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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 백범 정신사상 잇는 ‘의백학교’ 출범하다천도교대교당이 있어 3.1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한민국이 가능했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8.10.16 23:49

 

의백학교,

인내천, 사인여천, 홍익인간 추구

진정한 자유, 평등, 정의 실현에 교육 초점

의암손병희와 백범김구 정신과 사상이 같은 것으로 밝혀져

의백학교 지원생들 사회 저명인사, 지식인이 대부분

‘광화문아침’ 협동조합으로 학교운영 될 것

서울 종로 재동 1백 평 넘는 새 공간에 학교마련

 

▲서기2018.10.14. 서울 종로구 재동, 안국역 2번출구 맞은편에 위치한 MJ건물에 들어선 의백학교가 문을 열었다. 의백학교 학생들과 교수진들이 행사를 마치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대한민국은 정부수립 때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지적이 많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일제와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운 광복군 세력이 주축이 되어 나라를 세운 것이 아니다. 청산되어야 할 친일부역 매국세력이 대한민국 모든 영역을 장악했다.

일제 조선총독부를 대신하여 점령군으로 들어온 미국군이 그렇게 만들었다. 미군은 점령군으로 들어와 군 정부를 설치해 3년간 통치했다. 미국군 자국의 이익에 맞는 정부를 원했고 이에 따라 이승만의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섰다. 미국군과 이승만은 친일부역 매국세력을 미군정 통치에 활용했고 대한민국 정부구성원으로 끌어들였다.

광복군 천지가 되어야 했으나 일제치하에서 졸개노릇하던 자들이 상전이 쫓겨가자 그들 세상이 되었다. 이게 대한민국정부수립의 진상이다. 그러니 조선총독부체제를 해체하고 우리 정신과 제도로 정부를 수립할 수 없었다. 일제치하 그대로 대한민국정부로 이름만 바꾼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제도 모든 것이 일제치하 조선총독부체제 그대로다. 행정부 조직과 관리 이름명칭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주사보, 주사, 사무관, 서기관, 부이사관 등 모든 이름이 조선총독부 시절 명칭 그대로다. 또 사법부 체계도 그대로다. 그래서 법전도 법률용어도 모두 일본어다. 일본어 한자다.

군대는 말할 것도 없다. 육군참모총장이 모두 전직 일본군이었다. 그들이 수명이 다해 죽을 시기인 서기1970년대 까지 일본군이 맡았다. 육군사관학교에서 ‘사관’이 일본어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군대 구타문화나 인권유린학대는 일제 식민지 군대 잔재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지금 학교건물 자체가 식민지 전시체제 군대병영막사 구조다. 교육내용도 조선총독체제 그대로다. ‘충량한 황국신민’을 찍어내는 단순 암기, 주입식 교육이 해방된 지 73년이 되었다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학생들이 입고 다니는 교복도 군복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악랄하게 남아 있는 분야는 어디일까. 총독부체제 그대로를 넘어 더욱 발전. 진화하는 분야가 있다. 역사학이다. 조선총독부 식민주의사관이 그대로 존속하고 있다. 식민사학이라고 비판이 일자 강한 내성이 생겨 더욱 강고하게 진화하고 있다.

그러면 통치는 어떤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 밑바닥에 깔려있는 사슬이 있다. 국가보안법이다. 이는 총독부시절 식민지 조선인을 폭압으로 짓누른 치안유지법이 이름만 바뀐 법이다.

▲의백학교 출범식 시작하면서 붉은 팥떡과 청수를 모셔놓고 손윤 의백학교 이사장의 제안으로 기도를 하고 있다. 앞으로 의백학교가 잘 되게 도와주시고 무탈하게 해달라고 천지신명에게 빌었다.

반공을 핑계대지만 사실은 지배세력으로 군림하는 친일부역 매국세력 보호법이다. 이 법은 대한민국인 정신과 사상 및 표현활동을 근본에서 통제, 억압한다. 그러니 창의성과 독창성 있는 과학기술, 학문 등이 나올 리 없다. 따라서 노벨상 수상자 하나 볼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게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의 실상이다.

