55년)에는 요서에 10성을 쌓았다는 역사는 없는 것으로 치부한다.

요서에 10성을 쌓았다는 것은 거기가 고구려 땅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현재 요하 서쪽으로는 절대 우리 강역으로 그리지 않는다. 요하 동쪽안으로만 고구려 강역으로 그리고 있다.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을 추종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조선총독부 반도식민사관을 극복하고자 하는 학술발표회가 있어 눈길을 끈다. (사)미래로가는바른역사협의회(미사협) 산하, ‘한국바른역사학술원’이 지난 서기2018.11.02. 서울 종로 재동에 위치한 ‘의백학교’에서 ‘한국사의 대륙성과 해양성’을 주제로 발표회를 가졌다.

이날 학술발표회는 우리역사가 이 땅에서만 고여있었던 것이 아니라 역사시작부터 대륙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밝히는 자리였다. 또 가야 김수로왕 부인, 허황옥의 출신지를 추적함으로써 해양넘어 인도까지 우리역사가 뻗어 나갔을 가능성을 타진했다.

▲ 이찬구 박사가 한웅족과 우하량 유적과 나사대 유적에서 나온 새 옥기를 연결시켜 설명하고 있다.

먼저 첫 발표자로 이찬구 박사가 나섰다. 이 박사는 이미 <홍산문화의 인류학적 조명>이라는 책을 출간한 바 있다. 이 책에서 풍기는 것처럼 대륙 내몽골지역에서 나타나는 홍산문화지역도 우리역사 강역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특히 우하량 유적과 나사대 유적을 집중 관찰했다.

그는 홍산문화지역에서 발굴되는 옥 유물에 주목했다. 그 중에 새를 조각한 옥기에 집중했다. 조각된 새가 어떤 조류인지 연구했는데 수리부엉이라고 결론 내렸다. 홍산인들이 새를 숭배한 종족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중국과 우리 문헌사료를 이 새와 연결시켰다.

당시 새를 숭배한 세력이 한웅족이었다고 확신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이 지역에서 발굴되는 곰소조상을 들었다. <삼국유사>고조선기에 나오는 이른바 ‘단군신화’ 기록과 결부시켜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또 중국 <산해경>에 나오는 웅상이라는 문구에 착안하여 한웅의 상으로 풀었다. 또 중국 문헌사료에 나오는 조이족이 새를 숭배하는 한웅천왕족을 말하는 것으로 결론 지었다.

이는 단군조선을 넘어 이전의 한웅천왕의 신시 배달국까지 역사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는 평가다.

▲ 김명옥 교수가 일제식민사학자들이 어떻게 단군을 역사가 아닌, 전설로 몰아가는지 설명하고 있다.

두 번째 발표자로 건국대학교 겸임교수, 김명옥 박사가 나섰다. ‘단군신화’ 고찰 역사를 주제로 삼았다. 대일항쟁기에는 일제가 우리역사학을 장악하는 바람에 역사로 인정하지 않았다.

김 교수는 일제가 단군을 역사로 보지 않고 꾸며낸 것으로 본 것은 침략을 정당화 하고 식민통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보았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단군기록을 단군전설이라며 승려들이 만든 이야기로 몰아갔다. 이 같은 날조는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에서 확고하게 굳어진다.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한 최남선은 일제의 단군전설 고착화에 반기를 든 사실도 이날 밝혀졌다.그는 ‘단군을 제쳐 놓으면 조선이라는 장강長江의 샘물이 막히는 것’ 이라는 말로 반격했다고 한다. 최남선의 주장은 먹혀들지 않았다.

김 교수는 해방 후 남한 주류사학자들도 일제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을 따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구려 주몽개국신화에 빗대어 단군을 허구로 취급하는데 이는 일제식민사학자들이 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제도권 강단사학의 태두라고 하는 이병도가 이런 주장을 한 이래 역사학을 장악한 그의 후학들이 잇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사회주의 유물사관을 기본으로 단군을 역사로 본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해방 후 일제청산을 국가기본 목표로 했기 때문에 학문분야에서도 식민사관극복을 관철시켰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남한은 일제단군전설학설 책까지 번역출간해서 돌려보는 등 오히려 식민사관이 견고해지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남한은 식민사관을, 북한은 민족제일주의사관을 극복하여 화해와 공존시대로 나가야 한다는 말로 발표를 마쳤다.

▲ 최원태 고대사연구가가 일대일 토론시간에 오른쪽 김수지 역사저술가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세 번째 발표자로 최원태 고대사연구가가 나섰다. 그는 고조선과 전국시대 연나라 국경을 추적했다. 최 연구가가 이날 고조선과 연나라 국경선을 주제로 삼게 된 것은 강단주류사학계가 주장하는 고조선 국경선을 깨드리기 위함이다.

최 연구가가 말하는 연나라는 진시황의 진나라가 들어서기 전의 연나라를 말한다. 전국시대 난립한 여러 나라 중 하나다. 그는 서기전403년경부터 시작하여 서기전221년 진시황의 진나라가 전국을 통일하기 까지 고조선과 연나라 국경선 상황을 분석했다.

