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천하관이라고 하나, 식민사관만 들어가면 초라해지는 고구려다.

 

여호규 교수,

‘고구려는 광개토왕비문을 윤색했다’

‘고구려 중심 천하관을 설정하려는 도입기사에 지나지 않는다’

‘광개토왕릉비문 일부는 광개토왕의 정복활동을

성스러운 전쟁으로 격상시키려고 쓴 꾸며낸 이야기다’

 

한국고대사학회가 주도하는 시민강좌가 서울과 김해에서 동시다발로 계속되고 있다. 서울에서는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서기2017.10.18. 국립김해박물관에서는 ‘한국고대사의 재발견’이라는 주제로 여섯 번째 시민강좌가 열렸다. 이 날 강연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여호규 교수가 맡았다. 여 교수는 지난 서기2017.09.14.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지금 서울, 한강 유역과 삼국’으로 4회 시민강좌를 맡은바 있다. 국립김해박물관에서는 한성백제박물관에서와는 달리 고구려와 가야를 주제로 강연을 이었다. 이날 강연 주제는 ‘광개토왕의 정복활동과 임나’였다.

이날 강연은 여 교수 글이 실린 강연 자료집을 근거로 소개한다. 한국고대사학회의 사관이 그렇듯이 이 학회와 관련 있는 여 교수도 조선총독부사관을 충실하게 유지하고 있다. 강연 제목에서도 이런 경향이 묻어나 있다. 우리는 보통 광개토대왕 또는 태왕이라는 부른다. 그런데 여 교수는 ‘광개토왕’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이는 우연히 그렇게 표시한 것이 아님을 뒤이어 나오는 그의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광개토대왕’, ‘광개토태왕’이라고 부르지 않고 있다. 확고한 신념에서 우러나오는 지조임을 알 수 있다.

여 교수는 먼저 광개토태왕 비문을 분석했다. 태왕릉비 제원을 소개하고 이어 내용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분석했다. 이어 소위 신묘년조 비문을 다루었다. 신묘년조는 일제가 고대에 우리나라 남부를 야마토 왜가 점령해서 2백여 년간 식민 지배를 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자주 이용했다.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활용되는 <일본서기>신공왕후조 기사가 가짜라는 비판이 일본 내에서도 일었다. 그러자 움직일 수 없는 증거로 통용되는 금석문 중 하나인 광개토태왕비문을 제시하여 임나일본부가 사실이라고 우겼다.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는 비문 신묘년조를 보면 이렇다. “백잔과 신라는 옛날 속민이 된 이래 조공을 바쳤다. 이에 왜가 신묘년에 건너와서 백제, 가야, 신라를 파괴해서 신민으로 삼았다” 라고 풀고 있다.

▲ 광개토태왕릉비와 조선사람. 일제는 우리 유물 유적을 도굴하다시피 파헤치면서 저렇게 꼭 한국인을 곁에 세워서 사진찍어 남겼다. 우리가 조사해서 역사로 엮기전에 일제가 먼저 손을 댔다.

여 교수는 이 규정이 논란이 많다면서 일제가 이 비문을 왜곡해서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서기1905. 이후 비석을 일본으로 반출하려는 시도까지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비문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여 교수는 이 비문을 일제가 조작했다는 명백한 역사사실은 소개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 비문이 사실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고 모호한 주장을 펼쳤다. “과연 능비는 실제 사실만을 반영하고 있을까? 보다 근본적 질문이 필요하다. 역사서 뿐 아니라 당대 기록도 작성자의 역사관에 의해 윤색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믿을 수 없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이 비문을 믿을 수 없다면서 근거로 <삼국사기>를 들었다. <삼국사기>에는 광개토왕 이전에는 고구려가 백제나 신라를 완전히 정복하거나 항복받은 적이 없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그런데 비문에는 옛날부터 고구려의 복속국이었던 것처럼 설정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 비문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신미년 조는 광개토왕의 정복활동을 성전으로 격상시키기 위한 가상 ‘스토리(이야기)’라고 단정했다. 고구려가 광개토태왕이 이루지도 않은 업적을 꾸며, 지어낸 이야기라는 소리다.

앞서 신 묘년 조항대로 풀이를 하면 여 교수의 같은 주장은 일응 우리에게 유리한 것처럼 보인다. 왜가 (바다)를 건너와서 백제, 가야, 신라를 공파해서 신민으로 삼았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다. 이 신묘년 조항은 명백히 일제가 비문을 조작해 낸 것임이 밝혀졌다. 재일 사학자 이진희 선생이 이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해당 비문에 회를 바르고 글자를 일본에 유리하게 고친 후 탁본을 떠서 유포시켰고 이것을 바탕으로 해석하게 되었다고 했다.