그래서 서기21세기 세계화 시대니, 민주화시대니, 세계 10몇 위권 국력을 자랑한다느니 하지만 실상은 일제치하다. 다만 일제가 키워놓고 간 친일부역세력이 대신 통치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국학이 없다. 모두 일본산 학문에 뿌리 박고 있다. 일본 것을 가장 잘 고수하는 학문이 역사학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있지만 일제식민주의 사관을 따르는 자들이 모두 장악하고 있다. 간판은 한국학을 내걸고 있지만 일본국학을 하고 있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에서 이 기관에게서 대일항쟁기 독립투쟁사를 연구과제로 받았다. 그런데 과제에 충실하게 연구해서 결과를 제출했더니 퇴자를 놨다. 왜 독립투쟁사를 밝히고 조선총독부에 복무한 친일사학자를 밝혔냐는 것이 이유다. 또 왜 식민지근대화론을 반박했냐는 것이다. 그래서 연구지원비 삭감, 출판 불가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이는 한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등 우리 국가이익이나 국학, 역사학에 관련된 기관들이 일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모두 대한민국 정부수립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이다. 실상이 이렇다 보니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민간에서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표사례가 국사 찾기 또는 국사광복투쟁이다. 이는 해방 후 서기1960년대부터 불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서기1970년대와 서기1980년대는 국사 찾기협의회가 생기고 국회 청문회까지 열어 국사바로잡기 투쟁이 이어졌다.

▲축복 고사를 지내고 떡을 의백학교 주요인사들이 함께 자르고 있다. 왼쪽부터 동학민족통일회 송범두 상임의장, 이동진 전 광복회 서울지부장, 조병현 지도교수, 손윤 의백학교 이사장, 김성호 전 서울교육대학교 총장.

결국 의암 손병희나 백범 김구 등 광복군 세력이 제시한 국가상을 가지고 정부가 수립되어야 했다. 상해임시정부가 해방 후 대한민국정부로 이어지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했다. 정부가 지금이라도 역사의식을 가지고 이들의 정신과 사상을 바탕으로 전면 개조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요원하다. 이런 생각자체를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광복군세력의 정신과 사상을 밝혀 그들이 바라던 나라와 세상을 만들겠다는 모임이 있어 화제다. 의백학교다. 의백학교는 의암손병희선생과 백범김구선생의 호 앞자를 따서 만든 것이다.

지난 여름부터 준비하여 서기2018.10.14. 출범했다. 서울 종로구 재동, 북촌로 1길 MJ건물 3층과 4층에 자리 잡았다. 3층이 학교 주공간이고 4층은 수익을 내는 사업공간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한다.

의백학교는 일반 학교와 속살이 완전히 다르다. 기존의 주입식, 암기식 교육을 거부한다. 자율학교로 운영하는데 토론과 발표 등 학생 주도형 교육체계를 도입했다. 또 반드시 졸업시험을 치루고 이 시험을 통과해야 졸업장을 준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수행과목이 있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본 수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수행修行을 해야 한다. 수행지도사가 나와 이끈다. 기독교 계열 학교나 기타 다른 종교계열 학교에서도 각 종교에서 행하는 종교의식이 있다.

그러나 의백학교는 외래정신이나 사상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수행시간에는 우리 고유 것으로 진행한다. 이날 나눠준 수행안내문을 보면 구한말에 생겨난 동학, 증산교 수행을 비롯해 서기1980년대 나온 ‘단월드’ 같은 민족정통수행법이 행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설립 목적을 보면 일반 학교와 다르다. 우리민족의 정체성과 뿌리회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홍익인간에 뿌리박은 자유롭고 조화로운 인간상을 구현하겠다고 한다. 또 민족문화와 바른역사를 복원하여 나라와 사회발전에 이바지 하겠다고 한다.

▲손윤 의백학교 이사장이 학교설립목적과 의백사상을 설명하고 있다.

의백학교를 세운 손윤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서 이 같은 학교설립목적을 전했다. 그는 ‘겨레의 큰 스승이신 의암 손병희선생과 백범 김구선생의 정신과 사상을 계승하여 역사광복과 한반도 평화통일에 기여하고자 만든 민족학교’라고 설립목적과 학교성격을 밝혔다. 또 ‘우리가 아직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친일과 사대로 민족장래가 어둡다’ 고 현재 상황을 진단했다.

이어 ‘의암의 동학정신과 백범의 독립정신을 배우고 알리자’고 호소했다. 가치관의 혼돈 속에서 수많은 병리현상으로 중병에 걸린 대한민국을 건강하고 튼튼한 나라로 만들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의백학교가 민족정신과 정체성을 회복하고 나라와 민족 발전에 이바지 하는데 앞장서게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어 의암과 백범간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두 사람이 조국광복투쟁에 뜻을 같이 했음을 행적을 통해서 밝혔다. 의암과 백범은 동학농민봉기과정에서 동학통령과 접주관계를 맺었다.

