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수사관, 쓰에마쯔야스카즈 해방 후에도 서울대에 똬리틀다

기사수정: 서기2017.12.21. 21:35

 

쓰에마쯔야스카즈는 우리역사 왜곡 화신이었다.

쓰다소키치 이래 일인학자 중에서 가장 치밀하게 억지와 거짓으로 우리역사 말살하다

전 고려대 교수 김현구씨, 이 쓰에마쯔 임나비정 역사관으로 고려대에서 가르치다

 

▲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아베신조 일본수상을 예방하고 있다. 이 장면은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주류들의 의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무의식 가운데 본능적으로 나온 행동일 것이다. 근본에는 일제가 심어놓은 식민주의 사대근성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소중화 조선 5백년 이래로 우리안에는 기회주의 사대근성이 자리잡았다는 지적이 많다. 소중화 조선시대에는 중국 명나라를, 일제침략기에는 일본을 사대했고 지금은 미국으로 바꼈다고 한다. 중화사대사관과 일제식민주의 사관을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총독부의 우리역사 왜곡, 날조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쓰에마쯔 야스카즈(末松保和 すえまつ やすかず)다. 이 인물은 조선총독부 식민주의 역사관을 전문으로 연구하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그런데 그가 최근 몇 년 사이에 관련 연구자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원인제공을 한 인물이 전 고려대 교수, 김현구씨다. 그는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라는 책을 섰다. 이 책을 본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 <우리안의 식민사관> 책에서 김현구씨를 일제식민사학자라고 비판했다. 이에 김현구씨가 이 소장을 출판물에 의한 허위사실유포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이 사건이 보도되면서부터 이 소장과 김현구씨 책 내용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 책에  쓰에마쯔 야스카즈(이하 쓰에마쯔)가 나오는데 덩달아 유명세를 탄 것이다.

현행 국사책이 조선총독부가 써준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수사관으로 활동한 쓰에마쯔의 사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 국사책을 보면 ‘고조선’이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는 이 고조선이 알송달송하다. 막연하다. 단군이 개국한 조선을 말하는 것인지, 중국인 기자가 와서 세웠다는 기자조선을 말하는 것인지, 한나라에서 조선으로 망명 온 위만이 세운 위만조선이라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런데 쓰에마쯔는 이 고조선이 기자조선이나 위만조선이라고 못 박는다. 결코 단군이 세운 조선, 단군조선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 국사책에 나오는 고조선은 이민족이 세운 기자나 위만 조선임을 암시한다. 국사책에는 한국고대사학회의 입김이 가장 강하게 들어가 있다. 이 학회는 본지에서 작년과 올해 이 단체가 이끈 시민강좌를 취재, 검증해 본 결과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대변하는 것으로 판명났다. 그래서 이 단체에서는 ‘단군’이라는 말을 기피할 정도다. 고대사 시민강좌를 열면서도 역사로써 단군을 말한 적이 없다.

위가야 성균관대 박사과정 수료, 안정준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 기경량 가천대학 강사, 이승호 동국대학교 사학과 강사, 신가영 연세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 장미애 가톨릭대학교 강사, 이정빈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권순홍 성균관대학교 박사과정 수료, 강진원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강사, 김헌주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연구원 등 한국고대사학회를 대변하는 젊은 학도들이 올해 2월에 '역사비평사' 지원을 받아 내놓은 책에도 단군기원을 부정하는 글을 실은 데서도 확인된다.

이와 같이 조선총독부 일제골수학자, 쓰메마쯔 눈으로 역사교육을 시키는 것이 이 나라의 엄연한 현주소다.

쓰에마쯔와 관련하여 그의 학문인생을 조명하는 주제발표가 있어 주목을 끈다. 지난 서기2017.09.22.에 한양대학교 인문과학대학 205호 강당에서 열렸다.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소장, 박찬승)가 개최한 ‘경성제국대학과 동양학 연구’학술발표에서 심도 있게 다루어졌다. 이날 연세대학교 신주백 박사는 앞서 발표한 한림대 정상우 박사와는 달리, 쓰에마쯔를 독립주제로 다루었다.

신 박사는 쓰에마쯔 활동을 전반적으로 다루었다. 그가 저술한 책을 분석하면서 일인 학자들 및 한국일부학자들의 평가를 소개했다. 그리고 신 박사 자신을 생각을 덧붙였다. 일인 학자들은 쓰에마쯔를 조선총독부에 복무한 식민사학자로 평가하지 않았다. 순수한 학문을 한 학자로 바라보았다.

