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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망한 조선총독부, 어떻게 부활했나일제는 조선총독부에 식민지수탈 인력양성기관, 경성제국대학을 만들었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7.12.27 08:26

 

일제는 경성제국대학을 설치해 교원 양성해 역사를 지배하고

인문사회과학체계를 세웠다

지금 우리가 배우고 있는 인문사회과학 틀은 이때 만들어졌다

또 전국에 걸쳐 농어촌을 조사해 수탈자료를 만들고,

일인들을 대거 조선에 이주시켜 농촌을 장악해 나갔다

이 틀을 국립서울대학이 이어 받았다

 

▲ 대일항쟁기 현재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설치되었던 경성제국대학(서울대학 전신). 일제는 이 대학 총장에 조선총독부 2인자, 정무총감을 앉힘으로써 조선총독부 분신으로 삼았다. 식민통치에 필요한 각종 정책과 인력을 제공 받았다. 뒤로 보이는 언덕은 현재 낙산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일제의 조선강제점령은 1회성 단순한 침략이 아니었다. 살육과 약탈 후 철수하는 전쟁침략이 아니었다. 나라를 멸망시켜 완전히 집어삼켰다. 서기1868.명치유신 이후 한국을 정벌한다는 정한론征韓論에서 출발했지만 이 땅에서 조선민족을 지우고 일본민족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일제침략은 여타 서양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일제식민통치 이론의 하나인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과 일본은 본래 한 조상에서 나왔으니 일제가 조선을 흡수하는 것은 역사를 보더라도 순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틀 속에서 조선에 총독부라는 통치기구를 설치하고 완전한 흡수통합작업을 진행시켜나갔다. 조선민족 말살 및 일본민족화의 총론이 일선동조론이라면, 내선일체는 이 총론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각론이라고 할 수 있다. 내선일체內鮮一體에서 ‘내’는 내지로써 일본을 말한다. 그리고 ‘선’은 조선인 우리나라를 말한다. 곧 일본과 조선은 한 몸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서기1940. 경부터는 이제까지 형식에 그쳤던 조선인에 대한 대우를 일본인과 똑 같게 하자는 주장들이 터져 나왔다. 일본과 조선은 둘이 아닌 한 몸인데 어떻게 차별대우를 계속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특히 교육방면에서 내지 곧 일본과 똑 같이 하자고 했다. 서기1940.08.에 간행된 당시 주류 월간지 <모던일본>을 보면 이런 정책변화를 읽을 수 있다. 이 잡지는 초반부에 당시 조선총독, 미나미지로(南次郎みなみじろう)와 대담한 기사를 싣고 있다. 이 대담에서 <모던일본>기자, ‘시오바라’가 조선총독부 교육정책에 관한 질문을 한다. 미나미(서기1936~1942.7대총독)는 러일전쟁과 중일전쟁에 참여한 군인으로서 일본제국주의가 막바지를 향해 치달을 때 조선총독으로 부임해 창씨개명을 강제하고 식민지 수탈과 탄압을 가장 극열하게 펼쳤다는 비난을 받는 인물이다.

이 때 미나미는 이렇게 답한다. “...아직 과도기이기 때문에 여러실상을 보면 내지 교육과 형태상 다른 점은 있다. 그러나 그런 차별도 순차적으로 없애고 언젠가는 반드시 내지와 똑같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결국 진정한 황국신민이 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면서 미나미는 소화17년(서기1942.)에는 취학률이 60%에 이를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는 세계각국을 비교해 볼 때 사상유례없는 교육률이라며 자랑한다. 당시 일제는 ‘천황’이 다스리는 나라였다. 따라서 ‘천황’이 다스리는 나라의 구성원은 황국신민이 되어야 한다. 명치유신이후 일본국민은 천황의 황국신민이 되었다. 이제 조선도 똑 같이 황국신민으로 만들어 일본국민과 차별을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 현재 대학로 동숭동에 있는 경성제국대학교 본관건물. 현재 이곳에는 서울대학 병원이 들어서 있다. 경성제국대학 구 건물들은 치과대학이나 기타 기념관으로 쓰이고 있다. 문제는 이 건물이 일본 신사입구 구조와 닮아 있다는 점이다. 입구를 보면 아치형태를 띠고 있으나 안으로 들어가면서 몇개 주름져 있다. 이는 일본 신사입구와 같다는 지적을 받는다.

