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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조선총독부사관 대변해 경악신라 사회적 책임 역사 강연은 식민사관추종 시민강좌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7.09.29 15:50

 

박남수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삼국사기 초기기록 믿을 수 없다’

‘신라 초기역사 유례이사금 17관 등제 실시 믿기 어렵다’

‘<화랑세기>는 박창화가 창작한 것이다’

 

우리나라 국사를 담당하고 있는 국사편찬위원회가 조선총독 사관을 대변하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이다. 한국고대사학회 주최로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열리는 신라사 시민강좌가 서기2017.09.28. 8회를 맞이했다. 이번에는 박남수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이 맡았다. 다른 회차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속 김대환 씨만 빼놓고 모두 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교수급 강사들이 맡고 있다. 정부기관 공무원이 나와서 강연한다기에 교수강사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강연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조선총독부 사관에서 다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자유로울 줄 알았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무참하게 깨졌다. 이날 강연주제가 말해 주듯이 식민사관을 찾을 수 있는 주제는 아니다. 그래서 강연 중에는 어떤 사관을 갖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역시 이번에도 질의응답 시간에 박 강사의 실체를 드러냈다. 국사편찬위원회 편사 연구관의 입에서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는 발언이 나온 것이다.

기자뿐만 아니라 다른 방청객의 질문에 응답하는 과정에서 조선총독부사관을 가감 없이 피력했다. 박 강사 자신은 당연히 조선총독부사관이 아니라고 부정할 것이다. 이날 박 강사는 ‘신라 진골 귀족의 노블레스오블리제’ 제목으로 강연에 나섰다. 노블레스오블리제를 가진 자의 사회적 책임 정도로 규정했다. 박 강사는 이것을 신라 화랑도와 연결시켜 신라가 화랑도를 통해서 노블레스오블리제를 구현했다고 보았다. 이에 ‘화랑도가 나오게 된 것도 신라 초기역사 덕분이 아니냐’고 상기시킨 후, ‘그렇다면 삼국사기 초기기록도 신뢰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어 ‘강사는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믿느냐’고 덧붙였다. 이에 박 강사는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이 일제 식민사관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의식해서인지, “글쎄요, 이는 굉장히 어려운 질문인데요.” 라고 운을 뗐다.

▲ 박남수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이 서기2017.09.28. 한성백제박물관에서 한국고대사학회가 주최한 신라사 시민강좌에서 신라사를 강연하고 있다. 이날 박 연구관은 조선총독부 사관을 추종하는 발언을 해 충격을 주었다.

이어 신라 초기인 유례이사금 때 17관등제가 행해졌다면서 이것을 예로 들어, 신라 초기기록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박 강사도 이전의 강사들이 한 역사연구방법론을 들고 나왔다.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고도의 사료비판을 통해서 걸러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문헌에 나오는 기록하고 금석문의 기록이 다를 때는 금석문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포항에서 발견된 비석을 예로 들었다. 비석은 6세기 전후 것으로 보이는데 거기에 유례이사금 때 사용된 관등이 새겨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따라서 그 이전인 유례이사금 때 시행되었다고 나오는 신라본기 초기기록은 믿을 게 못 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삼국사기가 신라가 망한지 수백 년 뒤에 나온 것이라 더욱 믿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그대로 믿기 곤란하다’고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안 믿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박 강사는 신라왕들이 박-석-김으로 이어지는 것과 관련해서도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드러냈다. 삼국지 한전을 예로 들어 백제, 신라가 초기에는 고대국가체제를 갖추고 있지 못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당시에 초기국가 형태만 존재했는데 신라는 사로국이었다고 기존의 강사들이 한 소리를 되풀이 했다. 이 작은 국가들 우두머리는 추장, 군장이었다며 군장사회로 보았다. 마을이 몇 개모인 수준이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이 사로국이 성장하여 주변세력을 흡수해서 커진 것이 신라라고 했다. 이는 일제 조선총독부 관학자들이 주장한 것이다. 또 박 강사는 비석에 유례이사금 때 관등이 나온다고 비석제작 시기를 기준으로 신라가 관등제를 정비했다고 한다. 그러나 반대로 이미 유례이사금 때 관등제가 정비되었고 비석에는 이때 정비된 관등이 새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편 이날 박 강사는 화랑세기도 언급했다. 박 강사는 신라의 지배세력이 사회적 책임을 다한 근거로 화랑출신들의 활동을 예로 들었다. 신라 귀족 자제들도 화랑에 들어가 신분이 낮은 계급의 자녀들과 차별 없이 교육받았다고 했다. 여기서 길러진 심성을 귀족 자제들이 성장하여 높은 벼슬을 할 때 발휘했다는 것이다. 이에 화랑도와 관련해서는 화랑세기가 압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문헌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이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화랑세기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박 강사는 이 문헌을 박창화 선생이 창작한 위서라고 단정했다. 박창화 선생이 무협지 소설도 썼는데 소설에 나오는 용어가 화랑세기에 등장한다고 지적했다. 이것이 위서로 보는 중요한 근거라고 했다. 이에 ‘화랑세기를 보면 개인 창작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진실처럼 보이는 내용들이 가득하는데 이게 과연 개인이 창작할 수 있는 것이냐’는 반문이 이어졌다. 박 강사는 박창화 선생이 머리가 굉장히 뛰어난 사람이라 충분히 창작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응수했다. 입장을 밝히기가 조금 조심스럽다고 했지만 결국 위서로 몰아갔다.

