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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러시아, 1948년까지 “간도 한국 땅”인정서기1917년 양기탁, 정안립 등 독립투사들, 한반도, 만주, 연해주 포함 대고려국 세웠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8.04.12 23:55

 

장계황 박사,

이스라엘, 잠재적 영토관 갖고 있었기에

나라 망했어도 1800년 지나 되찾았다.

우리 머리 속 잠재적 영토는 어디까지인가,

압록강-두만강선 이남 아닌가,

자동으로 이렇게 입력되어 있다

모두 일제가 만들어 놓은 식민사관 때문이다

‘한반도’ 용어는 일제식민사관 잔재다

압록강-두만강 영토인식,

일제와 청나라간 간도협약으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서기2018.04.10. 서울시민청에서 국학원이 주최하는 국학원 국민강좌에서 장계황 박사 강연을 하고 있다. 장 박사는 이날 강연에서 우리역사영토가 어떻게 부당하게 축소되어 왔는지 상세히 밝혔다. 그러면서 통일에 대비해 역사영토관을 바르게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과 러시아간 경제공동체 국가를 만들어 거시적인 통일상을 구상하자고 피력했다.

인간은 과거의 축적이다. 과거는 역사다. 그러므로 역사는 인간을 지배한다. 우리 정신세계를 역사가 지배하고 있다. ‘고조선’이라는 말을 들으면 저절로 머릿 속에 떠오른다. 또 ‘고구려’라는 말을 들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떠오르게 하는 원천은 어디서 나왔을까. 대부분 학교에서 배운 국사책에서 나온다.

그런데 이 국사책이 ‘일제日製’라면 어떻겠는가. 국사책이 일본산이라면 우리는 일본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 된다. 불행하게도 현재 우리가 배우는 국사책은 일제 조선총독부가 만든 식민사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래서 지금 우리 정신세계는 조선총독부 지배를 받고 있다. 이는 믿어지지 않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역사에는 반드시 강역이 나온다. 강역은 다른 말로 영토, 국토라고도 할 수 있다. 일제 식민사관은 우리영토가 압록강-두만강선 이북으로 올가간 적이 없다고 한다. 우리 머릿 속에는 현재 한반도가 자동 입력되어 우리 정신세계를 이룬다. 우리 머릿 속 생활공간은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도에 갖혀있다.

그런데 이런 고정관념을 시원하게 깨주는 강연이 있어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더불어 '반도살이'에 찌들어 서로 지지고 볶고 있는 우리 시야를 크게 넓혀 주고있다.

서기2018.04.10. 서울시청안 시민청에서 국학원 국민강좌가 있었다. 장계황 박사(전 동국대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가 이날 강사로 나섰는데 서기1948년까지 만주 간도 땅이 우리나라 영토였다는 사실을 밝혀 청중들을 놀라게 했다.

당시 새로 들어선 북한지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과 중국 및 소련 3개국이 조약을 맺어 간도 땅이 한국영토이니 북한에 넘겨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그동안 일부 시민들 상대로 한 강연에서 언급되기는 했다.

그러나 이날 강연에서처럼 자세한 근거를 가지고 영토관점에서 밝힌 사례는 처음이다. 3개국 조약으로 간도가 우리 땅임을 인정한 것은 해방 후 2년째인 서기1947년이다. 장 박사에 따르면 이 3개국 조약에서 당시 안동성 안동구, 길림성 길림구, 간도성 간도구 3개 지역을 북한에 편입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후 서기1948년 다시 이를 재확인하고 이 지역을 북한이 직접 다스리고 인민군까지 주둔 시켰다고 한다.

▲장계화 박사가 한국 국경선 영토관을 설명하고 있다. 대만정부가 최근에 내놓은 지도다. 압록강-두만강 선을 넘어 간도를 북한 영토로 표시하고 있다.

장 박사의 말을 직접 들어본다.

“서기1947.05.20. 조. 중. 소가 참여한 가운데 간도를 북한에 넘긴다는 조약이다. 이 조약 제13조에 적당한 시기에 간도를 북한에 편입시킨다는 내용이다. 간도 땅이 한국 것이니까, 이것을 북한 김일성에게 준다는 것이다. 최근에 대만정부에서 소장하고 있던 지도가 공개되었다.

여기에도 압록강-두만강 선 이북의 3개 지구를 북한 땅으로 표시하고 있다. 조. 중. 소 조약을 다시 확인하는 지도다. 이 지도에는 안동성 안동구, 길림성 길림구, 간도성 간도구 3개지역을 표시하여 북한 강역으로 그려놓고 있다.

