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구씨, 한중일 단일공동체 해야 한다며, 한일간 역사분쟁을 강제로 화해시키려 하다.

김현구 전 교수,

고대에 일본이 우리 남부지방 2백년 동안 지배했다고 사실상 주장하다

‘임나일본부 지명비정 모두 조선총독부 식민사학자 지명비정에 따랐다’

‘목만치 등 목씨가 일본인이 되었다, 이 목씨집안이 우리나라 남부지방 경영했다’

 

임나일본부설라는 것이 있다. 서기4세기 중반에서 서기6세기 중반까지 약 2백 년 동안 일본 야마토 왜가 우리나라 남부지방을 지배했다는 식민사관이다. 지배한 곳은 구체적으로 임나인데 이 임나가 고대 가야라고 한다. 서기2017.09.27. 경남 국립김해박물관이 주최한 ‘한국 고대사의 재발견’ 시민강좌에서 이 임나일본부설이 맞는다는 주장이 나왔다.

전 고려대학교 교수, 김현구씨가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이날 <일본서기> 신공황후조를 근거로 이 같은 주장을 펼쳤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부지방을 지배한 것은 일본, 야마토왜가 아니라, 백제장군 목라근자 등 목씨 일족이다. 그런데 목라근자 아들 목만치가 일본으로 건너가 왜인이 되었다. 이후 목씨 일족은 소아蘇我씨 가문 조상이 된다. 소아씨 가문은 일본왜왕을 죽이기도 하는 등 일왕가를 좌지우지 했다. 이렇게 야마토 왜 정권을 잡은 목씨 일족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 한다. 이 같은 김씨 주장을 종합하면 일본이 임나를 지배했다는 말이다.

▲ 전 고려대 교수 김현구씨가 서기2017.09.27. 국립김해박물관에서 '식민사관과 임나일본부설'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씨는 목씨가 왜인이 되었다는 부분을 특히 강조했다.

“일본서기에 목만치가 대왜인大倭人이라고 기록하고 있어요. 일본에서는 일본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럼, 목만치가 건너가서 일본사람이 된 거죠! 그렇죠? 예! 제가 이걸 멋있게 입증했습니다.”

결국 김씨가 아무리 백제인 목씨가 임나를 지배했다고 강변해도, 그 목씨가 왜인, 즉 일본인으로 국적을 바꿨다고 스스로 주장함으로써 임나를 왜인이 지배한 것이 되어버렸다. 실제로 그는 목씨 후손인 소아씨가 집권한 기간에 목씨일족이 임나를 지배했다고 했다.

이렇게 주장해 놓고 김씨는 마치 자신이 식민사관을 비판하고 극복하는데 노력해 온 것처럼 강의 초반을 이끌었다. 김씨는 이런 선상에서 자신이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하겠다며 전제를 하나 제시했다. 이른바 동아시아 공동체론이다. 그에 따르면 세계는 지금 하나의 공동체로 나아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유럽공동체 유럽연합(EU)이다. 마찬가지로 동아시아도 이런 추세로 나가고 있다고 했다. 한중일 삼국간의 인적, 물적 교류 량을 보면 삼국이 단일공동체로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주장하면서도 한국 중국 일본 각국이 단일공동체가 되기를 원하는지 여부는 언급하지 않았다.

유럽연합(EU)이 그렇게 하고 있으니 동아시도 그렇게 가야한다는 것이다. 단일공동체가 되려면 한중일 삼국 간에 벌어지고 있는 역사분쟁이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중국과 일본이 서로 패권경쟁을 하고 있어 쉽지 않다고 보았다. 패권경쟁은 중국에서는 동북공정으로 나타나고 있고 일본에서는 다시 임나일본부설이 교육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이 패권경쟁을 역사분쟁 속에서 찾으면서 역사분쟁중의 하나인 임나일본부설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한일간이라도 하나가 되는 방향으로 가기를 원했다.

