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만들어 놓은 식민사관 용어부터 정상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한규철 교수 ‘나는 낙랑군 위치 모른다’

 

발해는 국내서만 황제국체제, 밖에서는 아니다’

‘나는 발해사 전공이라서 낙랑군 위치 그런 것 모른다’

‘발해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당나라 지방정권이 아니다’

“발해는 지배층은 고구려인이고 피지배층은 말갈족이다”

‘이 같은 주장은 일제식민사학자, 시라토리구라키치가 한 말이다’

 

▲ 서기2017.11.15. 경남 김해국립박물관에서 한국고대사학회와 김해박물관이 공동으로 주관한 시민강좌 마지막 강연이 열렸다. 이날 강사로 나선 한규철 경성대학교 명예교수가 발해를 주제로 강연했다. 사진은 존티토라는 외국인학자가 그린 미래 통일한국의 모습이다. 일본은 한국 식민지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날 한 교수는 이 지도가 흡족하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서기2017.11.15. 국립김해박물관과 한국고대사학회가 개최한 마지막 회 시민강좌가 국립김해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마지막 강좌는 경성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인 한규철 교수가 맡았다. 이날 한 교수는 ‘발해국은 고구려를 계승한 황제국이었다’를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이날 강연은 이제까지 강연과 상당히 달랐다. 지난 강연들은 조선총독부 사관을 충실하게 따랐다는 평을 받는다. 그런데 이날 강연은 강연주제에서도 풍기듯이 상당히 자주사관이 들어가 있었다.

이 같은 분위기는 강연 첫 부분부터 풍겨났다. 한 교수는 맨 처음 백두산 천지를 보여주었다. 그는 우리민족의 성지라고 거침없이 표현하면서 이곳은 우리민족 발상지 외에 만주족 발상지도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만주족은 우리와 사촌지간이 된다며 사실상 동족이라는 논조를 펼쳐 충격을 주었다. 한국고대사학회에게는 파격이고 충격이라는 소리다. 한 교수는 더구나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도 중국사냐”며 결코 중국역사가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은 지금 만주가 중국 땅이라 것을 내세워 과거에도 중국역사라고 한다며 중국 동북공정을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역사주권을 지켜야 한다고 열을 올렸다.

이어 동북공정을 저대로 놔두면 북한이 위험하다고 내다봤다. 우리는 북한이 무너지면 당연히 우리나라가 될 것이라고 여길 것이지만 어림없는 소리라고 일갈했다. 중국이 고구려나 발해를 중국지방정권이라고 한 것은 북한을 중국 성으로 만들려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동북3성이라고 하지만 북한을 점령해서 동북4성을 만들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또 한국외교부도 비판했다. 고구려를 우리 역사라고 올렸다가 중국 눈치를 보고 지금은 없앴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 교수는 이런 강연이 중국에게는 껄끄러운 내용이라면서 자신은 중국에게 문화간첩이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농담 삼아 덧붙였다. 그렇기 때문에 동영상을 찍지 말라고 한 것이라며 속내를 드러냈다.

▲ 한 교수는 이날 중국 동북공정을 다루면서 자신의 강연이 중국당국에게 유출될 까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는 이날 백두산을 우리민족의 신성한 산이라고 주장했다. 또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도 우리민족이라고 보았다.

이날 한 교수는 부지불식간에 쓰고 있는 일제식민사관 잔재도 지적했다.

