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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호 담맘대학 교수, ‘박정희 공은 없고 과만 있다’박정희 새마을 운동은 관주도 방식이라 오히려 건강한 농촌발전을 가로 막았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8.08.20 22:32

 

박정희 새마을 운동 이전에

이미 동학농민봉기시절부터 민간주도 농촌계몽운동존재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박정희 이전 장면정권에서 수립추진

박정희 516군사반란, 장면정권서 확정된 미국자본지원 무산시킴

오늘날 경제번영은 국민 희생과 뛰어난 기업가들 때문

박정희는 오히려 정상적인 발전을 가로막아

▲서기2018.08.05.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 광장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담맘대학교 금융학과에 재직 중인 최선호 교수가 현대사와 관련, 박정희 정권 재조명 강연을 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자 박정희 우상, 박물관, 기념관 등을 수천억원 들여 세웠다. 또 박정희 덕분에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되었다는 교육도 강조되었다. 그래서 박근혜는 탄핵되기 전 까지 국사교과서를 국정화로 바꾸어 박정희 공을 높였다.

따라서 박정희 우상화와 찬양으로 그의 실체가 가려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박정희는 우리 현대역사 중심 인물이다. 18년 집권동안 박정희는 국부수준으로 추앙되었다. 이와 더불어 경제발전과 번영을 그가 이룩한 것으로 각인되었다.

그러나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박근혜의 실정으로 박정희도 함께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여전히 박정희 향수에 젖어 있는 이른바 성조기부대로 대표되는 세력은 박정희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다. 북한 김조선 수령처럼 영원히 우상으로 남기를 바란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비판이 허용되고 표현과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국가다. 그러다 보니 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학자들의 박정희시대 자료 발굴과 연구로 박정희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서기2018.08.05.에도 박정희 민낯이 드러났다. 청와대 분수대 앞 광장에서 의미있는 연설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한민족역사포럼’이 주최하고 미래로가는바른역사협의회(미사협, 상임대표 허성관 전 행정자치부장관)이 후원하는 ‘역사광복을 외치다’ 33인 이어강연에서 최선호 사우디아라비아 담맘대학 금융학과 교수가 현대사의 뜨거운 감자, 박정희 재평가에 나섰다. 물론 현대사 강연이었다.

그를 비판할 때 흔히 그가 일본군 장교, 남로당 공산주의자, 반공주의자로 변신을 거듭하고, 김재규에 의해 피살 될 때 딸 같은 여자를 끼고 술마시고 있었다는 등의 사적 영역이 동원된다. 그러나 그가 추진한 정책을 가지고 박정희 실체를 비판하는 경우는 드물다.

최선호 교수가 이날 이 정책을 가지고 박정희의 민낯을 밝혔다. 그는 먼저 박정희를 말할 때 공功과 과過를 따지는 데 이는 잘못되었다고 잘라말했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따지고 보아야 한다고 하는데 이는 말도안된다는 것이다. 최선호 교수에 따르면 박정희는 공은 결코 없다. 오직 과만 있다.

한 사람이 한 일을 평가할 때 좋은 일은 없고 나쁜 짓만 했다고 보는 것이 의아하다. 그러나 최 교수가 박정희가 집권 18년기간 한 일을 나열 분석하는 것을 보면 지나친 주장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 교수는 이날 먼저 박정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새마을운동을 분석했다. 새마을 운동을 흔히 박정희 창작품이라고 하는데 절대 아니라고 강조했다. 새마을 운동은 다른 말로 새로운 사회나 마을을 건설하려는 운동인데 이미 서기1894년 동학혁명당시에 등장했다고 한다.

그는 “동학혁명과 갑오개혁을 시점으로 수많은 민간 지도자들이 자발적으로 추진한 효율적으로 추진했던 운동” 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발적’, ‘민간주도’를 특징으로 하는 운동임을 강조했다. 그는 이 운동은 이후 심훈의 <상록수>, 기독교 김용기 장로의 가나안 농군학교, 대학생들의 방학기간을 이용한 농촌계몽활동(농활) 등으로 이어져 왔다고 보았다.

▲5.16 박정희 군사반란 주역들. 친일부역 일본군 출신들이 주도한 반란은 겨우 3천여명 병력으로 4월 혁명으로 온 국민지지를 받아 집권한 장면정부를 뒤집어 버린다. 그리고 이 새발의 피도 안되는 병력으로 우리나라 현대사를 피로 물들이고 일제 식민지 병영체제를 재건하여 역사를 뒤틀어 버린다. 또한 국가보안법을 앞세워 극한 남북대결과 분단을 더욱 고착시킨다. 경제도 친일재벌 독점체제로 만들어 일본과 미국에 절대 예속, 종속시켜놓고 양극화를 심화시켜 망국적 계급사회로 만든다. 오늘날 '지옥조선'은 박정희가 잉태시켰다. 