이후 조.중.소는 서기1948년 2월에 평양협정을 다시 체결한다. 이 때 위 3개 자치구 지역을 북한에 귀속시킨다고 최종 결정한다. 이를 토대로 북한은 서기1948년 7월부터 북한 행정구역으로 편입해서 직접 관할한다. 이어 연길, 목단강, 무릉지역에 북한 정규군을 주둔시킨다.”

그런데 간도에 대한 이같은 실효지배는 중국 대륙에 모택동 공산당 정권이 들어서고 장개석 국민당 정권이 대만으로 패퇴하면서 물거품이 된다. 더구나 6.25동란이 터지면서 조.중 국경선이 현재처럼 압록강-두만강선으로 굳어진다. 이어 서기1962년 조중변계조약으로 완성된다.

장 박사는 간도가 해방 직후 까지 우리나라 땅이었음을 상기키시면서, “이것은 아주 먼일이 아니다. 아주 가까운 때 일어난 것이다. 이 땅이 모두 우리 땅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국공내전에서 패한 장개석 정권이 대만으로 물러가고, 중화인민공화국 공산당 연변위원회가 간도임시정부를 접수한다.

이어 서기 1962년 조중변계조약을 통해 백두산 국경조약을 맺어 지금처럼 굳어진다. 결국 현재 한반도 국경선은 일제가 만들어 준 간도협약에서 나온 것이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이북까지 우리 영토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며 영토관을 재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기1917년 독립투사, 양기탁, 정안립 등이 고구려와 발해 강역을 이어받은 것으로 상정한 '대고려국' 지도다. 그들은 이 나라를 봉황나라라고 별칭을 붙였다고 한다.

이어 그는 대일항쟁기인 서기1917년에는 우리영토 인식이 훨씬 더 광범위했다고 밝혔다. 당시 양기탁, 정안립 등 독립투사들이 만주에 대고려국을 만들어 나갔는데 현재 남북한 포함 만주 전체 그리고 연해주 까지 모두 포함한 국가였다고 한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당시 만주는 청나라가 망하고 어떤 정권도 만주에 들어서지 않은 무주공산 상태나 마찬가지였다고 장 박사는 강조한다. 이 공간에는 중국인, 러시아인, 일본인 그리고 한국인이 섞여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인 공동체가 가장 많고 커서 한국인이 주도하는 나라를 세우는 것이 가능했다고 한다.

일본도 이 안을 허락하고 일본인 쓰에나가 쎄쓰(末永節)를 통해 기획까지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시 우리 측에서는 대고려국 강역을 과거 고구려와 발해 땅을 포괄하는 것으로 했다고 한다. 특히 우리 나라 유림들 곧 유학자들이 주도했다고 하여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서기1919년 상해에 임시정부가 세워지는 바람에 그 쪽으로 사람들이 몰려 사라졌다고 했다.

장 박사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이 지도는 대고려국 봉황의 나라다. 서기1917년 양기탁, 정안립, 독립투사들이 인식한 당시 우리영토관이다. 이 분들이 서기1917년 대고려국이라는 국가를 만들었다. 국기, 지도, 헌법, 국새 다 제작했다. 국가만 있으면 된다. 국가는 안중근 의사가 표방한 동양 평화론을 기본으로 했다.

서기1917년 이 때 만주는 청나라가 망한 뒤라 청나라 것이 아니었다. 주인이 없는 땅이었다. 그래서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해서 러시아 사람, 중국 사람, 일본 사람, 한국사람이 살고 있는데 다만 한국사람이 가장 큰 공동체를 가지고 있으니 한국 사람 중심으로 나라를 만들어야겠다고 했다. 그래서 양기탁, 정안립 등 독립투사들이 이 국가를 대고려국으로 만든 것이다.

이때 중국과 일본도 잠정적으로 허락한 상태였다. 특히 일본인 쓰에나가 쎄쓰(末永節)가 기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 나라에서는 특히 유림출신 독립투사들이 앞장 서서 국가 건설 추진했다.

대고려국 지도를 제작할 때 고구려와 발해의 판도를 기준으로 대고려국 영토로 삼자고 했다. 이는 역사근거가 있는 얘기다. 만약 우리가 대고려국 지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반도를 포함하여 만주전체 그리고 연해주까지 지금 잠재적 영토로 인식하고 있다면, 언젠가는 우리영토가 된다. 이런 정도의 잠재적 영토관을 갖고 있을 때에 언젠가는 우리가 이 땅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쉬운 것은 이 대고려국은 서기1919년 상해임시정부가 들어서면서 중심 축이 무너지면서 사라져 갔다."

