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기19세기 이전 이미 서양자본주의 앞서 자본주의 요소 모두 갖추다

 

허성관 ‘미사협’ 상임대표,

최소한 서기19세기 중반 이전에 자본주의 꽃,

복식부기 있었다

개성상인에서 이미 자본주의요소 성행했다.

서양자본주의 상징, '불신'에 터잡은 담보대출이 아니라,

홍익인간의 신용대출,신용경제 장착단계였다

이미 현대경제학 원리인 ‘기회비용’ 개념도 일상화,

상생경영실천, 투명경영을 지향하다

서기8세기 신라시대에 이미 피타고라스정리,

3.14비률체계, 방정식 등 수학이 있었다

모두 일제 식민지 근대화론 시기 이전에 갖추고 있었다

 

▲ 서기2018.04.17. 서울' 문화공간 온'에서 '미사협(미래로가는 바른역사 협의회)'이 주최한 시민강좌가 열렸다. 이날 강사로 나선 허성관 전 동아대학교 회계학과 교수(미사협 상임대표, 전 행정자치부장관)가 한국자본주의 역사를 밝히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 이영훈 교수 등이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해 국민의 공분을 산적이 있다. 이들의 이러한 견해는 지금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제치하에서 서양선진물이 전수되어 오늘날과 같이 잘살게 되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한마디로 일본 덕에 지금과 같이 잘 먹고 잘살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일제식민지배는 정당하고 우리민족에게 축복이었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지난 평창 올림픽 때 미국의 한 방송사가 평창올림픽을 보도했는데 이 때 방송을 맡은 자가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해서 국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 인물이 세계기업 스타벅스와 관련 있는 것이 밝혀져 미국산 커피를 불매하자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와 같이 식민지근대화론은 우리민족을 능멸하고 우리 근현대사를 파괴하는 식민사관이다.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해서 왜 이것이 부당한 지 반박하는 학자들이 일부 있어왔다. 그러나 일반론에 그치는 정도였다. 그런데 역사연원을 추적하여 전문가 입장에서 반박하고 나선 학자가 있어 눈길을 끈다.

허성관 전 행정자치부장관이 주인공이다. 허 전 장관은 미사협(미래로가는바른역사협의회) 상임대표를 맡고 있고 동아대학교에서 교수를 지냈다. 또 회계학을 전공한 전문가다. 허 전장관은 서기2018.04.17. 미사협이 서울 종로 ‘문화공간 온’에서 주최한 시민강좌에서 회계학을 가지고 식민지근대화론을 제압했다. 이날 강연주제는 '개성상인에게 배우는 자본주의 정신' 이었다.

식민지근대화론에서는 우리나라 자본주의체제가 일제강점기에 와서야 도입되었다고 한다. 이 자본주의체제가 들어와서 우리나라가 근대화되었고 잘 살게 되었다는 것이 골자다.

그런데 허 전 장관은 이날 ‘복식부기複式簿記(double-entry bookkeeping)’라는 회계기술을 대표사례로 꼬집어 식민지근대화론이 근거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복식부기는 자본주의의 중핵이라고 강조하면서 일제가 침략, 점령하기 전에 이미 우리나라에 있었다는 것이다.

허 전 장관은 ‘복식부기가 없었으면 자본주의도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서양도 이 복식부기가 생기면서 비로소 자본주의체제가 들어섰다고 한다. 그 만큼 복식부기라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를 존립케 하는 핵심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복식부기는 한마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장부쓰기다. 가계부와 같다. 다만 가계부보다 더 복잡하게 기록하는 장부라고 할 수 있다. 이름에서도 나타나듯이 가계부처럼 하나만 쓰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더 추가하여 두 개를 쓰는 것이다.

전문용어로 차변借邊(debit)과 대변貸邊(credit)두개로 나누어 기록한다. 가계부와 같은 단순장부는 수입과 지출로 기록된다. 그러나 복식부기는 이것 포함하여 자산, 부채, 자본, 수익 및 비용 등 다소 복잡한 항목이 추가되어 이것을 하나만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개 기록하는 것으로 정리된다.

이러한 복식부기는 허 전 장관에 의하면 사업규모가 커지거나 복잡한 사업에서 활용된다. 또 국가경영에서도 복식부기를 기본으로 쓰고 있다. 그는 오늘날 대부분 경제정보가 회계정보인데 복식부기가 그 중심에 있다고 강조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이에 따라 거래가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복잡하게 발달된 사회에서 이 복식부기는 필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복식부기는 경제활동에서 공기와 같은 존재”라고 정리했다.

