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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학, 일본 것 베낀 것에 지나지 않아실증주의로 포장된 일제식민사관의 민낯을 벗기다
이병권 | 승인 2018.02.03 23:54

글: 이병권(시민기고가)

 

건설 현장에 일본식 건설용어가 도배되어 있듯이,

우리 법전과 법률용어가 모두 일본산이듯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우리 역사라는 것도

일본산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 얼마나 될까

국내식민사학계가 역사학 교훈으로 삼는 카(Carr) 기준으로 봐도

국내식민사학계는 학문이 아니다

조선총독부 황국사관 찌꺼기에 불과하다

 

▲ 에드워드 핼릿 카(Edward Hallett Carr 서기1892-1982) 영국 정치가, 역사가. 특히 그는 역사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사이의 끝없는 대화'라는 말로 유명하다. 국제연합(UN) 세계인권선언 기초위원회 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 Carr의 랑케와 콜링우드 비판

그러한 이유로 이 책의 1장이 보여주는 가치는 매우 큽니다. Carr는 이 책의 1장에서 이른바 객관주의의 상징과 같이 포장된 랑케(1795-1885)이의 실증주의, 그리고 주관주의적 해석의 대표 격으로 콜링우드(1889-1943)을 분석하고, 양 자를 철저히 비판합니다. 여기서 랑케에 의해 표방된 실증주의는 일본의 식민사관의 밑자락을 깔아놓은 것이기에 우리에게도 참으로 민감한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실증주의는 일제 식민사학의 출발이자 근저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독일 랑케의 실증주의는 ‘역사가의 임무는 다만 사실 그 자체가 어떠하였는가를 살펴보고 사실이 말하게 하는 것’ 이라는 유명한 문구로 대변됩니다. 기실 그 역사적 사실이란 실상 이미 기존의 제도나 틀 내에서 규정되고 정리된 것, 그 것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데 봉사하기 마련입니다. 과거의 사실을 새롭게 바라보거나, 재해석 하거나, 뒤집어 보는 등의 ‘불순한’ 역사가의 행위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과거부터 있어온 그렇게 정리된 것들을 건드리지 말고 그 권위를 그대로 인정하고 순응하는 것, 그것이 바로 프로이센에서 자라난 랑케가 천명한 지배질서에 반항하지 않는 역사학인 것입니다.

명치유신 이후 일본이 급격한 근대화 과정을 겪으면서 이 랑케의 제자였던 ‘리스(Ress)’를 초빙해 일본 역사학계를 일으킨 것은 단순히 서구의 ‘선진적 사고’를 배우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천황제를 부활시켜 자신들의 역사적 정통성을 확보하는 가운데, 「일본서기日本書記」를 그 자체의 확고부동한 ‘역사적 사실’로 공고화함으로써, 주변국, 특히 조선에 대한 역사적 우위를 확보하고 선민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귀한 정치적 도구로 활용한 것입니다. 일단 ‘사실’로 적시하고, 그것을 실증주의로 포장하고, 그 토대 위에 정한론征韓論과 일본 제국주의의 거성을 쌓아올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본에서의 실증주의는 그 자체로서 이미 이데올로기이자 정치적 산물입니다.

일제하의 ‘조선사편수회’를 기치로 한 식민사학의 모든 결과물, 해방 이후 70여 년간 내려오고 있는 이 실증주의의 한국판 계승자, 매국사학자들의 계보가 바로 이 실증사학이라는 오염원을 통해 퍼져나간 전염병인 것입니다.

○ 실증주의와 의형제 - 영국 경험론과 주관주의

독일에서 탄생하여 근대 역사학의 토대를 놓았다는 이 역사학 방법론-실증주의는 존 로크 등의 영국 경험론과도 맥락이 같습니다. 경험주의라는 것은 매우 실증적이고 합리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대단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습니다. 영국의 경험론은 산업혁명의 토대 위에 전 세계를 호령했던 대영제국의 발전에 토대를 이루었습니다. 동시에 대영제국의 세계 지배질서를 합리화시키는 이데올로기의 역할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메이지유신이 일본의 모든 사회체제를 영국식으로 근대화시킴을 목적으로 한 만큼 실증주의는 경험주의와 함께 일본 메이지 정신을 잘 대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Carr가 두 번째로 비판한 콜링우드류의 주관주의적 역사해석 역시 당연히 비판의 대상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자신의 정치적, 사상적 목적에 따라 꿰어 맞추는 결과가 명약관화합니다. 필요한만큼 역사와 사료를 조작해 독도를 자기 땅이라 우기는 일본의 행태가 그것입니다. 오늘날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보여주는 극단적 주관적 태도 역시 철저히 자신을 중심으로 세계를 판단하고 좌지우지 하려는 의지의 반영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주관주의는 정치적으로는 선민의식을 바탕으로 한 차별과 지배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결국 힘 있는 자나 국가가 지배하는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극단으로 치닫게 됩니다. 인류적 가치를 전제로 한 객관적 기준과 전망을 상실할 때 발생하는 탐욕의 이면인 것입니다.

이에 대해 Carr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너무도 상식으로 들리자만) 역사의 각 사실들은 기억의 창고에 처박혀 있을 뿐이지만, 그 사실을 되살려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오로지 역사가의 일이니, 역사가의 역할은 바로 그 사실에 기초해 맥락과 상황을 탐구해 인과관계를 밝히는 일이 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역사가의 입장, 사관, 관점이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사람이 갖는 입장, 관점, 생각, 사상에 따라 과거 사실을 들여다보고 연결하는가, 그리고 그 과거의 사실이 현재와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가를 정리하는 것이 역사가의 역할이자 임무가 되는 것이지요.

Carr의 이러한 지적은 많은 함의를 담고 있습니다. 「日本書記」를 예로 들어봅시다.일본의 제국주의자, 식민사학자들은 「일본서기」의 제작시기를 무려 1천년이나 앞당겨 서기전 7세기경에 쓰여졌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근거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일본서기」를 근거로 4세기 신공왕후 시절에 한반도 남부의 가야지역을 점령하여 소위 ‘임나일본부’를 설치해 식민지로 경영했다고 주장합니다. 그 근거는 「일본서기」외에는 없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주장이 「삼국사기」에 의해 거세될 위기에 몰리자, 그들은 「삼국이」의 초기 부분, 즉 신라,고구려,백제의 4세기 이전 국가로서의 발전과정과 내용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굳이 「일본서기」의 권위를 인정하려 거품을 뭅니다.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Carr의 기준으로 보면, 역사가의 임무기준에 도달할 수 없는 낙제급입니다.

우선, 「일본서기」가 역사적 사실인지 여부도 불분명 합니다. 상당수의 학자들은 「일본서기」가 신화와 민담, 소설이 버무려진, 역사서라는 사실에 의문을 표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책의 저자도 알 수 없고, 탄생시기도 불분명합니다. 서기 7세기 경에 작성되엇을 것으로 추론되나, 수 백년 동안 이어져져 기필되며 편집되었을 가능성도 높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역사적 사실’로서 인정받을 수 없으며, 이 책의 내용과 관련해서도 그 진위를 다른 사실이나 국제정세에 비추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으므로, 이 책에 근거하여 일본의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 자체가 성립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일본 식민사학자들을 계승해 아직도 이 땅에서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김현구와 같은 역사학자들이 버젓이 활개치고 있음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지요. Carr의 역사의 기준이 아니더라고 상식의 기준에 미달하는 불량품입니다(3부에서 계속).

이병권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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