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에마스야스카즈, 제국일본의 한국침략을 대변하는 선전관에 지나지 않다.

기사수정: 서기2017.12.21. 21:39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식민주의사관 실체 파헤치다

일제 골수 식민사학자, 쓰에마스 야스카즈의 행각 드러나다

그는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및 경성제국대학에서 맹활약했다

그의 제자들이 해방 후 우리 역사학계와 고고학계를 장악했다

이마니시 류와 스에마스 야스카즈의 황국사관(2)

 

▲ 쓰에마쯔 야스카즈(末松 保和, 서기1904年8月10日 - 1992年4月)가 쓴 <임나흥망사>. 쓰에마쯔는 패전 후에도 <임나흥망사>라는 책을 써서 제국주의 식민사학을 고수했다. 오히려 이전의 다른 일제식민사학자들 보다 임나영역을 경남 일대에서 전라도 심지어 충청도 까지 확장시켰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런데 전 고려대학교 교수, 김현구씨는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에서 임나 강역을 쓰에마쯔 주장을 그대로 따랐다는 비판을 받는다.

일본이 우리를 침략한 역사 중에서 가장 뼛속 깊이 상처를 준 것은 무엇일까. 역사침략일 것이다. 이는 곧 일제식민주의 사관이다. 일제는 조선총독부를 중심으로 우리역사를 축소 왜곡하여 일본제국의 지방사로 만들어 놨다. 이것이 일제 역사침략의 골자다. 역사침략은 무형의 성격을 띠고 있어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8.15. 광복이후 일제잔재 청산을 부르짖고 있지만 청산하기가 가장 힘든 분야다. 일상에서 무심코 말하면서도 그것이 일제가 우리민족을 말살하고자 만든 식민사관인지 알지 못한다.

대표사례를 하나 보자. 삼국유사 고조 선기에 이른바 ‘단군신화’가 나온다. 이것을 당시 일연이 몽골 침략에 맞서 민족단합을 유도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한다. 이 말속에는 단군조선이 역사가 아니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일연 창작했다는 뜻이 들어가 있다. 일연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에 역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식민주의 사관에 따라 지금 우리역사학계를 장악하고 있는 강단주류사학은 단군을 역사로 보지 않는다. 신화라고 한다. 따라서 서기전2333년에 개국한 단군 조선도 믿지 않는다.

국사교과서에는 마지못해 써놓고 있지만 강단현장에 들어가 보면 신화라고 가르친다. 특히 역사학으로 직업을 삼고자 하는 후학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이런 인력이 전국 대학교와 박물관, 각종 연구소를 장악하고 국민들에게 주입시키고 있다. 특히 작년부터 한국고대사학회를 중심으로 박물관과 합작하여 ‘시민강좌’라는 것을 열어 선전하고 있다.

일제 조선총독부가 만들어준 이런 역사를 우리가 낸 세금으로 버젓이 가르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 세금으로 식민사학자들을 먹여 살리고 더 나아가 호의호식시켜 주고 있다.

이에 반발하여 소위 재야사학이라고 하는 민족사학계에서 이 같은 역사범죄행위를 꾸준히 지적하고 식민사학 타파 투쟁을 해오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과 정부의 역사의식 부재로 강단식민사학계의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전히 요지부동이며 오히려 외부의 공격에 내성이 생긴 상태다. 식민사관을 일제보다 더 정교하게 만들어 고착시키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가운데 제도권 안에서도 식민사학의 소굴로 불리는 한국고대사학회 같은 주류강단사학에 도전장을 내미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를 중심으로 바른 역사를 찾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대표사례로 꼽힌다.

이외에 다른 대학교에서도 식민주의사관 타파 학술회의를 꾸준히 전개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양대학교가 한 사례다.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를 중심으로 이러한 운동이 벌써 3년째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올해에도 지난 서기2017.09.22.에 한양대학교 인문과학대학 205호 강당에서 열렸다. 타원형의 계단식 중형 강당에서 관련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주제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특히 이날 이 학술회의를 개최한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장, 박찬승 교수에 의하면 외부에서 일본인 학자들까지 가세하고 있다고 해서 좌중을 놀라게 했다. 일본인 학자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일제식민주의사학의 실체를 고발한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날 학술회의는 모두 3부로 나누어서 할 만큼 심도 있는 주제발표와 토론으로 이어졌다. 하오 1시에 시작하여 저녁 6시 반까지 진행될 만큼 긴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 서기 2017.09.22.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식민주의 사학 학술대회에서 박찬승 비교역사문화연구소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그는 이 날 학술대회발표 연구에 일본인 학자들도 참여했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이날 이전에 발표한 자료를 보아서 만든 책을 선보였다.

