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고조선기와 유사한 천손민족 구조...

거란, 태양신후예, 단군조선, 고구려, 발해 전승...

신완순 / 한울빛새움터 원장

 

고구려에 이어 발해가 한민족 역사의 맥을 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발해를 이은 나라는 어디일까? 당연히 거란이라 불리는 요(遼)나라다.  요나라 역시 고구려와 발해를 이어받은 우리의 역사이다. 이미 언급을 한 바 있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키타이’ 혹은 ‘거란’이라 불렸던 나라가 우리의 역사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거란고전(契丹古傳)>을 중심으로 알아보자.

<거란고전>은 요나라 태조가 발해를 멸망시켜 동란국(東丹國)을 세우고, 장자인 야율배(耶律倍)를 인왕황(人皇王)으로 삼았을 때 동란국의 우차상(右次相)을 지낸 발해 사람인 야율우지(耶律羽之)가 편찬한 사서를 묶은 것이다. 먼저 거란(契丹)의 의미는 무엇일까? 금나라의 역사를 기술한 <금사(金史)>에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가 나라 이름을 정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요나라는 빈철(鑌鐵)의 견고함을 좇아 요(遼)라 하였는데, 빈철은 비록 강하기는 하지만 변하여 깨진다. 금(金)은 색이 밝을 뿐만 아니라 변하지 않으며 또한 나라 사람들이 밝은 것을 숭상하니 나라 이름을 대금(大金)이라 한다.” 빈철은 철의 한 종류로서 토번 등에서 생산이 되는데 쇠 중에서 가장 단단하며 빈철로 만든 칼은 매우 예리하며 눈(雪)의 색을 띠었다고 한다. 빈철을 통하여 용맹하며 날쌘 거란 병사의 무용을 보는 듯하다.

요(遼) 선간황후, 해 품는 태몽 꾸고 태조 낳아

‘거란’이라는 말의 어원은 요나라를 세운 야율아보기의 탄생과정에서 유추할 수 있다. 요태조의 어머니인 선간황후 소씨(蕭氏)가 하늘의 해가 떨어져 품으로 안는 태몽을 꾸고 요태조인 야율아보기를 낳았다고 한다. 이는 알에서 태어나 고구려를 세운 주몽과 같이 하늘의 자손이라는 알(卵)신화의 전승이다.

‘거란’이라는 말은 크다(大)는 의미의 ‘글(契)’과 알(卵)의 의미인 ‘란(丹)’이 결합된 말로서 ‘위대한 태양’, ‘대광명(大光明)’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러한 것은 <거란고전>의 맨 첫 장에서도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태양신 즉 일신(日神)을 ‘알가민(戞珂旻)’이라 하며 거울은 하늘과 빛을 대신한다고 되어있다. ‘알가민’에서 ‘알’은 하늘의 해이며 ‘가민’은 우리말의 신(神)을 나타내는 ‘검’ 또는 ‘감’을 이두식으로 쓴 것이다. ‘알가민’은 ‘알감’이며 태양신이다. 거란은 태양신의 후예이며 이는 곧 신시로부터 단군조선, 고구려, 발해를 거쳐서 천손민족의 전승이 이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거란인들이 매를 한마리씩 손목에 태우고 사냥을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를 일명 '海東靑'이라고 하여 매사냥이 오랜 전통으로 남아 있었다. 구한말에서도 매를 이용한 사냥이 유행하였다. <해동역사>에는 이런 기록도 있다. “해동(海東)에서 온 좋은 매를 해동청(海東靑)이라고 부르는데...요나라 인들이 이를 얻기 위해 전쟁도 불사했다.” <해동역사>

거란, 태양신후예, 단군조선, 고구려, 발해 전승...

<거란고전>에서 우리의 고정관념을 바꿀 또 하나의 단어가 압록강(鴨綠江)이다. 우리는 압록강하면 현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이루는 강으로서 현재의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신의주와 단동사이로 흘러 황해로 빠지는 강으로 알고 있으며, 청둥오리(鴨)의 머리처럼 강물이 푸르다는 것에서 그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거란고전> 제10장 ‘압록강의 고금(古今)’ 편을 보면 전혀 다르다.

