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혁명이라고 하나 혁명은 생각, 습관, 문화 등 근본변화를 말한다

 

경희대 임마누엘 교수 우리사회 명암明暗 날카롭게 지적하다

‘한국 고도성장으로 선진국 문턱에 와 있다, 과학기술 덕분이다

이것이 서기1960~70년대 갑자기 생겨난 것이고 박정희 덕택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역사상 한국의 오랜 과학기술저력 덕분이다’

'한국 교육제도는 붕괴되었고, 언론도 기능을 상실했다

또 사대주의근성이 쩔어 있어 스스로 사고를 하지 못한다

이는 위대한 과거 한국과의 단절을 뜻하는데, 일제 식민지 시대가 이렇게 만들었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 선조들은 과거 서양 보다 우수한 문화와 제도를 구가하고 살았다'

 

▲ 서기2018.01.09. 서울시민청 태평홀에서 경희대 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 교수가 '우리가 모르는 더 큰 대한민국'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임마누엘 교수는 이날 한국인은 독립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는 점도 따갑게 지적했다. 그 원인 중의 하나를 사대주의 문화에서 찾았다.

우리사회를 제3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견해들이 있어왔다. 주로 미국 쪽 외국인 학자나, 경제가들이다. 그들은 주로 대한민국의 고도성장과 세계10위권 경제력에 놀라며 한국인의 저력을 높이 평가한다. 그래서인지 이런 이야기를 담은 책들은 큰 호응을 얻어 많이 팔린다.

그러나 이러한 면을 인정하면서도 어두운 한국사회 현실을 따갑게 지적하는 외국인 학자도 있다. 그 대표인사가 경희대학 아시아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한국명 이만열)교수다. 그는 강연과 책 그리고 누리망을 통해서 한국의 민낯을 드러내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서기2018.01.09. 서울시민청 태평홀에서 국학원 주최 국민강좌에서 이 교수가 강사로 나섰다. 이날도 그는 한국사회의 실상을 부드럽지만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극복할 대안까지 제시해서 눈길을 끌었다.

먼저 한국실정을 질타했다. 현재 한국사회는 전례없는 위기를 직면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이어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데 현재나 미래 보다는 과거 역사 속에서 찾는 것이 낫다고 지적했다. 과거 역사를 뒤져 보면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될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 직면하고 있는 위기를 극복할 방법이 보일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함께 고민하고 힘을 합쳐서 풀어나가자고 역설했다.

그는 현재 우리사회 위기를 개구리로 비유했다. 개구리는 두가지 모습을 상정할 수 있다면서 먼저 온탕 속의 개구리를 예로 들었다. 따듯한 물 속에 있기 때문에 만족하고 다른 곳에 신경을 안쓴다. 이는 극단의 이기심을 나타낸다. 마찬가지로 한국인은 자기 일에만 코박고 살지 공동체 차원의 생각을 도무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이다. 어려운 이웃도 모른 채 하고, 우리 사회 어디를 가도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아는데 모른 척한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로 한국인을 우물안의 개구리로 비유했다. 기후변화, 문화, 정치 환경이 무섭게 변화하고 있는데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이 교수는 특히 기후변화를 강조했다. 향후 15년내에 기후변화로 미국 등 주요 곡물수출 국가가 수출을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반드시 들이닥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러한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식량 자립도가 20%도 안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경각심을 갖고 대비하라는 것이다.

이어 그는 우리가 경제 발전을 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서기1955년 우리나라는 아프리카 소말리아 생활수준 및 경제규모와 비슷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사이에 발전해서 지금은 선진국 문턱에 와 있다고 했다. 이것을 사람들은 서기1960~79년대 고도경제성장으로 이룬 것이라고 한다도 지적했다. 그는 특히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노력으로 갑자기 가능한 것처럼 얘기된다고 못 마땅해 했다. 이는 ‘한강의 기적’, ‘성장신화’로 요약되는데 이런 표현에 거부감을 느꼈다고 털어 놨다.

그는 한국 역사와 고전을 연구하다 보니까, 이런 생각들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런 고속성장과 발전은 우리민족의 우수한 저력에서 나왔고 이는 수백 년전, 천수백년을 이어온 교육수준과 행정제도가 뒷받침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했다. 그는 이미 고려시대, 소중화 조선시대에 이런 역량이 다 갖추어져 있었다고 했다. 또 신라나 백제 유물과 유적을 보면 이 때 이미 한국인은 과학기술을 고도로 발전시키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동안 대한민국의 성장이 몇십 년동안 노력해서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처럼 오도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 송나라의 주자학을 높게 평가했다. 이때 과학기술의 토대가 성립했고 이 이론이 나중에 서양에 넘어가서 문예혁명과 과학발전을 일으키고 결국 서양이 산업화에 성공하게 되었다고 했다. 소중화 조선도 마찬가지로 이 주자학에 입각해서 과학기술이 발전했고 세종 때에 절정을 이루었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런 문화가 일제강점 수십 년을 거치면서 단절되는 운명을 맞이했다고 했다. 그는 특히 교육 단절을 꼽았다. 그래서 이후 경제발전도 단기간에 박정희와 같은 지도자들의 영도력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 민주화도 다르게 봤다. 민주화를 말할 때 우리는 서기1980년대에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이 기간에 당시 민주투사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서양식 민주제도가 들어와서 서양 영향 하에서 민주화 된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이 교수는 이것도 우리 역사에서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고 주장했다. 서기1960년대, 일제강점기, 소중화 조선시대로 까지 끌고 올라갔다.

