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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 넌 나를 모욕, 능멸했어!”독립투사에 좌우 이념 잣대 들이대서 투쟁공로 홀대해선 안된다.
차태헌 기자 | 승인 2018.04.25 22:25

 

헤이그 밀사, 이준열사유족회 대표, 조근송 선생,

'미국은 일주일에 4시간 이상 국가, 역사 반드시 배워야한다'

'국가관을 확실하게 심어주기 위해서다'

'통과 못하면 진급 안되는데 그가 기술자든, 과학자든, 그 누구든 예외 없다'

'그런데 우리는 국가관, 민족관 검증 없이

외국서 무슨 박사학위 받았다고 고위직에 앉힌다'

'그러다 보니 울산에 가토기묘마사 동상을 세운다, 일본거리를 만든다'

'춘천중도 태고유적지에 영국 장난감 회사 세운다고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서기1907년 만국평화회의가 열린 헤이그에서 한국독립을 외친 3명의 순국선열. 맨 왼쪽이 이준열사다.가운데는 이상설, 맨 오른쪽은 이휘종 열사.

서기2018년 4월 20일 금요일 오후 4시 동북아 역사 재단 앞에서는 동북아 역사 재단의 해체와 김도형 이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가 이어졌다. 지난달에 이어서 두 번째 이어지는 시위이다. 지난달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일반 시민들이 점차 집회 내용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몇몇 시민들은 2시간 넘게 이어지는 시위와 집회참가자들이 외치는 성토내용들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끝까지 듣기도 했다. 집회 참가자들이 나눠주는 유인물을 진지하게 읽는 시민들의 모습도 종종 눈에 띄었다.

집회 참가자 중에 기자의 눈길을 끄는 사람이 한명 있다. 조근송 이준 열사 기념 사업회 유족대표이다. 조근송 대표는 이 준 열사의 장녀인 이송선의 손자이다. 이 준 열사의 외아들인 이용 장군은 북으로 간 이후에 숙청당했다. 이 때문에 현재 대한민국에서 이준 열사의 가장 가까운 직계 후손은 조근송 대표이다. 이준 열사는 독립운동가의 대명사처럼 대중들에게 인식되고 있지만 의외로 그 후손들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준 열사의 아들인 이용 장군 역시 아버지 이준 열사 못지않게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상해 임정의 군무위원을 지내기도 했고 홍범도와 같이 국내 진공 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 주로 연해주 등지에서 군사 활동을 하면서 장개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남한 쪽에서는 이용 장군이 해방 후 월북하여 북한 정부에 참여했다는 사실 때문에 이용 장군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이준 열사의 아들 이용 장군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해방 직후 좌우익의 극단적인 이념 대립 시대와 그 이후 냉전 시대를 결코 녹녹치 않게 살아왔을 조근송 대표, 그에게 있어서 동북아 역사 재단은 어떤 곳일까.

기자 :

“지난 달 집회에 이어 이번 달에도 참석하셨네요. 동북아 역사 재단 해체가 대표님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처럼 느껴집니다.”

조근송 대표 :

“현재 동북아 역사재단이 하고 있는 일들은 일제 강점기 조선 총독부 산하의 조선사 편수회가 했던 것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집단이 세력화되어 국가 기관을 장악한 상태인 것입니다. 홍산 문화 같은 고고학적 발굴 자료들이 나와도 중국이 무서워서 그런 것인지 사대사상에 치우친 건지 우리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전혀 연구를 안해요.

임나일본부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에서 무슨 돈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중국이나 일본을 위해서 활동을 하는 것이지요. 지금 동북아 역사재단의 논리대로하면 우리 민족은 옛날에 원숭이 야만인처럼 살다가 중국 덕분에 문명이 생겼다, 이렇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어림없는 소리입니다.

우리 민족은 사상적으로 서양 중국보다 그 뿌리가 훨씬 깊습니다. 그것을 입증하는 유물 유적이 나오는데 그것은 연구 안하고 영토 문제를 가지고 장난을 쳐서 우리 후손들이 역사에 대해서 할 말을 잃게 만들고 있지요. 지금 그게 동북아 역사재단입니다. 답답합니다.

한국방송(KBS) 같은 대형 언론 기관에서 공개토론을 해서라도 국민들이 이 실상을 알아야 합니다.”

(영토 문제란 문헌 근거 없이 주장되고 있는 중국 한나라 한사군 평양설,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과 같은 것이다. )

▲조근송 이준열사유족회 대표가 '동북아역사재단해체범시민연대'가 서기2018.04.20. 서대문로 동북아역사재단앞에서 개최한 집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기자 :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독립운동가 후손을 우대하겠다는 이야기도 하고 실제로 일부 정책이 시행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와 반대로 역사 관련 국책기관들은 오히려 식민사관을 강화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이런 현상이 있는 것일까요?”

조근송 대표:

“지금까지의 대통령들을 보면 집권 전에는 오로지 어떻게 집권을 하느냐만 생각하다가 막상 집권하고 나서 국가관, 사회관, 민족관 이런 것을 세우려고 하면 그 때 쯤 임기가 끝나고 이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국가관, 사회관, 민족관을 수립할 때에 그 출발점은 역사입니다. 문재인 정권 들어서고 민주화나 소외된 계층에 대한 배려 이런 부분에 대해서 진전된 면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전의 보수 정권을 극복해야 한다는 의식이 너무 강하다고나 할까요. 이전 정권이 보수 민족주의로 인식되고 있으니까, 우리는 진보 민주주의를 표방한다.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그건 서양식 사고의 틀을 끼워 맞추는 것에 불과합니다.

