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서, 고조선을 선인(군자)이 있어 죽지 않는 나라로 기록...

<후한서> '동이전'을 통해 본 고조선의 역사

우리나라의 고대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서의 사료가 부족함을 많이 토로한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말고는 별다른 사서가 없어서 흔히 중국의 정사라고 하는 25사를 인용한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25사를 인용하면서도 과거에 굳어진 사관(史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극히 제한적인 인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의 사서 중에서 우리나라 고조선 시기에 해당되는 사실(史實)을 기술한 사서는 없을까? <후한서 동이전(後漢書 東夷傳)>이 여기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준다. 비록 ‘단군’이나 ‘조선’을 언급하지도 않았으며 철저한 중화주의 사관에 입각하여 기술된 사서이지만 고조선과 관련하여 많은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후한서>는 120권으로 된 사서로서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에 송(宋)나라의 범엽(范曄)이 저술한 책이다. 후한의 13대 196년간의 사실(史實)을 기록하였으며 기(紀) 10권, 지(志) 30권, 열전(列傳) 80권으로 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지(志) 30권은 진(晉)의 사마 표(司馬彪)가 저술한 것을 그대로 실은 것이다. '동이전'은 <후한서> 권115 열전 권75에 동이(東夷)라는 말의 뜻과 동이의 종류 그리고 우리의 고조선에 해당되는 시기에 동이와 서토와의 관계에서 위만조선 때까지의 기록과 부여, 고구려, 예, 삼한, 왜 등을 자세히 적고 있다. 고조선의 역사를 인정하고 있는 <후한서 동이전>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夷), "군자가 있어 죽지 않는 나라"

첫 번째, 동이에 대한 풀이이다. <왕제(王制)>를 인용하여 동이의 뜻을 “동방을 이(夷)라 하며 이(夷)는 근본(根本)이다. 어질고 착하며 만물을 낳게 하고 땅에 뿌리를 내리고 나온다는 말이다. 그러한 까닭에 타고난 바탕(天性)이 부드럽고 순리에 따라 살며 도(道)로 다스리기가 쉬우며 군자가 있어 죽지 않는 나라이다.”라고 하였다. 허신이 쓴 <설문(說文)>에는 ‘이(夷)’라는 글자는 큰 대(大)와 활 궁(弓)에서 비롯되었고(从大从弓), ‘동방에 사는 사람’을 뜻한다고 하였으며 노자(老子)는 ‘큰 도(道)가 성한 것(大道甚)’을 이(夷)라고 풀이하였다.

두 번째, 이(夷)의 종류는 아홉 종류가 있는데, 견이(畎夷), 우이(于夷), 방이(方夷), 황이(黃夷), 백이(白夷), 적이(赤夷), 현이(玄夷), 풍이(風夷), 양이(陽夷)라 하였다. 이는 고조선을 형성하고 있는 부족이나 국가는 아홉 개의 종족임을 밝히고 있고 그 지역에 따라 각각 부르는 이름이 있었음을 나타낸 것이다.

세 번째, <후한서 동이전>은 고조선의 건국시기부터 몰락 그리고 위만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고조선은 <삼국유사>에서 여고동시(與高同時)라 기술되어 있는 것처럼 서토의 요(堯)임금 시기에 건국되었다. <후한서 동이전>은 본말이 전도되긴 하였지만 “옛날 요(堯)가 희중(羲仲)에게 우이(嵎夷)에 살도록 하였는데 양곡(暘谷)이다. 무릇 해가 뜨는 곳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요(堯)가 살도록 했다는 우이(嵎夷) 지역은 현재 중국의 산동성으로 고조선의 일부였다. 이는 고조선의 일부를 전체로 표현하고 있었으며 마치 요가 천자이며 중심이고 고조선은 제후이며 변방처럼 표현을 한 것이지만 고조선의 정체를 간접적으로 시인하고 있다. 이 우이(嵎夷)가 구이 중의 우이(于夷)임은 말할 것도 없다.

▲고조선의 역사를 기록한 후한서 권115 동이전

아홉 개의 이(夷)는 고조선 아홉 개 종족 이름

또한 하(夏)나라 때에는 “태강(太康)이 덕을 잃자 이인(夷人)들이 처음으로 반란을 일으켰으며 태강(太康)은 계(啓)의 아들인데 놀러 다니고 사냥하는 것만 즐거워하여 100일 동안 조정에 돌아오지 않고 백성들을 돌보지 않으니 예(羿)에게 쫓겨나게 되었다.”고 하였으며 “소강(少康)이후로부터 대대로 임금의 교화에 감화되었으며 마침내 동이가 왕문(王門)에서 하례를 하고 그 음악과 춤을 바쳤다.”고 하여 하나라와 고조선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열 개의 태양이 떠서 아홉 개를 활로 쏘아 떨어트렸다는 전설상의 예(羿)도 동이족임을 알 수 있다.

은(殷)나라 때에는 “중정(仲丁)에 이르러 남이(藍夷)가 침략을 하였다. 이때 이후로 동이는 혹은 복속하기도 하고 혹은 반란을 일으키기도 한 것이 300여 년이었다. 무을(武乙)의 힘이 쇠약하고 피폐해지자 동이(東夷)가 더욱 강성하여져 마침내 회(淮)와 대(岱)로 나누어 이동을 하였고 점차 중토(中土)를 점거하였다.”라고 하여 고조선이 은(殷)나라에 음악과 춤을 전해주었으며 고조선이 현 중국의 산동성과 강소성을 점거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주(周)나라 때에는 “무왕(武王)이 주(紂)를 멸망시키자 숙신(肅愼)이 와서 석노(石砮)와 고시(楛矢)를 바쳤다. 관(管).채(蔡)가 주(周)에 반란을 일으키자 이적(夷狄)들을 불러 회유를 하였다. 주공(周公)이 이들을 정벌하고 마침내 동이(東夷)를 평정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현대에도 군사력이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에 무기를 판매하거나 기술을 전해주는 것처럼 숙신 즉 고조선이 주(周)나라에 강한 무기를 전해준 것을 저들은 마치 조공한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또한 “강왕의 통치 시절에 숙신(肅愼)이 다시 왔다. 후에 서이(徐夷)가 왕이라 참칭하자 이에 구이(九夷)의 군사를 이끌고 종주(宗周)에서 정벌하였는데 서쪽으로 황하(黃河)의 윗 쪽에 이르렀다. 목왕(穆王)이 서이(徐夷)가 점차 바야흐로 강성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이에 동방의 제후들을 나누고 서언왕(徐偃王)이 그들을 다스리도록 하였다.”라고 하여 마지못해 고조선의 제후국인 서이를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하고 있다(제2부에서 계속 이어짐).

*글 : 신완순(한울빛새움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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