실제로 미나미가 재임하던 서기1938.에 교육령을 개정해서 일부분에서는 일본과 차별을 두지 않고 똑같이 실시했다고 밝히고 있다. <모던일본>은 미나미 총독 대담 뒤편에 조선총독부 학무국장, 시오바라 도키사부로(鹽原時三郞)의 글을 싣고 있다. ‘조선의 황국신민화운동’이라는 제목 하에 “그 일부로서 지금은 내지인이나 반도인 모두 같은 소학교나 중학교, 고등여학교에서 완전히 같은 목적, 같은 내용의 교육을 받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이 잡지는 미나미 총독이 조선인을 완전한 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창씨개명도 추진하고 있다고 전한다. 일본식 성과 이름으로 바꿔 일본인과 차이가 없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던일본>은 또 당시 일본지도층 인사들을 모아 좌담회를 마련해서 이들의 글을 심도 있게 싣고 있다. 좌담회에 참여한 인사들의 직함을 보면 일본지배층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인물들임을 알 수 있다. 중앙협화회 이사 귀족원위원, 중앙조선협회 이사 귀족원위원, 척식협회이사 귀족원위원, 조선고주파중공업 사장 귀족원위원, 전 조선은행 이사, 미쓰비시지소 주식회사 대표이사, 중앙조선협회 이사, 척무성 괸리국장 등이다.

이들도 역시 조선인을 일본인과 똑 같이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육칙어 취지에 따라 내지에서 내지인을 교육하는 것과 동일한 방침으로 교육해야 한다. 다만 조선의 정세와 민도, 경제증세가 주요함으로 이에 상응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라고 피력하고 있다. 일본은 1등 국민, 식민지 조선인은 2등 국민이라는 그동안의 차별정책을 아예 없애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조선강점 처음에는 ‘융화’ 정책수준에서 식민통치를 했다. 그런데 이제 국내외 정세가 크게 변하여 더 이상 이런 정책으로는 식민지 통치를 할 수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결정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나미는 일제가 만주도 일본영토로 편입하자 식민지 조선인 차별정책을 유지해서는 만주까지 원활하게 지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조선인을 위해서 차별을 없애겠다는 것이 아니라 조선을 대륙침략의 병참기지, 교두보, 인력동원기지로 활용하고자 부득불 나온 정책이었다. 대륙으로 팽창하려면 조선인을 일본인과 동등한 황국신민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대만의 대북대학교 전경이다. 이 대학도 일제대만총독부가 만들었다. 건물 기본 틀이 경성제국대학 것과 닮아 있다. 일제는 대만에도 대학을 설치해 식민통치에 활용했다. 일제가 물러난 뒤에 대만대학으로 바뀌었다.

이런 조선총독부가 서기1945.08.15 일제가 패망함에 따라 함께 사라졌다. 그런데 이 사라진 조선총독부가 부활해서 사실상 식민통치를 이어가고 있다면 믿을까. 지나친 비약이라고 할 수 있으나 조선총독부는 다른 옷을 입고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경성제국대학교의 후신 서울대학교를 통해서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서울대학이 배출한 인사들이 대한민국 지배세력으로 군림하고 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서울대학교 전신, 경성제국대학교는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직이다. 더구나 경성제국대학 총장은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이 맡았다. 정무총감은 조선총독부 2인자다. 조선총독부 분신이었다는 소리다.

이 대학은 일제 식민통치를 학문으로 뒷받침하고 식민통치 핵심세력을 양성해 냈다. 지금 이 나라 학문은 직접 또는 간접으로 서울대학의 전신, 경성제국대학에서 구축해 놓은 학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 중 역사학은 거의 절대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흔히 역사학만 조선총독부 사관을 추종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법학, 경제학, 철학, 국문학 등 기타 인문사회과학도 조선총독부 관점에 구속되어 있다. 결국 조선총독부 껍데기는 사라졌으나 경성제국대학의 후신 서울대학을 통해서 존속하고 있다. 해방 후 경성제국대학에서 구축한 학문줄기를 그대로 서울대학이 이어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고발하는 학술대회가 있어 눈길끈다.

지난 서기2017.09.22.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소장, 박찬승 교수)가 주최한 학술대회에서 이 같은 사정을 엿볼 수 있는 주장들이 나왔다. 이날 학술대회는 ‘경성제국대학과 동양학 연구’를 주제로 총3부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이 중 2부와 3부에서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교육정책을 엿볼 수 있는 사실들이 쏟아져 나왔다. 조선총독부는 서기1924.에 서울에 경성제국대학을 설치했다. 현재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다. 지금도 당시 경성제국대학 건물일부가 남아있는데 서울대학 병원건물이나 기념관으로 쓰이고 있다. 이 대학을 설립하게 된 직접계기는 당시 조선인들이 세운 사립학교들이 조선인의 독립심을 심어주는 것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일제는 이 대학에 역사학, 법학, 경제학, 국문학, 철학, 사회학 등 분야를 설치하고 일제 식민지 관학자들을 중심으로 교수진을 꾸렸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조선경제, 조선사회, 문학, 철학분야를 다루었다.