▲장계황 박사가 국제법으로 되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 우리영토다. 남북한은 물론 동만주와 연해주까지 포함한다. 현재 우리에게 주입된 상식에 따르면 어불성설 처럼 들린다. 그러나 장 박사는 자신이 영토학을 전공했다면서 분명히 되찾을 수 있는 땅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장 박사는 이 같은 아쉬움을 토로하면서 또 다른 지도 한장을 보여주었다. 대고려국 처럼 광대한 봉황나라는 아니었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발해국 영토에 버금가는 지도였다. 한반도, 간도, 연해주까지 이르는 대 영토였다.

그는 이 지도는 국제법으로 인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국제사법 재판소에 가면 국제법에 의거해 되찾을 수 있는 영토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영토지도가 나오게 된 역사배경을 추적해 설명해 주었다.

그의 말을 통해서 직접 확인해 본다.

"이 지도는 국제법적으로 인정받는 우리 땅이다. 현재 남한과 북한 그리고 간도 만주와 연해주다. 이 땅이 지금도 국제법적으로 인정되는 대한민국 영토다. 재판을 하면 이길 수 있는 국제법 근거가 있다. 우리가 이 영토를 찾으려면 현행 국제법 기준에 따라야 한다.

따라서 선을 기준으로 한 영토가 확립된 것을 전제로 한다. 반면에 그 이전 고려, 신라 등 나라는 선 개념으로 나라가 존재한 것이 아니라 공간 개념이었다. 따라서 공간개념 영토는 국제법으로 찾을 수없다.

국제법으로 영토를 찾을 조건은 먼저 선으로 영토가 확정되어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관련 당사국이 도장을 찍은 조약이 있어야 한다. 현재 남북한과 간도 그리고 연해주 선으로 그려지는 영토는 서기1627 정묘호란당시 강도회맹 때 맺은 조약에서 나왔다.

이때 조선과 후금은 검은소 한 마리, 검은 말 한마디를 잡아 하늘에 맹세를 하고 형제관계를 맺는다. 이 강도회맹 제3조에 ‘각전봉강各全封疆’ 이라는 말이 나온다. ‘각자의 강역을 봉하여 지키기로 한다.“ 는 말이다.

이 각자 강역에서 조선은 당시 간도와 연해주까지 포함하는 영토였다. 그래서 실제 국경선을 나타내는 <유조변책지도>를 만들었다. 버드나무와 돌무더기로 만든 국경 담장을 뜻한다.

지금도 버드나무 선이 있다. 유조변책선이 있다. 여러분, 다른데 여행가지 마시고 이 유조변책선 탐사를 한번 해보라. 너무 재미있다. 유조변책선이 아직까지도 존재하고 있다. ‘각전봉강’이 나오는 조약에 조선과 후금 양국 왕이 여기에 서명했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대한민국 최초의 국경선이 이 때 만들어진 셈이다.

그 후 이 후금이 청나라가 되고 명나라를 정복하고 만주족이 대거 북경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빠져나간 만주 후방을 봉금지대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면서 청나라와 조선이 모두 이 지역을 들어가지 않는 것으로 하여 간도와 연해주 일대를 봉금지대로 만든다. 나중에 병자호란이 일어나면서 조선이 패하자 동쪽으로 25km 후퇴하여 봉금선이 만들어진다. 국경선이 이렇게 줄어든다.

<황조직성지여전도皇朝直省地與全圖>가 미국의회도서관에 발견되었는데 이 지도를 보면 유조변책선이 선명하게 나온다. ‘중문고지도서록’에 수록되어 있다. 자세히 보면 현재 요동지역 포함 서쪽만 청나라가 통치하고 있음을 알 수있다. 그 동쪽에는 유조변책이 설치되어 국경선으로 되어 있다."

▲황조직성지여전도. 장계황 박사는 이 지도가 미국의회도서관에서 발견되었다며, 청나라와 조선간 국경이 유조변책선을 경계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지도에 우측 빨강색이 유조변책선이다. 간도가 조선 땅이었음을 간접 시사한다.

