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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역사 발굴해도 북한학설과 같으면 빨갱이통일시대 근본 걸림돌, 남한 강단식민사학계 이대론 안된다.
차태헌 기자 | 승인 2018.05.17 23:02

 

북한학자 김석형,

‘일본열도삼한삼국분국설’로

열도 역사는 우리가 건너가서 개척한 이주사임을 밝히다

미국여성학자 코벨도 고대에 가야인들이 열도로 건너가

일본 ‘천황’가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다

전 단국대 부종창 지낸 윤내현 교수,

북한학자 리지린 학설과 같은 주장했다고

‘안기부’에 끌려가 고초 치르다.

이는 강단식민사학계가 고발해서 발생한 비극이었다

 

▲미국인 여성학자, 존카터 코벨이 우리 역사문화에 눈을 뜨면서 일본 역사와 문화 뿌리가 한국이었음을 밝히는 책이다.

코벨이라는 미국인 여성이 있다. 그녀는 한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서기1970-80 년대에 한국과 일본 상고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서양인 최초로 일본 고대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일본을 연구하는 푸른 눈의 학자로 알려졌다. 그녀는 일본인들로부터 많은 존경과 애정을 받았던 학자다.

그러나 그녀가 한국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일본 고대사를 연구하는 학자가 그 시원인 한국에 이끌리게 되는 것은 필연이었다. 그녀는 미국에서 정년 퇴임하자마자 본격적으로 한국을 연구하기 위해서 한국으로 이주한다. 그러나 그녀는 한국의 강단 사학자들에게 무시당한다.

학문 업적으로보나 객관적인 경력으로 보나 한국 강단에게 인정받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 대학자를 학자로서 인정하는 한국 학자는 단 2명 뿐이었다. 그 2명의 학자 중 한명이 코벨에게 김석형이 연구한 자료를 소개해 주었다. 당시 코벨은 고대 기마민족이었던 가야인들이 고대 열도로 건너가 일본 천황가를 수립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김석형은 서기1960년대에 한국인들이 열도로 건너가 열도 왕조를 세웠다는 “일본 열도내 한반도 분국설” 을 주장하여 당시 일본을 긴장시켰던 북한 학자였다. 자신과 같은 주장을 하는 김석형 자료를 면밀히 검토한 코벨은 신문에 김석형을 소개하는 기사를 싣는다.

그런데 엉뚱하게 글 시작을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한다. 코벨은 자신이 반공주의자라는 것을 강변하는 장문의 글을 실은 후에야 김석형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는 윤내현 교수가 북한의 이지린과 동일한 주장을 했다는 이유로 강단으로부터 색깔 논쟁에 시달리던 시기였다.

고대 일본을 건국한 주체가 한국인이었다는 것은 김석형 뿐만 아니라 일본인 에가미, 서양인 코벨 등 양심있는 학자들이라면 다들 인지하고 있었던 내용이었다. 북한 김석형도 그런 학자 중 한명일 뿐이었다.

▲<일본문화에 대한 한국영향>으로 번역되는 존카터 코벨의 저서. 그녀는 일본문화는 사실은 한국이 없으면 존립하기 힘들다고 소회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북한 학자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쓴다해도 같은 주장을 하면 안된다는 것이 당시 시대상황이었다. 그리고 미국인이었던 코벨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었다. 냉전 시대 이념 대립과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강단이 빚어낸 진풍경이었다.

북한 학자와 동일한 주장을 싣는다는 것은 이런 학문외적인 정치적 부담감을 가지는 일이었다. 그런데 정작 코벨이 연구했던 내용들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박창암이라는 사람에 의해서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박창암은 박정희의 군사반란을 지원한 보수 계열 군인이었지만 원칙을 고수했다. 그는 서기1963년 당시 박정희에게 국민에게 약속한 혁명공약대로 군은 민간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다시 군으로 복귀하라고 주장하였다. 원래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때문에 구금되기도 한 인물이다.

이후 반공 이념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으로 월간 <자유>지를 창간했다. 코벨이 쓴 글 들은 이 <자유>지에 실리게 된다. 짝퉁 보수가 아닌 진짜 보수, 박창암이 코벨이 한 연구가치를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북한 학자와 동일한 코벨의 주장을 반공 잡지인 <자유>지에 실었던 것이다. 이런 환경 때문에 코벨이 한 연구가 당시 제도권 학계에 반영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한국 제도권 학계는 냉전 이념 대립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켰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대가는 참혹했다. 이후 한일 고대사 부분에 있어서 한국 제도권 학계는 학문적인 기능이 마비가 된다. 그리고 이 문제는 오늘날 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존카터 코벨(오른쪽)과 그의 아들 알렌 코벨(왼쪽). 어머니 코벨이 죽은 후에 그의 아들 알렌 코벨이 그녀의 학문을 이으려고 노력했으나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평범한 직업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기2018년 4월 27일 남한과 북한 정상은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을 했다. 이 선언에는 남북한이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내용도 포함이 됐다. 반세기 넘게 두 개로 나뉘어진 민족이 하나로 합치기 위한 노력을 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민족은 사전적 의미로 공동의 언어, 풍습, 문화, ‘역사’를 공유하는 집단을 의미한다. 민족이라는 단어 개념에 충실해서 통일을 생각해보면 그 출발점은 공통된 역사 인식을 가지는 것도 포함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일 고대사 관련해서 냉전 시대에 한국의 특정 집단들이 벌려 놓은 남북한 상고사 인식의 차이는 너무나 크다. 북한에서는 김석형 연구가 조희승 등 여러 학자에게 이어져 이론적으로 더 정교해지고 체계화 되었지만 남한에서는 여전히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코벨 이후에도 문정창, 고려대 최재석 교수 등이 한 민족 시각으로 일본 고대사를 바라보려는 연구를 계속하였다. 그러나 이들 역시 제도권이 쌓아둔 벽을 넘지 못하였다.

이런 구조하에서 반세기가 흘렀다. 결과는 참담하다. 서기2016년 한일 고대사 관련해서 대한민국 학계 최고 권위자라고 알려졌던 김현구 전 고려대 교수는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바있다. 재판과정에서 이덕일 소장이 증인으로 나온 김현구 전 교수에게 이렇게 물었다. “<일본서기>와 <삼국사기> 기록이 다른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냐.” 이에 김 전 교수는, “나는 <삼국사기>를 모른다.”고 답했다.

언론에 의해서 ‘김가야’라고 할 정도로 가야사 전문가로 알려진 홍익대학교 사학과 김태식 교수가 있다. 그는 한일 역사 공동 위원회에서 일본 학자들 편을 들었다. 반면에 김석형과 코벨 이외에 여러 학자들이 밝혀낸 일본열도 한민족 개척사를 부정했다.

한국 강단 사학계가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을 추종해온 결과다. 북한과는 정 반대 방향으로 달려 왔다. 북한은 무려 50년 전에 임나일본부설을 극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 시각으로 열도 고대사를 해석하기 시작했다. 현재 남한과 북한의 한일 고대사 인식 차이는 극복하기 힘들 정도로 간극이 크다.

우리는 이제 남북 관계에 획기적인 전환을 맞이하게 되었다. 통일기운이 무르익어가는 지금 강단 식민사학 해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그것도 매우 시급하다. 남북한 통일에 큰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그 이전에 우리에게는 부끄러운 일이다. 북한 사람들이 이들 일부 제도권 학자들을 보고 “남한은 아직도 일제시대를 살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에 우리가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차태헌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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