그런데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은 이 복식부기가 일제치하에서 도입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를 근거로 우리나라가 자본주의사회로 진입하여 오늘날과 같이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허 전장관은 복식부기를 이미 우리는 서기19세기말에 일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고 밝혔다. 개성상인 후예인 박영진 집안에서 소장하던 복식부기장부를 들었다. 이 장부는 서기1887.08.15.―1912.04.15.까지 24년간 기록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서양식 복식부기가 전래된 시기는 1900년 경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기록물 상으로는 박영진 집안에서 전해오는 복식부기장부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완전한 복식부기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복식부기는 동양에서는 한국이 원조이고 서양에서는 서기1494년에 발행된 것으로 보이는 이탈리아 ‘Luca Pacioli’ 책이 원조라고 주장했다.

그가 동양에서 우리나라가 최초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복식부기가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는 고려시대부터 복식부기 나타나고 있다고 보았다. 고려는 해양제국으로 세계와 무역교류를 했다. 상업이 고도로 발달한 나라였다.

그래서 이규보가 남겨놓은 기록을 보더라도 당시 개성 벽란도에는 외국상인배가 꼬리에 꼬리를 물로 이어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허 전 장관은 고려는 장사에 도가 튼 나라였다며 심지어 왕자와 왕비도 가담해서 돈을 벌었다고 한다.

▲고려 숙종 6년(서기1101년)에 발행된 은병 형식의 고려 은화. 허 전 장관에 의하면 당시 고려는 이 은화를 동아시아 경제무역 결재수단인 기축통화로 활용했다. 고려 국력이 동아시아를 재패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역사상식을 뒤집는다.

더구나 은병모양 은화를 발행했는데 이 은화가 당시 동북아시아의 기축통화였다고 강조했다. 당시 동북아시아에서 거래 결재통화로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미국 달러가 국력 때문에 기축통화가 되어있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그 만큼 고려국력이 당시 동아시아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에 복식부기가 존재했다는 근거로 그는 서기1917년 일본이 발행하는 <동경경제잡지>와 서기1918년에 발행한 호주 공인회계사회 기관지 <The Federal Accountant>를 들었다. 전문지들에서 고려 때 세계최초로 복식부기를 만들었다고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허 전 장관은 고려에 송나라, 아라비아 상인이 한번 왔을 때 최고 250 상인 타고 있었다는 점, 사유 재산제가 확립되어 있었다는 점, 화폐경제가 발달되었다는 점, 산술수준이 고도로 발달되었다는 점 등을 간접증거로 들었다.

또 서기8세기 신라에는 수학지식이 고도로 발달되었다는 점을 들어 이것이 쌓여 고려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았다. 그는 신라 수학지식 수준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발달되어다며 여러 가지 례를 들었다. 구장산술로 기록되고 있는데 ‘구고정리’는 지금 서양의 피타고라스정리고, ‘방정’은 지금 수학 방정식이고, ‘밀률’은 ‘3.14’ 개념이라고 했다. 신라는 태학에서 이것을 가르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허 전 장관은 일제강점기 이전 이성계 조선시기에 나타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 요소를 제시했다. 먼저 신용경제 정착을 들었다. 어음거래로 이루어졌는데 그 분개는 오늘날 어음수표법 규정보다 더 정교했다고 한다. 또 오늘과 같이 폐단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고 했다.

오늘날 돈거래를 보면 보증을 요구하는 담보대출이 기본이고 선이자를 떼는 것이 관례가 되다시피 하고 있다. 그런데 당시 우리나라는 이런 것 없이 대출해 주었다고 한다. 또 ‘내부이전거래가격’이라는 것으로 시장가격에 적용했다면서 이는 서양보다 60년 앞서 시장가격이 적용된 경우라고 했다.

기회비용개념도 나타난다고 놀라워했다. 이 기회비용개념을 경영에 적용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경제학 핵심내용이 이미 이때 일상으로 적용되고 있었다는 뜻이다.

지금 기업경영을 보면 경쟁기업을 무너뜨려야 하는 기업문화다. 또 분식회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은폐된 경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흔하다. 그런데 이때 우리는 상생경영, 투명경영이 기본상식으로 되어있던 것으로 나타난다.