▲ 김현구씨는 일제 식민사학자 쓰에마스야스카즈의 주장을 그대로 끌어다가, 주체만 백제라고 했을 뿐 임나일본부설을 그대로 인정했다. 지도를 보면 임나가 경남, 전남 심지어 충청도까지 차지하고 있다. 이 광범위한 지역을 일본이 지배했다는 것이다. 당시 백제나 신라보다 철기를 생산하지 못할 정도로 약체였던 왜가 지배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해결방법은 결국 일본에 유리한 것으로써 한국은 일본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논리만 제공한 했다. 그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일본은 다시 임나일본부를 교과서에 싣고 있다. (임나일본부설 근거로 사용되는)광개토대왕 비문이 있는데 백제와 왜가 연합해서 고구려와 싸웠다는 구절이다. 이는 과거부터 한반도 남부는 일본 영향 하에 있었으니까, 일본하고 손잡고 중국에 대항해 나가야 한다, 이런 메시지를 (일본이) 한국에 보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부응하기 위해서 이 날 강좌를 맡은 듯 했다.

김씨는 또 한국과 일본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이런 말도 했다. “우리는 일본 천황가는 백제에서 건너갔고 일본을 백제의 속국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반대로 일본은 한반도를 과거 2백년간 지배했다고 거꾸로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서로 무시하고 있다. 이런 것이 동아시가 하나의 공동체로 나가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김씨의 이 말은 언 듯 타당한 듯 보인다. 그러나 뜯어보면 양비론에 가깝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하나는 거짓이 하나는 진실이다. 현재 일본 왕가는 백제계가 분명하다. 현 아키히토 일왕이 스스로 고백한 바 있다. 이는 역사진실이다. 그러나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2백년간 지배했다는 것은 거짓이다. 그런데도 김씨는 이것이 모두 마치 거짓임 것처럼 지적했다. 김씨의 이러한 태도는 강연 내내 이어졌다. 일제는 식민사관에 꿰맞추기 위해서 광개토대왕비문을 조작했다. 일제는 비문에 회를 발라 글자를 일본에 유리하게 조작한 후 탁본을 떠서 그것을 근거로 비문을 해석했다. 이는 다 알려진 사실이다. 회를 바른 흔적을 비문에서 직접 확인하기 까지 했다. 이것을 밝혀 낸 것이 재일동포 사학자 이진희씨다. 그런데도 이 비문조작여부에 대한 견해가 다양하다며 양비론 태도를 보였다.

반면에 임나위치 문제에서는 이날 식민사관을 비판할 의도로 소개한 일제식민사학자. 스에마스야츠카즈(末松保和)의 주장을 신봉했다. 다른 일제식민사학자들은 임나를 김해, 고령, 함안 등 작은 지역으로 국한했다. 그런데 이날 김씨는 스에마스 설에 따라 경남, 전남 심지어는 충북까지 아우르는 지역을 임나로 보았다. 이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불리한 설이다. 임나일본부설을 인정하면 이 넓은 지역을 과거 일본이 식민 지배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반면에 임나가 김해, 고령, 함안이라고 하면 이 지역만 식민지배한 것이 된다. 특히 이날 눈에 띄는 것은 임나일본부설의 근거가 되는 일본서기 신공황후조에 나오는 지명을 우리나라 남부지방에 꿰맞춰놓았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대구를 탁순, 전남 강진을 고혜진이라고 했다. 이 지명 비정도 스에마스가 한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한편 이날 김씨는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 근거도 내놨다. 대략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그 중에서 4가지가 핵심이다. 첫째, 신공황후가 서기369년에 가라 7국을 평정하고 백제와 신라를 속국으로 만들었다. 둘째, 광개토대왕비문 404년조에 대방계까지 왜가 올라가서 고구려와 싸웠다. 셋째, 중국 <송서>에 서기5세기 왜 5왕이 한반도 남부에 군사권을 요구했다. 넷째, 전방후원분은 일본이 원조다.

김씨는 이 근거들을 직접 반박하지 않았다. 첫 번째 것은 평정한 주체가 일본이 아닌 백제라고 했다. 두 번째 것은 사실로 인정했다. 세 번째 것도 사실로 인정했다. 네 번째 것도 사실로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김씨는 임나일본부설을 부정한다고 했다. 근거는 임나를 지배한 것이 일본이 아니라, 백제라는 것 딱 하나다. 그러나 앞서 밝혔듯이 백제인 목씨가 왜인이 되어 임나를 지배했다고 함으로써 결국 주체도 일본이 되어버렸다.