특히 일제는 서기1883. 일본군 육군참모본부는 ‘사카와가게노부’를 만주로 파견해서 비문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삼국사기>를 보더라도 당시 백제, 신라는 강력한 고대국가다. 이 조작하기 전의 신묘년조를 복원하면 주체가 왜가 아니라 고구려가 된다. 따라서 우리에게 유리하게 비문이 복원된다. 여 교수가 이 신묘년조를 믿을 수 없는 꾸며낸 이야기라고 주장했는데 이것을 염두에 둔 고도로 계산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

여 교수와 같은 인물들은 문헌사료와 광개토태왕비문과 같은 금석문을 놓고 어느 것을 더 사료가치가 있느냐고 할 때 금석문을 더 가치 있게 친다. 여 교수가 소속된 한국고대사학회의 일반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날 여 교수는 이런 원칙을 무너뜨렸다. 비문을 <삼국사기> 기록보다 낮게 평가했다. <삼국사기> 기준으로 당시 역사를 보았다. 따라서 <삼국사기> 기준에 맞지 않거나 다르면 비문이 잘못되었다고 평가했다. 앞서 신묘년 조도 이 기준을 들이대서 잊지도 않을 일을 꾸며낸 가짜라고 했다. 그러면서 비문에 담긴 고구려 천하관도 고구려가 자체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 중국 ‘화이관華夷觀’을 흉내 내서 구성했다고 보았다.

한편 광개토태왕이 얼마나 영토를 넓혔는지도 언급했다. 그런데 광개토태왕이 넓힌 최대치가 요동지역까지라고 했다. 요하를 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고구려 자체 힘이 커서 영토를 확장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주변국들이 때 마침 혼란에 빠져 있거나 약화된 상태여서 이를 이용해 영토를 확장했다는 논리를 폈다. 고구려와 접하고 있던 후연의 경우 북위를 무리하게 정벌하다가 파멸했고, 내분이 끊이지 않고 반란이 일어났다고 했다. 종전까지 고구려를 강하게 압박하던 세력이 이렇게 지리멸렬하는 바람에 영토를 넓힐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공간도 현재 요령성 요동지역이라고 했다.

▲ 여호규 교수가 시민강좌를 하고 있다. 이 사진은 지난 9월에 한성백제박물관에서 강연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삼국사기> 지리지, <삼국유사> 북부여기, 고구려기 만 보아도 바로 깨진다. 이들 사료에는 고구려 시조 주몽이 나라를 연 곳이 졸본 또는 홀승골성이라고 하는데 모두 요동경계이거나 요하 건너 의무려산일대라고 분명히 적시하고 있다. 이곳이 고구려 중심지라는 사실이다. <삼국사기>를 보면 이곳 시조 묘에 대무신태왕을 시작으로 마지막 보장태왕까지 제사지내러 가고 있다. 고구려가 망할 때 까지 적어도 요하 건너 의무려산 일대가 고구려 땅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구려 서쪽 국경선은 훨씬 더 서쪽으로 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고구려 당시 요동은 현재 하북성 난하 일대 일 수밖에 없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할 때 나오는 기사와 당나라 이세민의 시구를 보면 이 지역이 당시 요동이었음을 가늠케 한다. 수나라는 현재 북경 서쪽인 탁군에 병력을 집결시킨다. 또 고구려인이 발해일대에서 병력을 모아 어지럽게 하고 있다고 한다. 당나라 이세민은 발해를 굽어본다는 시를 쓰며 고구려 성을 공격한다고 한다.

한편 여 교수는 한나라 식민지, 낙랑군과 대방군을 서북한 지역으로 설정하고 임나가야를 풀었다. 서기4세기 초에 낙랑군, 대방군이 소멸하자 그 여파로 경상도 지역 가야도 분열과 통합을 경험했다고 한다. 임나일본부설에서 말하는 임나를 여 교수도 당연히 경남일대로 상정했다. 그러면서 광개토태왕 고구려군대가 임나가라 종발성에까지 내려와 신라를 구원하면서 가야지역에도 주둔하는 바람에 임나를 비롯한 가야역사가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고 풀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도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에 터 잡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임나는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인 임나일본부설에서 경남일대로 못 박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나일본부설의 원천인 <일본서기>조차도 임나는 열도내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임나 북쪽에는 멀고 험한 바다가 있다는 기록이 이를 말해준다. 다음 강연은 경북대학교 사학과 이영호 교수가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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