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 야만 계급과 신분제도로 조선 민중을 폭압한 이조선정권에 반기들다

글: 이성환(한의사, 자유기고가)

 

 

<홍길동전>은 순한글체로 된 우리 고전소설로 알려져 있다.

철저한 계급사회, 야만의 신분제도로 정권을 유지했던 이조선 정권,

홍길동으로 대표되는 조선민중이 이 폭정에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거대한 기득권 체제를 뛰어 넘지 못한다

남은 무리를 이끌고 홍길동은 이 땅을 떠나 신분차별이 없는 이상향,

율도국을 만든다. 그동안 전설, 소설속 창작된 이야기로 만 알려져 왔다.

그런데 이 율도국이 실재했다는 증거가 나왔다 

 

▲일본 오키나와에 일본에 병합되기 전 율국 명칭들이 즐비하다. '율국栗國도', '율국공항', '율국촌', '율국항여객대합소' 등이다. 김성환 선생에 의하면 모두 홍길동의 율도국의 흔적이다. 자료: 이성환

지난 2월 설 연휴에 오키나와에 다녀왔다. 언제가 신문에서 오키나와 도서관장이 홍길동의 율도국이 ‘오키나와’라고 고증한 것을 본 적이 있다. 또 한국방송 ‘역사스페셜’에서 삼별초가 제주도에서 오키나와로 갔다고 고증한 것을 보았다. 그런데 정말 실제 그럴까 궁금해 하고 있었다.

돌아다녀도 긴가민가 하다가 기념품 가게에서 율국栗國 소금을 발견하고 놀랐다. 율도국이 홍길동이 떠나간 섬인데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율도국이 아니라 율국粟國이었다. 이것은 날조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인은 우리 역사도 날조하여 한국을 일본에 합병하려 했다. 하물며 합병에 성공한 오키나와의 역사야 얼마나 날조하였을까? 둘레 60 Km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에 국國자를 붙인 것이 이상하고 그곳은 조가 생산되지 않는다.

▲ 일본 오키나와 율국도의 무당들이다. 모두 흰옷을 입고 있다. 부여 문화와 관련되어 보인다. 사진: 이성환

스물다섯번 이상 일본 유적 답사여행을 다녔다. 일본에 남아 있는 백제 역사 지우고 있는 현장을 여러번 목격했다. 율국도粟國島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율국도는 일본이 역사지우기 과정에서 남은 흔적이다. 홍길동 율도국 흔적임이 분명하다.

율국의 일본식 고대 발음은 ‘류쿠’국이 된다. 우리말 ‘일’은 일본말로 ‘이츠’, ‘팔’은 ‘하츠’, ‘실失’은 ‘시츠’로 발음한다. 그래서 ‘율’은 ‘유츠’가 된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류구국琉球國을 ‘류추우국’으로 발음한다. 리발소나 이발소가 같으니 ‘유츠’나 ‘류추우’나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같은 소리 ‘류추우’를 한자로 ‘류구琉球’라 쓴 것이고 홍길동은 ‘류栗’이라 썼다고 볼 수 있다.

홍길동전에 보면 홍길동이 왕을 만난 후 살 곳을 찾아 중국 남경으로 솟구쳐 날아갔다고 한다. 이 때 본 여러 섬 들 중의 하나가 율국도일 것이다. 나중에 여기서 자리잡아 세력을 키워 본섬으로 들어가 왕이 된다.

▲ 홍길동이 유구국 군사와 맞서 싸운 후루스토 성이다. 사진: 이성환

오키나와 본섬과 대만 사이에는 야에야마(八重山) 제도가 줄을 서 있는데 그 중에 가장 큰 섬이 이시가키(石垣島) 섬이다. 이 섬은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소고기 산지로 유명하다. 섬에 외래한 소 종자라고 볼 수 있다. ‘석원’은 돌담이란 뜻인데 여기에는 ‘후루스토’라는 성이 있다.

일본인들은 그 뜻을 모르나 한국말로 하면 쉽게 알 수 있다. ‘후루’는 한국말로 ‘헐러버리다’ 할 때, ‘헐은’이고 ‘스’는 바닷가와 같은 소유격 사이 ‘ㅅ’이고 ‘토’는 ‘터’다. ‘옛터’라는 뜻이다. 이런 외진 섬에 무슨 성이 있나 의아하게 여겼다.

▲ 이시가키섬의 탈춤. 춤사위나 축원하는 공수가 비슷하다. 오키나와의 춤은 역동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가라테가 오키나와에서 유래되었다. 홍길동 무술이다. 사진: 이성환

그런데 이 섬에는 오야케아카바치홍가와라 라는 의적이 이 성을 근거로 본 섬의 류구국 군대와 대적했다. 오야케아카바치홍가와라는 유구국 역사서에 한자 이두로 ‘어무적봉홍가왕御武赤蜂洪家王’라 기록하고 있다.

홍길동의 흔적이 아닌가 한다. 유구국은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 편입된다. 이후의 역사서에는 홍가왕이 유구국 군대에 패해 처형당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처형당할 시기에 유구국 2대 국왕이 즉위 반년만에 소년 왕으로 대체된다. 반란으로 집권한 부왕은 이름이 금환金丸이다. 이 동생 왕이 반년만에 대체되는데 고대사에서 이런 경우는 왕위찬탈로 본다.

▲ 홍길동전에 철봉鐵峯으로 나오는 中城(나카 구스쿠) 모형. 구스코에 있는 있는 마추픽추와 비슷하고 북한산성과 같은 기능이다. 사진: 이성환

이 소년 왕은 50년 동안 재위하며 유구 역사상 가장 찬란한 업적을 남긴다. 이 때부터 진정한 중앙집권 군주제가 실시된다. 이 왕의 생몰연대는 홍길동전의 홍길동의 생몰연대와 거의 일치한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똑같이 72세까지 산다.

홍만종의 '해동이적'에 명에 갔던 우리 사신이 유구국왕의 성이 공共 아래에 수水를 쓴다고 왕에게 보고했다는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홍洪을 이렇게 쓴 것으로 보인다.

홍길동이 ‘제도諸島’에서 본섬에 들어가 왕성을 치기 전에 철봉을 차지한다. 본섬 중앙에 중성中城이란 요새가 있다. 사진에서 보듯이 철옹성이다. 그래서 <홍길동전>에서는 철봉이라고 한 것 같다.

▲ 구스쿠는 마니산 천제단 역할도 있다. 사진: 이성환

희한한 것이 이런 산성을 오키나와 말로 ‘구스쿠’라 한다. 잉카제국 수도 구스코 근처에 있는 마추픽추와 너무 닮았다. 산성 역할과 종교의식을 행하는 천제단 기능을 한다. 마니산이나 태백산 천제단과 흡사하다.

구스쿠는 '굿의 카'란 뜻으로 가야 시조가 내려왔다는 경남 구지봉(굿봉)과 어원을 같이 한다. 카는 땅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다음 말구조 사례를 보면 알 수 있ㅆ다. 아사카, 아프리카(앞前의 카), 알라스카(알의 카), 멕시코(맥의 곳)의 경우 모두 ‘카’이거나 변형된 말로 끝난다. 땅이란 뜻이다. 구스쿠의 제단을 ‘우타키’라 하는데 ‘웃터의 곳‘이란 뜻이다. 소도가 ‘솟은 터‘인 것과 같다('홍길동 율도국을 가다'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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