장 박사의 이날 강연 주 목적은 한국과 러시아간의 공생국건설을 통한 통일한국의 비약적 발전상이었다. 그러나 바로 생소한 한-러 공생국을 얘기하면 전달이 원활하게 되않을 것으로 보아 영토론 부터 시작했다. 그는 먼저 자신을 동국대학교 부동산 학과 교수였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올 2월에 의원면직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부동산하는 사람이 영토, 역사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질문이 많다면서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그는 "원래 부동산에서 가장 작은 단위를 필지라고 한다. 인간으로 말하면 세포다. 한 국가에서 가장 큰 부동산이 영토다. 저는 영토학을 전공했다." 라고 하며 영토가 부동산의 하나로 들어감을 설명했다. 이어 "한국역사에서 영토는 6가지 정도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며 역사영토론을 펼쳤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첫째로 찾아야 할 땅이 있다. 간도하고 대마도다. 다음으로 지켜야 할 땅이 있다. 독도와 이어도다. 미래 영토가 있다. 해양영토다. 또 남북이 분단되어서 아직까지 수복하지 못한 땅이다. 아직까지 통일되지 못한 북한 토지가 있다. 이 여섯가지 영토는 대한민국 사회에 엄청난 문제점으로 있고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를 가지고 주로 연구를 하고 있다.

그 중에서 북한영토를 연구하다 보면 통일론이라고 하는 개념이 나온다. 여기서 북방영토, 간도라든가, 연해주 문제가 나온다. 이는 통일문제로써 남북한 통일은 부분통일이고 북방영토까지 하는 것을 완전통일이라고 이름붙이고 있다. 이제까지 우리가 역사만 했다면 이제는 영토에 관심을 갖고 어떻게 하면 영토 통일할 것인가를 생각해 봐야한다."

그는 역사영토론에 입각하여 통일한국까지 상정하면서 이스라엘이 1천8백년만에 나라를 되찾은 비법을 소개하면서  '잠재적 영토관' 으로 무장하자고 역설했다. 또 지금까지 일제식민사관으로 잘못 인식된  영토관을  버리고 재정립하자고 강조했다.

 그의 주장을 계속해서 들어본다.

"잠재적 영토관이란 무엇인가. 대한민국 헌법 3조에 영토를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영토에 관한한 임시정부 헌법이 지금 것 보다 훨씬 낫다. 현행 헌법에는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라고 나와 있다.

영토학자로서 가장 분하고 억울한 것이 한반도라고 하는 용어다. 우리는 늘 한반도라고 쓰고 있지만 이 용어는 나온지도 얼마 안되는 신생용어다. 이는 반도라는 것인데 우리는 대륙민족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반도라는 개념이 없이 살았다.

반도? 왜 반도인가. 북방영토하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남한까지 다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반도라는 개념이 있을 수 없다. 일본이 바닷가에서 바라보니까, 이 땅이 대륙쪽에서 돌출되어 보이니까 조선반도라고 처음 쓴 것이 아닌가.

조선반도가 한반도가 되는 것은 서기1948년 제헌국회에 나온 것이다. 당시에 이 영토조항 3조를 만들면서 장병만의원이라는 분이 한반도라고 했다. 당시 국회속기록을 보면 장병만 의원이라는 분이 일본이 조선반도라고 썼으니 그렇게 쓰면 안되고 우리는 한반도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현재 우리 머리속에 자동 입력된 우리나라 영토인식 지도다. 소위 한반도기다. 그런데 장 박사는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한다. 일제식민사관의 잔재라고 잘라 말했다. 간도 포함한 연해주까지 우리영토로 인식하는 것이 원래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국제법으로도 인정되는 분명한 우리영토라고 강조한다. 유대인이 자신들의 원래 영토를 잠재의식속에 끊임없이 각인시킨 결과, 나라가 망한지 1800년이 지난 뒤에도 되찾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우리도 잠재적 영토관을 새롭게 확립해서 인식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되찾을 수 있다고 힘주어 외쳤다.

우리는 반도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절대로 반도라는 말을 쓰면 안된다. 반도사관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대한국토라는 말을 쓰도록 제안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한반도는 어디서 어디까지를 말하는가. 이제까지 누구도 언급한적이 없다. 법률적으로나 학계에서도 어디까지라고 정한적이 없다. 그런데 우리 머릿속에는 한반도가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머릿속에는 현재 압록강에서 두만강선 이남을 그리고 있다. 이것을 잠재적 영토관이라고 한다. 우리 전 국민이 여기까지가 우리 영토라고 함께 인식하는 것이 잠재적 영토관이다.

