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자 강인욱, 춘천 중도 고고유적파괴 잘 알고 있었다.

경희대학 사학과 강인욱 교수,

'고고학에서 고조선 다루는 것 그동안 금기사항이었다

최근에 와서야 고조선을 입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청동기 기원은 유라시아고

하가점상층문화->십이대영자문화를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고조선은 서기전 4세기경에 '영역'을 가진 나라가 되었다'

 

▲ 서기2017.11.03.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한국고고학회 주최, 제41회 한국고고학전국대회가 열렸다. 첫날 마지막 발표자로 나선 경희대학 사학과 강인욱 교수가 '요서지역 비파형동검문화 확산과 고조선' 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최근 '고조선'을 고고학으로 밝혀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한국고고학회다. 그동안은 문헌사학 밑에서 하자는 대로 따라 했는데 이제는 독립된 눈으로 고조선을 바라보겠다는 것이다. 문헌사학의 부속학문이라는 오명을 털어 버리겠다는 독립선언과도 같았다. 이 같은 의지를 서기2017.11.03. 서울 용산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한국고고학회가 주도한 고고학대회에서 엿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인지 이날 제목도 '한국고고학전국대회'라는 큰 이름을 달고 있었다. 고조선을 고고유물로 재구성하려는 의지를 불태웠다. 전국대회가 이틀에 걸쳐 개최될 만큼 대규모 행사로 진행되었다. 한국고고학회의 자존심을 걸고 문헌사학에서 빠져 나오겠다는 몸부림처럼 보였다. 행사장 주변에서는 그동안 전국에 걸쳐 발굴한 고고유물을 담은 서적들을 각 출판사마다 진열해 놓고 팔았다. 또 전시물을 세워놓고 참여자들을 유혹했다. 한마디로 한국고고학회 큰 잔치날이기도 했다.

서기2017.11.03. 전국대회 첫 날 마지막 발표자로 경희대학 사학과 강인욱 교수가 나섰다. 강 교수는 러시아어를 잘 알고 있고 러시아 측 학자들과 유라시아 고고유물 발굴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날 '기술, 무기 그리고 제사: 요서지역 비파형 동검문화 확산과 고조선' 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먼저 한국고대사학회와 같은 문헌사학에 날을 세웠다. 그는 송호정 한국교원대학교 교수를 예를 들어 문헌사학을 비판해 나갔다. 그는 송호정 교수 같은 문헌사학이 하가점상층문화와 십이대영자문화를 하나의 주민집단으로 본다고 비판했다. 송 교수가 이들 문화를 산융이나 융적 것이라고 하는데 틀렸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고고학으로 보면 아니라는 것이다. 이어 중국 전국시대 연나라 강역이 북한 청천강 까지 내려왔다고 한다며 이것도 어처구니 없다고 비판했다.

고고유물 자료를 보면 말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된 근본원인은 (송 교수와 같은 문헌사학이) 고고학적 자료로 물질문화 해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이어 “(송 교수가) 문헌사에다 고고학적 자료를 보강하는 문헌 위주 연구방법을 썼기 때문”이라고 질타했다. 한마디로 문헌사를 위한 보조 자료로 고고학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 강인욱 교수가 서기2017.11.03. 한국고고학회전국대회에서 고고유물로 고조선을 밝혀나가고 있다.

강 교수는 계속해서 이른바 연나라 장수 진개가 고조선을 공격해서 2천여리를 뺏었다는 문헌사학의 주장도 칼질했다. 그는 “먼저 연장 진개의 조선침략과 그에 따른 고고학적 문화변동이 고조선과 주변지역을 해석하는 주요한 도구로 수십년간 활용되었다” 고 운을 뗐다.

이어 고고학 자료로 보면 그렇지 않다고 선을 분명히 그었다. 송 교수와 같은 문헌사학은 연나라 강역을 북한 청천강까지 그리고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비록 중국 학계 주장을 끌어 왔지만 압록강 이북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여기서 잠시 연나라 강역과 연나라를 멸망시키고 들어선 진나라, 한나라 동쪽 강역을 살펴봐야 한다. 이들 나라는 동쪽으로 고조선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었다. 앞서 강 교수가 지적한데로 송 교수와 같은 문헌사학은 연나라 장수 진개가 고조선을 동으로 2천여리를 뺏었다는 기록을 아주 중요시 한다. 고조선이 연나라에게 2천여리를 뺏긴 결과 요서 또는 요동까지 가 있던 고조선 강역이 줄어들어 북한 청천강 까지 연나라 땅이었다고 한다. 또는 강 교수가 말한 압록강 이북선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모두 조선총독부 식민사관과 중국동북공정사관이 왜곡, 날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연나라 진개가 고조선 땅 2천리를 뺏었다고 하더라도 뺏은 그 땅을 계속 차지 하고 있지 못했다. 연나라를 멸망시킨 진시황의 진나라가 진 장성을 쌓았는데 그 동쪽이 어디까지 인지 찾아 보면 이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사기> 흉노열전에 진나라가 장성을 쌓았는데 동쪽 끝을 요동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기> 오제본기의 사기 집해 주석의 <태강지리지>에는 진장성이 일어나는 곳(진장성 동쪽 끝)이 갈석산이라고 한다. 요동이 갈석산이라는 소리다. 또 <진서> 당빈열전을 보면 당빈이 진장성을 복구했는데 동쪽 끝이 갈석산까지라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은 대륙 물길을 전문으로 기록한 <수경주>에도 똑 같이 나온다. 진장성 동쪽 끝이 갈석산이라고 한다. 이외에 <진서> 지리지 낙랑군조와 <통전> 등에서도 확인된다.