이날 식민사관 실체는 1부 주제발표에서 드러났다. 우리역사를 파괴한 일제식민사학자 중에 가장 손꼽히는 인물이 이마니시류(今西龍)다. 이날 첫 주제발표에서 맨 앞에 등장한 인물이 이마니시류다. 그 만큼 이 자의 역할이 컸다. 이 기사는 지난 서기2017.10.07.에 내보낸 바 있다.

이번에는 뒤이어 발표된 스에마스야스카즈의 행각을 싣는다. 이날 1주제발표를 맡은 정상우 한림대 교수에 따르면 쓰에마스 야스카즈(末松保和) 우리역사를 왜곡, 날조한 식민사학자의 전형이다. 특히 그는 일제 패망 후에도 일제식민사관 곧 황국사관을 더욱 강화한 인물로 평가된다. 더구나 그는 해방 후에도 한국 고고학 태두로 알려져 있는 김원룡 교수와 친분을 갖고 서울대에 들락거린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일제시기 서울대학교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교수였던 경험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해방은 되었으나 학문은 여전히 조선총독부 지배를 받고 있었던 셈이다. 쓰에마스의 식민사관은 주로 고대에 일본이 우리나라 남부지방을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난다.

정 교수는 이날 쓰에마스가 서기1933.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에 부임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쓰에마스가 이해 12월에 <일한관계>라는 연구서를 발표하는 것을 시작으로 서기1937.부터 서기1939.에 이르기 까지 총 21회에 걸쳐 ‘조선사’라는 이름으로 한국사를 강의 했다고 한다. 쓰에마스가 내놓은 일한관계 연구서는 예상대로 한나라 식민지 낙랑군이 북한 평양에 있었다는 전제하에 왜인을 맨 첫 장에 실었다고 한다. 전한서 지리지에 왜인이 낙랑 해중에 있었다는 것을 근거로 왜인의 활동을 아주 이른 시기로 잡고 그 역사도 오랜 된 것으로 끌어 올려 식민사관을 구축해 나갔다고 한다.

이는 서기1세기에 벌써 중국과 일본이 관계를 맺게 된 것을 말한다며 이를 기준으로 고대 한일관계를 풀어나갔다고 한다. 정 교수에 따르면 쓰에마스의 역사해석은 아전인수 그 자체다. 한인韓人(소위 삼한)은 중국 본토에 입공한 최초 시기가 위나라의 원경2년인 서기 261년이라고 한다. 반면에 왜국 사자가 중국에 간 때는 이 때 보다 2백여 년 앞서 갔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왜와 삼한관계는 대등할 수 없으며 왜가 앞섰다는 논리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임나일본부설 창작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왜가 중국과 교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한반도에 상정해 놓은 낙랑과 대방을 통해서라고 한다. 이는 남부지방을 왜가 영유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논리다. 일본부가 지배하고 있는 임나=가야를 거쳐 한반도 서북한 지역에 있는 낙랑과 대방을 지나 중국에 갔다는 것이다. 또 중국 사서에서 서기267. 부터 서기413. 까지 왜가 나오지 않는데 이는 삼한이 성장하는 시기였다고 억지로 해석하고 있다고 했다. 더구나 삼한이 성장한 것도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중국 한나라 식민지, 낙랑과 대방군의 정치영향을 받아서 했다고 한다. 이러한 관점은 올해 한성백제박물관과 국립김해박물관에서 동시 다발로 진행한 시민강좌에서 그대로 터져 나왔다. 한국고대사학회가 개최한 것인데 이 학회 소속 강사들이 이렇게 주장했다.

흔히 임나일본부라는 것이 서기4세기 중반에서 서기6세기 중반까지 존재했다고 하는데 쓰에마스는 여기에 하나를 더 붙이고 있다. 이 시기 임나일본부는 처음생긴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미 그 전에 존재했는데 잠시 사라졌다가 이 때 다시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쓰에마스는 국내 식민사학자들이 끌어다 쓰는 중국 삼국지 한전의 삼한 소국론을 그대로 펼치고 있다. 서기4세기 중반까지 남부지방에는 삼한 70여국이 존재했고 이 소국들을 임나일본부가 지배했다는 것이다. 백제와 신라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정 교수에 의하면 쓰에마스의 임나일본부는 서기562.에 사라진다. 신라가 성장하여 임나를 멸망 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쓰에마스는 임나일본부가 공식 사라졌음에도 왜의 한반도 지배 또는 영향력을 포기 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임나를 차지한 신라가 망한 임나를 대신해서 왜에 조공을 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제2의 임나일본부설을 등장시킨다. 물론 이것도 일본서기에 맞춘 해석이다. 역시 일본서기를 기준으로 고구려조차도 일본에 조공을 한 것으로 본다.

