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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를 읽고영화 감상법을 달리 할 때 삶의 여러 모습들이 보인다.
고성규 | 승인 2018.10.18 16:21

글: 고성규 (변호사)

 

 

한 변호사의 영화감상평,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같은 글

읽어볼 만한 이유 충분

 

▲고성규 변호사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감상평에서 영화를 보는 눈을 새롭게 제시한다.

1. 영화를 대하는 일반적인 눈

영화를 봤다고 말했을 때, 내게 되돌아오는 질문은 대부분 단순했다.

"어땠어? 재밌어?"

영화를 보았다는 사람들로부터 듣게 되는 소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 영화, 시시해!"

"재미없어, 비추야!"

"엄청 재밌어. 꼭 봐!"

작품에 대한 감상이 '재밌다'와 '재미없다'로 극도로 단순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예술분야는 영화뿐이다. 미술이나 음악에 대한 감상과는 딴판이다. 이런 단순한 감상법은 문학에서도 찾기 어렵다.

판매량을 늘리는 걸 최고 유일의 목적으로 삼아 적극적으로 인기에 영합하려 애쓰는 통속소설 또는 만화쪽에서나 적합한 이분법적인 감상법이다. 영화 감상평이 이렇게 단순해지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하기는 영화가 예술의 한 분야이긴 하지만, 상업성과 대중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특수성이 있고, 관객들도 처음부터 '재밌는' 영화를 찾기 마련이라, 감상평도 그에 따른 결과일 수는 있다.

나는 오랫동안 이런 단순한 영화감상법을 불편하게 느껴왔지만, 정작 어떻게 감상하고 어떻게 표현해야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생각해보지 못했다. 영화를 고르는 기준을 찾으려할 때, 영화평론가들의 평론은 나같은 보통사람에겐 부담스러웠고 ‘별’이나 숫자로 표시된 평가는 ‘재미’를 수치화한 것일 뿐이라 종래의 단순한 감상법을 바로잡는데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2. 외국인의 영화감상법

이 책의 저자 ‘해리슨K’는 25년간 중앙 일간지 편집자로 일해왔고, 지금도 신문사에 적을 두고 있는 현직 기자다. 기자로 일해 오면서, 영화를 「넓은 시선을 열어주는 최적의 종합미디어」로 간주하고 영화관람 후엔 꼭 리뷰를 남기는 영화감상법을 지켜왔다. 그의 영화리뷰는 ‘세상과의 소통장치’다. 32편의 영화리뷰를 담아낸 이 책에 대해 저자는 「지나간 청춘을 그리워하며 잊힌 사랑을 다시 불러보는 한 남자의 가슴앓이」라고 소개한다.

저자가 선정한 영화들은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주제와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편의상 저자가 소개한 영화마다 번호를 매겨가며 생각해보기로 한다.

1)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에서는 감독 자신이 어머니의 외도덕분에 태어난 사생아였다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가족들의 자세를 보여준다.

2) 책의 제목이 되어 준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에서는 사랑이 두려운 여자와 사랑이 권태로운 남자를 통해 타인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현대인들이 타인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제시한다.

3) ‘퀴어 멜로 드라마의 새 고전’이 되었다는 영화, <캐롤>에서는 편견 없이 바라봐 주기를 바라는 감독의 시선을 따라 ‘눈빛으로 사랑하는 러브스토리’라고 설명한다.

4) 천재적인 편집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지니어스>에서는 천재적 작가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그 천재성을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전달하게 위해 독자의 눈높이를 짚어주는 편집자」가 있어야 함을 역설한다. 저자가 바로 신문 편집자였으니, 편집자의 존재가치를 설명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영화이리라.

5) 어느 날 갑자기 예정에 없었던 기차를 타고 일상을 탈출하는 중년의 이야기,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언어의 연금술사」란 책의 저자를 찾아가는 여정의 형식을 빌려 나를 돌아보게 한다. 중년에 들어선 나, 잘 살고 있니?

6) 직장에서의 ‘해고’를 통해 생존을 위해서라면 이기적으로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속성을 드러낸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을 통해 저자는 묻는다. 「가난할수록 약자끼리 물어뜯는 세태, 우리는 어떤 선택으로 최소한의 자기 존엄을 지킬 수 있을까요?」

7) 여행의 참 맛을 보여주는 이야기, <파리로 가는 길>에서는 7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를 이틀짜리 여행으로 바꿔놓았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설명한다. 인생은 목적지로 향하는 고속열차가 아니라 과정까지 즐겨야 참맛이 나는 완행열차다.