세종대왕이나 정조 그리고 다산 정약용 같은 이들의 사상을 보면 이미 이때 민주주의 틀이 잡혀 있었다고 했다. 피지배 농민들을 먼저 생각하고 왕들이 검소하고 민과 소통하는 모범을 보인 것을 예로 들었다. 이런 사상이 서양에 전해졌고 프랑스 혁명으로까지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현재 우리나라 민주화와 민주주의는 우리 오래된 전통 속에서 나온 것이지, 결코 서양 것을 들여온 것이 아니다.

▲ 이만열(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 경희대 교수가 열띤 강연을 하고 있다. 그는 한국말이 다소 서툴었으나, 핵심 내용을 정확하게 짚었다는 평이다.

이어 그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점을 질타해 나갔다. 먼저 우리는 자주, 독립된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이 점은 그가 누리망에서 꾸준히 지적한 것이기도 하다. 이 교수가 보기에 도저히 이해 불가한 현상이 한국에서 일어난다. 다른 나라에 비해 국력과 경제력 등 어떤 것도 뒤지지 않는데 미국 앞에만 서면 말 잘 듣는 순한 양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무조건 복종한다고 한다. 이 때는 합리적 이성적 사고가 다 무너진다고 한다. 미국인인 자신이 보기에도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라고 했다.

그는 이날 한 사례를 들었다. 그는 화면에 사진 한 장을 띄웠다. 사진에는 한국인과 미국인이 나란히 서있는 가운데 미국인은 열심히 말하고 한국인은 공손한 표정으로 듣고 있다.

미국인은 마이크 그린이라는 부시정권 때 동아시아 담당 보좌관이고 한국인은 외교부 고위 관리다. 이 교수에 의하면 마이크는 한국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인물이다. 그런데 한국인 외교관리는 관련분야 전문가이고 북한에 대해서도 전문지식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미국인 마이크의 말을 공손히 듣기만 하고 자기 의견을 말하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사대근성에서 찾았다.

그러면서 이제는 좀 당당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의 예를 들어 자주성을 강조했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나라는 과거 자기 나라 문화가 최고라고 가르쳐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것을 식민지에 전파해서 자기나라에 봉사하는 식민지 지식인을 키워 식민통치에 써먹었다고 했다. 지금도 이런 현상은 변함이 없다고 한다. 자기 문화가 세계최고라고 홍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자국민의 자존감을 높이는 교육을 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와 관련 일본의 대외 국가전략을 소개했다. 마이크는 사실 친일파라고 잘라 말했다. 일본은 일본이익에 복무할 외국인 인재를 국가차원에서 키운다고 했다. 마이크는 일본에서 전적으로 키운 인물인데 일본에서 장학금을 받고 학교 다녔고 일본 국회의원 보좌관을 5년 동안하며 무려 30여년을 일본에서 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이와 관련 한국에 조언을 해 주고 싶어도 이미 늦었다고 실토했다. 일본처럼 한국이 친한파 외국인을 양성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안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또 한국은 자기 전통문화에 대해서 당당하지 못하다고 분석했다. 한번은 해외에 한국을 알리는 국책단체에 제안하는 기회가 있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우리역사를 빛낸 인물들의 사상과 문화를 해외에 알리는 것이 우리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요즘 유행하는 한류 가수들 수준의 것으로 결정되어 현재 이렇게 진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교육붕괴현상도 꼬집었다. 학교가 윤리도덕성을 갖춘 인간을 배출해야 하는데 이 기능이 완전히 상실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 선비들이 추구한 교육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이와 관련 현재 대학 교수들 수준을 비판했다. 사회과학논문지를 예로 들었다. 이것은 일반국민에게 아무 도움도 안 된다고 일갈했다. 조회수도 30회 정도라고 한다. 그나마 10여 조회수는 논문심사 위원들이 본 것이라고 조롱했다.

그런데 이런 백해무익한 것에 정부가 학문연구기금이라는 명목으로 수 많은 국민세금을 퍼붓고 있다고 분개했다. 그리고 이런 논문을 기준으로 교수로 채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민생활에 뛰어 들어 세상물정을 아는 사람이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쳐야 정상인데, 아무도 관심 없고 도움이 되지 않는 지식을 습득한 자를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 채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교육은 자격증, 면허증 주는 것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우리 교육에는 '왜'라는 질문이 없다고 분개했다. 서양은 교육 기본이 '왜'라는 질문이라고 밝혔다. '왜'는 자아정체감과 인간완성으로 나가는 교육 출발점인데 이것이 한국교육 더 나아가 한국사회 전반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꾸짖었다. 왜 하는 지도 모르고 암기하고, '왜?'가 없는 충동소비, 불필요한 낭비, '왜?'가 없는 정치문화, 일회용 문화가 횡행하고 있다고 따갑게 지적했다. 또 교육에는 조상얘기가 없다보니 아이들이 정체성이 없어 속이 비어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다 보니 외모지상주의 문화가 지배하고 있다고 비꼬았다. 이런 점에서 성형 시술로 도마위에 오른 박근혜 전 대통령도 이런 문화가 낳은 부산물이라고 주장했다.    

