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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병자호란, 남연군묘 그리고...남연군묘, ‘중화는 우리 영원한 등불이시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7.09.18 13:40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역사, 아무도 처벌되지 않는 역사, 이 구조는 현재진행형이다.

역사에 눈먼자가 집권할 때, 죽어나가는 것은 민생, 민초들이다.

 

“이제 우리 두 나라는 아비와 아들이 되었으니 무슨 말인들 듣지 않겠소, 이후에 명나라를 칠 때 명령하는 대로 따르리다.”

팔도도제찰사 겸 영의정 김류金瑬가 한 말이다. 청나라 2차 침입(병자호란)때인 서기1637.2.3. 산성일기에 나오는 기록이다.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항전하다 항복한 뒤, 청나라 장군 용골대에게 일국의 재상이라는 자가 이렇게 아양을 떨었다. 소중화 조선은 중국 명나라 ‘화이사관華夷史觀’을 숭모하여 청나라를 사람취급 안했다. 금수만도 못한 오랑캐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명나라와 함께 쳐 없애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광해군 때는 동아시아 패자로 떠오르는 청나라 실체를 인정하고 실리외교로 나갔다. 명나라를 상전으로 모시던 뿌리박힌 전통도 지키면서 청나라 실체도 인정했다. 체면과 명분에 사로잡혀 코앞에서 벌어지는 실상을, 눈 가리고 없다는 식의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광해군을 폭력으로 몰아내고 들어선 인조정권은 하루아침에 외교정책을 180도 바꾸어 버린다. 오매불망 명나라 숭배, 배청 정책으로 돌아섰다. 결국 청나라 기습공격을 받고 두 달도 못 버티고 항복해 버린다. 바로 두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쳐 죽여야 할 오랑캐라고 욕하며 기세등등하던 자들이 고양이 앞 쥐처럼 비굴해졌다.

▲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에 위치한 남한산성. 서기1636.12. 청나라 군대 기습을 받자, 소중화 조선 조정은 피신할 곳을 찾던 중 남한산성으로 급하게 들어선다. 인조반정으로 들어선 반정세력은 전쟁 앞에서 갈팔질팡했다. 당시 산성안의 병력과 행정을 총 지휘했던 팔도도제찰사, 영의정 김류의 자식은 강화도로 왕족을 대리고 피신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강화도에 피란민 몰려 들어 쌀값이 오르자, 지방에서 쌀을 싸게 들여와 돈벌이에 나선다. 그 번돈으로 흥청망청했다. 몽골침입 때 처럼 청군도 건너올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군은 배를 건조해서 기습한다. 결국 청나라에 무릎꿇고 만다. 송파 삼전도로 끌려나와 인조가 청태종 앞에서 땅에 머리를 조아리는 가장 치욕적인 항복의식을 치룬다. 그 때도 저렇게 살을 파고드는 겨울, 흰눈이 내렸을 것이다.

인조반정세력이 청나라에 패한 대가는 혹독했다. 그 중 가장 처참한 비극은 60만 명에 달하는 백성들이 청나라 포로로 끌려갔다는 점이다. 청군은 닥치는 대로 사냥하듯이 우리 백성들을 잡아갔다. 그 중에는 김류같은 영의정 집안도 예외가 아니었다. 김류 첩과 딸도 포로가 되었는데 이 때 김류가 하는 소리를 보면 지금 이 나라 지배세력의 상태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만일 포로에서 내 식구들을 빼 내어 주면, 당당히 천금千金을 주리다.” 청군 사령관, 용골대에게 김류가 이어 한 말이다. 산성일기는 이 얘기를 다루며 이후 포로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는데 이는 김류가 자기 첩과 딸 몸 값을 터무니없이 올려놨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용골대가 반응이 없자, 이번에는 통역관으로 따라온 조선인 정명수에게 달려가 사정한다.

“이제 판사(정명수)와 함께 일가를 이루었으니 판사가 청하는 것을 내 어찌 안 들어 줄까요, 또 내 청도 판사가 차마 어찌 안 들어 주겠소, 그러니 내 딸 자식 살리는 일을 판사가 팔 걷어 부치고 십분 해 주시오.”