▲한경대 조정우 박사가 서기2017.09.22. 한양대학교에서 스키 에이타로의 조선사회조사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먼저 경제학 분야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정준영 박사가 맡았다. 정 박사는 시카타히로시(四方博)가 경성제국대학 재직 시 활동내용을 분석했다. 시카타는 기본으로 식민사관을 깔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정체성론자였다. 소중화조선이 낙후되고 정체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한국사 전체에 뒤집어 씌웠다. 그러면서 이런 관점을 조선 경제상황에도 적용시켰다. 시카타는 “조선사회가 자본주의로 성장할 만한 자율과 내재조건을 갖추지 못했고 외국 자본과 인력 유입이 있어도 근대자본주의로 발전할 자본과 인력이 없었다.” 고 보았다. 또 이후 일제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 경제발전이 있었는데 이것도 조선인이 한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 이식된 일본인이 주축이되어 이룩한 것이라고 보았다. 일본 등 외국 자본과 기술이 들어와야 조선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타율성론에서 한발 더 나갔다.

여기서 서울대 경제학과 몇몇 교수들의 주장이 시카타의 주장과 닮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위 뉴라이트 경제학자로 불리는 서울대 이 아무개, 안 아무개 교수들의 식민지근대화론이다. 우리가 경제 발전하여 이렇게 잘먹고 잘사는 것이 우리 스스로 역량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일제식민지배시기 일본이 도와줘서 된 것이라는 논리를 펼친다. 전 고려대학교 김현구 교수도 마찬가지다. 그는 서기2005. 교육방송에 출연해 박정희 정권 때 박정희가 일본과 수교를 해서 일본자본을 가져와 경제발전을 시켰다는 논리를 펼쳤다. 경제개발 초기에 일본자본이 들어와 주요기간사업을 깔아 주었다고 선전한 바 있다. 모두 경성제국대학 시카타 교수가 한 주장과 근본에서 같다.

▲ 허영란 울산대 박사가 조정우 박사와 정준영 서울대 박사의 부제발표에 토론자로 나서 질문을 하고 있다.

서기1905. 일제는 우리 외교권을 강탈하고서는 ‘을사보호조약’이라고 이름 지었다. 보호해 주겠다는 것이다. 이 말 속에서도 조선은 스스로 지킬 힘과 조건이 안되니 일본이 점령해서 보호해 주겠다는 음모가 들어가 있다. 스스로 발전할 수 없고 일본과 같은 세력이 들어와 자극을 주어야 발전할 수 있다는 정체성론, 타율성론이라는 식민주의 사관이다. 이 나라 역사학이나 경제학이나 모두 조선총독부가 만들어준 학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이날 장신 한국교원대 박사는 ‘경성제국대학 문학과의 유산’으로 발표에 나섰다. 장 박사는 발표에 들어가면서 “해방 이후 경성제국대학이 한국사회에 미친 학문적 사회적 영향력을 밝히는데 있다.” 하며 목적을 분명히 드러냈다. 장 박사가 밝힌 문학 분야를 보면 이 학과 출신들이 어떻게 식민지배 인력으로 동원되었는지 잘 들어난다.

경성제대 문학부에 입학한 학생비율을 보자. 서기1926.부터 서기1943. 까지 입학생을 보면 조선인은 95명인데 반해 일본인은 183명이다. 2배이상 일본인이 많다. 졸업 후 진로를 보면 조선인 학생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직업이 없다. 반면에 일본인 학생은 거의 조선총독부를 비롯하여 전국의 중학교, 고보, 고녀, 고등여학교 등 학교에 교원으로 진출한다. 조윤제, 이광수, 이희승, 이효석 등 학교 다닐 때 익히 들어 본 인물들이 모두 경성제대 문학부 출신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경성제대 출신들이 해방 후 한국 인문학 분야도 장악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이날 허지향 리쓰메이칸대 교수는 일인 학자가 경성제대에서 철학분야를 담당한 것을 주제로 발표했다. 서양철학 특히 독일철학을 담당한 아베요시시게(安倍能成)이다. 허 교수는 이에 앞서 해방 후 일제가 갑자기 물러가는 바람에 생긴 학문공백상황을 전했다. 영문학 분야에서 터져 나온 충격 상황을 예로 들었다. 일인들이 조선강점기에 경성제국대학을 통해서 영어단어를 일본어로 번역해서 가르쳤다고 했다. 영어사전도 마찬가지다. 영어사전이 모두 일본말로 번역된 것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일본한자로 번역된 영어사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해방 후 영어 단어를 우리말로 번역해서 쓰려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고 영한사전을 만들려면 수십 년이 걸려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급한데로 일인학자가 만들언 놓고간 영일사전을 번역해서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이것이 굳어져 현재 영한사전체계가 나왔다는 것이다. 대표사례가 ‘school’을 ‘학교’라고 번역한 것이다. 너무나 익숙한 ‘학교’라는 말이 사실은 일본말이라는 얘기다. 만약에 우리가 일본지배를 받지 않고 우리 식으로 번역했다면 ‘school’은 전혀 다른 말이 되었을 수도 있다. 이런 사례는 헤아릴 수 조차 없이 많다. 이는 영문학뿐만 아니라 언어생활에서도 일본지배를 받고 있음을 뜻 한다.

