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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팔아먹으라고 국가가 해 마다 1천억 원을 지원한다?국내강단식민사학계, 일제가 날조한 역사를 70년 넘게 우려먹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7.10.25 00:48

일제 조선총독부의 우리역사침략은 전 방위로 전개되었다

유물 조작은 이 땅은 물론 만주전역에 걸쳐가 자행되었다

강단식민사학계는 이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을 보완, 보충하며

끊임없이 재생산해 내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재정, 인력, 조직을 지원하고 있다

 

▲ 일제식민사학자, 하라다 요시토(原田淑人)가 도굴한 지역도. 우리나라 외에 만주 심지어 중국 심장부 '한단', '대동', '곡부' 등까지 발굴한 것으로 드러난다. 모두 일본제국주의 역사를 만들어 가기위한 발굴이었다. 이에 따라 우리역사는 일본제국의 지방사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평양이 고대에 중국 한나라 식민지, 낙랑군이었다는 식민사관이 탄생했다.

서기21세기 문명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대한민국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이명박근혜 정권이 국가기관을 사유화해서 저지른 일들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으로도 이명박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이 무효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 만큼 총체로 불법을 저질러 자유민주주의와 헌법질서를 파괴했다는 소리다.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근간을 허물어 버렸다. 그러면서 이것을 지적하고 밝히려는 것을 좌파, 빨갱이 난동으로 낙인찍었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 국사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명박근혜 정권의 헌법질서 파괴행위는 9년 정도다. 그러나 우리 국사학계에서는 해방 후 무려72년 동안 벌어지고 있다. 조선총독부 식민사관 후예들이 우리 국사학계를 장악한 채 역사매국, 역사불법을 저지르며 72년 동안 자기들만의 학문 왕국을 구축했다. 이 중심에 한국고대사학회가 있다. 우리역사가 조선(단군)부터 따져서 올해로 4350년이라고 할 때, 3천년이상의 역사를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는 한국고대사학회가 틀어쥐고 있다. 고려시대 이전의 역사를 고대사, 또는 상고사라고 하는데 3천년이 훨씬 넘는다. 이 역사가 한국고대사학회 관점으로 서술되어 있다. 조선총독부 식민지 역사관이다.

이 역사관 중핵이 중국 한나라 식민지, 낙랑군 위치와 역할이다. 조선총독부사관 후예들은 낙랑군이 북한 평양일대를 4백년 넘게 식민통치했다고 한다. 그리고 뒤이어 중국 식민기관, 대방군이 낙랑군 아래 황해도 일대를 지배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서북한 지역에 중국의 낙랑군, 대방군이 설치되었다는 중국 직접기록은 한 개도 없다. 모두 중국 하북성 일대라고 한다. 사실이 이런데도 일제는 유물을 조작하면서 까지 서북한 지역을 중국 땅, 식민지로 만들어 버렸다.

이것을 지금 우리 국사 3천년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고대사학회가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오히려 이 일제식민사관을 새로 보충하고 추가하여 완성도를 높이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고대사학회는 올해 들어 벌써 3차례나 전국 국공립 박물관과 공동으로 모의하여 시민들에게 시민강좌라는 미명하에 조선총독부사관을 주입시키고 있다. 역사매국행위가 국가지원을 받아서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민족사학계는 사비를 털어 힘을 모아 반격에 나서고 있다.