8) 「‘와인의 낭만’보다 ‘와인의 현실’을」 보여준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은 자줏빛 버건디 와인 한 병 속에 담겨야 할 것들을 찬찬히 가르쳐준다.

3. 잔잔함 물결같이 흐르는 평론

<캐롤>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듯이, 저자는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들, 상처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골라내서 세상을 보는 다른 시선을 보여준다.

9) 「삶이 슬럼프에 빠졌을 때 가장 보고 싶은 영화」로 꼽히는 <굿 윌 헌팅>을 두고, 저자는 ‘우정에 관한 영화’라고 단언한다. 내게는 로빈 윌리엄스가 그리울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영화다.

10) 사춘기 소녀의 성장기를 그린 영화, <미라클 벨리에>는 청각장애인 가족의 모습을 통해 중요한 것은 사랑이지 장애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한다.

11) 만화가 강풀의 순정만화 시리즈를 영화로 만든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황혼기에 피어나는 러브스토리」다. 사랑을 마무리하는 방식을 생각하게 한다. 나는 일본 만화 <황혼 유성군>을 함께 떠올렸다. 나는 어떻게 늙어야 하고, 내 사랑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12) 영국 조지6세의 말더듬 장애 극복실화, <킹스 스피치>를 소개하면서 저자가 물었다. 「상처없는 존재, 약점없는 영혼이 어디 있을까요?」

이처럼 저자가 고른 영화 속에는 유난히 사회적 약자나 소수의 이야기가 많다.

4. 철학이 있는 영화

저자는 화가와 미술작품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많이 소개했다. 13) 「제대로 된 예술영화」라는 <에곤 쉴레>에서 저자는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었고 그 누구도 따라하지 않았던 독특한 화풍으로 유럽 표현주의 미술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천재화가를 소개하였다. 28세에 스페인독감으로 요절하기까지 불꽃같이 살았던 젊은 화가의 이야기다.

14)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로 대접받는 그림을 소재로 사랑과 욕망, 질투를 농축시킨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한 폭의 명화가 상상력을 통해 소설로 다시 태어나고, 소설이 다시 영화로 표현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15) ‘영혼의 화가’에서부터 ‘광기의 화가’까지 미술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을 추억하기 위해 107명의 화가가 그의 화풍을 따라 6만 2,450점의 유화를 그려내게 하고 그것을 ‘세계 최초의 유화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들어 헌정한 영화, <러빙 빈센트>에서는 미술이 영화가 되고 영화가 그대로 미술이 되는 신기한 현상을 소개해 준다.

16)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오히려 「제도권 예술양식에 얽매이지 않은 ‘나이브 아티스트’」로, ‘캐나다의 국민화가’로 인정받는 모드 루이스(Maud Lewis)의 삶을 그린 영화, <내 사랑>에 대한 소개는 영화를 보지 않은 나를 포함한 모든 독자들로 하여금 모드 루이스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고성규 변호사는 현재 안양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은 안양 소재 변호사 사무실에서의 모습

5. 인간사회 다양한 문제를 담은 영화들

저자가 소개한 영화들 중에는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을 드러낸 작품들이 유난히 많다.

17) 거대 화학재벌 듀폰 가문의 4대손이었으나 짧고 비극적 삶에 그쳤던 존 듀폰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폭스 캐처>,

18) 흐트러짐 없는 드레스 디자이너가 자신이 만든 드레스의 모델을 사랑하고 급기야 그 사랑의 포로가 되는 영화, <팬텀 스레드>,

19) 1630년대 튤립 투기의 광풍이 불던 네덜란드 암스텔담을 배경으로 인간 욕망의 광기를 보여준 영화, <튤립 피버>,

20) 같은 사건을 두고 관련 인물들이 서로 다른 시각으로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아전인수격으로 말하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확증편향’을 보여준 영화,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거장 구로사와 감독의 <라쇼몽>,

21) 육체의 욕망과 본능을 충실히 따르는 색(色), 지켜야 할 지침과 계율을 따라 욕망을 누르고 이성에 충실하라는 계(戒), 둘 사이의 교차 갈등을 보여준 영화, <색, 계>까지, 소개된 영화 전부에서 인간의 취약성이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22) 상식 밖의 일들이 벌어지던, 부패한 군부정권시대를 배경으로 한 아르헨티나 영화, <엘 시크레토>에서 저자는 ‘감히 넘보지 못할 위치에 있는 여자를 바라보는’ 세상의 모든 소심남에게 한 마디 충고한다. ‘여자보다 먼저 표현하고 약속을 건네는 것이 남자의 의무’다.

