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교수에 의하면 신라말기 신라 문화는 없었다. 당나라 것만 있었다.

 

‘신라 말 문화는 선승들이 당나라가서 가져온 것이다. 농사법도 선승이 가져왔다’

‘당나라 갔다 온 선승들의 당나라 풍이 지방세력 성장과 개발에 영향을 주었다’

‘자료를 다 보지 못해,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여부, 신라건국시기, 낙랑군 위치를 대답하지 못하겠다’

 

▲서기2017.11.28.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서 한국고대사학회가 주도하는 시민강좌에서 경북대학교 사학과 한기문 교수가 강연을 하고 있다. 한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신라불교 당나라 산을 강조했다. 특히 선종을 강조했다.

고대사 분야를 전공한 교수가 우리고대사의 핵심을 모른다는 대답을 내놓아 충격을 주고 있다. 신라천년 역사와 문화를 다루는 시민강좌 강사로 나선 경북대학교 사학과 한기문 교수가 이 같은 입장을 취했다. 그는 서기2017.11.28.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열린 신라사 시민강좌에서 우리고대사에 논란이 가장 심하게 일고 있는 부분을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 시민강좌를 개최하고 있는 한국고대사학회는 조선총독부가 만들어준 이른바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이라는 식민주의 사관을 그대로 추종한다는 비판을 수없이 받아왔다. 그 중 신라건국시기도 논란 중심에 있다. 마찬가지로 조선총독부가 내놓은 한나라 식민지, 낙랑군이 북한평양에 있었다며 여전히 확고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분야는 모두 고대사다. 그래서 고대사를 주제로 강의에 나선 한 교수는 이 문제에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 문제을 묻는 질문에 답변을 회피했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본다.

“주제하고는 좀 다른 얘기라서 아까 잠시 말했듯이 역사하는 사람은 증거를 가장 중시하고 증거에 입각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데 증거를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료를 다 봐야 됩니다. 다 안보면 이야기 안하는 성격이 좀 있죠. 그래서 제가 사실은 하나는 초기역사 불신문제, 두 번째 신라 건국문제, 낙랑군 위치 문제, 이것은 제가 고대사는 문헌자료에다가 유물 유적 자료까지 이렇게 겹쳐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며는 너무나 자료가 적은 것 같으면서도 방대합니다. 그것을 꼼꼼히 안 살펴보고 관련 논문을 쓰면 이렇게 한번은 훑어보는 경향이 있는데 안봤기 때문에 제가 이 말씀을 못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한 교수는 자료를 제대로 안 봤기 때문에 답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또 증거를 중시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대답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심각한 책임 회피라는 지적이다. 한 교수와 같은 인사들은 사실상 우리역사학을 책임지고 있다. 한국고대사학회에 속한 인사들을 보면 전국대학 교수들이다. 또한 이 시민강좌에 강사로 참여한 인사들을 보면 교수급 외에 국사편찬위원회 편수관, 국립중앙박물관의 박사급 학예연구관 들로 포진해 있다. 직간접적으로 전국 대학과 역사관련 국가기관 및 관변단체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사관이 들어가 있는 것이 현행 국사교과서이기도 하다. 현행 국사교과서는 앞서 언급한 쟁점사항들이 그대로 들어가 있다.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에 입각하여 서술되어 있고, 한나라 식민지, 낙랑군이 북한 평양에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삼국시대를 다루고 있다. 신라는 서기4세기까지도 건국되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한 교수는 질문자의 질문내용을 알고 있을 수 밖에 없다.

▲ 한 교수는 이날 질문응답에서 신라건국연도를 모른다는 태도를 보여 빈축을 샀다.

이날 질문자는 한 교수가 발언한 부분을 토대로 질문을 했다. 한 교수는 이날 강연 주제를 ‘신라 말 선종의 수용과 확산’ 으로 잡았다. 그는 이 주제를 다루면서 선종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를 몇마디로 정리했다. 선종은 고정관념을 부정한다고 말했다. 기존의 관념에 사로잡히지 말 것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맑스베버 말을 인용까지 하면서 학설의 유한함을 부각시켰다.

한 교수는 “맑스베버는 ‘학설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낡은 것이 된다’고 했다. 내 것도 낡은 것이 될 수 있다. 역사인식도 완벽할 수 없다. 추론을 통해서 말한다.” 라고 하며 어떤 학설도 절대불변 할 수 없다는 점을 힘주어 말했다. 이 날 질문은 여기에 터잡았다. “이 시민강좌를 이끌고 있는 한국고대사학회는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이나 한나라 식민지, 낙랑군=평양설을 70년이 넘는 동안 똑 같이 반복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이에 대한 한 교수의 입장을 달라.”고 주문했다. 또 “이 시민강좌는 신라천년 역사와 문화를 내세우고 있으나, 사실은 신라 5백년만 다루고 있다. 이는 일제식민사학자들의 사관과 같다. 입장을 말해달라, 또 신라는 언제 건국했는가, 그리고 낙랑군은 어디에 있었는가.” 라며 질문을 이어갔다.

