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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돈 교수, 김해시민에 조선총독부사관 주입시키다주보돈 교수, 고대판 중국 식민지, 낙랑군 축복론, 수혜론으로 타율성 역사를 창조해내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7.10.12 14:51

주보돈 교수,

‘사료 비판해서 역사를 재구성 해보니, 중국 한나라 낙랑군은 평양 대동강 일대로 나온다’

'가야김해나 신라가 황금을 생산해 낸 것은 대동강 일대 낙랑군 덕이다'

'고구려에게 3세기 초에 망한 후, 낙랑군 잔존세력이 낙랑선진기술을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한국고대사학회가 주도하는 식민강좌가 계속되고 있다.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서는 화요일과 목요일 매주 2회를 개최하고 있다. 경남 김해국립박물관에서는 매주 수요일에 진행하고 있다. 서기2017.10.11. 김해국립박물관에서 다섯 번째 강좌가 있었다. 이번에는 경북대학교 사학과 주보돈 교수가 맡았다. 주 교수는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열리는 시민강좌에서는 지난 1강에 이어 16강을 맡고 있다. 김해박물관 시민강좌를 포함하면 총 3회를 하는 셈이다. 주 교수는 이날 쇠와 금을 소재로 강연에 나섰다. 강연장소가 가야의 옛 땅으로 알려진 경남 김해 국립박물관이라서 가야 김해를 중심으로 파고들었다. 주 교수는 강연을 들어가기에 앞서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무엇인지, 역사를 보는 눈에 대하여 상당한 시간을 쪼개서 견해를 피력했다.

이 시민강좌를 조선총독부 식민사관 전파로 보는 민족사학계를 의식해서 인지 날선 격정을 쏟아 냈다. 주 교수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과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한자성어까지 동원하여 역사를 배우는 의미를 부각시켰다. 그러면서 “과거에 함몰되어가지고 과거를 곱씹으면서 그렇게 살아가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짓이고, 과거가 정확한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과거에 부자였다, 우리가 위대하다 하는 이야기들은 소용이 없는 것이다.” 라고 했다. 이는 다분히 주 교수의 역사관을 비판하는 민족사학계를 염두에 두고 한 말로 보인다. 과거에 부자였다거나 위대했다고 봐야 소용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데서 드러난다. 민족사학계가 반도를 벗어나 대륙사관을 지향하고 영광된 역사를 찾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이를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민족사학계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부정확한 근거에 터 잡아 무조건 크고 위대하게 우리역사를 그린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과거가 정확한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라고 한 말에서 확인된다. 이어 “과거는 정확하게 이해가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역사라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주 교수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몇 가지 사례를 들었다. ‘코이’ 라는 다소 생소한 일본관련 사례를 들어 역사도 마찬가지로 사실은 하나인데 관점은 여러 개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또한 그리스 알렉산더 왕이 이집트에 쳐들어갔을 때 깨달은 바를 제시했다. 이집트의 나일강과 그리스 강물이 흐르는 방향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렉산더가 깨달았다고 했다. 알렉산더는 이집트에 오기 전에는 강물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집트에 와 보니까 강물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알렉산더 왕이 발상을 전환하는 길을 터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주 교수는 이어 ‘너무 한쪽으로 만 바라보지 말고 생각을 자유롭게 가져야 하고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자세’를 가질 것을 촉구했다. 또 ‘내가 봤던 거만 사실이라고 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생각을 할’것을 다시 강조했다. 이런 발언은 방청객에게 하는 말이지만 실제는 민족사학계를 향해서 한 것으로 보였다.

▲ 서기2017.10.11. 국립김해박물관에서 한국고대사학회가 주최하는 '한국고대사의 재발견' 시민강좌에서 경북대학교 사학과 주보돈 교수가 강연을 하고 있다.

주 교수는 이렇게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여 일종의 ‘훈시’를 끝내고 본 강의에 들어갔다. 주 교수의 초점은 ‘김해가야가 고구려, 백제, 신라처럼 고대영역국가로 발전하지 못하고 왜 연맹체 수준의 작은 국가에 머물다가 사라 졌는가’ 였다. 먼저 김해金海라는 한자 글부터 풀어나갔다. ‘김金’은 황금이 아니라 쇠라고 보아야 한다고 했다. 또 ‘김’해라고 하는데 ‘금’해라고 해야 맞는다고 했다. 글자에서 풍기는 것처럼 김해지역은 가야가 철을 생산하는 나라였음을 나타낸다고 했다.

그러면서 철은 가야 자체에서 생산했다고 보지 않았다. 근거로 탈해가 외부에서 온 인물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철 기술도 밖에서 들어왔다고 보았다. 이어 탈해와 김수로왕의 변신술 경쟁에 초점을 맞춰 이것은 쇠를 다루는 야철 기술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장간에서 쇠를 여러 모양으로 변형시켜 다양한 기구를 만드는데 변신술은 이것을 나타낸다고 했다.

또한 김수로라는 한자 이름도 주 교수는 다르게 풀었다. 수로首路라고 되어 있는데 자신은 수로水路로 본다고 했다. 철을 다루려면 반드시 물이 필요한데 물과 가까운 곳에 야철을 다루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김수로왕의 이름에서도 가야가 철을 생산하는 나라였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철은 우리 스스로 생산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했다. 중국에서 전해 준 철기라는 것이다. 이것은 흔히 말하듯이 가야가 철기를 생산한 것도 외부 ‘선진문물’을 받아 가능했다는 논리다.