이스라엘은 1천8백년만에 자기 나라를 다시 찾았다. 이들이 나라를 다시 찾은 것은 아주 특별해서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역사책인 구약성경을 매주 마다 옆구리에 끼고서 기도를 한다. 한주도 안 빼먹고 구양성경, 자기 역사를 배우며 살았다. 이렇게 1천8백년 동안 살아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다. 그래서 그 속에 있는 잠재적 역사관이 발동을 하니까, 1천8백년이 지나도 자기네 땅을 찾을 수 있었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우리 잠재적 영토관이 이 한반도라고 하면 이 땅 밖에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는 지금 모두 식민사관에 젖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민족사학을 얘기하며 나는 식민사관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지도를 이렇게 압록강-두만강선 이남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는 식민사관에 젖어 있는 것이다.

이런 영토인식 역사관은 간도협약설에서 나왔다.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일본이 청나라하고 만든 것이다. 이 때 결정적을 만들어진 선이 바로 이 압록강-두만강 선이다. 우리는 지금 일본이 만들어 놓은 간도협약설을 우리의 영토라고 생각하고 잠재적 영토로 인식하고 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저 북방영토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 고민해서는 안된다. 사실은 독도를 지키는 것 보다 간도를 찾는 것이 더 쉽다. 그런데 우리 국민이 간도를 우리 영토로 인식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땅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까 이스라엘처럼 항상 역사를 옆구리에 끼고 그 땅을 우리 역사로 인식할 때 그 땅은 언젠가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장 박사는 이어 영토와 국토 개념을 풀어주면서 서기18세기 청나라 건륭제때 당시 서양첨단기술로 제작된 지도 2장을 제시하며 당시 우리 영토가 압록강 이북 훨씬 북쪽까지 미쳤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반도라는 말을 버리고 '대한국토' 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

그의 주장을 들어본다.

"영토와 국토 개념을 알아보자. 영토는 한 국가의 국토 중에 영유권이 미치는 곳을 영토라고 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영유권은 휴전선 이남에만 미치고 있다. 그런데 이북은 영유권이 미치지 않는다. 그리고 영유권이 미치지 않는 압록강-두만강선 이남 전체를 국토라고 한다. 국토는 법에의한 영토를 국토라고 한다.

헌법 제3조에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국토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을 한반도로 불러서는 안되고 대한국토라고 불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라고 하는 것은 일제 시각으로 본 일제 잔재고, 압록강-두만강선을 국토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일제잔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서기18세기 중반, 청나라 건륭제가 서양 선교사들에게 명령하여 당시 최첨단기술로 제작한 지도. 당시 우리나라 땅은 압록강선을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그런데 서기19세기 이전까지 소위 한반도라고 하는 것은 지금 압록강 이북선으로 넘어간다.

키친지도(서기1745), 당빌지도(서기1749)다. 압록강 이북 남만주 일대가 평안도라고 영어로 써있다. 이 지도는 청나라 건륭 황제가 당시 레지와 당빌 서양 선교사에게 첨단기법으로 제작케 해서 만든 것이다. 그냥 개인이 주먹구구식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청나라-일본사이에 체결된 간도협약에 따라 만들어진 압록강-두만강 선 이남을 우리 국토로 잠재적 영토로 지금까지 인식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현재 압록강-두만강선 이남의 영토지도를 당연시 여기며 우리영토는 여기까지라고 무의식속에 각인되어 있는게 사실이다. 초등학교 때 부터 이렇게 세뇌되어 왔다. 그런데 사실은 이 영토관은 일제가 청나라와 체결한 간도협약에서 나왔다는 것이 장 박사의 주장이다. 이날 장 박사 강연은 이런 고정관념을 깨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장계황 박사는 이날 자신이 최근에 낸 책, <봉황의 나라 대륙을 품다>를 강연장 입구에서 전시했다. 이날 강연내용을 모두 포함하여 자신의 역사영토관과 이에 따른 통일한국 그리고 한-러 공생국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집대성 한 것으로 보였다.

그는 지난 4월 2일 부터 6일까지 자신이 이끄는 한국역사영토재단과 '한라-백두 통일연대' 회원 및 '민족회의' 등 시민사회단체를 이끌고 러시아 블라티보스톡을 방문하여 '한-러 공생국' 관련 토론회를 연 바 있다. 한-러공생국론을 처음 주창하여 '코리아선언'으로 유명한 러시아 수린박사와 국제학술 토론회를 가졌다고 한다(2부에서 계속).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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