▲ 정상우 한림대 교수가 일제식민주의 사학자, 쓰에마스야스카즈의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쓰에마스가 우리나라 고대사를 임나일본부설을 중심으로 풀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 뜨는 곳 천자가 해지는 곳 천자에게 글을 보낸다’는 구절을 들어 당시 수나라와 일본은 대등한 관계였다고 한다. 정 교수에 따르면 쓰에마스가 이렇게 당시 고대사를 왜와 중국을 축으로 하고 한반도는 종속변수로 지배하는 관계로 설정한 이유는 간단하고 했다.

일제침략시기 상황을 고대에 그대로 투영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시 일제는 만주를 차지하고 중일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또 동아시아는 중국과 일본 양대 축으로 돌아갔다. 소련은 당시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 전쟁하느라 극동아시아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아시아 맹주로서 일본제국주의에 맞게 고대사도 왜에 관한 기사를 끌어다 억지로 중국과 대등한 관계로 꿰어 맞출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는 해방 후 우리 힘으로 나라 기틀을 세우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진보세력은 일제침략시기 일제 주구노릇을 하던 세력이 대한민국을 세우는 바람에 껍데기만 독립국이지 사실은 일본과 그 배후에 있는 미국의 식민지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미국과 일본에 우리 국권행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하자는 데로 따라가기 때문이다. 중국에도 마찬가지다. 동아시아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이나 존재감은 없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흐름을 잘 대변하며 일본에 붙어야 한다는 논리를 편 인사가 있다.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책을 내놓아 사실상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했다고 비판받는 전 고려대학교 교수 김현구씨다. 그는 서기2005. 교육방송에 출연하여 일본의 국력을 유독 강조하면서 동아시아는 크게 중국과 일본 간의 세력다툼으로 전개 되고 있고, 일본은 한국과 함께 가고 싶어 한다고 연거푸 일본 입장을 대변한 바 있다. 일본이 다시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고 싶다는 염원을 이렇게 애둘러 대변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학술회의는 시종일관 일제식민사관의 실체를 객 입장에서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날 학술회의를 개최한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가 향후 식민사관 실체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식민사관에 오염된 국사책까지 비판을 가할 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러나 한국 역사학계를 조선총독부 사학이 장악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일제식민주주의 사학이 무엇인지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 만 해도 큰 성과라는 평이다. 조선총독부 사관이 지배한지 72년이 지나고 있지만, 인하대 고조선연구소를 제외하면 이렇게 드러내놓고 고발한 제도권 대학이 전무하다 시피하기 때문이다.

이날 학술회의는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제1부는 한양 대 이세연 연구원이 사회를 맡은 가운데 한림 대 정상우 교수가 ‘식민지시기 고대한일관계사 연구 동향’으로 발표했다. 소제목으로 ‘이마니시류와 쓰에마스야스카즈’를 중심으로 잡았다. 또 신주백 연 세대 박사가 ‘쓰에마스 야스카즈 조선사연구 연속과 단절’을 이어 발표했다. 이에 국회도서관의 박찬흥 박사가 토론자로 나왔다. 이어 2부에서는 한양 대 김상현 박사가 사회를 보는 가운데 정준영 서울대 박사가 ‘시가타 히로시의 조선경제사 연구’로 발표했고 조정우 한경대 박사가 ‘스즈키 에이타로의 조선 사회조사’를 발표했다. 이에 허영란 울산대 박사가 토론에 나섰다. 3부에서는 김청강 한양대 박사가 진행하는 가운데 교원대 장신 박사가 ‘경성제국대학 문화과의 유산’을 발표했다. 허지향 리쓰메이칸대 교수가 ‘아베 요시시게의 서양철학 강의와 식민지 조선’으로 뒤를 이어 발표했다. 토론에는 정종현 인하대 교수가 맡았다. 종합토론에서는 한양대 윤해동 박사가 진행하는 가운데 동국대 박광현 박사, 한양대 정민 박사가 토론자로 나섰다(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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