이 반격 중에 서기2017.10.16. 광화문 ‘케이티’ 건물에서 진행된 유라시안망(이사장 이민화 교수)이 개최한 강좌가 결정타다. 한국고대사학회가 낙랑군이 평양이라고 하며 내놓은 근거들이 모두 거짓임이 드러나는 자리였다.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정확하게 잇고 있다고 비판받는 한국고대사학회의 주장을 문헌과 유물 고증으로 낱낱이 고발하는 강연이었다. 문성재 인하대 고조선 연구소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문 교수는 최근에 <한사군은 중국에 있었다>책을 발간하여 조선총독부가 왜곡 날조한 고대사분야를 다양한 학문접근방법론을 구사하여 바로 잡아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 서기2017.10.16. 서울 광화문 케이티 건물에서 열린 유라아시안망 정기 시민강좌에서 문성재 인하대학교 고조선 연구소 교수가 강연을 하고 있다. 이날 문 교수는 일제가 유물을 조작해서 어떻게 우리역사를 왜곡했는지 밝혀냈다. 사진은 평양에서 일제시기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유물이라고 한 이른바'금제교구'와 같은 것들이다. 일제는 금제교구를 낙랑군이 평양에서 있었다는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거짓으로 밝혀졌다. 북방계통의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재야사학이라고 불린 민족사학계에서 부단히 일제의 역사 왜곡, 날조를 고발해 온 바 있다. 그러나 한계도 있었다. 일제식민사관을 이어받은 강단식민사학계를 비판해 왔지만 범위가 정해져 있었다. 이러다 보니 인력과 조직, 예산 등에서 상대가 안될 만큼 우위에 있는 한국고대사학회와 같은 강단식민사학의 반격에 상당부분에서는 밀린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일제가 날조한 낙랑유물에 대한 비판이다. 이미 일제강점기에 정인보 선생 등이 당시 일제가 내놓은 낙랑유물을 비판하는 수준 이상으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이는 인력과 재정에서 밀렸기 때문인 것으로 지적된다. 관련분야에서 전문가가 부족한 슬픈 현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정보통신이 발달함에 따라 일제식민주의 사학의 폐해가 알려지면서 각 분야에서 이를 극복하고자 뛰어드는 인재들이 나타나고 성과물을 내놓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문성재 교수라고 할 수 있다. 문성재 교수는 얼굴책(face book)을 통해서 현재 왕성한 활동과 연구 성과물을 대중들과 공유하고 있다. 지금까지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그 만의 창의성과 한문과 중국어 및 일본어 전문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강단식민사학계의 민낯을 낱낱이 들춰내고 있다. 이날 유라시안망 정기 역사 강좌는 그동안 산발적으로 밝혀온 강단식민사학계의 우리역사 파괴행위를 종합하여 고발하는 시간이었다.

문 교수는 먼저 북한이 내놓은 자료를 강단식민사학계(식민사학계)가 어떻게 왜곡해서 내보내는 지 실상을 공개하며 질타했다. 문 교수에 의하면 식민사학계는 북한학계가 발표한 것 중 일부만 부각시켜 그것을 중국 것이라고 우긴다. 이를 바탕으로 평양이 중국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 치소라고 한다. 북한 학계는 3천여기의 무덤을 발굴해 발표했다. 거기에는 토광묘, 옹관묘, 전실묘가 있다. 그런데 식민사학계는 마치 전실묘만 있는 것처럼 부각시켜 이것만 언급하여 3천여기의 무덤이 다 이 무덤인 것인 양 이 소식을 접하는 국민들에게 착각하게 만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는 국민들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행태라며 ‘학술사기’라고 비판했다. 문 교수는 이날 식민사학계가 주장하는 것들을 몇 가지로 추려서 근거가 없음을 증명해 나갔다.

식민사학계는 평양지역에 (중국 한나라 식민기관)낙랑군 고분이 3천기가 넘는다고 하는데 사실과 다르다. 또 해방 이후 북한 학계가 발굴한 것만 해도 2천5백기가 넘고 한나라 계통 유물이 산더미처럼 쏟아져 나왔다는 식으로 선전하는데 그렇지 않다. 먼저 무덤을 보면 옹관묘(독무덤), 목곽묘(나무곽무덤) 또는 귀틀무덤, 전실묘(벽돌무덤)가 있다. 그런데 이런 무덤들은 식민사학계의 주장과는 달리, 당시 중국 한나라 시대 무덤들과 뚜렷하게 구분이 된다. 이는 이 자료를 내놓은 북한 학자, 리순진이 밝혔다. 평양지역에서 발굴된 목곽묘의 경우 발달 과정을 보면 나무곽 무덤에서 귀틀무덤 그리고 벽돌무덤으로 이어진다. 반면에 중국 한나라 무덤은 나무곽 무덤에서 공신전 무덤을 거쳐 벽돌무덤으로 굳어진다. 발달과정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평양에서 발굴된 3천여기의 무덤 들 중, 옹관묘(독무덤)도 다수 나왔다. 사진은 이른바 '낙랑군초원4년현별호구다수' 목간이다. 북한이 이 자료를 발표하자, 남한 강단식민사학계에서는 환호를 하며,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결정 증거로 선전했다. 그러나 위조된 것임이 밝혀졌다.