<사기>, <전국책>, <회남자>, <여씨춘추>, <수경주>, <설원>, <한서>, <염철론> <진서지리지>, <통전>, <구당서>, <신당서>, <요사> 등을 비교분석했다. 그 결과 고조선과 연나라 국경선을 오늘날 하북성 북부일대로 보았다.

이에 반해 노태돈 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나, 그의 제자 송호정 교수 등 강단주류사학은 연나라 국경선을 말하는 연장성을 현재 요하 동쪽 인근으로 비정한다고 비판했다.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가 문헌사료가 아닌 중국 측에서 내놓은 자료를 기준으로 삼고있다는 게 이유다.

그는 역사는 문헌사료가 우선인데 노태돈 전 교수나 송호정 교수는 유물과 유적을 기준으로 판단한다고 꼬집었다. 특히 송호정 교수는 중국학자들의 연구를 앞세워 그들의 주장을 따르고 있다고 고발했다.

중국학자들의 주장을 타당성 근거를 제시하면서 검토해야 하는데 전혀 없이 그대로 인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유물, 유적은 얼마든지 변수가 개입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연나라 경계를 찾는 것은 옳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재진 동명대학교 교수가 가야불교 성격과 전래시기를 이야기 하고 있다.

네 번째로 장재진 동명대학교 교수가 ‘가야불교 전래시기’를 주제로 발표했다. 가야불교가 어떤 불교인지 먼저 고찰했다. 그는 불교전래시기별로 가야불교도 달랐던 것으로 몰아갔다. 김수로왕 이전에는 부파불교로 추정했다. 이외에는 가야불교가 어떤 것이었는지 특정하지 않았다.

가야불교 전래시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특히 아유타국에서 왔다는 허황옥이 경남 김해에 온 시기에 집중했다. 앞서 아유타국이 인도를 가리키는 것이냐 아니면 다른 곳을 말하는 것이냐를 따졌다.

그는 삼장법사로 알려진 당나라 현장승려의 <대당서역기>를 인용해 아유타국이 인도를 가리키는 것에 무게를 두었다.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아유타국은 주위가 5천여리다...승려가 삼천여명이다. 그 성 북쪽 갠지스 강가 대가람에 아소카 왕이 세운 2백여척 탐이 있다...”

그러나 허황옥이 인도사람이냐, 중국 소수민족 출신이냐를 가지고 다툼이 치열하다. 장 교수는 이에 대한 소개를 할 뿐 자신의 견해를 밝히지 않았다. 향후 연구를 더 해야할 과제로 남겨 놓았다.

토론시간에는 아유타(아유디아)국이 실제한 것인지 자체가 문제되었다. 장교수의 토론자로 나선 이옥순 인도문화원 원장은 자신이 인도 델리대학에서 역사학으로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고 소개했다.

학위취득하는 동안 적지 않은 세월을 인도에서 살았는데 아유디아 라는 나라가 존재했는 지에 대해서는 회의감이 든다고 밝혔다. 아요디아라는 말이 공식 확인되는 것은 서기1700년대라고 못박았다.

전설에서나 나오는 말이라고 했다. 아요디아라는 말은 서기1세기에 나라도 도시이름으로라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일갈했다. 한국에서만 상상력만 가지고 역사로 만들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허황옥 탄생지라는 인도지역을 가봤지만 헛수고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아유타는 인도를 범칭하는 것이지 구체성을 띤 특정나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힘주어 말했다.

결국 허황옥이 왔다는 야유타는 나라가 아니라 인도라는 범칭이라는 소리라는 것이다. 그는 무굴제국도 당시에는 그런 나라가 없었고 나중에 붙인 것이라며 아유타도 허황옥 당시에는 나라이름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날 발표회는 발표자가 발표를 끝내면 토론자가 붙어서 토론을 이었다. 이찬구 박사 토론자로 한배달 박정학 이사장이, 김명옥 박사 토론자로 김병기 박사가, 최원태 연구가 토론자로 김수지 저술가가, 장재진 교수 토론자로 이옥순 원장이 나섰다. 종합토론은 이상진 한국사이버대학교 교수가 맡았다.

▲ 이날 발표회 장소를 제공한 손윤 의백학교 이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편 이날 손윤 의백학교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서 민족정기를 세우는 것은 역사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고 했다. 최근에 강단식민사학계와 동북아역사재단을 상대로 청와대와 감사원에 문제를 제기했는데 해결이 안됐다고 전했다.

또 허위사실유포 명예훼손한 강단식민사학자를 고발했는데 효과가 없었다고 분노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기득권 적폐세력이 배후에 있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여기에 의기소침하지 않는다며 바른역사를 정립하는데 더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의백학교를 연 것도 이런 사태를 대비한 것이고 근본에서 우리역사를 바로잡기 위함이라며 함께 하자고 역설했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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