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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태 교수, ‘삼국, 중국선진문화 덕에 국가 되었다’‘북한평양서 나온 낙랑군호구부목간은 낙랑군이 평양임을 말해준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7.11.07 16:06

 

윤선태 교수,

‘고대사회는 중국 한나라 식민기관, 한사군 덕에 아주 일찍부터 발달된 한자문화 접하다’

‘고구려, 백제 등 우리 고대국가를 중국 한나라가 설치한 한사군에 저항했다’고 하여,

아주 작은 소국으로 그리다'

목간을 일본을 기준으로 해서 우리목간문화가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고 하다

 

▲ 서기2017.11.02.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서 동국대학교 역사교육과 윤선태 교수가 목간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윤 교수는 이날 '낙랑군초원4년현별다수' 목간을 근거로 평양이 중국 한나라 식민지, 낙랑군이었음을 전제했다.

목간이라는 것이 있다. 먹으로 글씨를 써 넣은 나무판자다. 종이가 발명되지 않았거나 흔하지 않던 시기에 사용되던 문서라고도 한다. 목간에는 문헌사료에 기록되지 않는 역사가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사료로써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서기2017.11.02.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서 한국고대사학회가 주최하는 시민강좌 제13강에서 목간을 주제로 강연이 있었다. 제목이 ‘목간을 통해서 본 고대의 일상’ 이었다. 동국대학교 역사교육과 윤선태 교수가 맡았다. 이 강좌는 경상북도문화재연구소와 한국고대사학회가 합작하여 만든 ‘신라천년의 역사와 문화’ 시민강좌 중 하나다. 목간을 주제로 강연하지만 신라사회에 초점이 맞춰졌다.

윤 교수에 의하면 목간은 다양하게 쓰였다. 중국 고대 문헌 내용을 적은 것이 있는가 하면, 주문을 써 넣은 주술용도 있다. 의학처방전을 기록한 것도 있다. 또 수산물을 가공해서 발효시킨 식품을 적은 것도 있다. 이 같은 목간은 단순한 내용에서부터 복잡한 회계장부까지 기록되어 있다. 또 세금을 걷기 위한 문서로도 쓰였다. 이는 행정문서로 볼 수 있다. 또 목간에는 당시 지배층의 정점에 있던 왕궁의 일상을 적은 것들도 있다.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문호門號’라고 적혀 있는 목간도 나왔다. 이는 당시 궁궐을 경비하던 경비제도를 엿볼 수 있는 목간이다. 이를 통해서 궁궐 경비상황을 알 수 있다. 또 궁궐의 모양도 파악할 수 있다.

한편 목간에는 한자 소리를 이용한 문자생활의 단면을 알 수 있는 내용도 나온다. 이를 이두라고 한다. 문장을 끝내는 마지막 말을 한자로 표기했다. ‘지之’ ‘~했다’의 ‘다’에 해당한다. 또한 한자로 시제를 나타내는 과거형 어미로도 썼음이 확인된다. 또 존칭형 어미도로도 썼다. 이외에 부호나 구결도 등장했다. 윤 교수에 의하면 신라의 이 같은 한자 활용이 나중에 일본문자인 가타카나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날 윤 교수의 강의 기조도 앞선 강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선총독부가 깔아놓은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한나라 식민지, 낙랑군이 북한 평양에 있었다고 한다. 이를 전제로 이날 강좌를 이끌었다. 그는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목간은 평양 일대의 한나라 시기, 낙랑군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라고 하여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그대로 따랐다. 또한 이는 중국 동북공정에서 주장하는 것이다. 그는 이어 “(이 목간은) 1990년대 북한이 평양시 낙랑구역 일대를 발굴할 때 나온 것인데, 기원전 45년 낙랑군과 그 소속 현의 호구가 통계되어 있는 장부용 목간이다”라고 낙랑군 평양설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고대사회는 이처럼 한사군을 통해 매우 일찍부터 중국의 발달된 한자 문화를 접했다”라고 하여 중국 선진문물 수혜론을 펼쳤다. 이는 우리문화는 고여 있기 때문에 외국의 선진문물이 들어와야 발전할 수 있다는 타율성론, 정체성론과 같다.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이다.