황해도에서 동학접주로 투쟁한 백범이 보은에 있는 의암을 찾아 지시를 받은 일, 동학농민전쟁이 실패한 뒤 두 사람 모두 일제를 피해 은거한 일, 3.1혁명 후에 경기도 양주 봉선사에서 상봉한 일, 해방 후에는 서울 우이동 봉황각을 백범이 찾아 의암을 기린일 등이 두 사람이 한 길을 걸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어 의백학교가 있는 장소에서 약 50미터 떨어진 덕성여중 자리가 원래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었던 곳이라고 했다. 그런데 일제는 3.1혁명 이후 그곳을 기독교에 학교설립부지로 내주었다고 한다. 앞서 그 자리는 서기1893년에 의암이 광화문복합상소를 올린 자리라고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임시정부를 세웠다고 한다. 의백학교가 그 터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상징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이날 의백학교 소개와 운영과 교육 세부사항 안내는 조병현 지도교수가 맡았다. 조 교수는 교육이념을 민족교육, 민주교육, 경제교육, 통일교육으로 잡았다고 소개했다. 민족교육은 조선의 웅혼한 기상을 계승하고 한민족의 바른역사확립을 통한 의백정신을 실현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교육은 평등과 자유를 숭상하고 권리와 의무를 다하는 정의로운 사회를 열어가는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교육은 유무상자라는 사상에 입각해 자유경제체제를 위한 민간영역의 경제교육 활성화와 연령과 세대에 맞는 신경제인 양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통일교육은 민족통일의 당위성과 실현성을 인식하여 미래 통일한국을 이끌 새지도자를 키우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의백정신을 바탕으로 바른 역사관과 국가관을 확립하고 민족시원과 역사, 분단과 통일, 대한강토와 국제정세에 대한 이론과 사례를 병행하는 교육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병현 의백학교 지도교수가 학교운영과 일정를 설명하고 있다. 이날 조 교수는 특히 자신의 전공인 부동산과 영토관련 자격증을 학생들이 취득하여 활동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는 의백학교에 지원한 학생들이 나와 자기소개와 포부를 밝히는 면접심사로 진행되었다. 30여명의 학생들이 1명씩 앞에 나와 짤막하게 자신을 소개하고 의백학교 학생이 되면 어떤자세로 임할 것인지 밝혔다.

20대 청년에서부터 80대 노인까지 다양한 층의 인물들이 참여했다. 자기소개를 통해서 우리사회에 중핵을 담당하고 있는 인물들이 학생에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퇴직 교수, 기업가, 사회 활동가, 중견기업 간부, 유통회사 사장, 유학원 원장, 퇴직언론인, 언론인, 교사, 현직 대학 교수, 국제활동가, 금융인, 주부 등 직업군의 고급인력들이었다.

한국사전공 박사 등 박사급 인사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지원자들의 이력을 보면 오히려 이들이 의백학교 교수진들 보다 경력이 화려할 정도다. 전태일 열사 동생, 전태삼 선생도 참석하여 의백학교 학생이 되고 싶어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동학농민전쟁시 전봉준 장군의 후손이라고 소개했다.

이날 지원자들은 자기소개 과정에서 왜 의백학교에 응시했는지 이유를 밝혔다. 공통되는 것이 나타난다. 우리 정체성이 무엇인가, 나와 우리에 대해서 그동안 바쁘게 사느라 관심을 갖지 못했다. 이제 여유가 생기니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우리정신, 사상, 역사에 강한 목마름이 생겼다고 한다. 특히 의암과 백범 사상과 정신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매주 토요일에 수업이 진행되는데 첫 시간에 수행시간이 있다. 언 듯 보면 무슨 특정종교집단이나 특정인의 사상을 주입시키는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 그럼에도 경쟁률이 3대 1정도로 지원자들이 몰린 것은 무엇일까. 의암과 백범이 갖고 있는 보편성 때문일 것이다.

근현대사를 사실상 이끈 민족지도자에 주목한 것으로 풀이된다. 민족공동체 구성원 모든 이들에게 사표가 되고 모범이 되는 인물로 다가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재 안산에 살고 있다는 박종민(27)씨가 의백학교에 학생지원하게 된 배경과 포부를 밝히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 지식인층이 제 역할을 못해 국민들이 힘들고, 역사도 식민사관으로 되어 있어서 자신이 일인매체를 만들어 바른역사을 전하고 정체성 확립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이날 학생들 면접에는 김성호 전 서울교육대학교 총장과  독립기념관 이사 및 전 광복회 서울지부장 이동진 선생이 참여해 출범식을 빛냈다. 이동진 선생은 광복투사, 석주 이상룡 선생 후손이기도 하다.