그런데 박정희가 516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후 일제식민지시절 정책을 답습하면서 이 운동이 변질되고 틀어졌다고 비판했다. 일제식민지정책 중의 하나가 ‘농촌진흥운동’이다. 박정희는 군인이었고 친일파였다. 또 일본왕에게 충성맹세하고 철저하게 일본인으로 살고자 했던 인물이다. 이런 그가 정권잡고 할 수 있는 것은 식민지체제답습이었다.

그가 벌인 새마을 운동이라는 것도 결국 일제조선총독부가 주도했던 농촌진흥운동의 연장이었다.

최 교수는 박정희가 시작한 새마을 운동이라는 것이 민간주도로 진행되던 사회개혁, 농총계묭 운동을 가로채서 관 주도로 바꾼 것이라고 일갈했다. 민간주도에서 관주도로, 자발적운동에서 상명하복집행 방식으로 바꾼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효율성있는 민간주도 사회개혁운동이 비효율의 관료주의방식으로 추락했다고 했다.

그는 관주도, 상명하복식 퇴행적 관료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우리 사회와 경제, 문화가 오늘날처럼 병들게 되었다고 진단했다.

이어 최 교수는 박정희가 오늘날 경제번영을 가져온 것이 맞느냐고 물었다. 경제번영의 상징으로 흔히 떠오르는 것이 이른바 ‘경제개발5개년계획’이다. 통상 박정희 하면 떠오르는 것이 이것이다.

이 계획은 이미 4월 혁명으로 들어선 장면정권이 만들어 실행에 들어가려던 정책이라고 밝혔다. 더구나 미국의 자본지원약속까지 받아놓은 상태였다고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박정희 정권은 원래 군인들이기 때문에 경제정책은 처음부터 없었고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군대는 월급을 받는 입장이어서 자원조달개념을 아예 생각할수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처음 정권잡고 무슨 경제개발 정책을 생각해 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장면정부가 이미 경제개발시동을 걸어놓은 상태라 국민적 여망을 외면할 수 없어서 장명정권이 하던 것을 추진하지 않을 수없었다고 고발했다.

그렇다면 원래대로 정상적으로 효과있게 추진했을까.

최 교수에 의하면 정반대 현상이 일어났다고 실랄하게 비판했다. 경제개발5개년 계획 골자는 ‘외자도입’과 ‘공업화’다. 그런데 자본제공을 약속했던 미국이 한국에서 군사반란이 일어나자 약속을 철회했다고 한다. 이렇게 되자 처음부터 난관에 부닥친 박정희 정권은 다른 길를 뚫어 외화확보에 나선다.

서기1963년부터 독일에 광부와 간호원을 보낸다. 서기1964년에는 베트남 전쟁 파병을 자처해서 연인원 30만명이상을 보낸다. 또 서기1965년에는 전국민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기 한일수교협정을 맺는다. 최 교수는 “결국 군사반란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국에 가서 죽고 다치는 등 흘릴 필요도 없는 피를 흘렸다”고 분노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해서 이룬 경제발전이 정상일까.

최 교수는 경제개발5개년계획 추진으로 지역간 불균형과 동서분열의 앙금만 남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박정희가 거의 모든 중요한 공장은 자기 고향주변인 영남에 지었다고 고발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항일투쟁이 가장 격렬한 호남지방에 원래 정상이면 공장들을 지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일제식민지체제를 그대로 유지하여 식량생산기지로 만들었다. 또 독점재벌을 육성하여 새로운 계급사회를 만들어놨다고 분통을 떠뜨렸다. 결국 박정희가 나라를 둘로 쪼개버렸고, 다시 국민을 둘로 찢어 놨다며 현대사의 원흉으로 보았다.

가장 비효율적이고 비윤리적인 체제를 박정희가 만들어놨다는 것이다.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온갖 차별과 불평등, 혼돈, 부조리, 부패, 병리현상이 박정희에게 원인이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면서 만약 장면정권이 추진했어도 이랬겠냐며 분노했다.

그러니 그나마 오늘날 이렇게 경제번영을 이룬 것이 어떻게 박정희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는 박정희의 군대식 엉터리 비효율, 비인간적 돌격앞으로 경제정책하에서 우리 국민 모두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못박았다. 박정희는 오늘날 경제번영에 걸림돌 장애물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어 부조리한 현 체제를 바꿀 대안도 제시했다. 그는 정의, 민주주의를 원래대로 바로 세우면 가능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미국을 사례로 들었다. 정의에 바탕을 둔 기업가 정신을 꼽았다.

경제발전은 자유로운 사회에서 가능하고 예측가능하고 공정한 사회에서 열매를 맺는다고 거듭 외쳤다. 또 경제번영도 정신활동 산물이라며 역사관, 사회관, 가치관이 바로 서면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바탕에는 바른 역사의식이 있어야 한다며 바른역사관을 갖추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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