“수계(修禊, 부정을 씻기 위해 목욕재계하고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닦고 계율을 지키는 것)를 하도록 명령을 한 뒤에야 평정된 적들을 동대신족(東大神族, 거란족이 생각하는 천손민족의 개념)의 일원이 될 수 있게 허용을 하고 이를 알복록(閼覆祿)이라 하였다. 이는 곧 읍루(浥婁)이다. 혹은 알복록은 수계를 지킨다는 맹서의 뜻이라 한다. 그러한 까닭에 오늘날까지 동대신족의 일원이 된 자는 알복록대수(閼覆祿大水)에서 맹서를 바꾸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때 ‘알복록’ 즉 ‘압록’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복속된 부족 또는 나라의 백성들이 천손민족의 이념을 지키고 강에서 몸과 마음을 씻는 수계의식을 치르는 것에서 유래가 된 것이다. 단순한 부족의 이름으로만 생각하였던 ‘읍루’라는 말이 압록의 다른 말이었다.

또한 압록강은 현재의 압록강처럼 어느 한 특정지역의 강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살고 있던 나라에 흐르던 강 즉 도읍지 근처에 흐르던 강임을 알 수 있다. 도읍지가 옮겨지거나 새로운 나라가 들어설 때는 또 다른 압록강이 생겨났다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그 음만 따서 한족들의 붓끝에서 압록이라는 말이 ‘오리머리처럼 푸른’ 강으로 둔갑을 하였는데도 우리는 그 뿌리도 모르면서 그 말의 어원을 중화라는 허상에 그저 따라가는 꼴은 아닌지 안타깝기만 할 따름이다.

평양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평양하면 현 평안도의 평양만을 떠올리는데 <거란고전>에서는 평양이라는 말은 신경(神京)이라 하였다. 신조(神祖)가 앙수달(鞅綏達)에 도읍을 정하였는데 이 곳이 신경(神京)이라는 것이다. 즉 앙수달은 <삼국유사> 등의 여러 사서에서 언급하는 단군 왕검께서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였다는 것과 일치한다. 앙수달은 아사달이며 곧 평양으로서 신령스러운 천손민족의 임금이 거처하는 도읍지라는 말이다.

고대에는 위의 압록강처럼 평양이란 말도 새로운 나라가 들어서거나 이주를 하였을 때에도 반드시 따라다니던 이름이다. 지금의 서울이라는 말을 상기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원래 신라의 서라벌과 마찬가지로 서울은 수도를 나타내는 말인데 고유명사화 된 것이다. ‘대한민국의 서울은 서울이다’라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평양을 현 평안도 평양으로 압록강을 현 중국과 북한의 경계가 되는 강으로만 인식하면 우리의 역사는 풀어낼 길이 없다.

예를 들어 단군왕검이 도읍한 아사달이 현재의 중국 흑룡강성의 할빈이라면 할빈이 평양이 되는 것이며 할빈 근처를 흐르는 흑룡강은 압록강이 될 것이다.

마간(瑪玕), 말갈(靺鞨), 발해(渤海), 음이 변해 표기만 달리한 같은 부족

<삼국사기>에는 초기부터 말갈의 이름이 등장한다. 백제와 신라가 한반도 남부에 존재하였다고 배운 사람들에게는 도대체 말갈이 어디에 존재하였기에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고민을 한다. 또한 우리의 역사를 찬탈하려는 중국의 동북공정의 논리는 고구려와 발해는 중국의 지방정권이었으며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근거에는 말갈이라는 부족이 우리의 역사와는 관계가 없다는 논리가 깔려있다.

그런데 <거란고전> 제6장의 기록은 이러하다.