쉽게 미국을 예를 들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국가입니다. 동시에 국민들이 올바른 국가관, 역사관을 가지도록 하는데 많은 노력을 하는 국가이기도 합니다. 역사가 300년 밖에 안 된 나라지만 일주일에 4시간이상 국가나 역사에 대해서 수업을 하고 이것을 제대로 이수 못하면 다음 단계로 진급을 못해요.

컴퓨터 엔지니어를 하든, 물리학자를 하던 일단 이런 국가관이 세워진 상태에서 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어떤가요? 제대로 된 국가관이 없는 사람도 외국에서 무슨 학위를 받아왔네 하면서 정부 고위직에 오르는 경우도 많지요.

그런 사람들이 역사 관련 정책을 수립을 하니까, 어디 울산에다가 일본인 거리를 복원한다, 가또 기요마사 동상을 세운다, 이런 엉뚱한 짓들을 합니다. 춘천 중도 유적지를 놀이 동산인 래고랜드 만든다고 없앤다고도 합니다.

우리 상고 문화를 새롭게 해석할 유물들이 발굴 되고 있는 상황인데요. 일단 유물들 연대 측정이라도 정확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은 과학의 발달로 이런 것을 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아졌습니다.”

(조근송 대표는 이공계 출신으로 대형증권사의 전산 개발 담당 임원을 하기도 했다.)

기자 :

“문재인 정부 들어서 독립 운동가 후손들에 대한 처우가 변한 것이 있나요?”

조근송 대표 :

“독립 운동가 1세대 2세대 후손들이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웠어요. 그게 이어져서 3세대 4세대까지 힘들게 살아왔지요. 6.25 참전 용사들에 비해서 독립 운동가 후손들은 보훈처로부터 상대적으로 적은 지원을 받아왔지요. 그 동안 보훈처가 독립 운동가들의 실상을 많이 몰랐으니까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생활비 지원 같은 경제적인 도움이 늘어났습니다. 물론 그런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 독립 운동가 후손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적인 유산을 올바로 세워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년 이천년 살 것도 아니잖습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올바른 역사를 후손들에게 전달해 주는 일입니다.

이준 열사 기념 사업회의 경우도 지난 촛불 정국에서도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인물이 대표를 한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 후손들의 입장에서는 독립 운동가들의 정신에 오히려 반(反)하는 인물들이 유족 기념 사업회 같은 곳에 참여하고 그럴 때에 오히려 모욕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모욕감, 이 단어를 듣는 순간 기자는 어째서 조근송 대표가 다른 그 누구보다 더 동북아 역사 재단의 존재에 대해서 분노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지난달에 이어서 이번 달에도 많은 시민들이 재단 앞에서 재단의 해체와 김도형 이사장의 퇴진을 소리 높여 외쳤다.

많은 사람들이 동북아 역사 재단의 해체와 김도형 이사장의 퇴진에 공감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재단의 시대착오적인 식민사관, 국민을 계몽의 대상정도로 여기는 오만한 관료주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공공연한 비밀이 된 역사 관련 국책기관들의 역사에 대한 무지함, 부패 고리 이외에도 설명하기 어려운 중국 일본에 대한 철저한 사대주의가 있다.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우리 역사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조근송 대표가 기억하는 가족사는 이렇다. 이 준 열사의 장녀 이송선씨는 이 준 열사가 자결한 다음 해에 어린 아들 조서해를 남기고 26살의 젊은 나이에 분사했다. 이 준 열사의 아들 이용 장군은 이 누이의 유일한 혈육을 친 자식처럼 키웠다. 조근송 대표는 어린 시절 부친 조서해가 라디오를 듣다가 “결국 김일성이 삼촌을 죽였구나” 하면서 대성통곡하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 '동북아역사재단해체범시민연대' 회원들이 재단을 향해서 '재단해체', '이사장 김도형 퇴진'을 외치고 있다.

현재 조근송 대표는 이용 장군과 관련한 기록조각들을 모아서 ‘민족주의자’ 이용 장군을 복원하는 작업들을 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부 북한 자료들 그리고 조근송 대표의 기억들을 조합해보면 공산주의자 보다는 오히려 우익 즉 민족주의 진영에 속한 독립 운동가 이용 장군이 드러난다.

이용 장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김일성은 직접 “이용 장군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민족주의자 이지만 우리와 함께 했다.”고 한다. 또 그는 임시 정부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여러 자료도 있다.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항일 무장 세력이 수난을 당했던 자유시 참변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이기도 하다. 국민당 장개석과의 인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북한으로 갔다. 왜 그랬을까. 당시 해방공간은 살벌했다. 여운형, 송진우, 장덕수 등의 민족계 지도자들이 암살을 당하던 상황이었다. 조근송 대표는 자신 역시 암살의 대상이었음을 직감했던 이용 장군의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동안 대한민국 정부는 이준 열사에 대한 교육은 많이 했지만 이준 열사의 독립 운동에 대한 의지가 그 아들에게까지 이어져 2대에 걸친 독립운동이 있어왔다는 사실에는 소홀했다. 이준 열사 아들이 북한 관료가 된 사실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민족해방투쟁역사를 정치 부속물처럼 여기는 것을 당연시 해 온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이런 환경 속에 살아온 조근송 대표의 동북아 역사 재단에 대한 분노는 일반 사람들의 분노보다 더 깊고 구체적일 것이다.

시민들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동북아 역사 재단은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그래왔듯이 무대응이 최선이라고 여기는 것일까. 그러나 이 날 조근송 대표가 보여준 결의는 앞으로 ‘동북아역사재단해체 범시민연대’의 투쟁이 결코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시민들을 무시하는 정책이 얼마나 갈런지 두고 볼일이다.

차태헌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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