이날 신 박사는 일인 학자들이 쓰에마쯔를 평가한 책이 <말송보화조선사저작집>이라면서 총6권으로 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신 박사에 의하면 이 책은 쓰에마쯔 후학들이 썼기 때문에 찬양일색으로 쓰여 있다. <임나흥망사>라는 책은 우리를 침략한 일본제국주의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이 책을 쓰에마쯔 후학들은 명저라고 칭송했는데 그 이유도 쓰에마쯔가 살아온 역사 자체에서 찾았다고 했다. 특히 쓰에마쯔가 고대에 우리나라 남부를 식민 지배했다는 이른바 ‘임나일본부설’관련해서도 쓰에마쯔가 ‘일본부’라는 식민통치기관을 발언한 적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쓰에마쯔는 임나일본부설을 명시하여 주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가 흔히 지적하듯이 일제식민사학자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일본부’라는 말 대신에 ‘왜신倭臣’이라고 주장했으니 그가 일제식민사학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후학들은 이런 점을 들어 쓰에마쯔를 순수 역사학을 한 학자로 보려고 했다고 분석했다. 이런 주장을 한 인물이 ‘하마다’라는 일인 학자라고 했다.

▲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가 지난 학술회의에서 발표한 자료를 모아 만든 책이다. 이 책에는 일제식민주의 역사학을 구축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소속 일제관학자들의 우리역사 날조, 왜곡의 진상이 적나라하게 실려있다.

그러나 신 박사는 쓰에마쯔가 왜신들이라고 했든, 기타 다른 말로 썼든 상관없이 그가 식민주의 역사학자가 안 되는 것은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 박사는 “그는 일본 제국주의 식민통치를 떠받치는 기관에서 학자간판을 내세우고 (일제식민통치를) 정당화하는 활돌을 했다”고 못박았다. 더구나 쓰에마쯔는 식민사관 추종자가 아니라 제조자라고 강조했다. 또 일제 패망 후 일제식민사관을 버리고 정상의 역사학으로 돌아간 일인 학자도 있음을 환기시켰다. '하따다' 라는 일인 학자는 자신이 쓴 <조선사>가 식민사관에 물들어 있다고 선언하고 스스로 출판을 끊은 사례를 들어 쓰에마쯔도 양심있는 학자라면 이렇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신 박사는 이어 한국의 경우 쓰에마쯔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소개했다. 먼저 전 고려대 고 최재석 교수의 비판을 들었다. 최 전 교수는 일인 식민사학자들을 본격적으로 비판했다는 점에서 국사광복사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이미 서기1980년대 초반부터 조선총독부에서 복무한 일제식민사학자들을 하나하나 각개 격파식으로 비판했다. 오늘날 일제식민사학의 실체를 체계를 갖추어 역사학 방법론으로 비판, 고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날 신 박사는 최 전 교수가 쓰에마쯔를 어떻게 비판했는지 그의 저서를 직접 인용했다. 최 전 교수가 “(쓰에마쯔가) 쓰다소키치 이래 일단의 일인 학자 중에서 가장 치밀하게, 가장 억지와 허위에 의해서 한국고대사를 왜곡, 말살하려는 사람”이라고 한 말을 끌어왔다. 또 “한국사 왜곡과 일본사 왜곡의 화신과 같은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라고 한 말도 소개했다. 고 최 재석 교수가 쓴 일제식민사학 비판 논문들을 보면 조선총독부 식민사학자들의 실체를 알 수 있다. 최 전 교수의 지적대로 억지와 거짓으로 점철되어 있어 도저히 학문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이런 주장을 정설 또는 통설이라고 한국고대사학회 같은 단체가 떠받들고 있고 각종 시민강좌라는 명목으로 대중에게 주입시키고 있다.

신 박사는 이날 최 전 교수와 정반대되는 한국인 학자의 주장도 소개했다. 장동익이라는 인물이 <말송보화교수의 고려시대사연구와 그 성과>라는 책 283쪽에서 한 발언이다. 장동익은 “ 패전(敗戰前)에 활약했던 일부 일본학자들이 한국인들의 타율성을 강조했다고 하는데 (쓰에마쯔의) 고려시대 논문에서는 이런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패전 전에도 쓰에마쯔가 한국사에 일방적으로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고 주장했다고 했다.

이 같은 장동익의 주장은 오늘날 강단주류사학계 관점과 다르지 않다. 쓰에마쯔는 일본 극우학자들의 견해를 제외하면 분명히 조선총독부 식민사학자다. 그런데 일반 역사학자라고 보는 시각이 현재 국내 강단주류사학계를 지배하고 있다. 이 같은 시각은 올 하반기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서 벌어진 한국고대사학회 주최 시민강좌에서 드러났다. 강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김창석 교수가 이 같은 시각을 갖고 있었다. 강연을 마치고 돌아가는 김창석 교수에게,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과 관련해서 강연에 나선 강사들이 일제식민사학자들이 하는 소리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데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다. 이에 김창석 교수는 당시 일제식민사학을 하지 않은 사학자들도 있었다면서 그들은 순수역사학자로 주장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들의 견해를 인용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 서기2017.09.22. 서울 한양대학교 인문관에서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주최로 열린 학술회의에서 신주백 연세대 박사가 발표를 하고 있다. 이날 신 박사는 일제식민사학자, 쓰에마쯔 야스카즈의 활동을 분석, 소개했다.

