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조총련의 역사연구 활약상...

조총련은 일본을 넘어 독일 등 해외로 우리역사와 문화를 전파 중...

 

북한의 역사연구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정식 국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한학자들은 북한이 폐쇄적인 사고를 가질 수밖에 없어서 연구가 허술하다고 봅니다. 북한이 단군릉을 발굴하고 평양인근에 단군릉 세웠는데 남한 학자들의 인식은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합니다. 그러나 남한 역사학자들의 대북한 역사인식은 식민사관적 입장에 있으며, 이념 대결적 관점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북한은 단군릉을 세우면서 조선사와 단군사를 집중적으로 가르치는데 북한 학자들은 북한과 만주의 간도를 돌아다니며 문헌과 더불어 유적을 연구합니다. 이렇게 단군조선역사를 필두로 우리역사의 체계를 잡아 가는데, 문제는 이것이 김일성 일가를 넘어서지 못한 다는 데 있습니다. 김일성일가만 넘어설 수 있다면 북한의 역사학과 고고학은 중국보다 실력이 우수합니다.

재일교포(조총련)의 역사연구

조총련의 역사 인식은 대단합니다. 북측이 고향인 조선인들이 내려와 구성된 조총련은 조총련 계열 소학교를 7개를 개설했습니다.1)

1)

1. 도쿄 아카노미아 소학교 - 필자가 나온 소학교

2. 지바 조센노키 소학교

3. 센다이 다이스쿠 소학교

4. 요코하마 조센헤이치 소학교

5. 오사카 다이다츠쿠 소학교

6. 오사카 도쿠다에몬 소학교

7. 오사카 메이메치 소학교

이들 소학교에서는 <천부경> <삼일신고> <단군의 역사>를 배우고 있으며 이들 7개 소학교에 정식으로 자리 잡은 <단군역사>는 47대 단군의 역사를 남한에서 구입한 <규원사화>를 배경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이들은 어렸을 때 단군의 가르침과 천부경, 삼일신고로 무장하여 민족성을 키워나갔으며 전통문화와 예절을 배우는 등 일본 내의 한국인으로 정체성을 세우고 있습니다. 재일조선인들은 중고등학교를 일본인과 함께 나오게 되는데 이 상황에서 <일본사> 와 개인과외로 재일조선인 선생님을 영입하여 <단군사>와 <조선사>를 배웁니다.

그리고 조선인들을 위해 세운 조선대학이 있는데 조선대학은 아직은 재일조선인들이 95%가 학생으로 있지만 이제 외국에서 유학도 오고 교환학생을 받으며 해외로 까지 점점 발전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조선대학을 3류 전문대학급으로 인식하였으나 최근 일본의 경제 위기 등으로 인해 일본인들이 등록금이 싼 학교를 원하기 때문에 조선대학을 지원하는 일본대학생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본교토의 조총련 조선초급학교의 학급에 차려진 달계획표(출처:https://youtu.be/K4r4WH-0PAI)

북한학자들의 연구동향

북한 학자들은 첨단 고고학적인 부분보다는 직접 유적을 답사하여 발굴하고, 방식은 60년대 고고학 방식이지만 이들 만큼 문헌해석이 뛰어난 나라도 없다고 봅니다. 북한은 서기1974년에 김일성의 명령으로 사료문헌에 대한 대대적인 정리를 하게 되는데 이 사료 정리는 서기1982년까지 하게 됩니다.

이러면서 대대적인 단행본과 논문들을 발표하게 되는데 대부분 <고구려의 대륙사> <고조선 연구>가 주를 이루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묘향산에 있는 조선왕조실록도 연구를 하여 <조선왕조사>를 다시 정리하고 있는바 현재까지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남한에서는 윤내현 교수님이 북한 사료를 일본과 미국에서 얻어 연구를 하였고 북한 사료에 대한 책도 내면서 북한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북한은 대체적으로 역사학에 문자를 주로 대입하여 연구하는데 문헌학의 한문부분은 북한학자들을 따라올 수 없을 정도입니다. 북한 학자들만큼 한문을 잘 아는 학자도 없다 봅니다. 그것은 북한은 어렸을 때부터 한문을 필수과목을 익히며 한문에 대한 발표도 하고 있습니다. 중고등학생들이 한문으로 웅변대회 발표까지 할 정도니 정말 대단하지요.