김류가 이렇게 통 사정하며 정명수를 붙잡고 매달리자, 정명수는 자신 권한 밖 일이라며 뿌리치고 나갔다. 천민 취급하며 무시하던 정명수에게 하루아침에 돌변하여 머리 조아리며 평소 목숨처럼 아끼던 자존심과 체면까지 버리고 있다. 이렇게 사대부 가문 등 있는 집은 돈을 얼마든지 내 주고 식구들을 포로에서 빼내왔다. 국민개병제를 실시는 지금, 군대 안 보내려고 갖은 짓을 해서 빼내는 이 나라 가진 세력과 하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아무 영문도 모르고 전쟁을 당하고 포로가 된 힘없고 배경 없는 대부분 백성들은 졸지에 청나라 노예시장에서 노예로 팔려나갔다. 전쟁이 끝난 후 전쟁을 불러온 세력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고 처벌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공을 세웠다며 상을 받고 승진한다. 이 세력이 그대로 서기19세기 후반까지 이어졌고 과거의 관성대로 무능, 부패, 무책임으로 일관하다, 일제에게 나라를 팔아먹고 만다. 어떤 교훈도 대책도 없이 세월만 보내다가 청나라에서 일본으로 배만 갈아탔다. 지금은 일본에서 미국으로 또 다시 배를 갈아 탄 상태다. 지금 돌아가는 우리사회의 실상을 보면 4백여 년 전에 벌어진 참상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김병기 박사가 남연군묘역에서 함께한 참가자들에게 이 묘소에 얽힌 내력을 설명하고 있다. 해가 기울어가는  때라 그늘이 짙게 드리웠다.  묘를 이곳에 쓰면서 이씨왕조도 그렇게 기울어 갔다. 이곳 명당에 묘를 쓰면 왕이 두명이나 나온다고 했으나,  서양제국주의 열강의 하수인이 도굴을 시도함으로써, 명당자리가 오히려 이씨 왕조의 명을 재촉할 줄은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다.

남연군묘를 찾았다. 서기2017.09.16. 소중화 조선말 한 시대를 풍미했던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 묘비석 앞에 섰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가 추진한 역사기행 국내답사였다. 45인승 버스를 타고 서산군 가야산 일대 역사유적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찾은 유적지였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가야산 아래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하응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 무덤이라 그런지 들어가는 입구부터 단장을 해놓고 있었다. 충남 문화재로 등록되어 지역 역사유적으로 가꾸어 놓고 있었다. 이 묘비 석에서 4백 미터가 넘는 길을 따라 올라가니 커다란 사각형 언덕이 앞을 가로 막았다. 처음에는 이 대규모 언덕이 남연군묘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덕에는 올라가는 계단까지 좁게 나 있었다. 20미터가 넘을 듯 한 언덕을 올라가니 비로소 남연군 묘소가 나타났다. 전형적인 알 모양의 무덤과 석물이 배치되어 있었다.

김병기 박사의 해설을 들어 보니, 남연군묘가 이곳에 설치된 사연부터 심상치 않다. 원래 남연군묘는 경기도 연천 남송정에 있었다. 그런데 지관이 이곳에 묘를 쓰면 2대에 걸쳐서 왕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이곳에는 원래 가야사伽倻寺라는 절이 있었다. 가량갑사伽良岬寺, 가야갑사伽倻岬寺라고도 했다. 그래서 절을 불태워 버리고 연천에서 이곳으로 묘를 옮겼다고 한다. 옮긴 때는 서기1846년이다. 이때 시신을 옮겨온 상여는 별도로 상여집을 지어 보관했다. 지금은 모형을 만들어 묘 옆에 상여집을 지어 보관하고 있다.

김병기 박사가 해설을 이어가는 동안 묘 옆에 세워진 비문을 살펴보았다. 오른쪽에서 부터 세로로 새겨진 비문이었다. 대략 훑어보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눈길이 멈췄다. 비를 뚫을 듯 한 강렬한 눈빛이 마지막 문장에 꽂혔다.

▲ 남연군 묘 옆에 세워져 있는 비석. 왼쪽 상단부터 아래로 '숭정기원후4을축3월 일립崇禎紀元後四乙丑三月 日立’ 이라고 새겨져 있다. '나'는 온데간데 없다. 남이 들어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주인이 죽은지 수백년이 흐르고 있건만, 죽은 망령을 붇들고 망상속에서 허우적 거리다가 나라가 단군이래 완전히 망하는 비극을 당했다.

‘숭정기원후4을축3월 일립崇禎紀元後四乙丑三月 日立’. 숭정기원후 4일인 을축년 3월 모일에 비를 세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숭정은 명나라 마지막 왕 의종(제위 서기1628~1644)을 가리킨다. 명나라가 망한지 2백년이 넘어가고 있는데도 망한 명나라 연호를 쓴 것이다. 서기1638. 청나라에게 신속한 후 2백년이 넘었는데 명나라가 살아서 ‘영원히 우리를 이끌고 있다’는 듯이 쓰고 있다. 정신생활과 실생활에서 유교 성리학으로 사는 일반 유학자라고 하면 이해될 수 있다. 유학의 중국 명나라는 이들에게 은혜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망한지 2백년이 넘어가는 명나라 연호를 왕족이 쓰고 있다.  묘를 세운 날을 당시 소중화 조선의 상국, 청나라 연호도 아니고, 그렇다고 단군기원도 아닌 청나라한테 망해서 존재하지 않는 명나라 연호를 쓰고 있다. 이 비석만이 아니었다.

묘소 언덕 아래 다른 비석에도 어김없이 숭정기원후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또 비석 앞부분에는 비문 첫 시작이 유명조선有明朝鮮이다. 다른 비석도 마찬가지다. 굳이 풀이하면 ‘명나라 소유물 조선’이다. 이날 함께 답사한 한문전문가이자 제왕학 한 전문가는 ‘유명’을 ‘대명大明’이라고 풀었다. 그러나 마찬가지다. 대명조선이라고 해도 ‘대명나라의 조선’이라고 풀이되기 때문이다. ‘대명나라에 소속된 조선’, ‘대명나라가 소유하고 있는 조선’이다.

