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 사관과 일제황국사관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판...

단재 신채호 사관과 일제황국사관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판...

16일 한성백제박물관에서는 지난 10일에 이어 한국고대사 시민강좌가 있었다. 이번 시민강좌는 경희대학교 조인성교수가 맡았다. 조교수는 ‘우리안의 식민사관’이라는 주제로 식민사관이 무엇인지부터 설명하였다. 지난1회차에서는 서울대 전 교수 노태돈씨가 고대사 연구동향의 한 꼭지로 식민사학을 다루었음에 반해, 조교수는 식민사학의 구체적인 내용을 심도있게 소개하였다. ‘일선동조론, 정체성론, 타율성론’을 식민사관의 대표적인 이론으로 보고 이것을 주장한 일제식민사학자들의 이름을 소개하였다. 이어 일제조선총독부가 주체가 되어 편찬한 ‘조선사’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경희대학교 조인성 교수가 최근 몇 년간 출간된 강단주류사학을 비판하는 책들을 화면에 띄워놓고 비판하고 있다.

조교수는 일제가 일제식민사학과 조선총독부를 통해서 우리역사를 어떻게 왜곡했는지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단군조선을 부정하고, 기자조선 혹은 위만조선-한사군과 같은 식민지로부터 조선사가 시작되며, 한국문화도 이를 통해 유입된 중국문화거나 이를 모방한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또한 조교수는 ‘일제식민사학은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불신하여 신라, 백제의 실제 건국을 4세기 후로 잡고, 두 나라는 임나일본부에 신속한 것으로 서술하였으며, 일본과 고구려에 의해 한반도 내 남북의 형세가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고 했다.

이어 조교수는 이기백, 김용섭 등이 서기1960년대부터 식민사관에 대하여 비판을 본격화하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식민사관이 거의 극복되었다고 하였다. 그런데도 서기1970년대 안호상을 중심으로 국사찾기를 주장하며 이병도, 신석호등의 조선사편수회 전력을 들춰내 이들을 친일파로 매도하고 그 학맥을 같은 부류라고 맹렬히 공격했다고 하였다. 또한 서기1980년대에는 국회청문회를 통해서 비제도권 인사들의 국사바로잡기운동이 있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최근 서기2014년 ‘식민사학해체 국민운동본부’의 활동을 소개하며 이 운동본부가 동북아역사재단을 비판하고 감사 청구한 사실을 언급하고 여기에 참여한 인사들을 일일이 거명하였다. 그리고 그 핵심활동가의 한 사람이 ‘모 교수가 임나일본부를 받아들였다’고 했다가 명예훼손으로 기소되어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울서부지방법원 판결번호까지 소개하였다. 이어 조교수는 식민사관은 이미 오래전에 극복되었는데도 최근까지 강단주류사학을 식민사학으로 매도하는 책들이 다수 나오고 있다며 이를 비판하였다.

▲조인성교수는 이성계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사대주의 노예사관에 따라 펼친 한사군 재평양설을 적극 소개하며 식민사학을 일제가 처음 주장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한편 조교수는 한사군이 현재 평양근처에 있었다는 근거로 이성계 조선 학자들의 주장을 내세웠다. 한백겸, 안정복, 한치윤, 정약용 등의 견해를 인용하여 한사군 재평양설을 이미 이성계조선의 학자들이 주장했다고 하였다. 일제식민사관이 처음 주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조교수는 이 한사군 재평양설이 전혀 황당한 것이 아니고 상당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이 그린 한사군 재평양 위치도를 보여주며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또한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과 관련하여 이것도 일제식민사관이 처음 주장한 것이 아니라는 논리를 펼쳤다. 안정복의 ‘동사강목’과 단재 신채호의 ‘조선사’, ‘조선상고사’를 들면서 이들을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의 원조로 보았다. 또한 반계 유형원의 기록도 인용하였다.

조교수는 강의를 마무리 하면서 19세기 후반의 명치시대에 일본 역사학계에 휘몰아치던 것과 비슷한 파동이 우리나라에서는 20세기 후반기에 불어 닥친 셈이라고 하였다. 또한 육군본부에서 나온 고대 만주대륙을 회복하자는 글을 비판하며 이것은 일제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고 하였고 중국과 전쟁하자는 것 밖에 안 된다고 하였다. 이것은 세계평화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조교수는 최근 강단주류사학을 식민사학으로 몰아 비판하는 세력을 일제식민사학의 부정적인 유산이라고 결론지었다.

조교수의 이번 강좌에 대해서는 강의가 끝나고 질문시간에 많은 비판이 이어졌다. 신채호가 주장하는 역사는 실사이고 일제 황국사관이 주장하는 역사는 날조한 것인데 이것을 같은 것으로 보아 양비론으로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단재 신채호의 역사관을 민족주의, 국수주의로 몰아세우면서도 필요할 때는 그의 주장을 끌어다가 중요한 논거로 삼았다. 한편 일제가 단군조선을 부정한다고 하지만 조교수도 정작 단군조선의 실재에 대하여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안하고 단군기원이 서기전2333년인데 이것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또한 한일고대사는 분명히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우위에 있었음에도 이것을 자꾸 주장하면 일본과 친선교류를 할 수 없으며, 나아가 일선동조론과 다를 것이 없다고 했다. 일제의 삼국사기 불신론을 비판한다고 하면서도 고구려는 율령반포가 소수림왕 때 있었고, 고려는 성종 때 문물제도가 갖추어졌으며, 이성계 조선은 성종 때 경국대전 등 국가체제가 갖추어 졌다고 하여 일제의 삼국사기 불신론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조인성 교수는 강단사학과 비주류사학이 소송으로까지 갔다면서 위 책의 저자가 1심재판에서 승소했다고 소개하며 비주류사학을 간접적으로 비판하였다. 드러내놓고 비판하지 않았지만 이번 시민강좌는 비주류사학을 성토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이번 2회 시민강좌에는 지난번보다 참석인원이 상당히 줄어 있었다. 또한 쉬는 시간에 몇몇 시민은 동북아역사재단의 동북아역사지도에 독도가 없다며 이것을 다른 방청객에게 알렸다. 그러면서 시민강좌 주체 측에서는 이것은 한마디도 안하고 오히려 두둔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또한 한 시민은 시민강좌의 강사들이 우리의 대륙고대사에는 침묵하고 자꾸 축소되고 외세에게 당한 역사만 부각하여 전한다고 비판했다. 한편 강의 중에 강사가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고 할 때 한 방청객이 야유를 보내 다른 방청객들에게 빈축을 삿다. 이번 시민강좌에는 지난 강좌 때 보이던 젊은 대학생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연세가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시민들이 절반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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