23) 2차대전 때의 역사적 사건 ‘덩케르크 탈출작전’을 담은 영화, <덩케르크>는 ‘도무지 스토리의 기승전결이나 해피엔딩엔 관심이 없고’ 관객에게 전쟁의 공포를 체험하게 하고 ‘전쟁의 무모함과 오만’을 깨닫게 해주는데 방점이 찍혀있는 영화로 소개되었다.

24) <마션>은 화성에 혼자 남겨진 남자의 ‘400일 화성 생존 투쟁기’다. 저자는 절망적인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주인공의 입을 빌어 말한다. “나도 절망했단다. 하지만 결코 끝까지 절망하지는 않았어. 문제하나를 풀었고, 그 다음 또 하나를 풀었어. 하나 하나 풀어내니 결국 살아났어.”

25) <인터스텔라>, 저자는 이 영화를 두고 물리학 이론을 토대로 시간여행을 설명하고 ‘인간과 사랑’을 이야기한 과학영화라고 소개했다. 내게는 좀 난해한 영화로 기억되고, 영화의 끝 부분을 뚝 잘라내 버리면 어떨까 생각하게 했던 영화다.

6. 종교안의 성문제를 다룬 영화

뒷부분에 소개된 몇 작품은 저자의 직업의식을 상기하게 한다. 26) <스포트라이트>, 조직적으로 은폐되어 온 카톨릭사제들의 아동성추행 스캔들을 고발함으로써 심층취재 저널리즘의 모범이 된 신문기사에 관한 영화다. 모든 기자들의 로망이며 추구해야 할 가치를 보여준다. 권력과 다수의 불편한 시선에 굴하지 않고 소신을 보이고 정의를 드러내는 일이 어디 저널리즘에서만의 문제랴. 나약한 육체를 가지고 태어났으나 그 속에 고귀한 영혼을 간직하고 있다고 믿는 모든 사람들이 지녀야 할 가치가 아닐 수 없다.

27) 저자는 1984년 미국 최초의 직장내 성폭력집단소송사건을 다룬 영화, <노스 컨츄리>를 소개하면서 일갈한다. 못난 찌질이들은 가라!

7. 우리나라 영화도 다룬 외국평론가

저자가 소개한 한국영화는 많지 않다.

28) 노론 기득권층의 개혁군주 시해시도를 물리치고 「망해가는 조선을 구하려는 정조의 마지막 몸부림」을 그린 영화, <역린>,

29) ‘바다를 포기하라’는 어명을 거부하면서까지 끝내 바다를 지켜내고 나라를 구해낸 영웅 이순신을 그린 영화, <명량>,

30) 우리 역사상 최악의 해로 기억되는 1636년 병자호란 이야기를 ‘실천 불가능한 대의와 실천 가능한 치욕’으로 대비시켜서 풀어낸 영화, <남한산성>,

31) ‘음행과 패악의 폭군’ 연산군과 미천한 광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왕의 남자>,

32) 오랫동안 ‘빨갱이 폭도’로 낙인찍고 ‘광주사태’란 오명으로 불러왔던 80년 5월 광주를 이야기하는 영화, <택시운전사> 등 다섯 편이 전부다.

<명량>과 <남한산성>에서는 영화의 원작이 된 소설가 김훈에 대한 저자의 존경심이 묻어난다. 김훈의 필체가 그렇듯이, 저자의 필체 또한 접속사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간결하지만 메시지는 오히려 명확하다. 글쓰기 공부의 교재로 삼을 만 하다.

8. 비내리는 가을날 사랑하는 사람과 커피를 들고 영화관으로

저자가 소개한 영화 중에는 이미 본 영화도 더러 있지만, 보지 못한 영화가 더 많다. 본 영화건 보지 못한 영화건 상관없이, 저자의 글 속에서는 하나같이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 소개된 영화와 그에 대한 저자의 감상법에서는 예외없이 나약한 인간에 대한 연민이 들어있다. 32편의 영화에 대한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문학과 예술의 영원한 테마는 결국 ‘사랑’일 수 밖에 없음이 재확인된다.

가을 비가 내린다. 이런 날은 커피가 땡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 들고 극장으로 달려가도 좋겠다(2018. 10. 5. 비오는 날 오후).

 

글쓴이 소개:

고성규 변호사는 성균관대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현재 안양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돕고 있으며 사회문제에 대하여 법률가로서 예리한 비판을 하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lawyergoh

 

고성규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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