이날 김씨가 내세운 임나일본부설 근거는 직접 반박이 가능하다. 신공황후가 신라를 정벌해서 지배했다는 일본서기 기사는 일본 극우파 외에는 아무도 사실로 보지 않는다. 광개토대왕비분의 왜가 대방계까지 올라와서 싸웠다는 기사도 반박된다. 대방계는 대방군인데 이는 한나라시기 낙랑군 속현이었다가 후대에 독립한 군이다. 낙랑군은 현재 중국 하북성 난하하류 일대다. 특히 대방은 열수라고 했다. 열수 역시 낙랑군에 있었다. 결국 광개토대왕비문에 나오는 왜는 북한 황해도 지역으로 간 것이 아니다. 대륙 어디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다. 따라서 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남쪽에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왜가 황해도 대방군지역으로 진격했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 더구나 서기404년일 이다. 설사 대방군이 황해도에 있었다고 치더라도 이때는 이미 대방군이 사라진 뒤다. 식민사학계에서 조차도 인정하는 것이다.

<송서> 왜5왕 문제도 해결된다. <송서>내용은 김씨가 보는 것처럼 한반도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북한 학자 김석형 선생이 밝혀낸 듯이 일본열도로 이주해간 삼한 소국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다. 김씨는 김석형 선생이 일본을 궁지에 몰 정도로 반박을 멋있게 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또 양비론을 내세워 김석형선생이 밝힌 일본열도 삼한삼국분국설을 부정했다. 임나는 명백한 한반도이기 때문에 김석형 선생이 주장이 틀렸다는 것이다.

이른바 전방후원분 일본 원조설도 반박된다. 김씨는 전방후원분이 일본에서 기원했다는 일본 극우학자들을 그대로 믿고 있다. 그러면서 전남지방에서 발견된 전방후원분(장고형무덤)들은 왜에서 파견되어 백제를 위해서 복무한 왜인들이 조성한 무덤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는 김씨의 맹목적 믿음에 지나지 않는다. 김씨는 무덤 연대가 일본 것이 서기3세기 때 것으로 한국 것 보다 높게 나오기 때문에 일본이 원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본 것은 일본 고대사 권위자, ‘이시와타리 신이치로’ 교수가 과학적인 방법으로 측정해 본 결과 서기390년으로 편년된다. 영산강 유역서 발굴된 장고형무덤은 이 보다 훨씬 더 오래된 것으로 나온다. 이시와타리 교수는 일본극우파의 야마토중심의 왜곡된 황국사관에 반기를 들고 한일고대사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데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그는 연륜연대측정법, 자연과학적 연대측정법 연구가 더욱 진행된다면 야마토 왜 중심의 황국사관이 붕괴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김현구씨는 백제인 목씨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이이 되었다고 했다. 이 목씨일족이 임나를 지배했다고 했다. 결국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한 것이다.

장고형무덤이 한국이 원조라는 것은 또 다른 일본인 학자들의 주장 속에서도 나타난다. 장고형무덤의 원형은 방형주구형 무덤이라는 것이다. 네모난 무덤 주위에 물길=도랑이 형성된 형태라는 것이다. 관을 놓고 주위의 흙으로 덮다 보니 파낸 부분이 자연스럽게 도랑이 되어 해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형은 일본의 구주지방에서 발견되지만 더 오래된 원형은 충청도, 전라도에서 다수 발견되었다. 지난 서기1996년에 충남 보령의 관당리에서 가장 오래된 방형주구형 무덤이 나왔다. 이때 일본은 NHK국영방송에서 헬기까지 띄워 일본전역에 방송하였다. 여기에 참가한 일본인 학자는 평생을 쌓아온 학문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고통을 토로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날 김씨는 일왕을 일관되게 ‘천황’이라고 높여 불렀다. 또한 왜가 신라를 ‘정벌’했다고 했다. 왜가 ‘활약’했다는 표현도 즐겨 사용했다. 한편 강의가 끝난 후 질문 받으라고 하니, 질문을 받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이전 강좌에서 질문을 받은 것과 대조를 이뤘다. 자신의 자충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임나일본부설 근거로 기능하는 <일본서기>를 일본이 아닌 백제가 임나를 지배했다고 꾸미려다 보니 곳곳에서 허점을 노출시켰다. 대표적인 것이 백제인, 목씨 일가가 임나를 지배했다는 부분이다. 그는 목씨가 왜인이 되었다고 함으로써 자충수에 빠졌다.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김씨가 질문을 거부하자 방청객들을 향해 외쳤다. 김씨가 임나일본부설을 부정하고 식민사관을 비판하겠다고 강연한 것 같지만, 실상은 이렇게 식민사관을 펼쳤고 임나일본부설이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아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많은 분들이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다음 주에 자세하게 써서 나눠 주겠다고 했다.

