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신 교수의 역사강의 (2) 역사는 거울이다

역사에 관심 가지는 뜻

우리가 역사라고 하면 본능적으로 과거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역사란 이미 지나간 것을 말한다. 과거의 모든 것-해와 달 그리고 별들의 과거, 지구의 과거, 어떤 동물이나 식물의 과거 따위-이 역사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의 과거, 동물이나 식물의 역사가 아니다. 인간의 역사, 인간의 과거를 우리는 여기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내 과거를 묻지 마’라고 한다면 ‘내 역사를 묻지 마’라는 뜻으로 우리는 생각한다. 또는 어떤 사람이 ‘우리 집안 역사를 알려고 하지 마세요’라고 한다면 ‘우리 집안 과거를 알려고 하지 마세요’라는 뜻으로 우리는 새긴다. 이처럼 역사는 과거이고 과거는 역사다. 인간이 과거에 한 말, 생각, 행위 그리고 인간이 겪은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모두 역사다.

 

왜 과거를?

2015년 4월 말 아베 신조(安倍 晉三)라는 일본총리가 미국을 방문했다. 그가 총리로 선출된 이후 계속 극우 국가주의 정책과 입장을 드러내놓고 펼치고 있어 과거에 식민통치를 받았거나 침략을 받은 이웃 나라들의 강력한 항의를 받아왔다. 특히 일본이 신도국가주의에 터해 동아시아 주변국들을 수탈하고 전쟁시기에는 여성들을 강제성노예로 동원한 것, 중국 난징의 대학살 행위를 비롯한 여러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그 ‘과거’를 합리화하거나 축소 왜곡하며 다시금 군사대국화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이번 그의 미국방문이 그래서 국제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세계 2위에 오르면서 미국과 더불어 양축을 이루며 세계강국으로 우뚝 선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세계경영구상과 맞아떨어져 일본이 미국과 경제적으로 그리고 군사적으로 손을 잡게 된 것이다. 일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미국은 일본주변국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과거사’를 묵인하자는 태도다. ‘미래’를 위해 ‘과거’를 털어버리자는 말이다. 그래서 백악관 아시아 담당 괸리가 “역사는 역사가 되게 하라” (let history be history)고 지난 날 일본제국이 범한 ‘과거의 죄악’의 직접피해를 입은 일본 주변국에 조언(?)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 두 번 나오는 ‘역사’은 ‘과거’와 동의어다. “과거는 과거가 되게 하라” 또는 “역사는 과거가 되게 하라”고 우리말로 옮겨도 된다. 미래의 동아시아 번영을 위해, 일본주변국들의 이익을 위해, 동아시아 안팎에 산적한 여러 현안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과거’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그 불편한 ‘과거’를 잊어버리자는 말이다. 이 글 뒤에 나오는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 (George Santayana)의 기르침, “역사를 모르는 사람은 계속 그 역사를 반복하게 된다”는 것을 학교에서 배운 사람이 “역사는 역사가 되게 하라”는 말을 스슴없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역사를 잊어버릴 수가 없다. 잊어버려서도 안된다. 말장난 같지만, “역사가 역사가 되게 하라”는 말은 “(일본이 범한 과거의 범죄, 그) 역사가 (잊지 말고 기억하는 뜻에서) 역사가 되게 하라”는 말로도 해석할 수가 있다.


그래, 우리는 왜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는가? 오늘을 사는 우리들, 그래서 숱한 어려움과 해야할 일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데. 그리고 내일의 삶을 생각해도 걱정이 태산 같은데 왜 지나간 것에 관심을 가지어야 하는가? 21세기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야기 해보자. 냉장고, 에어컨디셔너, 텔레비전, 자동차, 전철, 비행기, 컴퓨터, 스마트폰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주주의는 당연한 일상의 생활양식이다. 많은 이들은 아무런 질문이나 생각 없이 주어진 생활양식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생활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 그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에 대한 관심도 없다. 어떻게 민주주의가 이 땅에 소개되고 어떤 과정을 거쳐 확대되었는지, 그리고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과학과 기술의 여러 이기들이 우리의 생활양식을 바꾸었는지 묻지도 않는다. 그냥 주어진 ‘오늘’을 성실히 살고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들은 오늘의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오늘이 어제에서 잉태되었다면 ‘오늘의 사람’인 그들은 분명 ‘어제의 사람’이기도 한데 말이다.


여튼 역사학자들, 아니 동서양의 위대한 인물들은 오늘의 삶이 힘들고 내일의 삶을 걱정하는 사람일수록 과거를 돌아보라고 말한다. 오늘은 어제에서 나왔고 내일은 오늘이 잉태하며, 현재는 과거의 연장이고 미래는 그 과거와 현재의 연장이므로 오늘의 삶이나 내일의 삶을 위해 지나온 나날들을 되돌아보아야한다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역사를 단순히 ‘과거'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오히려 역사를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미래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징검다리’라고 생각하여야 하는 것이다.


항해에 나선 선장과 항해사는 항상 ‘바다지도’를 펼쳐 본다. 안전한 항해를 위해서다. 이 ‘바다지도’ 없이 항해에 나선다면, 목적지가 어딘지 몰라 배는 넓디넓은 바다에서 이리저리 표류할 터이다. 캄캄한 밤길을 나서는 사람은 손전등이나 등잔을 들고 간다. 안전하게 길을 가기 위해서다. 손전등이나 등잔 없이 길을 나선다면, 이 사람이 목적지까지 무사히 갈지 의문이다. 러시아나 중국, 그리고 카나다나 미국과 같은 광활한 나라를 자동차를 타고 횡단하겠다는 사람은 지도부터 챙긴다. 지도 없이 나섰다가는 계획한 횡단여행은 실패로 끝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양이나 서양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이들은 역사를 오늘과 내일의 삶을 꾸릴 사람들의 안내서이고 지도이며 등잔이라고 한다. 역사를 모르면 목적 없이 이리저리 표류하는 삶을 꾸린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역사는 거울이다. 내가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내일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를 보는 거울이 역사라는 말이다.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 인간은 이런 뜻에서 과거의 산물이다. 그래서 인간은 오늘을 살고 있어도 어제를 되돌아보며, 내일을 계획하며 어제와 오늘을 살펴본다. (계속)

 


글 박정신(전 숭실대학교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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