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학회, 종교를 넘어서 민족 근대사, 특히 수원에서 활동한 동학의 무게를 달다

동학농민혁명 123주년 동학학회주제발표회 수원편

구한말 의병활동의 상징, 의암 유인석 의병부대,

상놈이 어디 감히 도전하느냐며 하층민 의병을 처형하다.

또한 동학도는 우리와 노선이 같지 않는다고 처형하다.

일제의 남한 대토벌작전으로 동학은 씨가 말라버렸나

 

우리헌법 전문은 대한민국이 3.1운동 정신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을 이어 받았다고 한다. 이 선언은 언 듯 보면 일제에 항쟁하는 가운데 탄생한 것으로 비친다. 그러나 더 깊은 역사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아는 대한민국 국민은 손에 꼽을 정도다. 3.1운동(3.1만세혁명)이 나오기 까지 숨은 원동력이 있었음을 밝히는 학술대회가 있어 화제다. 서기2017.10.13. 경기도 수원시 수원화성박물관에서 동학학회가 주관하는 학술대회다. 여기서 3.1만세혁명이 동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주제발표들이 쏟아져 나왔다.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한지 123주년을 기념하는 학술대회여서 인지 발표자들과 발표량에서 여느 학술대회를 훨씬 능가했다. 123년이라는 세월동안 동학농민혁명은 많은 해석을 오갔다. 지금은 대체적으로 민족근대사의 큰 획을 그은 것으로 긍정과 적극 해석으로 평가되고 다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를 역행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명박 정권하에서 군에서는 '동학란'이라고 불렀다. 동학농민혁명, 또는 봉기가 아니었다. 체제를 뒤엎은 불순한 반역정도로 치부했다. 다시 정권이 바뀌었지만 어떻게 부르고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이날 행사에 앞서 이 학술대회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인사들의 소개와 인사가 있었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인사말에서 동학학회를 수원시에서 지원하도록 산파역할을 성신여대 교수, 최민자 동학학회장에게 감사를 표했다. 염시장은 이어 천도교 교령이 수원동학학회 학술발표회에 친히 참석해 준 것에 감사말을 전했다. 염 시장은 광복70주년 되던 해에 수원시에서 크게 기념행사를 했는데 그 전부터 이 행사를 위해서 특별히 조례를 제정하고 조직을 만들어 준비해왔다고 밝혔다. 이런 준비과정에 힘입어 수원시 자체역량으로 1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을 모아 만세를 불렀다고 전했다. 특히 연예인들을 별도로 초청하지 않은 가운데 1만 명이 합창을 한 것을 높게 평가했다.

이어 염 시장은 내년은 3.1만세혁명 1백주년을 되는 해이기 때문에 수원시에서 다시 성대하게 기념사업을 치루겠다고 다짐했다. 3.1만세혁명이 다른 지역보다 특히 가열차게 전개되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동학이 이 3.1만세혁명의 원천임을 환기시켰다. 동학이 3.1만세 혁명으로 이어졌다고 보았다. 특히 3.1만세혁명을 민족해방운동이라고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그렇기 때문에 수원시에서 이 뜻을 적극 살려 수원지역에 면면히 흐르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동학의 민족정신과 자유, 평등 기반을 되살리겠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하는 것이 그동안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한 것을 위로하는 것이라고 했다.

▲ 서기2017.10.13. 수원화성박물관 영상교육실에서 동학학회 주관, 수원시 수원박물관 주최로 '동학농민혁명과 경기도 수원'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렸다. 발표자와 토론자가 나와서 종합토론을 하고 있다.

이 정희 천도교 교령은 축사를 통해서 수원이 동학과 삼일만세운동과 인연이 깊음을 상기 시켰다. 이어 소중화 조선 정조대왕의 개혁정치를 높게 평가하면서 개혁이 완전히 성공했더라면 동학농민혁명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고 했다. 동학 뿌리가 정조대왕의 개혁정치에 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수원은 동학이 격렬하게 투쟁한 곳이고 대일항쟁기에도 가장 강력한 항일도시였다고 피력했다. 특히 3.1만세혁명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 거셌고 이에 따라 피해도 컷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수원시가 전국에서 가장살기 좋은 도시이자 사람중심 도시가 된 것은 아픈 역사를 극복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기조강연에 나선 이이화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 이사장은 동학이 갖는 의미와 3.1만세운동 그리고 수원의 역할을 밝혔다. 이 이사장은 동학농민혁명 전문 연구자로서 당시 상황을 실감나게 참석자들에게 풀어냈다. 이 날 주목을 끄는 부분은 동학농민혁명 강제 진압되고 민비가 일제에 살해된 이른바 ‘을미사변’ 이후 발발한 ‘을미의병’의 숨겨진 민낯을 과감하게 고발했다. 특히 의암 유인석 의병부대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밝혀 가슴을 아프게 했다. 유인석은 정통 소중화 유학자다. 그가 의병을 일으킨 목적은 기울어 가는 소중화 조선을 다시 반듯하게 세운 것이었다. 이씨 조선왕조와 여기에 기생하는 유교양반지배체제를 복구하는 것이었다.