한편 이날도 박물관 직원들이 취재방해에 나섰다. 안경을 끼고 머리카락을 희뿌옇게 물들인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젊은 남자의 지원을 받아 훼방했다. 식민사관을 대놓고 펼치는 김현구씨 취재를 거머리 떼처럼 달라붙어 방해했다. 조선총독부 조선인 말단 순사를 보는 듯 했다. 대일항쟁기 독립투사들이 조선인 순사, 민족반역자들을 처단했다. 처단할 때 들었던 마음이 이런 것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다. 다음에 또 취재방해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장담 못한다. 이 시민강좌를 주최하는 국립김해박물관이 초상권, 저작권 운운하며 방해하는데 기자도 이 권리 주체다. 왜냐 하면 강좌 중에 명백히 식민사관을 주입할 경우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질문을 할 경우, 강좌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 강좌에서 기자도 저들이 말하는 초상권과 저작권의 주체가 된다.

▲ 이날 시민강좌를 공익을 위해서 취재했다. 그런데 정체불명의 40대로 보이는 여자가 나타나 취재를 방해했다. 박물관 직원으로 보였다. 저렇게 서서 시야를 가로 막았다.

또 이 강좌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에게 개방되고 공개되어 있다. 더구나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기관이 개최하고 있다. 따라서 세금 낸 국민으로서 정보 취득행위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런데도 저들은 저들만이 초상권과 저작권을 갖고 있다는 듯이 법적 처벌 운운 하며 협박하고 취재방해를 일삼고 있다. 그렇게 초상권, 저작권이 침해되었다면 법절차에 따라서 기자를 고소하면 된다. 취재목적으로 촬영한 동영상은 나중에 허위기사 운운하며 문제를 제기할 경우 사실기사임을 밝히는 증거물이기도 하다. 또 강좌 내용을 다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영상을 보고 기사를 정확하게 쓰려는 것이다. 더구나 저들이 우려하는 외부유출같은 것은 없다고 분명히 고지했으며 필요하다면 서면으로 외부불유출 각서도 써주겠다고 까지 했다. 또 공문을 보내면 취재협조를 해 줄 것처럼 반응을 보여, 박물관장, 임학종에게 공문까지 보냈다. 그럼에도 저들은 취재를 방해하고 있다.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알아야 하는 공익이다.

지난 서기2017.05.11. 대법원은 김현구씨가 고소한 명예훼손사건 상고심에서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덕일 소장은 그의 책 <우리안의 식민사관>에서, 김현구씨가 조선총독부사관을 추종하는 식민사학자이고, 임나일본부설이 사실이라고 주장했다고 썼다. 대법원은 이것이 죄가 안 된다고 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알아야 하는 공익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찬 가지로 이 시민강좌는 식민사관과 관련된 것으로 공익에 해당한다. 일제는 식민사관을 만들어 우리나라를 침략했다. 그런데 해방된 지 72년이 되었어도 전혀 청산되지 않고 우리의식을 여전히 통제, 지배하고 있다. 일제는 식민사관이라는 무서운 쇠말뚝을 우리 안에 박아 놓았다. 일본은 이것을 잘 알고 있기에 지금도 기회만 되면 재침략을 노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김해박물관이 일제식민사관을 시민강좌라는 명목으로 국민을 상대로 대놓고 주입시키고 있다. 저지, 퇴치하기는커녕 나라를 또 팔아먹는 짓을 자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도 공문을 보냈지만 촛불민심 염원을 안고 입각한 도종환 장관은 아무 반응이 없다. 이런 나라에서 대한민국 국민 누가 자존감과 희망을 갖고 살 수 있겠는가. 국립김해박물관을 비롯하여 전국 박물관을 산하기관으로 두고 있는 문체부는 박물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매국행위를 색출해서 관련자를 처벌하고 퇴출시켜야 할 것이다. 처벌 근거 조례나 법률이 없으면 반민족행위처벌특별법을 제정해야한다. 당장은 문체부 부령을 발동해서 국립김해박물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매국행위를 중단시켜야 한다.

이날도 지난주 강의를 비평한 인쇄물을 방청시민들에게 나눠줬다. 대부분 좋은 반응들이었다. 어떤 아주머니는 ‘아저씨 이리오세요’ 하면서 사탕을 주었다. 다음 강좌는 서기2017.10.11. 경북대학교 사학과 주보돈 교수가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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