그러나 화랑세기 위서 논쟁에서 전 서강대학교 총장을 지낸 사학을 전공한 이종욱 교수가 발표한 논문과 책을 보면 화랑의 실제 역사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관점과 선택의 문제인데 이날 박 강사는 이 시민강좌를 개최한 한국고대사학회의 입장에 따라 위서론으로 정리했다. 박 강사는 삼국사기 초기기록이 가짜고 화랑세기가 위서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전문가처럼 자신했다.

▲ 박 연구관은 이날 신라진골계급이 가진자의 사회적 책임을 뜻하는 '노블리스오블리제'를 화랑도를 거쳐서 실천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박 강사는 이날 강연에서 화랑도 활동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폐쇄된 신분사회였던 신라가 삼국통일전쟁 후 수백 년을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을 화랑도에서 찾았다. 신분과 상관없이 어렸을 때 화랑에 자제들을 들여보내 심신수련을 통하여 평등을 익히고 차별 없는 사회를 터득케 했다는 것이다. 당시 신라를 지배했던 진골귀족 자제들도 화랑도 출신이 많아 정책을 펼치는데 화랑도 정신이 많이 반영되었다고 했다. 수직적 지배질서임에도 불구하고 상하소통이 화랑도 때문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화백제도도 화랑정신이 들어간 것이라고 보았다. 화백제도 구성원이 모두 어렸을 때 화랑을 체험한 경험자들임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당시 고구려 청년교육과 비교했다. 고구려는 형률이라는 법을 중시하여 엄격하게 다루었는데 신라 화랑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했다. 화랑 세속오계 중 하나로 알려진 ‘임전무퇴’에서 보듯이 전투에 임하여 무조건 목숨을 걸라고 강요하는 것 보다, 명예롭게 죽으라고 하여 스스로 결정하게 했다고 한다. 김유신 사례를 들어 화랑도가 평범한 인물을 모범적인 인재로 바꾸는 용광로와 같은 역할도 했음을 피력했다. 김유신과 천관녀 얘기를 근거로 들었다. 김유신이 천관녀라는 여인 때문에 대사를 그르칠 뻔했는데 자신의 말을 죽임으로써 그르치지 않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이런 결단력이 화랑도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날 질문시간에는 앞서 나온 것들 외에 신라 골품제도가 몽골의 탱그리한에서 나온 것 아니냐는 질문이 있었다. 박 강사는 그런 얘기는 육당 최남선이 한 얘기라고 했다. 육당은 삼한사회에 등장하는 천군이 탱그리라고 했다면서 자신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 날도 비평문을 나눠주었다. ‘잘보고 있다’, ‘수고하십니다’, ‘두장 달라’ 는 등 이전과 같은 반응들을 보였다. 이번에는 비평문을 강의인쇄물과 같이 철해 가지고 있는 방청객이 눈에 띄었다. 각 강연 자료에 해당 비평문을 일일이 붙여놓고 있었다. 이날 강좌는 추석을 앞둬서 그런지 방청객이 눈에 띄게 줄어있었다. 다음 강좌는 서기2017.10.10.(화)에 있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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