▲이이화 전봉준동상건립추진위원회 이사장이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이날 기조강연에서 담백하고 깔금하게 동학농민혁명의 전체 과정을 정리해주어 청중들로 부터 갈채를 받았다.

그런데 동학농민혁명은 기존의 구체제를 타도하고 민생중심의 자치질서에 가깝다. 그런데 유인석 의병부대에 동학혁명 잔존세력이 합류하게 되었다. 나중에 이 같은 사실을 안 유인석은 이들이 기존왕조체제를 부정하는 세력이라 하여 색출해서 처형했다고 한다. 또한 천민들도 의병으로 들어와 있었다. 이들이 의병부대 전술과 운용 면에서 난맥상을 보이는 지도부를 비판하고 직접 부대를 지휘하려고 했다. 유인석은 이에 천민들이 어디 감히 양반에게 대드느냐면서 강상의 도리를 범했다고 하여 역시 처형했다고 한다.

침략자, 일제라는 공공 적을 앞에 두고 투쟁노선이 차이 난다는 이유로 의병역량을 현저히 떨어뜨렸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런 현상은 대일항쟁기에도 나타난다. 대일항쟁기에는 민족주의냐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냐로 싸운다. 이 때문에 청산리 전투의 영웅, 김좌진이 암살되기도 한다. 대일항쟁사의 어두운 단면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 성향이 극과 극으로 치달을 정도이나 조선총독부 후예로 비판받는 제도권식민사학계를 공적으로 보고 하나로 뭉쳐서 싸우고 있는 재야 민족사학계의 모습은 본받을 만하다. 대일항쟁역사에서 성숙한 진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염태영 수원시장이 학술대회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염 시장은 동학과 이를 이어 받은 3.1만세혁명정신을 수원지역에 새겨놓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동학 학술 발표회는 모두 3부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1부에서는 김한식 전 국방대 교수가 사회를 맡은 가운데 김준혁 한신대 교수가 ‘정조의 인간존중 투영된 동학의 평등정신’을, 임형진 경희대 교수가 ‘동학에서 천도교로의 개편과 3.1운동을’ 수원지역을 중심으로 발표했다. 신영우 충북대 교수가 ‘경기감사의 동학농민군 진압과 갑오년의 수원지역 상황’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에 최성환 수원정연구원, 임상욱 숙명여대 교수, 최홍규 경기대 교수, 조규태 한성대 교수, 이병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관계자가 토론자로 나섰다.

2부에서는 이상면 전 서울대 법대교수가 사회를 맡은 가운데 동학정신을 수원지역에 어떻게 실제로 투영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주제를 다루었다. 왕현종 연세대 교수가 ‘광무양안으로 본 수원지역농민들의 사회경제기반’을, 이동근 수원박물관 박사가 ‘수원지역 동학, 천도교 유적지와 3.1운동 탐방로’를, 채길순 명지전문대 교수가 ‘수원지역 동학농민혁명 전개 과정과 문화 콘텐츠 활용방안’을 발표했다. 이어 조극훈 경기대 교수가 ‘동학 글로컬리제인션과 인문도시로서의 수원’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에 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 박사가, 김남희 카톨릭대 박사, 우수영 경북대하교 박사, 전석환 강원대 박사, 김영철 동국대 박사가 토론자로 나섰다.