“마간(瑪玕), 말갈(靺鞨), 발해(渤海)는 같은 말을 나타내는 음운으로 서로 이어졌으며 주신(珠申), 숙신(肅愼), 주진(朱眞)도 같은 음으로 서로 이어져왔다. 이러한 전통은 자명(自明)한 것이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음이 변하여 표기만 달리 했을 뿐 각기 다른 부족이나 종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발해가 멸망하고 정안국(定安國)을 세웠다는 기록이 <송사(宋史)>에 보인다.

“정안국은 본래 마한의 부족인데 요나라에 망하여 그 추장이 남은 무리를 규합하여 그 서쪽 변두리 땅을 확보하여 나라를 세우고 개원하여 스스로 정안국이라 하였다.”라고 되어있다. 정안국은 비록 짧게 존속하여 통치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발해의 또 다른 후예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정안국이 마한의 부족이었다는 말은 10세기까지 마한이 존재하였다는 것이 아니며 발해를 이어 나라를 세웠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발해 역시 말갈족이 세운 것이 아니라, 발해나 말갈이나 똑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며 중국의 사서에서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은 말갈이나 발해의 개념을 모르는 데에 생긴 오해일 뿐이다.

<거란고전>의 다른 내용들을 보면 <삼국유사>의 한웅천왕과 단군왕검의 개국의 기사처럼 일조(日祖)와 일손(日孫)의 이야기가 나온다. 한웅천왕과 웅녀가 결혼을 하여 단군왕검을 낳은 것으로 되어 있지만 <거란고전>에서는 일조(日祖)인 아내운시보(阿乃沄翅報)가 일손(日孫)인 아민미 신운견시보 순차단미고(阿珉美 辰沄繾翅報 順瑳檀彌固)를 수계를 시키고 그윽한 기를 응결시켜 낳은 것으로 되어 있다.

호마가혜(胡馬可兮)라는 하늘 닭 즉 봉황을 태워 세상에 내려보냈다는 이야기가 한웅천왕이 천부인 3개를 갖고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는 것과 의미상 유사한 전개를 보이고 있다.

또한 신조의 후손이 중원을 정복하고 오원(五原)으로 나누어 통치를 한 사실과 중국의 사서에서 말하는 구이(九夷)의 위치와 내용을 짐작케 하는 내용들도 담겨져 있으며 중원에서의 화하족과의 분쟁에서 패하여 중원에서 나오게 되는 과정 등 다른 사서에서는 볼 수 없는 많은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어 기존의 사서와 비교 검토하고 연구한다면 우리의 잊혀진 역사를 찾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거란고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06년 일본의 압록강군의 병참경리부장으로 심양 교외의 라마교 사원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인 장교 하마나 히로시우(浜名寛祐)에 의해서이다. 고능묘에서 출토되어 병화로 인하여 어떤 사찰에 보관되어 있었던 사료를 필사하여 1927년에 <거란고전>이라는 책을 발간하면서부터이다.

<거란고전>은 10 세기에 동란국의 야율우지에 의해서 편찬된 한문체의 <야마태기>, <씨질도찰>, <서정송소>, <신통지> 등의 발해 사서를 인용하여 풀이하여 출간된 책이다.

거란고전, 일본인 장교가 발해사서 인용 출간... 알본은 사서로 인정

하마나 히로시우는 <거란고전>을 통해 제국주의적 사관을 바탕으로 하여 만주와 한국, 일본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으며 그 뿌리가 대륙에서 출발한 동일한 천손민족의 후예라는 것을 밝혀 빈약한 열도의 역사를 극복하고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려 하였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하마나 히로시우가 보았다는 야율우지의 <야마태기> 등의 책들이 존재하였는지 또한 어떠한 기록이 있는지에 대하여 알 길이 없다. 또한 그가 <거란고전>을 왜곡하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란고전>에 나오는 기록을 보면 현 일본의 역사하고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란고전>에 나오는 역사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우리의 역사일 수밖에 없다. 위에서 열거한 압록강과 평양 그리고 마한이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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