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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애 교수, ‘나는 낙랑군 모릅니다’‘석굴암, 당나라 영향 받고 인도지향성 띠고 있으나 독창성이 있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7.10.13 21:13

 

“교수님 강의안 참고문헌에 <사이비역사와 한국고대사> 책이 실려 있는데,

이 책은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이 평양에 있다고 하고,

삼국유사 고조선 편에 나오는 단군기원도 부정하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무엇을 참고 했나요?” 라는 질문이 있었다

이에 임영애 교수는 ‘강의 내용과 상관없는 내용이라 답을 하지 않겠다’ 며 답변을 회피했다.

 

한성백제박물관에서 한국고대사학회가 주도하는 시민강좌가 계속되고 있다. 벌써 10강이 지나고 있다. 서기2017.10.12. 10회째 강연은 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 교수이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인 임영애 교수가 맡았다. 임 교수는 ‘특별한 신라조각, 두 가지’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특별한 신라조각, 두 가지는 반가사유상과 석굴암을 말한다. 강의 제목에서도 묻어나듯이 먼저 반가사유상에서부터 특별한 점을 찾아 나갔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국보83호로 지정된 금동으로 된 반가사유보살상을 말한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임 교수는 이 불상이 서기6세기 말에서 7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았다. 이 불상 제작연대를 어떻게 정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다른 불상과 비교해서 추정했다고 밝혔다. 과학적 연대측정방법은 사용하지 않느냐고 이어 묻자, 그런 방법을 적용하면 오차가 1백년 이상 나오는 경우가 많아 활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임 교수는 이 불상을 세밀하게 분석해 나갔다. 먼저 익히 알려진 것처럼 미륵보살을 나타내는 것인가 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미륵보살로 본 것은 일본인들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다시 미륵보살이라는 반론이 나와 다툼이 심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에서 나온 반가사유상들과 비교했다. 결국 미륵보살이 아닌 그냥 금동반사유상으로 부르자고 했다고 했다. 이어 과연 이 불상을 신라가 만든 것인지 의문을 다시 제기했다. 경북 봉화 북지리에서 나온 상체가 없는 반가상과 경주 단석산마애불상군 반가사유상을 기준으로 신라에서 만든 것으로 결론지었다. 임 교수는 이 불상과 거의 똑 같다고 할 만큼 닮은 일본 광륭사에 있는 목조 반가사유상 제작 주체도 의문을 품었다. 일본에서는 당연히 일본이 만든 것이라고 단정한다고 했다. 일본의 다른 불상들은 모두 녹나무로 만들어 졌는데 조각붙이기 방법으로 제작한다고 했다.

▲ 서기2017.10.12. 한성백제박물관에서 한국고대사학회 주최 시민강좌가 열렸다. 임영애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석굴암 본존불은 동아시아 불교예술의 극치라고 평했다. 특히 눈빛은 신비로운 신의 시선이라고 했다.

반면에 광륭사 목조 반가사유상은 붉은 소나무로 사용했고 조각붙이기가 아닌 통째로 다듬어서 안을 모두 긁어내어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이 점을 들어 신라가 만들었다고 결론지었다. 또 일본 것은 현재 얼굴이 신라 83호 불상과 다소 다른데 이는 일제강점기때 깎아서 변형시켰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리하기 전 사진이 남아 있는데 신라 것과 거의 같다고 한다. 이것도 목조 반사사유상도 신라에서 만든 근거가 된다고 했다.

이어 석굴암을 분석해 나갔다. 먼저 석굴암이 만들어진 시기를 찾아 나갔다. 삼국유사 권제5 효선, 권제9 대성 조에 나오는 기사를 근거로 서기751년에 제작을 시작한 것으로 보았다.

이 삼국유사 조항에는 대성이라는 인물이 모량리에 살면서 고승, 점개에게 보시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루는 흥륜사의 고승 점개가 보시하면 복락을 받는 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이를 자신의 어머니에게 알린다. 그리고 힘겹게 일해서 마련한 밭을 보시한다. 대성이 죽은 후 재상인 김문량의 집에 다시 태어난다. 대성이 자라서 어느 날 토함산에 가서 곰 한 마리를 사냥한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자신이 죽인 곰이 나타나 대성을 꾸짖자 대성이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곰이 곰 자신을 위해서 절을 세워달라고 했다. 그 후 곰을 위해서 장수사라는 절을 세웠다. 그리고 뒤에 가서는 마음이 더욱 감동되어 불국사와 석불사를 세웠다. 불국사는 이승의 부모를 위해 세운 것이고 석불사는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 세운 것이다. 불국사는 경덕왕 때 대성이 서기751.에 세웠다고 한다. 이것이 석굴암이 생기게 된 연유다.