그렇다면 요동인 갈석산은 어디인가. 중국 1차사료에는 여러 갈석산이 나온다. 그러나 대륙에서 가장 먼곳에 있는 갈석산은 현재 하북성 천진시 동북, 난하 하류 지점에 있는 갈석산이다. 중국 학계에서도 이 갈석산이 진나라 왕, 정(소위 진시황제)과 한나라 왕, 유철(소위 한무제)이 오른 산으로 본다. 진나라 시기 여기까지가 진나라와 조선의 국경선이라는 것이다. 또 한나라 시대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갈석산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세웠다는 한사군도 이 지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표 군이 낙랑군인데 갈석산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중국 1차사료는 한결 같이 말한다. 이는 당시 수많은 중국 1차사료를 교차검증해 봐도 같은 결론이다. 이른바 위만조선이 한나라 공격으로 망할 당시 조한 국경선도 갈석산을 중심으로 하는 하북성이었다는 것이다.

▲ 강 교수는 이날 중국 요서지역 청동기와 우리나라 청동기가 유라시아지역에서 들어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유라시아 지역 청동기 상한년대를 1천3백여년으로 잡았다. 위 화면에는 서기전18~20세기로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기 양수리 고인돌유적, 전남 장천리 청동기 유적의 방사성 동위원소 탄소측정연대는 서기전 24세기 이상 올라가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북한 지역은 이보다 훨씬 상회한다.

그런데 이날 강 교수가 언급한 송호정 교수와 같은 문헌사학은 이 같은 분명한 사실을 무시한다. 연나라 진개가 침략해서 자치했다는 조선땅 2천리가 이후 등장하는 진나라, 한나라 시기 및 조선이 망할 때 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고 본다. 이 전제하에 하위 논리를 편다. 그래서 연나라 장성을 청천강 이북까지 또는 압록강선으로 그린다. 강 교수가 고고자료로 문헌사학을 비판하지만 강 교수 자신의 주장도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송호정 교수는 서기2016년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진행된 한국고대사학회 시민강좌에서 연나라 장성이 북한 까지 들어온 지도를 띄운바 있다.

계속해서 강 교수는 문헌사학을 지적하며 고고학계가 그동안 문헌사학에 굴복하고 종속학문으로 만족해 온 사실을 고백했다. 그는 “세 번째로는 고고학적 방법론이 부재했다”며 “그간 고조선의 고고학적 자료는 문헌사적 논쟁을 해결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다”고 토로했다. 고고학이 문헌사학과 독립해서 고조선을 보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는 이어 “고고학적 방법론에 대한 고민 없이 곧 바로 고조선 영역을 청동기와 연결시켜 (청동기 분포지역을) 고조선으로 간주했다”고 비판했다. 또 “문헌사에 따른 고고학자료를 선험적으로 규정해서 결국 고조선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 및 방법론 개발을 저해시켰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법으로 고조선을 규정짓겠다고 강한 의욕를 드러냈다. 고조선 실체를 청동기제작 기술과 무기 그리고 제기를 기준으로 판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청동기가 유라시아에서 기원해서 요서지역 하가점상층문화(서기전1500~700년)로 들어왔고 이어 동쪽에 위치한 십이대영자로 이어졌다고 했다. 이어 요동, 우리나라로 전파되었다고 외래기원설로 못박았다. 이날 발표자 중 제일 고참으로 보이는 이청규 영남대학교수를 비롯해서 다른 모든 발표자들도 이 견해로 통일된 것으로 나타났다. 고고학계의 정설로 보였다. 한결같이 하가점상층문화와 십이대영자에서 시작했다.

문헌사학의 대표격인 한국고대사학회도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하나 뿐인 정설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 식민지, 낙랑군을 북한 평양으로 보는 것이 대표 정설 사례다. 이런 점에서 이날 문헌사학과 차별화 하겠다는 한국고고학회 전국대회 당초 취지가 무색해 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 강 교수는 이날 고조선을 규정짓는 요소로 청동기술, 무기, 제기를 들었다. 그러나 '영역화'라는 애매모호한 용어로 고조선의 실체를 분명히 하지 않았다는 평이다. 설사 고조선이 이 요소로 생겨났다고 하더라도 시기를 서기전4세기로 잡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더구나 단일체인 고조선이 아니라 촌락수준의 작은 연맹체 국가라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청동기 외래기원설을 계속 유지했다. 청동기로 대표되는 금속선진문물을 받아 우리역사가 발전했다는 논리를 펼쳤다. 요서의 “하가점상층 청동기 문화가 팽창하고 여기에 중원지역 청동기문화의 영향이 발해만 유역, 십이대영자 문화에 영향을 주었다”고 분명히 했다. 이어 요동지역과 ‘한반도’로 전래되었다고 강조했다.