그리고 우리 한글과 한문이 필수과목으로 들어가 있으며 한문학반과 고고학반이 합심하여 만주문자도 해독하는데 성공하였다 합니다. 중국은 이러한 북한 학자들의 연구를 가져다가 만주문자를 자신들이 해독한 것인 양 발표를 하였다고 합니다. 문자도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들어가 있지 않은가 판단됩니다. 그리고 연길대학에는 북한 학자들도 많이 있다고 하니 중국과 북한의 학술교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교토 조선초급학교 수업장면

재일교포(조총련)학자들의 연구동향

재일교포들의 연구동향은 일본의 첨단고고학 기술과 기존의 한문 실력, 그리고 문헌자료수집에 상당한 강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조선사> 연구는 일본 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재일교포들의 자주성과 민족성을 심어주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히다찌’의 조선인 차별정책을 소송을 통하여 이긴 박경식씨와 힘든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역사학자로 살아온 강덕상씨는 재일교포 초창기 민족의 혼을 불어넣는 역사학자였으며 이들은 수많은 후학을 길러냈습니다. 일본에서 양심있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역사학자들의 85%가 재일조선인들이며 이들 중 90% 조총련 계열입니다. 그리고 양심있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재일 역사학자들 중 일본인으로 국적을 바꾸어 성공적으로 연구했던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들 중 도쿄대학과 파리대학, 하버드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분들도 다수 계실 정도로 일본의 "현미경 연구" 방식과 한문해독능력, 사료 모으는 능력을 결합시켜 재일조선인만의 역사학 방식을 만들었습니다. 이들 재일 조선인들은 다수의 일본명문대학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각기의 사설연구소 등을 개설하여 지금도 꾸준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재야사학계 97%가 북한 관련 조총련 계열 역사학자들이다.

일본의 재야사학은 97%가 조선인들로 이들은 핵심적으로 강단에 나서지 않고 초야에 묻혀 연구하는 학자들입니다. 물론 차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재일조선인과 일본인, 남한민단계조선인들을 제대로 가르쳐서 역사학을 바로잡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재일교포 중고등생들의 과외 선생님으로 활동하기도 하며 이들 스스로 학술회의나 좌담회 등의 모임을 갖고 교류를 하면서 학문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 조총련 조선초급학생들이 전통문화수업시간에 한복으로 갈아 입고 있다.

게다가 이들 중 서양인들을 교육시키는 사업에 몰두하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최한식 선생님(72세)이 대표적인데 최한식 선생님은 일본 최초의 독일유학생으로 잘 알려진 분입니다. 서양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국제토론회에도 많이 참석을 하고 있으며 한민족의 사상과 문화에 대해 몸으로도 전파하고 있는, 일본 내 한류문화 전달의 원조격인 분입니다.

이 분들의 노력으로 인해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과 아우크스부르크 국립대학에 최초로 한민족문화과가 신설되었으며(서기2009년), 여기서는 한국 문화 중에서 가장 최고로 평가받고 있는 한복과 제사에 대하여 실제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재일 조총련학교, 아바라기조고의 성악부 학생들이 '사랑에는 사랑으로'라는 노래를 합창하고 있다. 아래는 조선초급학급의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수업시작전에 재롱을 떨고 있다.

여기까지 북한과 재일(조총련)교포들의 역사인식과 동향에 대해 알려드렸고 북한학자들과 우리가 긴밀한 교류체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조총련 교포들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 그들을 인정하고 그들과 함께 세계를 누비며 한류를 전파해야 합니다. ‘걸그룹’들의 활약만이 한류가 아니고 싸이의 ‘강남스타일’ 만이 한류가 아닙니다. 그들은 한류의 일부분입니다. 진정한 한류는 우리 한민족의 문화와 유구한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글 : 세르게이 정(북방고고인류학 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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