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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돈 전 교수, ‘신라는 일본 속국이었다?’고구려가 고당전쟁에서 이긴 것은 설연타 유목족 덕택이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7.09.22 12:10

'고당 전쟁 시 고구려 서쪽국경선 요하를 넘지 못했다.'

'당시 평양성은 현재 북한 평양이었다.'

'당시 당나라는 세계최강의 군대였다.'

'고구려는 당의 경제력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서기7세기 일본은 황제국가, 신라에게 속국 강요하자 신라가 이에 응했다.'

 

삼국은 언제 나라가 되었을까. 삼국사기에 따르면 삼국은 모두 서기전에 일어났다. 물론 국가의 모습을 띠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사 기록을 부정하는 주장이 나와 또 다시 충격을 주고 있다. 서기2017.09.21. 한성백제박물관에서 한국고대사학회가 주도하는 신라사 시민강좌에서 노태돈 전 서울대 교수가 이 같은 관점을 유지했다. 노 전 교수는 이날 ‘동아시아 국제전과 신라의 통일’ 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서기5세기말 이후에 삼국이 영역국가로 발전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영역국가란 노 전 교수에 의하면 중앙에서 지역에 단위 행정기구를 설치하고 관리를 파견해서 통치하는 국가를 말한다. 중앙집권 국가라고도 불리며 고대국가라고도 한다.

노 전 교수는 삼국이 5세기 말까지는 이런 국가체제를 갖추고 있지 않은 촌락공동체 형식을 띠고 있었다고 했다. 따라서 이 전에는 삼국이 전쟁을 하더라도 병력 동원 규모가 몇 백 명에서 몇 천 명 수준에 머물렀다고 한다. 국가가 아니었다는 것을 이런 비유로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노 전 교수는 삼국통일전쟁의 동력 원인이라는 꼭지에서 삼국 상황을 이렇게 설정했다. 노 전 교수에 의하면 삼국이 국가로써 전쟁다운 전쟁을 하는 시기는 5세기 말부터다. 이때 서야 야철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산력이 증가해 전쟁할 수 있는 부를 축적했다는 것이다. 노 전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적석목곽분에서 나온 철제 괭이 등 철제 농구기구에서 찾았다. 철제 농기구가 보급되면서 농업생산력이 증대되어 국가다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삼국이 대규모 전쟁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삼국통일전쟁상황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았다.

▲ 서기2017.09.21. 노태돈 서울대 전 교수가 한성백제박물관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이른바 삼국통일전쟁에는 반드시 당나라가 끼어든다. 노 전 교수는 당나라를 높게 평가했다. 당시 동아시아에서 최강의 국력을 자랑하는 나라였다고 하면서 당나라 왕, 이세민을 특히 명군, 명장으로 추켜세웠다. 이러한 당나라가 고구려를 ‘정벌’ 했는데 결국 실패하고 만다. 침공 당시 당나라가 얼마나 많은 병력을 동원했는지 기록에 나오지 않는다. 노 전 교수는 당나라가 치욕을 감추기 위해서 일부러 기록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이세민이 당대 최고의 명군인데 동북방의 작은 나라, 고구려에게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서 패한 것으로 알려지면 체면이 안 선다는 얘기다.

노 전 교수의 이러한 관점은 고당전쟁 전체를 관통했다. 이세민 시기에 당나라는 고구려에게 패했다. 그런데 노 전 교수는 이 전쟁을 고구려가 자체 역량으로 이긴 것으로 보지 않았다. 당나라는 세계 최강의 군대인데 당나라가 고구려에게 패한 것은 유목민족 설연타 때문이라고 보았다. 북방 유목민족 설연타가 당군이 고구려로 전쟁하러 간 사이 당나라 수도, 장안으로 침입하려고 해서 불가피하게 철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구려 자체의 역량 때문이 아니라, 철군할 때 고구려가 당군 후미를 치는 바람에 이겼다고 보았다.

그러나 당나라는 가장 강력했다는 당 이세민 시절에도 당시 티벳의 토번제국에게 패하여 자신 딸, 문성공주를 토번제국 송첸칸포칸에게 주어야 하는 수모를 겪을 만큼 그리 강력하지 않았다. 또한 고구려 침략군 장군으로 참여한 설인귀도 토번제국에 패하여 서인으로 강등되기 까지 한다. 이외에 당나라 장안이 서역 유목민족에 함락당하는 사례도 있다.