옹관묘는 또 어떤가. 평양지역에서 옹관묘인 독무덤이 발굴되었다. 문 교수는 이 옹관묘는 소위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시기 이전에 벌써 나타나는 무덤양식으로 보았다. 더구나 중국식 전형이라기보다는 북방 흉노족과 오히려 친근하다고 보았다. 이 묘제는 선사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가장 원시성을 띤다고 평가했다. 분포를 보면 평양 외에 중국의 하북, 안휘, 산동, 사천 등지에서도 나타난다. 문 교수는 이는 한나라 것이라기보다는 그 이전의 동이족분포와 겹쳐짐으로 우리와 더 친연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중국은 상고대시기 우리를 부를 때 동이이라고 했다.

사실 옹관묘는 전남지역에도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물론 베트남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전남 나주 반남 고분군 등지에서 발굴된 옹관이 가장 세련되고 다양하며 다른 어느 지역 보다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것도 다수다. 베트남 것도 상당히 크지만 모양이 우리 것과는 달라서 다른 계통이거나 현지화해서 변형된 것으로 평가된다. 중요한 것은 서해를 중심으로 놓고 볼 때 전남에서 평양, 요동 그리고 중국 연안을 따라 ‘환 서해’ 띠를 이루어 대부분 분포되어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물론 일본에서도 발견된다. 민족사학계 일부에서는 이것을 ‘알’문화와 이른바 ‘마고문화’의 흔적이라고도 한다.

문 교수는 이 묘제가 중국 한나라와는 관련이 없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는데 리순진, 에렉젠, 왕배신, 개산림 등 북한 및 중국 그리고 이외의 학자들이 공통으로 주장한다는 점을 들었다. 이들이 발굴현장을 두루 답사하고 조사하여 내놓은 결과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사학계에서는 이러한 주장들을 유령취급하고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시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더구나 이런 사실을 뒤틀어 ‘낙랑군=평양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둔갑시킨다고 비판했다. 문 교수는 이것을 명백한 ‘학술사기’라고 계속해서 질타했다.

또 이 무덤들에서는 부장품들도 다수 나왔다. 특히 청동으로 된 유물이 많이 나왔는데 청동 검과 청동창 끝, 청동솥 등이다. 이 유물은 당시 중국과는 확연히 다르다. 또 마구와 수레 관련 유물도 나왔다. 문 교수는 몽골지역에서 출토된 같은 류의 유물을 해석한 몽골학자들의 주장을 근거로 평양에서 나온 것들은 중국 한나라 것과 상관없다고 일갈했다.

이 밖에 수 없이 많은 출토물들도 중국과는 관련성이 없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은 와세다 대학 고고학과 ‘오카우치 미추진’ 교수의 주장으로 뒷받침된다고 했다. 문 교수는 오카우치 교수가 “평양 주변에서 나오는 마구인 권총 형이라든가 우산형 동기라든가 을자형 동기 같은 것들은 중국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라고 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또 평양 무덤에서는 황금으로 용을 새겨놓은 이른바 ‘금제교구’ 가 발굴되었다. 이것도 중국 것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강단식민사학 5세대로 알려진 이화여대 오영찬 교수도 이것은 흉노계열에 더 가깝다는 견해를 내놓은 바 있다.

이날 문 교수는 이외에도 일제가 내놓거나 해방 후에 나온 서북한 지역의 금석문류 유물들이 하나 같이 위조, 날조된 것임을 밝혀냈다. 이른바 ‘장무이묘’에서 나온 유물, 안악3호분에서 보이는 묵서명, 이른바 ‘낙랑군초원4년현별호구다수’ 목간 등이다. 특히 낙랑군초원4년현별 목간은 위조흔적이 현저하다고 했다. ‘현별’의 ‘~별’이라는 명칭은 중국 한나라 낙랑군 시기에 절대로 쓰지 않았던 이름임을 밝혀내 충격을 주었다. ‘~별은 ’일본제국주의 시절 일본에서 사용되었던 용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 교수는 일제와 현재 일본우익 학자들의 유물조작, 날조사례를 들었다. 이를 통해서 서북한 지역에서 나왔다는 한나라 낙랑군, 대방군 유물들이 어째서 믿을 수 없는 것인 가를 확인시켰다. 대표사례로 만주 옛 발해궁터인 상경 용천부터에서 발굴되었다는 ‘화동개진和同開珎’이라는 화폐유물 조작사건을 들었다. 이 동전은 발해시기 일본에서 발행한 것이라고 한다.