요서지역 하가점상층문화 하나만으로는 만족을 못하는지 한참 멀리 떨어진 중원 청동기 문화까지 끌어들여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기원전 4세기를 전후해서 고조선과 그 주변 집단은 영역화가 되는 변화를 거친다”고 못을 박았다. 강 교수의 이같은 주장에 따르면 고조선이 서기전4세기 이전에는 영역 즉, 영토, 땅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는 이 상태를 ‘네트워크’라는 애매모호한 말로 알 수 없는 주장을 펼쳤다. 나라라는 형체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다가 서기전 4세기나 되어야 비로소 영토를 갖게 되었다고 했다. 그것도 고조선이라는 단일체가 존재한 것이 아니라 촌락들(소국)이 여러개 모인 연맹체라고 했다. 소위 '영역화'된 작은 촌락 연맹체라는 것이다.

그는 또 우리나라 청동기가 요서지역이나 요동지역 것 보다 고도로 발달하고 정교한 것도 깎아 내렸다. 현재 숭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것으로 보이는 잔무늬거울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 바와같이 국외 어떤 같은 형태의 청동거울 보다 탁월한 기술력을 자랑한다. 이외에 나팔형 청동기 등 수많은 청동기들은 요서, 요동 청동기와는 상대가 안될 정도록 고도로 진화된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도 강 교수는 이런 청동기술이 중국 것 영향받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이것을 ‘현지화’라는 기묘한 용어로 표현했다. 청동기술이 중국에서 들어왔고 나중에 우리가 우리 독자기술로 더 정교하게 발전시켰다는 논리다. 이러한 주장은 식민사학이라고 비판받는 강단주류역사학계의 상투적인 주장이다. 중국 등 선진문물을 받아서 시작했고 나중에 우리가 탁월해서 원산지 것 보다 더 잘 만들게 되었다는 식이다.

▲ 강 교수가 말하는 소위 '영역화'의 실체. 강 교수가 말하는 고조선은 우리가 상상하는 나라가 아니다. 수 많은 '영역화'된 작은 나라 중 하나로 드러난다. 위 지도에 고조선 글자가 나오지만 어디가 고조선인지 분간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시기 중원대륙에는 강력한 제국이 존재하고 있었다. 강 교수는 이런 상황을 전제하고 이날 발표했다. 그래서 강 교수가 속한 한국고고학회나 우리역사학을 책임진다는 한국고대사학회와 같은 집단 앞에 서기만 하면 우리 역사가 한없이 초라해진다는 비판목소리가 높다.

이날 강 교수는 청동기술, 청동무기, 청동제기를 기준으로 나라인지 여부를 판단했다. 이것이 발표 처음에 야심차게 내세운 이른바 ‘세계문명사의 보편연구’ 방법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기준을 들이 댔으면서도 고조선이 나라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강 교수는 이날 문헌사학이 고조선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니 자신이 고고학으로 바로 밝히겠다고 야심차게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고조선이 무엇을 말하는지 제시하지 않았다. 단군조선을 말하는지 기자조선인지 위만조선인지 밝히지 않았다. 또 나라인지 아니면 문화공동체인지 분명히 하지 않았다. 다만 청동기가 중국에서 어떻게 우리나라로 확산해 왔는지 밝히는 선에서 머물렀다. 또 ‘네트워크’니 ‘영역화’니 하는 알아들을 수 없는 용어를 쏟아내는 데 그쳤다.

설사 고조선의 실체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영역화'라는 용어를 쓰며 서기전4세기경이라고 못박았다. 고조선이 서기전 4세기에 생겼다는 말로 해석된다. 이는 강 교수가 그렇게 비판했던 문헌사학 보다 훨씬 더 개악된 주장이라는 지적이다. 문헌사학은 비록 고조선을 안개에 가려진 정체불명의 정치체로 얘기하지만 서기전 8세기경에는 생겨났다고 한다.

강 교수는 서기전 1천년을 얘기하며 중국 주나라를 언급해서 중국은 서기전 1천년경에 국가가 있었다는 것을 전제했다. 그는 특히 중국 <관자>사료의 제나라 환공이 ‘북벌’하는 내용을 언급하며 국가를 인정했다. 또 이 책이 서기전 7세기 것이라며 이곳에 나오는 조선의 실체를 긍정했다. 그런데도 이날 문헌사학에 날을 세우며 고고학으로 고조선을 실체를 밝힌다고 해놓고서는 오히려 더 정체불명의 고조선을 만들어 냈다.

한편 이날 강 교수는 춘천 중도 고고유적도 언급했다.  중도 유적이 어떻게 파괴되가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문제가 불거 진후 한국고고학회가 유적 보존과 파괴 저지를 위해 어떠한 성명서나 행동에 나섰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애국 시민들만이 단체를 만들어 파괴저지에 나서고 있을 뿐이다. 중도 유적은 고조선 실체를 밝힐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알려져 있다(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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