한편 의백학교 교가도 나왔다. 일제와 독립전쟁을 벌이면서 광복군들이 부른 노래다. ‘압록강 행진곡’이다. 이 노래가사를 보면 오늘날에도 적용되는데 큰 문제가 없다. 앞서 밝힌 데로 지금은 친일부역세력에 의한 식민통치 2기를 방물케하는 세상이다.

가사중에는 “원수한테 밟힌 꽃 포기 있다.” 라는 말이 나온다. 일본군성노예로 끌려가 유린당하고 죽은 수많은 식민지 조선처녀들이 있다. 지금도 생존해 있는 할머니들이 있다. 꽃다운 나이 조선처녀를 전쟁터로 끌고가 짓밟은 만행을 가사에 담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의백학교 교가로써 ‘압록강행진곡’은 여전히 살아 있을 수밖에 없다.

의암 손병희 천도교 전신,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崔濟愚가 일본을 향해 이렇게 저주를 퍼부었다.

"개같은 왜적놈아 너희신명 돌아보라,

전세임진 그때라도 오성한음 없었으면

개같은 왜적놈이 전세임진 왔다가서,

개같은 왜적놈을 한울님께 조화받아,

대보단에 맹세하고 한의원수 갚아보세(용담유사/안심가)"

득도한 최수운 조차도 일본을 향해서는 불같은 분노를 뿜고 있다. 한점 갈등이나 분열, 구름 한 점 없는 분노다. 순백이다. 한알님, 신神의 분노라고 할 수 있다. 예수도 독사의 자식이라고 저주를 퍼부은 바 있다. 수운과 예수의 분노가 같다. 윤리도덕을 넘어선다. 수운이 이렇게 분노하는 것은 그 만큼 일본이 우리에게 저지른 죄악이 사무친다는 것이다.

‘압록강행진곡’에서도 “우리는 대한광복군, 악마의 왜놈 처물리자” 고 다짐한다. 일본을 악마라고 부르고 있다. 분단체제가 해체되고 남과 북이 하나 되어 완전한 독립을 이룰 때 까지, 마땅히 이 노래를 중단없이 목소리 높여 불러야 하는 이유다.

▲ 주부, '아줌마' 장지연씨가 의백학교 학생이 되고 싶은 소망을 말하고 있다. 그에게서 나온 첫 마디가 "제발 좀 저를 좀 학교에 끼워주세요" 다. 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하겠다. 혹시 학생에 탈락되더라도 올 것같다. 뒤에서 숨어서라도 강의를 듣겠다. 걸레질도 하고 심부름도 하고 다 하겠다. 선생님들 소개말씀들을 듣고 울컥, 울컥했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동이다. 선생님들 말씀 듣는 것만으로도 오랫만에 소름이 쫙쫙 돋았다." 라고 진한 감동을 전했다. 그는 또 자신이 검은태 안경을 쓰게된 사연을 알려 줬다. 15년전에 이 안경을 어렵게 구해서 지금까지 쓰고 있는데 '김구선생 안경아니냐'며 김구선생 발자취를 따라다니고 있다고 의백학교에 오게된 사연을 전했다.

의백학교 이번 학기는 서기2018.10.20.에 시작하여 12월19일에 끝난다. 매주 토요일 14시에서 18시까지 한다. 11주, 44시간이다.

한편 의백학교는 조합형식으로 운영된다. ‘광화문아침’ 협동조합을 결성해서 조합원 2백 명을 모집하여 1인당 1백만원 조합비를 받는다. 의백학교 설립 취지에 공감하고 함께 할 사람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주최 측에 따르면 상당수 인원이 이미 가입해 있다.

또 광화문아침 협동조합 이사장이 조합비 원금보장각서를 발급하겠다고 한다. 학교를 운영하면서 원금을 축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조합은 수익사업을 전개하는 데 학교가 들어선 MJ건물 4층에 식당을 열어 여기서 수익을 내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따라서 수익이 나오면 조합원에게 배당된다. 의백학교는 오는 서기2018.10.20. 토요일 입학식과 더불어 첫 수업에 들어간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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