▲ 문 교수는 이날 일제의 유물조작사례를 집중 고발했다.  사진 왼쪽이 하라다 요시토(原田淑人)인데, 일제가 만주에서 화동개진이라는 일본엽전을 묻어놓고 발굴했던 인물이다. 오른쪽 젊은 인물은 이를 만천하에 고발한, 중국인 이문신李文信이다.

당시 일본은 스스로 ‘천황’이라고 불렀고 주변국은 일본에 조공을 바치는 거수 국으로 규정했다. <일본서기>가 특히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발해국도 일본에 조공을 바치는 거수국이라고 하고 있다. 화동개진이 발해 상경에서 나왔으니 발해국이 일본 거수국이었다는 것이다. 일제는 서기1939년 하라다 요시토(原田淑人)를 통해서 이 같은 역사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하라다를 포함한 일제 황국사관 학자들은 당시 이 같은 발굴을 언론에 대대적으로 알렸다. 신문기자들을 불러 기자회견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조작이 당시 참여했던 중국인 이문신李文信이 양심선언을 하는 바람에 조작극임이 만 천하에 드러났다. 이 같은 양심선언은 일제침략시기에는 못하다가 일제가 폐망한 뒤인 서기1951년에 폭로했다.

문 교수는 이날 일제가 낙랑군=평양이라고 한 것을 국내 식민사학계가 그대로 추종하는 것은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그동안 식민사학계가 주장하고 있는 몇 가지를 추려 반박, 정리했다. 먼저 평양지역 고분이 3천여기라고 하는데 (한나라 식민기관인) ‘낙랑’ 이전의 옹관묘까지 망라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낙랑관련 고분이 대부분이라는 식민사학계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이다.

이어 낙랑군 것이라고 하는 모든 무덤에서 흉노 등 북방문화요소들이 고르게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나라 낙랑군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다. 일부 한나라 유물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경제교류나 무역품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다고 했다. 중국 한나라가 이 지역을 정복했거나 지배한 근거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한나라가 지배했거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금석문이나 벽화에 보이는 글자들은 조작, 위조된 것이 분명하다고 못 박았다. 너무나 분명하게 나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일제가 패망한 서기1945년 이전의 일본 학문이라는 것은 일제식민통치도구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학문 탈을 쓴 제국주의 침략이론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고대사학회와 같은 국내 강당식민사학계가 아직도 이것을 70년이 넘게 되풀이 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역사학계와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비극이라고 꼬집었다.

이날 강연 주제가 특화된 것이라 그런지 다양한 분야에 적을 두고 있는 시민들이 참석했다. 평소에 이 강연에 눈에 띄지 않던 시민들이 대거 참여해서 눈길을 끌었다. 어떤 방청객은 국사광복단 ‘삼태극’을 통해서 바른 역사에 발을 들여 놓았는데, 본인이 중국 답사단체까지 만들게 되었다며 답사를 수차례 다녀온 경험담을 털어놨다. 이 강연에 자신이 궁금해 하는 주제를 다루어 참석했다고 덧붙였다. 또 한 학자는 현재 몽골에서 한국학연구소를 개설하고 현지 대학에 적을 두고 있다면서 문 교수가 다루는 주제가 본인의 연구과제와 관련이 있어 참석하게 되었다고 했다. 한편 이 유라시안망 시민강좌를 이끌고 있는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는 인사말을 통해서,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잇고 있는 강단식민사학계에 연구명목으로 들어가는 국민세금이 연간 1천억여 원이라고 하여 충격을 주었다. 다음 강좌는 장소를 옮겨 이민화 이사장이 근무하는 서울 도곡동 ‘카이스트’ 강의실에서 이어진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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