또 한국 언론의 파탄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신문방송이라는 언론을 통해서는 세상 돌아가는 것을 도대체 파악할 수 없다고 했다. 언론이 객 입장에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기본 사명인데, 이것을 저버리고 자기가 주인 되어 자기 생각이 잔뜩 들어간 소설수준의 보도를 남발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어떻게 정확한 정보를 얻겠냐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신문방송을 아예 안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바른 언론상으로 소중화 조선왕조실록 등 기록문화를 제시했다. 이 기록들은 정확한 기록을 생명으로 삼았다고 일갈했다. 여러 번 과정을 거쳐 거른 다음 사실에 충실해 기록을 남겼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 신문은 무엇이 진짜인지 헷갈린다고 비판했다.

▲ 이날 강연에는 서울시민청 지하2층 태평홀 대강당을 거의 가득 채울 만큼 시민들이 몰려와 큰 관심을 보였다.

또 지난 촛불봉기도 언급했다. 사람들은 촛불항쟁을 혁명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런지 의문스럽다고 말문을 열었다. 혁명의 진짜의미를 먼저 풀었다. 혁명은 습관, 생각, 문화를 근본에서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실패한 혁명으로 그는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을 예로 들었다. 앞서 든 혁명의 요소들이 결여되어 겉모습만 바꾸려고 했다고 지적했다. 속은 그대로 놔두고 겉 정치 제도 등 만 바꾸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실패했다고 일갈했다.

마찬가지로 촛불혁명이 정말 혁명이 되려면 그때 주장된 것을 토대로 우리 자신의 습관, 생각, 잘못된 문화를 뜯어 고쳐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인은 특출난 정치인이 나와서 세상을 바꾸어 줄 것을 기대하는데 스스로 자신을 혁명하지 않 는한 그런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구세주 같은 정치인을 기다리는데 꿈 깨라는 것이다. 한국 정치에 구세주 같은 것은 오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한국 사회가 이런 문화로 오랬동안 젖어있어 끊임없이 이른바 영도자,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한국인의 노예적 의타심리를 꼬집은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주인되어 생각하는 시민이 되라는 주문으로 읽혀진다. 어떤 정치인을 추종하는 패거리로 나누어 이리 저리 쏠려 다니지 말라는 지적이다. 각자 정치 주체가 되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러한 한국사회를 정상 사회로 돌리는 대안도 제시했다. 그는 선비정신에서 찾으려고 했다. 선비들이 추구한 가치를 회복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우선 공동체를 중시하고 책임감을 심어주고 약한 자를 돌아보며 자기가 사는 공동체 정보를 알려주고 관심부터 갖는 것에서 출발하자고 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소장으로 있는 연구소에서 꾸준히 사회변혁의 구체 실천방향을 제시하겠으니 함께 힘을 모으자고 역설했다.

한편 이 교수는 이날 자신의 이력을 강연 초반에 소개했다. 서기1964년 생임에도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에서 많은 외국인 학생들과 함께 생활한 경험 때문이었는지 동아시아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19세에 중국어를 시작했고 이 영향으로 예일대학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당시 예일대학에는 학국학이나 한국어과가 없었다면서 아쉽다는 여운을 남겼다. 그는 다시 대만의 대학에서 공부한 뒤 일본 도쿄대학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하고 하버드 대학에서 고전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교수 생활을 미국 중서부 일리노이대에서 시작했는데, 서기1998년부터 고전문학을 강의했다고 밝혔다. 이 때 여러분야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현대 사회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이외에 주미 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에서는자문역할을 했다고 했다. 서울대에서도 1년동안 있었는데 이 때는 우리 고전소설 구운몽 등 서기17~18세기 고전문학을 연구했다고 소개했다. 또 연암박지원 소설도 서울대 있으면서 번역했다고 한다. 한국어는 31세 때 배우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이러한 인연으로 한국에 산지 11년이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한편 이날 강연이 끝나고 방청석 시민들의 질문을 받았다. 외국인 학자가 한국의 명암을 얘기하는 것이 신기해 하는 것 같았다. 호기심도 많았다. 한 시민은 이 교수의 강연을 절망으로 받아들였는지 “한국이 정말 가망이 없는 아닌가, 솔직히 말해달라”는 질문에서 이같은 분위기가 엿보였다. 또 한 시민은 “한국에는 이 교수가 소개한 조선시대 선비정신 외에, 더 깊고 오래된 사상과 철학이 있다. 이런 것을 혹시 아는가?”라며 우리 고유사상도 공부해 주었으면 하는 소망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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