윤 교수는 이어 마치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국을 감히 대적할 수 없는 힘없는 약소국처럼 묘사했다. 중국 한나라 식민지인 한사군에 ‘저항’을 했다는 표현을 썼다.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며 타율적인 고대사를 암암리에 주입시켰다. 그는 이들 나라가 한사군들에 저항했는데 스스로 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 조차 외부 원조를 받아 가능했다고 했다. 그는 “고구려 백제 등 한국의 고대국가는 중국 군현 세력에 효과적으로 저항하기 위해서 중국의 선진 문화를 받아들여 국가체제를 확립하였다” 고 하여 외부 도움을 받아야 하는 허약한 삼국을 그려나갔다.

▲ 윤 교수는 남한에서 발견된 목간은 지금까지 7백여점이 넘는다고 했다.

그는 이후 삼국이 발전한 것도 이에 힘입었다는 논리를 계속 전개했다. 목간문화도 중국에서 건너와서 우리가 체계를 갖추었다고 한다. “이때 중국의 문헌행정 시스템도 수용하였다” 라고 하며 중국이 아니면 우리나라는 정상적인 국가체제를 갖추기 힘들었다는 인상을 주었다. 뒤 이어 더 자세하게 이 같은 주장을 펼쳤다. 그는 “삼국은 또한 경전에 해박한 박사를 두고 식자층을 육성하는 태학을 설립했다. 이후 한자를 읽고, 쓰고, 문서와 장부를 만들 수 있는 이들이 상당수 배출되었다.”라고 해서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이 모두 중국 덕택이라는 수혜론으로 몰고 갔다. 윤 교수는 심지어 목간을 일본 것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 것이 독특하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일본에 목간문화를 전해 주었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일본을 중심에 두고 우리 것을 평가하는 태도를 보였다.

한편 이날 윤 교수가 제시한 신라목간 상한연대는 서기6세기 후반을 넘지 못했다. 남한 전역에 걸쳐 수백 건의 목간이 발굴되었지만 서기6세기 후반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목간 연대를 어떻게 측정하느냐고 질문시간에 질의가 있었다. 목간 자체에 ‘간지년干支年’이 새겨져 있으면 서력으로 환산하여 확실한 연대를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없는 경우는 상대측정을 한다고 했다. 상대측정이라는 목간 상호간에 비교하거나 다른 유물이나 문헌사료를 종합해서 추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 상대측정으로 연대를 추정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사실인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이어지는 질문에서는 그러면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은 안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윤 교수 스스로 목간에 쓰인 글씨는 먹으로 쓴 것인데 이는 숯으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숯은 탄소가 들어있어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하는데 가장 이상적인 재료다. 그랬더니 측정하고자 시료를 채취하려면 글씨가 훼손되어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수백 개 목간이 나왔다고 한다. 그 중에 일부라도 시료를 채취하여 할 수 있을 텐데 불가하다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윤 교수는 이날 목간 발굴과정에서 벌어진 일화도 소개했다. 목간을 보존하고자 ‘전자레인지’에 넣어서 처리하다가 태워먹었다고 했다.

▲일제가 한나라식민기관,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고 하기 위하여, 위조해서 평양정백동 무덤에 파묻어 놓았으나 패망함으로써 미쳐 캐내지 못한 것을, 북한이 해방 후 발굴해 낸 것으로 추정되는 이른바'낙랑군초원4년현별호구부'목간

한편 이날 질의에서는 북한평양에서 나왔다는 ‘낙랑군초원4년현별호구다수’라는 목간도 도마 위에 올랐다. 윤 교수는 이 목간이 당연히 한나라 시기 낙랑군에서 만든 것으로 신뢰했다. 그러나 위조품이라는 증거가 여러 학자들에 의해서 쏟아져 나왔다. 특히 ‘~현별’에서 ‘별’이라는 용어는 일본이 명치유신시기부터 쓰던 일본식 용어임이 밝혀졌다. 이외에 위조품이라는 증거는 많다. 이에 윤 교수는 마치 질문 받지 않은 것처럼 회피하고 넘어갔다.

이날 강연에서도 지난번 강사 강연을 평가한 비평문을 나눠줬다. 부인이 못 와서 부인 것 까지 해서 늘 비평문 두 장을 받아가던 한 방청객이 소감을 얘기했다. 이 시민강좌를 들으면 들을수록 우리가 처음부터 약소국이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는 느낌이 자꾸 든다고 했다. 주눅이 들고 한없이 초라해 진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중국은 감히 넘지 못할 대상으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강좌가 노리는 것이 그런 것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지금 ‘사드’ 배치 가지고 우리나라 위정자들이 보이는 행태도 이런 역사관 주입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덧붙여 설명해 주었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이날 방청객은 더 줄어 있었다. 약 50명 정도였다. 다음 강연은 정병삼 숙명여대 교수가 맡는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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