이날 발표에서 신 박사는 쓰에마쯔가 쓴 <조선사 길잡이>를 집중 분석해서 내놓았다. 쓰에마쯔는 이 책에서 우리 역사를 철저하게 일제식민주의 사관에 따라 서술해 놓고 있다. 우리역사 시작을 중국사로 놓았다. 고조선시대를 기자조선-위만조선으로 보고, 낙랑군시대-신라통일시대-고려시대-이조시대로 그려놓고 있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낙랑군시대를 특히 강조하고 있고 우리역사 초반에 한반도를 중국식민지 낙랑군으로 그려놓고 있다. 이 것을 하루에도 수백명 이상의 시민들이 사실로 알고 둘러보고 있다. 시민들은 대부분 부모가 데리고 온 어린 자녀나 학생들이다. 일본이 고대에 신라와 백제 등 남부지방을 ‘경영’했다는 쓰에마쯔 논리가 고스란히 반영된 지도를 버젓이 전시해 놓고 우리고대사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국사책도 예외가 아니다.

신 박사는 이어 쓰에마쯔가 이 책에서 우리민족이 사대성을 특징으로 가지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또 서기1931. 경의 시대상황을 고대사에도 그대로 녹여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상황을 담은 것이 이른바 ‘만선사관’이다. 처음에는 조선반도만 욕심내고 여기까지만 일본사로 편입시키려고 했는데 만주까지 먹게 되자 역사를 수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조선사 길잡이>에서 쓰에마쯔는 우리 민족의 자주성도 부정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쓰에마쯔는 다른 책에서 우리역사를 토착 선주민이 아니라, 금속문화를 가지고 온 중국인이 시작했다고 한다. 이는 중국 한나라 식민지, 낙랑군시대를 전후로 볼수 있다. 쓰에마쯔는 낙랑군 시대가 4백년간 계속되었고 고구려가 서기313. 낙랑군을 멸망시켰다고 한다. 이어 낙랑군이 멸망했음에도 바로 삼국시대로 접어들지 못했다. 이유는 남부지방에 일본이 지배하는 임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역사를 대변하고 있는 한국고대사학회의 주장과 거의 같다. 이 학회는 임나일본부라고 명시하지는 않지만 쓰에마쯔 주장대로 임나=가야로 보면서 당시 이 지역에 야마토왜 사신이 활약하고 있었다고 한다. 쓰에마쯔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

신 박사에 의하면 쓰에마쯔는 해방 후에 우리나라에 와서 여전히 활동했다. 어느 대학에 들어와 있다고 밝히지 않았지만 추적해 본 결과 서울대학교였음이 밝혀졌다. 서울대학교 전신이 식민지 지배 인력을 양산해 내는 경성제국대학이었다. 쓰에마쯔는 서기1973.에 2개월동안 머물렀고, 서기1981.에는 9개월간 연구년으로 해서 머물렀다고 한다. 서울대 모 교수의 회고록을 보면 한국 고고학의 태두로 불리는 고 김원룡 교수가 이 쓰에마쯔를 대동하고 나타나서 강의를 참관해도 되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 모 교수에 의하면 강의를 감시하겠다는 의도였다고 한다.

▲ 쓰에마쯔 야스카즈(末松 保和, 서기1904年8月10日 - 1992年4月)가 쓴 <임나흥망사>. 쓰에마쯔는 패전 후에도 <임나흥망사>라는 책을 써서 제국주의 식민사학을 고수했다. 오히려 이전의 다른 일제식민사학자들 보다 식민사관을 강화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또 그는 해방 후에도 서울대학교를 들락거리며 한국 식민사학자들을 지도했다는 소문이다. 그는 고대에 일본이 우리나라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임나영역을 경남 일대에서 전라도 심지어 충청도 까지 확장시켰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전 고려대학교 교수, 김현구씨는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에서 임나 강역을 쓰에마쯔 주장에 따라 정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한편 이날 쓰에마쯔가 일제 패망 후에도 얼마나 우리역사를 왜곡, 말살하는데 집착했는지 일단을 알 수 있는 사례도 소개되었다. 신 박사는 쓰에마쯔가 패망 직후인 서기1950. 중후반경에 ‘조선왕조실록’ 강독하는 모임을 운영했다고 한다. 토론회를 개최해서 새로운 후학들을 길러냈다는 것이다. 더구나 재일조선인들까지 연구자로 참여시켰다고 한다. 신 박사는 이를 통해서 쓰에마쯔가 얼마나 제국주의나 국수주의를 행동으로 실천했는지 일단을 알 수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하따다라는 일인 학자는 자신의 연구가 식민사관임을 깨닫고 책을 절판했는데 쓰에마쯔는 그렇지 않았다며 좋은 대조를 이룬다는 말로 발표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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