주제 발표자들은 대체적으로 동학을 수운 최제우가 어느 한순간 뚝딱 만들어낸 것으로 보지 않았다. 정신사상사의 한 흐름으로 파악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 연원을 정조의 사상과 정책에 서 찾으려고 했다. 동학의 핵심 사상중의 하나가 인간평등사상인데 서기18세기말 정조가 펼쳤던 개혁정책과 그의 철학에서도 보인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서얼의 신분과 노비제도를 폐지하려는 노력이다. 이는 동학의 인간존중사상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이는 사람을 하늘과 같이 존중한다는 위민사상인데 동학정신의 하나다. 수운 최제우 사상은 부친인 최옥에게서 나왔다고 한다. 최옥은 정조와 같은 열린 유학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서기1919.3.1. 우리나라 방방곡곡에서 만세혁명이 일어났다. 독립선언서를 보면 이 만세혁명을 기획하고 추진한 각계지도자들이 나온다. 그 중에 의암 손병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손병희는 천도교 교주다. 일반인들은 천도교라는 말에 머물기 일 수다. 그냥 신흥종교정돌 인식하는 수준이다. 깊이 들어가서 이 천도교가 사실은 동학이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이날 주제 발표자들은 3.1만세혁명의 뿌리가 동학에서 나왔음을 분명히 했다. 주제 발표 내용 대부분이 동학과 3.1만세혁명과의 관계를 직간접적으로 파악하는 것이었다. 당시 천도교인은 전국적으로 3백만 신도를 자랑하고 있었다고 한다. 갑오년에 일본군에 의해서 전멸하다시피 한 동학농민세력이 그로부터 십 수 년 후에 다시 대규모로 결속을 다지고 있었다는 얘기다. 발표자들은 이러한 ‘화려한’ 부활은 전적으로 의암 손병희의 탁월한 혜안과 지도력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한때 동학 대접주였던 이용구 같은 배신자도 나타나기도 했다. 이용구는 동학 진보회를 친일매국단체 일진회로 둔갑시켜 일제의 침략에 적극 협조한다. 지금으로 말하면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이 세력의 이론과 사상을 뒷받침해 준 ‘뉴라이트’ 집단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발표자들은 대일쟁사에서 동학이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후 독립투쟁의 그간이 된 3.1만세혁명이 대표사례다. 사실 3.1만세혁명이후에 대일항쟁은 평화로운 투쟁보다는 무력투쟁으로 전개된다. 상해임시정부가 꾸려지고 만주를 중심으로 무력독립전쟁이 벌어진다. 3.1만세혁명이 대일항쟁 대전환점 된 것이다. 이날 3.1만세혁명에 참여한 세력 중에서 기생집단이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동근 수원박물관 학예연구사가 주제발표에서 언급했다. 토론에서는 김남희 가톨릭대 강사가 피부에 와 닿는 문제제기를 해 관심을 끌었다. 김 강사가 살았던 동네는 우여곡절 끝에 지역문화를 찾아 관광 상품화해서 성공했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원주민은 다 떠나고 타지사람들이 들어와 주인이 되었다고 했다. 외지에서 돈 많은 투자자들이 관광 상품이 돈이 되자 자본으로 점령해 버렸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수원지역의 동학관련 문화를 특화시켜 정착시킨다고 하더라도 해당지역사람들이 찬밥신세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날 주제발표회에는 동학학회 회장을 맡은 성신여대 최민자 교수 측에서 실무를 맡아 진행했다. 앞서 지적했듯이 수원시장까지 큰 관심을 보일 정도로 동학정신이 지역사회의 화두로 등장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특히 염태영 수원시장 개인이 역사의식이 남달라 보였다.

본 행사가 끝나고 이 학회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손윤 미래로가는바른역사협의회(미사협) 공동대표가 폐회사를 통해서 동학이 오늘날 갖는 의미를 역설했다. 또한 미래를 설계하는 기준으로도 평가했다. 특히 남북통일의 구심점으로도 충분하다고 밝혔다. 손 회장은 동학농민혁명이 당시 전국에 걸쳐 일어났기 때문에 정신 또한 전국에 걸쳐 스며있는 만큼, 동학학술대회를 전국단위로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이날 학술발표회는 오후 1시30분부터 저녁6시까지 진행되었다. 당초 예상했던 것 보다 1시간가량 넘기는 열띤 주제발표와 토론이었다. 방청객의 질문도 받았는데 동학혁명당시 접주였던 후손도 참여해 발표자들의 일부 미흡한 부분을 지적하며 격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또 이날 학술발표장에는 젊은 시민들이 대거 참여해 학회의 미래가 밝아보였다. 다음 학술대회는 충북지역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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