허 전 장관은 특히 서기19세기 말에는 사회가 불안하고 격동하는 시기였음에도 상생경영이 관철되고 있었다면서 놀라워했다. 그는 너무 낮은 이자율이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사례로 들었다. 이것을 ‘의변義邊’, 곧 의로운 이자율이라고 하는데 월 1.25%, 년15%가 끊이지 않고 적용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승자독식의 약육강식의 자본 위주 현대경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라며 우리가 배워야할 정신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당시 투명경영을 높이 평가했다. 대우기업집단이 40조원이라는 천문학 금액을 분식 회계한 것을 상기시키며 당시에는 이런 부정 흔적은 아예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투명경영하는 것이 보인다고 강조했다.

그는 투명경영사례로 당시 상인들의 철저한 기록정신을 꼽았다. “아무리 총명해도 기록을 이길 수 없고, 반드시 먼저 장부에 기록하고 현금을 출납한다”라는 경구를 당시 개성상인들이 간직하고 활동했다고 한다. 회계를 투명하게 하는 것을 신앙의 경지로 승화시켰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박영진 집안에서 전해오는 회계장부에 새겨진 말을 소개했다. “日天恩上吉辰”라고 했다. 그런데 이 말과 똑 같은 내용 글이 서양최초 복식부기장부 원조라고 하는 이탈리아 ‘Luca Pacioli’ 책에도 있다고 밝혔다. “하늘 도움으로 날마다 사업을 번창하소서”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연일치라기 보다는 전파론 시각에서 바라보아도 되지 않겠냐는 주장이 힘을 받는다. 복식부기가 서양과 동양에서 각자 독립하여 나타난 것이 아니라 둘 중 어느 한쪽이 전해준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허 전 장관은 투명경영은 이조선시기에 생긴 것이 아니라고 했다. 서기1031년 불국사 석가탑 중수를 할 때 발견된 형지기에도 등장한다고 했다. “나는 이 기록을 부처님 이름 걸고 보증한다(十方佛菩薩證明).”라고 써져 있다는 것이다. 신라시대에 이미 우리는 투명경영문화가 정착해 있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면서 허 전 장관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이하 연구원)의 행태에 분노했다. 그에 따르면 연구원은 허 전 장관에게 이날 강연한 주제를 골자로 하는 연구를 엮어 책으로 내자고 제안했다. 이에 따라 연구비를 지원받아 전력을 기울여 연구성과물을 제출했다.

그런데 출판불가 판정을 내리고 연구비도 반납하라는 답으로 돌아왔다. 연구서에 식민지근대화론을 비판했다고 출판불가 판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연구원은 한국학 연구하라고 세운 국책기관이다. 그런데 거꾸로 일본학의 또 다른 모습인 식민지근대화론을 옹호하지 않았다고 출판불가판정 한 것이다. 

허 전 장관은 연구원에 있는 식민지근대화론 옹호론자들인 소위 ‘뉴라이트’가 한 짓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이 여전히 연구원에 자립잡고 앉아서 반역행위를 벌이고 있다며 강하게 질타했다.

▲손윤 미사협 공동대표가 본 주제강연에 앞서 시민강좌 안내말씀을 하고 있다.

한편 이날 행사는 손윤 미사협 공동대표가 사회를 보는 가운데 진행되었다. 그는 이날 강연을 열게 된 이유를 식민지근대화론을 깨고자 함이라고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서울대 이영훈 교수 등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어떻게 역사를 왜곡시키는지 몇 가지 예를 들어 고발했다.

이들은 할머니들 성노예피해를 ‘매춘’했다고 능멸하고 일제가 쌀 ‘수탈’한 것을 쌀 ‘수출’한 것으로 호도한다며 비판했다.

그러면서 진보세력이 워낙 우리나라 역사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진보세력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문화공간 온’에서 역사 강연을 열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이날 참석자 중에는 김태동 전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도 있었다. 바른역사 시민강좌에 지난 김대중 정부시절에 경제정책을 담당했던 김 전 교수가 참석해서 관심을 모았다. 그래서 궁금해 취재를 요청했다. “경제학자가 어떻게 해서 바른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인생관, 세계관이 역사로 만들어진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해방 이후 우리역사가 소홀히 다루어져 왔다며 미국 경우 ‘히스토리 채널’이 있어 역사를 가르친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는 이런 역사전문 방송이 있냐며 반문했다. 그러면서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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