이날 임 교수는 이 해를 석굴암을 제작한 시기로 보았다. 이어 임 교수는 석굴암 본존불과 주변에 새겨진 불상과 호위 상들을 설명해 나갔다. 임 교수는 석굴암과 같이 섬세하게 조각한 불상은 동아시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석굴암 한 가운데 안치되어 있는 본존불은 석가모니불이라고 했다. 본존불의 머리모양에서부터 발끝까지 그리고 앉아 있는 좌대까지 세밀하게 관찰해가며 설명해 주었다. 소용돌이치는 듯 한 머리카락이 꼬인 방향이 오른쪽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것은 태양이 돌아가는 방향이라고 밝혔다. 얼굴 눈은 사람의 눈이 아니라 신비스럽기 그지없는 신의 눈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 임영애 교수는 이날 강연에 활력을 불어넣는 강의기법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 날 강의 내용은 한학기 분량이라고 하면서 한두시간에 강의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상체와 팔목 사이를 파서 입체감을 더했다고 하며 만약에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본존불의 신비스러움이 덜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른 나라의 경우 이렇게까지 조각한 사례가 없다고 했다. 이것은 고난도의 기술이 요구되는데 조각한 사람의 공력이 대단했음을 상기시켰다.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팔부분이 바로 깨지고 동강나, 처음부터 다시 조각해야 한다며 얼마나 고난도의 작업을 했는지 가늠케 했다. 인도나 중국의 경우 석회암에다 석굴을 팠는데 이는 돌 재질상 쉽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석굴암의 경우 강도면에서 상대가 안 될 정도로 딱딱한 화감암으로 만들었음을 지적했다. 그 만큼 조각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본존물의 앉은키를 재보니 3.4미터라고 했다. 이렇게 큰 불상을 조작하려면 적어도 원래 돌은 5.5미터가 넘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돌을 어디서 운반해 왔는지, 원래 그곳에 있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주변에 그러한 크기의 돌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돌을 구해오는 것부터가 불가사의라고 했다. 이 밖에 주변의 보살상이라든가 사천왕상도 고도의 기술로 제작된 것은 마찬가지라고 평가했다. 임 교수는 석굴암에 대해서 그동안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섬세한 관찰력과 상세한 평가를 내놓았다. 누구도 발견하기 쉽지 않은 내용들을 설명해 주었다. 석굴암이 단순히 조각물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있는 조각가의 정신세계까지 읽어내고자 했다.

그러나 이날 강연에서는 한계도 드러났다. 기본적으로 석굴암의 제작기법이나 구조가 다른 나라의 영향을 받았다는 시각을 드러냈다. 전체적인 기법과 형태가 독창성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고 하면서도, 당나라 불교조각 영향을 받았다고 했고, 인도 지향적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석굴이라는 점에서 인도나 중국에서 발견되는 석굴에 착안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았다. 한마디로 인도와 중국의 기법을 종합한 것이 석굴암이라는 것이다. 이는 이 시민강좌에서 나타나는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인 타율성론과 관련된다. 그러나 임 교수 스스로 지적했듯이 이 석굴암은 인공으로 조성한 석굴이다. 또한 본존불이 안치된 부분은 둥그런 바닥에 둥그런 천정지붕을 하고 있다. 전체 구조를 보면 알 모양을 연상시킨다. 또한 쇄기모양의 돌대가 천정 사방에 끼워진 모양을 하고 있어 강한 힘과 기운 그리고 역동성마저 풍긴다.

▲사진 좌측이 국보83호 신라금동반가사유상이고, 우측이 일본 금륭사에 있는 목조반가사유상이다. 임영애 교수에 의하면 일본 것도 신라에서 만든 것이다.

임 교수는 불교 미술사를 전공했다고 했다. 미술사도 역사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나라 고대사는 기본으로 배웠을 것이다. 실제 배웠다고 했다. 그래서 그러면 낙랑군의 위치도 어디에 있었다고 하는지 배웠을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묻는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불교미술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모른다고 잘라 말했다. 한편 임 교수가 나누어준 강의자료 말미에 <사이비역사학과 한국고대사>라는 책이 참고문헌으로 들어가 있었다. 이 책을 참고 했다는 소리다. 그래서 이 책에서 무엇을 참고 했냐고 물었다. 그 전에 이 책은 식민사관에 따라 쓴 책인데,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이 북한 평양에 있었다고 하고, 단군을 부정하여 단군조선 개국연대를 가짜로 보고 있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랬더니 강의와 상관없는 질문이라며 지나갔다.

참고문헌에 이 책이 들어간 이유를 주최 측 간사가 중간에 끼어들어 자신이 설명해 주겠다고 했다. 강사가 아닌 실무진에서 넣었다고 했다. 다른 강사 강의 자료에도 거의 일관되게 참고문헌으로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주최 측이 이 책을 의지를 가지고 집어넣었다는 얘기다. 방청객들에게 이 책을 보게 함으로써 민족사학계와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임 교수는 학부에서 사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다른 강사들에게 보이는 식민사관 편향성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이날도 지난번 강의를 평가한 비평문을 나눠주었다. 그런데 방청객들의 반응이 다양하게 쏟아져 나왔다. “효과가 있습니까”. “이게 더 재미있습니다.” “참고가 많이 된다.” “(반갑게 웃으면서) 맨날 반대하는 글을 쓰는데 재미있습니까?” “잘 읽고 있다, 아주 재미있다.” “오늘은 또 무슨 재미있는 얘기를 쓰셨나요?” 또한 주최 측처럼 결석해서 받지 못한 사람을 위해서 이전 비평문들도 갖다 놓았으면 했다. 자신 옆자리 앉은 사람이 결석해서 이전 것을 확보하지 못해 굉장히 아쉬워하더라고 했다. 이제는 아는 사이가 되어버린 한 방청객은 커피를 타다 주기도 했다. 다음 강연은 이현숙 연세대 교수가 맡는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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