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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김대환 학예사, 식민고고학으로 신라무덤 재단하다김 학예사, ‘사로국 시대’, ‘원삼국시대’라며 조선총독부사관 따르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7.11.01 04:01

일본교토대학서 박사 수료한 국립중앙박물관 김대환 학예연구사,

초기 우리고유 무덤양식. 중국 한나라에서 시작한 것으로 보다

출토 거울도 한나라 것, 깊이 판 것도 중국영향 받은 것이라고 하다

반면에 돌무지덧널무덤은 북방과 단절시키고 자체 발전론 내세우다

 

▲ 서기2017.10.31.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서 한국고대사학회가 주최하는 시민강좌 제13강 강연에서 김대환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가 신라고분 형식을 소개했다. 위 무덤종류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일본, 중국, 북방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무덤양식을 갖추고 있다. 위 사진 설명에서는 외래집단, 유이민을 언급하고 있으나, 무덤외래 기원설을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 땅에는 수많은 무덤양식이 존재한다. 고인돌 무덤에서부터 돌방무덤에 이르기 까지 무덤 박물관이라고 할 정도다. 경상도 지역만 하더라도 항아리관묘에서부터 나무관, 나무곽 무덤, 돌무지덧널무덤, 토광묘, 돌방무덤 등 다양하다. 그런데 이런 무덤이 중국이 원조라는 주장이 나와 빈축을 사고 있다. 서기2017.10.31.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서 한국고대사학회가 진행하고 있는 시민강좌에서 국립중앙박물관 김대환 학예연구사가 이 같은 생각을 드러냈다. 김 씨는 이날 강연제목을 ‘신라고분, 왕릉 주인공’으로 잡았다. 먼저 이 지역이 신라지역임을 전제한 뒤 초기 무덤양식을 다루었다. 신라 초기무덤양식이 목관묘라고 했다. 목관묘에는 구리거울이 나왔다. 김 씨는 중국 서안지역에서 나오는 거울과 모습이 같다며 중국 한나라 시대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거울이 나온 한나라 무덤은 섬서성 서안지역 들판에 널려 있는 이른바 ‘피라밋’이라고 했다. 이 무덤 옆 지하에서 신라 목관묘에서 나온 거울과 같은 것이 나왔다고 한다. 김 씨는 이 중국 측 자료를 그대로 끌어와서 신라 목관묘 연대를 중국 한나라에 맞추었다. 중국에서는 이 시기를 한나라 경제 때라고 한다. 김 씨는 중국 한나라 사마천이 쓴 <사기>에 나오는 경제(서기전188-141)를 기준으로 정해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중국제 거울이 나오는 신라 목관묘도 서기전 1세기 것이라고 보았다.

중국 서안에는 이집트에서 가장 크다고 알려진 쿠푸피라밋보다 더 큰 피라밋을 포함하여 1백여 기가 넘는 피라밋이 분포되어 있다. 중국당국은 이 피라밋에 중국 한나라 왕들의 이름을 붙여 놓고 있다. 그러나 터키에서는 자신들 조상으로 알려진 돌궐족이 5천년전에 쌓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중국을 제외한 서구학계에서는 이 대규모 피라밋형 무덤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이 지배적이다. 심지어 외계인이 건설한 것이라는 얘기도 등장할 정도다. 그 만큼 발굴도 되지 않고 있으며 중국당국도 한나라 왕들의 무덤이라고만 할 뿐 더 이상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날 김씨는 피라밋 거대규모 무덤을 당연히 한나라 경제(서기전188-141)무덤이라고 했다. 스스로 무덤 발굴은 한 건도 없다고 하면서 무덤 옆 땅속에서 거울이 나왔다며 한나라 것이라고 중국 측 주장을 대변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부장품은 무덤 안에 묻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중국 측이 한나라 경제 때 것이라고 내놓은 유물들은 한나라 왕 무덤이라고 하는 피라밋에서 발굴된 것이 아니다.

발굴된 목관묘를 보면 김 씨 스스로 밝혔듯이 경남 창원, 경남 밀양, 경남 포항 등이다. 김 씨는 목관묘가 서기전 1세기 경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포항은 몰라도 경남 창원이나 경남 밀양은 서기전 1세기경 신라와는 거리가 멀다. 더구나 이날 김씨는 목관묘가 ‘사로국 시기’, ‘원삼국시기’ 것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김 씨가 말하는 사로국은 한국고대사학회에서는 경주에 위치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아주 작은 고을나라 수준을 뜻한다. 따라서 사로국은 경주일대에 국한되기 때문에 창원이나 밀양은 사로국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김 씨는 목관묘를 말할 때는 이 지역도 사로국 목관묘라며 강연을 이어갔다. 또 이런 용어와 표현은 삼국 초기 역사를 믿지 않는다는 일제식민사관에서 나왔다는 것이 민족사학계의 일치된 결론이다. 그래서 식민사학에서는 이 시기 신라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 김 씨도 이날 고대국가라는 말을 쓰면서 이 시기는 신라가 고대국가가 아니었다는 전제를 깔았다. 이 관점에 따라 목관묘가 신라 것이라고 하지 않고, ‘사로국 시기’, ‘원삼국시대’ 것이라고 했다.