그러나 한 교수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간단하게 거절했다. 깊이 파보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다. 하지만 그는 다른 질문자의 김헌창의 난과 관련한 질문에 답을 하면서 민낯을 드러냈다. 그는 이 질문에도 간단하게 언급하고 더 이상은 몰라서 답을 못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본 강연에서는 김헌창의 난과 관련해서 분명히 상세하게 언급했다. 일부러 대답을 안한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이런 성향을 볼 때 앞서 질문한 내용도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더구나 다른 질문은 한 교수 말대로 깊이 들여다 보지 않아서 대답할 수 없다고 해도, 신라건국시기는 다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보면 바로 알수있다. 분명히 언제 건국되었는지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 교수는 끝내 대답을 거부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없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 한 교수는 선종 선사들의 부도탑이 많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한 교수는 신라 말기 불교의 한 종파로 알려진 선종禪宗을 다루었다. 우리 국사책에서 말하는 내용이다. 국사책에도 신라 말기 선종이 확산되었다고 한다. 국사책을 풀어주는 강연이었다. 그는 화엄종이나 법상종과 같이 이미 신라에 정착해서 기득권 종교가 된 종파와 비교해서 선종을 설명했다. 화엄종과 같은 종파는 교종으로써 선종과 구분된다고 했다. 교종은 교리를 중심으로 하는데 논리를 따지고 관념론이나 유식학에 가깝다고 했다. 반면에 선종은 시적이고 간결하며 직관성을 띄고 있다고 했다. 오늘날 선승들이 주고 받는 화두나 공안 같은 것이 선종과 연결 될 수 있다.

그는 이어 선가禪家에서 회자되는 말들을 소개했다. 그는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 하는데 달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고 있다. 강을 건너면 배를 버려야 하는데 배에 집착한다. 이런 말이 선종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라며 사례를 들었다. 또 “선종은 외부건물에 의지하지 않는다. 심성을 닦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초막을 짓는 경우도 있다.” 고 밝혔다.

그러면서 “선종이 당나라에서 법난 이후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기존 교종이 추구하는 경력이나 불사 외부시설에 의존하지 않았기 때문” 이라고 지적했다. 형식이나 권위 및 마음 밖의 규격을 따지는 것을 싫어한 것이 생존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라고 했다. 이어 또 한 사례를 들었다. “한 선승은 신도가 불사하라고 돈 주니까 막걸리 사먹는데 다 썼다. 신도가 돈 어떻게 했냐고 물으니 단청하는데 썼다.”고 했다는 것이다. 술 먹고 나서 뻘겋게 변한 얼굴을 ‘단청’했다고 말한 것이라고 풀어주었다. 또 한 겨울에 추워지자 법당의 목불상을 가져다가 뗐다는 사례도 들려주었다. 내면 수행이 중요하지 겉 형식이 중요하지 않다는 선종의 특징을 말한 것이다. 중국에서 들어온 선종 파 중에 마조선파가 있다. 한 교수는 오늘날 선승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수행하다 부처가 나타나면 부처 목을 치라”는 말도 마조선에게서 나왔다고 귀뜸했다.

▲ 선종이 당나라 불교법란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열거되어 있다.

한 교수의 이날 강연은 불교 당나라 수혜론을 펼쳤다는 지적을 받는다. 당나라를 빼면 신라불교가 존재 할 수 없을 것처럼 말했다. 한 교수는 신라 말기 문화와 정치가 당나라에서 수입한 선종이 주도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선승이 출현함으로써 지방세력이 성장, 발전했고, 농사도 새로운 농법이 들왔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흐름을 “상당한 새로운 문화사조가 들어왔다”는 말로 압축했다. 또 김헌창의 난으로 생긴 후유증도 선종이 잠재웠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결국 그에 의하면 신라 말기 역사는 당나라에서 수입한 선종이 주도했다는 말이 된다.

한편 이날도 비평문을 나눠줬다. 그런데 지난 번에 질문한 시민방청객이 또 물었다. “이 시민강좌 개최한 단체가 삼국초기 역사를 부정한다고 하는데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한해에 이들에게 지원되는 연구비가 1천억이라는 소리도 있는데 돈 때문이고, 이미 구축한 기득권을 놓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답해 주었다. 또 삼국초기역사를 인정하면 그동안 쌓은 학문이 휴지조각이 되는 데 이런 이유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여성 중년 방청객은 지난번에 이어 커피를 타서 주었다. 뜨거울 까봐 컵을 두 개로 받쳐서 주었다. 다음 강좌는 채웅석 가톨릭대 교수 강연을 마지막으로 남겨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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