중국도 전국시대에 서역으로부터 철기기술이 전해졌다고 보았다. 중동의 고대국가 힛타이트가 서기전 2천년 경에 처음으로 철기를 생산했다는 서양사관에 맞춘 시각이다. 이날 주교수는 실제로 힛타이트가 세계 최초로 철기를 생산했다고 상기시켰다. 주 교수는 철을 나타내는 한자가 지금처럼 철鐵이 아니고 원래는 쇠금 변에 ‘오랑캐’ 이 자가 붙은 철銕이었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중국에 철을 전해준 민족이 오랑캐라고 했다. 이 오랑캐가 어느 민족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어 주 교수는 신라와 가야가 황금을 생산하고 금제품을 만들게 된 이유를 밝혔다. 이것도 신라와 가야 자체 기술로 한 것이 아니라 중국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 유민들이 들어와 전수해 준 것이라고 했다. 평양 대동강 유역을 차지하고 있던 낙랑군이 서기3세기 초에 고구려에게 멸망당하자, 유민들이 신라와 가야지역으로 이주해 왔다는 것이다. 이들이 선진기술을 가지고 와서 황금기술을 전해주었다는 논리다. 그렇기 때문에 신라, 가야는 서기 3세기 까지는 금을 몰랐다고 잘라 말했다.

주 교수는 황금생산을 이른바 고대국가로 가는 표상으로 평가했다. 따라서 주 교수에 의하면신라는 4세기야 되어야 나라 된다. 그 전에는 여러 개 고을들이 모여 있는 연맹체 수준에 불과했다. 이런 관점은 일관된다. 그는 한성백제박물관 시민강좌 첫 강에서도 똑 같은 소리를 했다. 신라는 처음부터 고대국가가 아니라 사로국이라는 아주 작은 국가였다는 것이다. 백제도 마찬가지다. 목지국에서 출발하여 역시 서기4세기경에 비로소 백제가 탄생했다고 했다. 이러한 관점은 모두 중국 삼국지를 기준으로 파악한 것이다. 이는 일제 조선총독부가 주장한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에서 하는 주장이다. 그러나 삼국사기는 신라나 백제 모두 서기전에 나라가 섰다고 했고, 개국 초기부터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인 고대국가체제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주 교수가 주장하는 거처럼 아주 작은 연맹체 국가로 볼 수 있는 기록은 없다. 주 교수는 신라가 사로국에서 출발했다고 했고 4세기에 들어서 신라가 탄생했다고 하는데 이런 기록도 찾아보기 어렵다.

▲ 이날 강연에서 주보돈 교수는 사료비판론을 내세워 우리사료가 아닌, 중국 사료를 기준으로 신라사를 축소 왜곡 시켰다. 결국 조선총독부 식민사관과 같은 것이었다.

주 교수는 가야가 신라처럼 큰 나라 발전하지 못한 이유로 김해가야의 폐쇄성을 들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선진문물을 수용해서 변화를 해야 하는데 기존의 이루어놓은 체제를 고수하다가 고대국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백제의 전신 마한과 신라의 전신 진한은 서기3세기 후반에 중국과 통교를 하는 기록이 보이는데 가야의 전신인 변한은 없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이것을 가야의 보수성이라고 불렀다.

주 교수의 이날 강연은 조선총독부 식민사관 전체 정리해서 보여 주는 듯 했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하듯이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을 무시하고 중국 삼국지를 기준으로 신라와 가야사를 바라보았다. 그러다보니 서기 4세기까지 신라는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다. 이 때까지 신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정사인 삼국사기를 무시하고 왜 개인이 쓴 중국 삼국지를 기준으로 우리역사를 보느냐’는 질문에, 주 교수는 사료비판론을 들고 나왔다. 역사학은 사료비판을 반드시 해야 하는데 이에 따라 사료비판을 해보니 삼국사기 보다는 삼국지가 사료가치가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그 사료비판의 기준이 무엇이냐고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일 수밖에 없다. 이날 방청객으로 참여한 김해시민들은 망한지 72년이 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을 주입받은 셈이다.

한편 주 교수는 우리나라 남부지방을 일본이 고대에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가 되는 일본서기 신공황후 49연조 조항도 언급했다. 전 고려대 교수 김현구씨처럼 이 기록을 백제 중심으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구씨와 입장이 다른 듯이 보였지만 핵심은 같았다. 야마토 왜가 아니라 백제가 신라를 정벌했다는 논리다. 결국 나머지는 신공황후 49년조 기록을 믿는다는 얘기다. 임나일본부설을 거의 다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이날도 지난번 강연을 비평한 인쇄물을 방청객들에게 나눠 주었다.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서 보이는 반응들과 비슷했다. ‘잘 읽고 있습니다’, ‘수고하십니다’ 등 이었다. 다만 서울보다는 상대적으로 비평문에 대한 관심을 많이 보이지 않았다. 보수적인 지방색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박물관에 적을 두고 있는 직원들도 아주 냉정했다. 방청객 출석부를 거드는 여성 두 명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봐도 정색을 하고 답변을 거절했다. 사전에 교육을 받은 듯 했다. 또 주 보돈 교수가 강의장에 들어설 때 박물관 학예사처럼 보이는 남성이 깍듯이 인사를 하는 것을 보면 사학을 전공한 대학출신들이 박물관 학예사로 들어가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번 강연은 강사가 동영상 촬영을 허락했다고 안내를 맡은 박물관 학예사 설씨가 밝혔다. 다음 주는 현장답사일정으로 강연은 쉰다. 다다음주 수요일에 다시 진행된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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