먼저 라당연합군이라는 말이 잘못되었다고 했다. 신당연합군이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라당에서 ‘라’는 신라의 뒷 글자 라를 따서 붙인 것이다. 이는 일제식민주의사학자들이 의도적으로 만든 용어라는 것이다. 신라를 비루하고 약한 존재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에서 뒷글 자를 붙인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마땅히 신라의 ‘신’자를 써서 신당연합군이라고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한 일화도 소개했다. 일본에 있을 때 신라와 일본을 합한 용어를 ‘라일羅日’로 표현했는데 일본인교수가 왜 그렇게 부르냐며 핀잔을 주었다고 했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마땅히 신라의 신자를 앞에서 붙여, ‘신일新日’이라고 해야 맞다며 고쳐주더라는 것이다. 그는 또 대일항쟁기에 일제가 만들어낸 ‘일선동조론’ 용어에 숨어있는 음모도 언급했다. 이 용어를 제대로 표기하려면 일본입장에서도 ‘일조동조론’이라고 해야 맞다고 했다. 조선의 선鮮자를 붙일 것이 아니라 조선의 앞 글자인 조朝자를 붙여야 한다. 선자를 붙인 것은 일제가 우리민족을 깎아내리려는 의도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 한 교수는 이날 발해가 황제국이라고 하면서도 대내용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어 동해라는 말도 마땅치 않다고 했다. 북한에서는 조선동해라고 표기한다면서 자신도 그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 교수는 또 우리역사 시대구분에서도 자신 생각을 피력했다. 우리역사 시작을 군장사회라고 했고 지금은 통일운동시대라고 보았다. 그러나 주류견해는 남북분단시대로 본다고 상기시켰다. 하지만 통일운동시대라고 보아야 한다고 했다. 이것이 더 열정적인 시대구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우리의 사명을 얘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통일은 반드시 우리가 해야 될 역사적 명분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반면에 남북분단시대라고 하면 통일되든 말든 상관 안한다는 뜻이 들어가 있어 비관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서기1970년대 있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어떤 사람이 책을 출판하면서 ‘통일운동시대’라고 썼는데 거절당했다고 했다. 결국 남북분단시대로 바꿔서 책을 내게 되었다고 당시 시대상황을 우회해서 비판했다.

▲ 중국과 일본은 발해를 최대한 축소해서 본다. 위 지도를 보면 서북한이 우리나라 역사강역으로 들어와 있지 않다. 중국 땅으로 그려놓고 있다. 동북공정지도와 같다.

한 교수는 본 강연에 들어가면서 먼저 말갈족이라는 개념부터 새롭게 정의했다. 그는 말갈이 우리와 상관없는 별개의 종족이었다면 광개토태왕비문에도 나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런데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삼국사기>에서 김부식이 말갈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종족이 아닌 지방민을 뜻하는 것이라고 했다.

흔히 발해를 구성한 주민을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누어 지배층은 고구려인이고 피지배층은 말갈족이라고 한다. 한 교수는 이 말의 기원이 대일항쟁기 일제식민사학자, 시라토리구라키치(白鳥庫吉)가 한 말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런 개념을 별 생각 없이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기전 온조왕시기에도 말갈이라는 말이 나온다. 한 교수에 따르면 이는 변두리 사람을 마치 이민족처럼 부른 호칭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갈은 우리민족과 다른 종족이름이 아니다. 오늘날 서울이 중앙이라고 할 때 지방에 전라도, 경상도가 있다. 이 지방 사람을 전라도 사람, 경상도 사람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말갈은 중앙을 놓고 볼 때 당시 지방 사람을 부른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당시 말갈은 고구려나, 발해의 지방 사람을 뜻한다. 그래서 한 교수 자신은 ‘말갈이라고 부른 고구려인’, ‘말갈이라고 부른 발해인’이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요즘에 국사교과서에는 발해가 지배층은 고구려인, 피지배계층은 말갈인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이 노력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밝혔다. 즉 일본인 학자가 지배, 피지배층이라고 썼는데 이렇게 쓰면 안 된다고 여러 차례 촉구했다고 했다. 국사편찬위원으로 있으면서도 여러 번 지적했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이런 사관은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여전히 발해가 고구려인과 말갈인으로 혼합된 나라로 기술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동북아시아 각 나라가 그린 발해강역도도 보여주었다. 중국과 일본이 거의 같게 그리고 있었다. 동북공정의 전형이다. 서북한 지역을 발해가 아닌 중국 땅으로 그리고 있다.

▲ 뒤집어 놓은 발해 강역도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제까지 갖고 있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효과도 있다. 한 교수는 이렇게 시야를 넓혀 만주역사를 다시 보자고 역설했다.