이런 현상은 법학에서 더욱 심하다. 법률용어가 모두 일본말이라고 할 만큼 일본종속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말이기 때문에 법학이 접근하기 어렵다. 일단 용어가 자체가 생소해서 무슨 말인지 별도로 법률용어사전을 찾아봐야 할 정도다. 채권, 물권, 신의성실, 유치권, 질권 등 기본용어조차도 선뜻 알아들을 수 없다. 모두 일본말이다. ‘법원’도 일본말이다. 그래서 판결문도 이해하기 어렵다. 일제조선총독부에서 운영하던 법체계를 그대로 이어받아 말만 한글로 바꿔 놨기 때문이다.

이날 허 교수가 분석한 경성제대 아베요시시게의 철학 강의 행적을 보면 우리가 학교생활에서 배운 철학이 어디서 나왔는지 드러난다. 학교에서 윤리도덕 과목을 배우는데 서양철학이 등장한다. 칸트의 ‘실천이성비판’, 니이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테카르트 철학 등이다. 그런데 사실은 이런 철학이 경성제국대학에서 일본인 학자가 들여와 가르쳤다는 것이다.

▲미나미지로(南次郞), 제7대 조선총독이 패전이후 전범으로 분류 되어 재판을 받기 위해서 차에서 내리고 있다. 미국 헌병들이 그를 법정으로 끌고 가려고 대기하고 있다.

한편 이날 한경대 조정우 교수는 일제가 경성제국대학을 통해서 식민지 조선의 농어촌경제를 어떻게 구축해 놨는지 소개했다. 오늘날 알려진 수리조합, 부락, 염전 등이 모두 조선총독부 식민지 정책에서 나온 것임이 밝혀졌다. 조 교수에 의하면 일제는 조선총독부를 통해서 경성제국대학 교수와 학생에게 전국농촌을 조사하여 보고서를 작성하게 했다. 이를 통해서 전국 농촌상황을 파악하고 농촌정책을 펼쳤다.

특히 일본에서 일본인들을 대거 이주시켜 농촌을 장악하게 했다. 조선총독부가 자금을 지원하여 이들로 하여금 정착지와 토지를 사들이게 했다. 특히 쌀 생산이 많은 전라도 호남평야일대에 집중 이식했다. 그래서 일제는 일본에서 이주한 일인들로 만들어진 마을과 외부에서 이주해 와서 형성된 조선인 마을 그리고 원래 토착 마을로 편성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일본인은 기업형 농장경영으로 확대했는데 쌀 반출 대표항구인 군산지역에 터를 잡았다. 대표농업 기업이 불이흥업인데 주식회사 체제로 운영되었다. 거대한 기업이다 보니까 대규모 간척사업을 일으키기도 했다. 여기에 일본인에게 혜택을 주어 정착케 했다. 전시체제로 들어서면서 부터는 쌀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 전라도 평야지대를 집중 장악해 나간 것으로 보인다.

이날 2부, 3부 학술주제발표를 보면 조선총독부 식민지 통치에 경성제국대학이 두뇌역할을 했다. 일제는 식민지 조선을 일제 침략전쟁 전초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조선인을 일본인과 똑 같이 만들어야 했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 수많은 정책이 필요했고 경성제국대학에서 이론과 인력을 제공했다. 수행도구들이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경성제대에 분야별로 설치되었다. 이 것이 해방 후에도 청산되지 않고 전국대학 제일 꼭대기에 앉자 있는 서울대학이 그대로 이어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총독부가 패망해서 사라졌다고 하나, 실상은 옷만 다른 것으로 갈아입고 대한민국을 통치하고 있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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