한편 노 전 교수는 삼국통일전쟁시기에 왜를 삼국과 대등한 독립된 국가로 보았다. 서기7세기 전후해서 신라가 왜국을 신라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고 보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또 노 전 교수는 신라와 일본과의 관계를 서기7세기 상황을 기록하고 있는 일본서기를 바탕으로 설명했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당시 일본은 황제 국으로써 신라 일본의 번국, 속국이다. 일본서기에는 신라가 일본에 끊임없이 조공을 한 것으로 나오는데 이것을 노 전 교수는 역사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당시 신라와 당이 전쟁 상황이라 신라는 이러한 일본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복종했다고 했다. 다만 신라의 진짜 속내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로 비껴갔다.

▲ 노 전 교수는 삼국전쟁과 고당 전쟁 지역을 반도와 만주일대로 한정해서 설명했다. 그러나 삼국사기 지리지, 삼국유사 고구려 편에서는 고구려 중심지가 요하일대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기 신라는 문무왕과 신문왕 때인데 삼국사기 기록에는 신라와 일본 간의 어떠한 기록도 보이지 않는다. 노 전 교수는 일본서기만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신라가 일본의 속국인 것처럼 본 것이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현대까지 연결시켜 해석했다. 우리가 지금 일본을 이웃국가로 보지만 일본은 지금도 우리를 속국, 번국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그는 고당전쟁 상황을 그리면서 익히 알려진 바대로 고구려 마지막 수도인 평양성을 현재 북한의 평양으로 설정했다. 또한 고구려의 서쪽 경계를 현재 요하 정도로 보았다. 이러한 상태에서 고당전쟁과 나당연합군과의 전쟁이 벌어졌다고 했다. 이에 대하여 질문시간에 고구려의 서쪽 국경선과 평양성의 위치를 전혀 다르게 보는 질문이 있었다. 주몽이 고구려를 처음 도읍한 곳이 졸본, 흘승골성이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의하면 졸본은 현재 요하 서쪽 의무려산일대로 나오는 데 이것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이었다. 이에 노 전 교수는 그 기록은 하나의 견해일 뿐이고 그것을 그대로 믿을 필요는 없다고 했다.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역사사실로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 그런 기록을 그대로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질문자는 '대무신왕 때부터 마지막 보장왕 때 까지 고구려 태왕들이 그곳 시조 묘에 제사지내러 갔다고 나오는데, 이것은 그럼 뭐냐'고 되물었다. 이에 “그는 글쎄요, 대무신왕조에 의무려산에 제사지내러 갔다는 기록이 있나요” 라며 여전히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물론 노 전 교수 말대로 ‘의무려산’ 에 갔다는 기록은 나오지 않는다. 시조 묘에 제사하러 갔다고 나온다. 그러나 분명히 의무려산 지역이 졸본이라고 나오고 삼국유사 고구려 편에서도 졸본이 요동경계에 있고 구체적으로 용산에 고주몽이 묻혔다고 한다. 이런 정황을 보면 시조 묘가 요동인근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삼국사기 지리지 기록과 어느 정도 일치한다.

더구나 이 시조 묘를 고구려가 망할 때 까지 모셨다고 하는데 이것도 졸본이 위치를 간접적으로 확인시켜준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중심지는 요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자연히 고당전쟁 당시 평양도 이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고당전쟁 상황을 전면 재 검토해야한다는 결론이다. 이런 의문에 논 전 교수는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 이날 강좌에서 노 전 교수는 일본서기를 전적으로 신뢰하여 신라가 일본의 속국이었던 것 처럼 주장했다. 일본서기는 신라가 왜에게 조공을 무수히 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사, 삼국사기는 저 시기에 일본과 교류한 기록이 전무하다. 또한 일본에 속국인 것 처럼 묘사한 기록도 찾아 볼 수 없다.

한편 이날 진풍경도 벌어졌다. 매번 나눠주는 비평문에 줄을 치며 읽는 방청객이 있는 가하면, 비평문에 의문을 품으며 토의를 요청하는 방청객도 나타났다. 또한 늘 두 장을 달라고 하는 방청객은 그 사연을 들려주었다. 애들 밥해주어야 해서 못 오는 분이 있는데 그 분이 갖다 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애들 엄마로 보이는 데 그 방청객 부인은 아니었다. 다음 강좌는 전덕재 단국대학 교수가 맡는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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