한 교수는 거꾸로 그린 발해지도도 보여 주었다. 북에서 남쪽을 바라보도록 뒤집은 지도였다. 그는 지금은 경제영역과 한류영역이 국경을 초월하고 있음에도 우리나라는 섬과 같다고 낙담했다. 이를 극복하는 준비 작업으로써 고구려, 발해를 배우면서 자동차 타고 만주로 나가는 생각도 해보자고 제안했다. 이어 존티도가 그린 지도를 보여주었다. 존티도가 그린 지도는 누리망상에서 심심치 않게 소개되고 있다. 이 지도는 일본을 한국 식민지라고 그려놓고 있다. 또 요서는 물론 중국 연안지역 성을 따라 복건성까지 통일한국 땅으로 그려놓고 있다. 베트남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한 교수는 이 지도를 보면서 너무 흡족하다고 했다. 이어 서기4세기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를 그린 지도도 보여주었다. 고구려는 서쪽으로 북경일대까지 뻗어 나가 있고. 백제는 중국 동해 연안을 따라 그려져 있고, 일본열도는 삼국의 분할해서 차지한 것으로 그리고 있다. 한 교수는 이 지도가 존 티토라는 외국학자가 그린 것이라면서 자신은 사실로 믿지 않는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우리가 열등의식이 있어서 너무 크게 그려놓은 것이 아닌가” 라고 하며 부정했다. 뭘 모르는 외국학자가 그린 것 뿐이라는 것이다.

▲ 북한이 보는 발해강역이다. 발굴된 유물로 추정하는 것이어서 마냥 허황되다고 보기 힘들다.

한 교수는 이어 발해가 자주 국가이며 황제 국임을 역설했다. 그는 먼저 만주 한 고분군에서 황후명 비석이 나왔는데 중국당국이 묘비명을 공개를 하지 않는다는 점을 꼬집었다. 그는 “혹시 고구려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라며 의심했다. 만약에 말갈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으면 곧 바로 공개했을 것이라며 지금까지 10년 이상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발해가 왜 황제 국인지 밝혀나갔다. 첫째 연호를 썼다고 했다. 그러면서 신라가 연호를 쓴 것을 빗대었다. 그는 신라가 통일 후 당나라 연호를 썼는데 그 이전에도 자체 연호를 썼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느 때가 더 자주적이었겠느냐며 통일 후 당나라 연호를 쓴 행태를 비판했다. 이어 발해는 처음부터 연호를 썼다며 발해의 자주성을 부각시켰다. 또 현재 중국서 내놓은 <발해국사>라는 책이 있는데 발해가 당나라 지방정권이기 때문에 황제 국이 될 수 없고 따라서 연호를 쓸 수 없다면서 연호를 발해역사에서 빼버렸다고 비판했다.

한 교수는 발해가 황제 국으로써 자주국가라는 점도 밝혀나갔다. 중국이 발해를 중국 지방정권이라고 하는데 결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함이다. 먼저 발해라는 국호는 당나라가 내려 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불렀다는 점을 강조했다. 발해는 처음에 나라 이름을 ‘떨쳐나간다’는 뜻을 가진 ‘진振’이라고 불렀다고 밝혔다. 또 당시 일본에서는 발해에 보내는 국서에 ‘고구려’라고 칭했다는 점을 들어 발해를 고구려라고 했을 것이라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발해가 고구려와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고구려를 이어 받은 나라였음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발해가 결코 당나라에서 책봉해서 정해준 것이 아니라고 재차 못 박았다.

▲ 한 교수가 우리역사를 대강 밝히고 있다. 그런데 조선총독부 식민주의사관에서 주장하는 한사군과 삼한론을 그대로 따라고 있다. 또한 식민고고학이라고 하는 원삼국설까지 언급하고 있다.

그는 또 발해를 구성하고 있는 종족이 누구냐를 가지고 발해가 우리민족역사임을 밝혔다. 발해를 구성하고 있는 종족이 말갈이라고 하는데 이는 고구려인의 다른 이름이라고 분명히 했다. 만주지역이 7백년이상 고구려 땅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지역 사람들은 다 고구려 사람이 된 것 아니냐며 이 땅에 세워진 발해도 고구려 후손이고 그 구성원인 말갈도 고구려인이라는 것이다. 북한과 연변조선족은 고구려가 서기전 2백년에 세워진 것으로 보는데 그렇다면 이 지역은 9백 년 동안 고구려 땅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묘장제도를 통해서 말갈이 우리와 같다는 점을 밝혔다. 기존 견해는 말갈 것은 토광묘제이고 고구려 것은 적석총이라는 이유를 들어 말갈을 고구려와 떼어 놓으려고 한다. 이에 한 교수는 적석총은 상층계급이 썼던 것이고 토광묘는 일반백성들이 쓴 것 뿐이라고 강조했다. 별개의 종족이라서 묘장제도가 다른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이어 발해가 온돌을 썼다는 점도 들었다. 발해지역에서는 난방을 온돌로 했는데 이것도 발해가 중국지방정권이 절대로 될 수 없는 증거라고 했다. 중국문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발해가 먼저 당나라 등주를 공격했는데 당나라와 신라가 공격했으나 패하고 돌아갔다며 이것도 발해가 당나라 지방정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고 했다. 이어 러시아는 중국역사가 만리장성을 넘지 못한다고 본다면서 강의를 마쳤다.