김 씨는 이날 목관묘가 깊이 매장되어 있는 것에 대해서도 해석을 내놨다. 김 씨는 이것이 중국 철학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았다. 중국은 사람이 죽으면 혼과 백으로 갈라지는데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땅에 남는 다고 한다. 묘 구덩이를 깊이 판 것은 백이 귀신에게 교란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김 씨는 우리나라 목관묘가 깊이 파져 있는 것이 이런 중국 사상 때문이라고 했다.

▲ 김대환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가 서기2017.10.31.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서 한국고대사학회가 주최하는 시민강좌 제13강을 강연하고 있다.

이어 김 씨는 돌무지덧널무덤을 다루었다. 특히 이날 김씨는 이른바 ‘금관총’ 발굴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했다. 금관총은 처음 대한제국 탁지부에서 일본학자들에게 부탁하여 발굴한 바 있는데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 그러다가 서기1921. 일제강점기 일제가 다시 발굴했다. 금관, 귀고리 등 무려 4만여점이 출토되었다. 대부분 마구잡이로 도굴하다 시피 했고 현지 경찰서장, 학교장 등이 일본으로 도적질해 갔다고 한다. 그리고 서기2015.에 다시 발굴했다. 이 때 김 씨도 참여했다고 한다. 이 때 이변이 일어났다. 신라 마립간 시기 무덤으로 모두 알고 있었다. 특히 이 금관총을 발굴한 일제학자, 하마다 고사쿠(濱田耕作)는 서기6세기 전반 것이라고 했다. 또 무덤 주인이 소지왕 또는 지증왕이라고 했다. 마립간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것을 국내 고고학자들도 대동소이하게 따랐다. 그런데 다른 왕 이름이 새겨진 칼집 조각이 나왔다. ‘이사지왕’ 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또 이미 발굴된 다른 큰 칼을 다시 분석해 본 결과 이사지왕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이러한 왕 이름은 신라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삼국사기>, <삼국유사>등 문헌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김 씨는 이사지왕 명문이 나온 이후 관련 학자들이 많은 연구를 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일본인 학자 주장을 따라가는 모양새다. 김 씨는 일본인 학자 이름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그냥 일본고어학자가 분석했다고 하면서 ‘이사’가 십지를 나타내고 이는 7왕을 뜻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면서 포항 냉수리비에도 7왕이 나온다며 어떻게 해서든지 축소해서 보려고 했다. 그러나 유물이 4만여 점이나 나올 만큼 화려하고 크다. 소위 7왕 수준으로 격하시키기에는 너무 크다.

김 씨는 돌무지덧널무덤이 우리나라 외에 일본 그리고 몽골, 카자흐스탄 및 카스피해 인근까지 분포되어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신라와 이 지역 관련성을 부정했다. 신라가 독립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했다. 다른 곳과 달리 우리 것은 꾸준히 변형되어 갔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같은 점보다는 차이점을 가지고 ‘자체진화’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같은 기간 다른 돌무지덧널무덤(쿠르간)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라는 것도 북방문화와 관련 없다고 보는 근거다.

그런데 김 씨는 앞서 목관묘에서는 중국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았다. 얼마든지 차이점을 찾을 수 있는데도 같은 점에 주목해서 중국이 원조라고 했다. 이는 북방문화와 우리와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중화주의에 가두어 두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는다. 이외에 김 씨는 경주지역에 있는 무덤들에 <삼국사기> 신라본기 신라 왕들의 이름을 붙이려고 애를 썼다. 또 이들 무덤 연대를 추정했다. 대체적으로 일본인 학자들 주장에 터잡아 조금 폭을 넓히는 정도에서 머물렀다.

이날도 비평문을 방청객에게 나누어 주었다. 늘 반갑게 맞아주는 방청객은 이번에도 커피를 주었다. 어떤 방청객은 거수경례로 인사를 재미있게 건넸다. 또 늘 그렇듯이 연세가 상당히 든 방청객은 비평문부터 줄 치며 정독했다. 한 방청객은 본 지에 대해서 자세히 물었다. 또 자신은 강단사학계와 민족사학계 어디에도 편중되지 않고 양쪽입장을 다 듣고 있다고 했다. 다음 강연은 동국대학교 윤선태 교수가 맡는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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