그런데 이 날 강연은 근본에서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바탕에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한 교수는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이 어디에 있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발해사가 전공이라서 낙랑군 위치가 어디인지 모른다고 회피했다. 그러나 이날 한 교수가 보여준 시대구분 장면에서는 낙랑군과 삼한시대가 들어가 있었다. 심지어 식민고고학 용어로 지적되는 ‘원삼국’이라는 말도 적혀 있었다. 이 시민강좌를 개최한 한국고대사학회의 관점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었다. 또 한 교수가 한국고대사학회 일원으로서 강연을 맡았다는 점에서 낙랑군 위치를 어디로 보는지 관점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회피해서 모처럼 만에 자주사관으로 한 강연이 퇴색되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또한 그는 식민사학자들이 일관되게 말하는 대내황제국, 대외제후국론을 그대로 따랐다. 발해나 고려가 연호를 쓰면서 황제국을 표방했다. 그런데 이는 국내용이라고 한다. 중국이나 일본 등 외국과의 관계에서는 이것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외국에게 황제 국을 주장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는 말로 발해가 대외적으로는 황제 국이 아니라는 견해를 드러냈다.

한편 강연이 시작된 지 28분경에 강연장이 흔들렸다.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놀이기구에 올라탄 것처럼 미세하게 출렁였다. 녹화기도 떨었다. 약10초간 지속되었다. 이어 곧 바로 박물관 비상종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강연에 큰 지장을 주지 않아 계속 이어졌다. 이날 취재에는 손정금, 이윤지 선생이 함께 했다. 수고했다고 김밥과 식사를 대접했다. 특히 손정금 선생은 손수 운전해서 구포역까지 바래다주고 고속철 차표까지 끊어주었다. 지난주 강연 비평문도 나눠주었다. 마지막이라며 아쉬워하는 시민방청객들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특히 매주 서울에서 왕복 10시간가량 걸리는 김해에 내려와 취재하는 것에 놀라워했다. 늦게 와서 못 받은 방청객들은 직접 찾아와서 달라고 했다.

▲ 임학종 국립김해박물관장이 시민강좌 종강인사를 영상을 통해서 하고 있다. 임 관장은 공공이익을 위해서 시민강좌를 취재하는 행위를 범죄행위로 취급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한편 이날은 시민강좌 마지막 날이라서 수료식이 있었다. 박물관 측에서는 다과를 제공했다. 그런데 수료식에서 이 시민강좌를 주관한 임학중 국립김해박물관장의 발언이 논란이 되었다. 임학종 관장은 이날 수료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다른 일이 생겨서 거기에 갔다고 했다. 대신에 영상으로 종강사를 남겼다. 그는 강연 중에 소란이 있었다면서 박물관이 이에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해 사과한다고 했다. 여기서 소란이라는 것은 박물관 직원들이 기자의 취재를 방해하면서 발생한 소동이다. 임 관장의 ‘대처하지 못했다’는 발언은 기자의 취재활동이 불법행위였다는 전제를 깐 것이다. 취재활동을 범죄행위로 인식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사실 박물관측은 강연 내내 취재활동을 방해했다. 정식으로 취재요청 공문을 보내달라고 해서 보냈음에도 강사들의 의견을 핑계 삼아 끝까지 방해했다. 심지어 학예실장이라는 인사는 하급직원으로 보이는 젊은이까지 동원해서 가로막았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박물관을 구성하고 있는 인력과 그들의 역사인식이 어떤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시간이었다. 이 시민강좌 연속취재기사에서 반복해서 밝혔듯이 여전히 조선총독부가 만들어준 일제식민주의사관이 장악하고 있다. 시민강좌 강사들은 우리역사를 담당하고 있는 중견이상의 교수들이다. 이들이 키워놓은 후학들이 전국 박물관을 학예사 등의 직함을 가지고 대부분 장악하고 있다. 그러므로 강사와 박물관 직원은 한 몸일 수밖에 없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이렇다. 조선총독부 식민사관 적폐를, 지난 국회에서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체험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언제까지 수수방관할 것인지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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