중화사대주의가 뼛속까지 녹아들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있든 머릿속에는 ‘오직 중화만이 우리를 영원히 인도하신다’는 신앙으로 가득차 있음을 알 수 있다.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도 중화만을 찾다가 병자호란을 불러들였다. 그 결과 60만 명을 노예로 만들어 사지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서기19세기말 다시 일제침략을 불러들였다. 그 결과 일제침략기 일본군 성노예, 강제징용, 일본군 총알받이 등 수백만 명을 다시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지금 그 세력이 다시 이 나라 지배세력으로 군림하고 있다. 주인이 명나라에서 일본 그리고 미국으로 바뀐 것뿐이다.

지난겨울 촛불을 들었지만, 이 강고한 세력은 잠시 주춤 했을 뿐 다시 돌아오고 있다. 문재인 정권은 촛불민심을 등에 업고 들어섰지만, 미국이라는 파고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미국에 달라붙어 더 설쳐대고 있다. 대일항쟁기 조선인 순사가 일제경찰 보다 더 악랄하게 독립투사들을 고문하고 살해했듯이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핵을 빌미로 북한을 대하는 태도도 이와 다르지 않다. 문대통령이 요즘 하는 소리를 보면 쫒겨나간 503를 보는 것 같다. 쫓겨난 503호가 청와대 있을 때, 말을 해도 자기가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한다고 조롱 받았다. 문 대통령도 같은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미국이 세계유일의 초강대국이라서 그러는 것일까. 북쪽을 볼 때 그렇지 않다. 정신상태가 문제다. 한쪽은 자주自主고, 한쪽은 사대事大다. 남쪽이나 북쪽이나 한 어머니 배속에서 나왔을 텐데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 있는가. 503호가 다음 달이면 구속이 만료된다고 한다. 지금 이대로 가면 석방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벌써부터 이런 얘기를 흘리며 석방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 국내 개혁이라도 제대로 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4개월이 넘어가는데도 도대체 뭣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아우성이 높아가고 있다.

▲ 묘소 앞으로 지세가 확 트여 있다. 저 멀리 다른 세상이 확 들어온다. 남연군이야 최상의 명당자리를 찾아 영원한 어머니 품에 다시 안장되었지만, 서양인에게 도굴됨으로써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흥선대원군으로 하여금 더욱 굳게 문호를 닫게 만든다. 망국으로 가는 길이었다.

청나라는 자기들과 손잡고 명나라를 치자고 인조정권에게 구애했다. 청나라는 몽골에도 이 같이 제안해 만주-몽골 연합정권을 세운다. 청태종이 만주족과 몽골족의 대칸으로 등극한다. 이렇게 쉽게 뭉칠 수 있는 것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역시의식 때문으로 보인다. 인조정권에 이 같은 제안을 한 것도 마찬가지다. 중국 명나라 보다는 만주족과 더 친연성이 있다는 역사의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조정권은 청나라의 이런 제안을 냉정하게 뿌리쳤다. 대신에 명나라에 더 충성하여 명나라 군대를 청나라 코앞에까지 끌어들인다. 이 때문에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난다.

지금 사드도 마찬가지다. 사드를 추가 배치함으로써 당장 전쟁은 일어나지 않고 있으나 남북한 민생들만 죽어나고 있다. 중국의 사드보복으로 경제손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이 된서리를 맞고 철수 준비를 하고 있다. 북한은 북한대로 유엔경제제재로 주민들만 고생길에 들어섰다. 이 비극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초에 전략을 가지고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 소위 ‘운전자론’을 진짜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핵화와 제재압박론만 고집하는 미국에 붙어 버림으로써 남북한 양쪽의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고 있다. 손실예방책을 담고 있는 중국, 러시아의 합리적인 해결책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오직 미국 가랑이만 붙들고 더 설치고 있다. 후보시절 준비된 대통령이라고 입이 닳도록 강조하던데 뭘 준비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청나라가 그랬듯이 지금 북한도 문재인 정권에게 호소한다. 미국에 붙지 말고 남북이 뭉치자고 한다. 핵과 미사일 문제는 북한과 미국 문제라고 한다. 핵문제는 북한이 미국과 담판해서 처리할 테니 신경 끄라고 한다. 조건 없이 지난 김대중, 노무현 때 합의해 놓은 민족번영길을 실천하자고 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은 비핵화하지 않으면 협력 없다며 거꾸로 가고 있다. 오히려 미국 보다 더 북한을 고통스럽게 하자고 설쳐대고 있다. 이명박근혜 정권이 비핵화만 외치다 세월 다 보냈는데도 이게 안보이는 모양이다. 김대중, 노무현 시기 남북화해번영을 이끌었던 경험자들이 수없이, ‘그러지 말고 조건 없는 대화에 나서라’고 외쳐도 소용없다. 아무작에도 쓸모없는 고집부리기는 전 주군主君, 노무현과 도찐 개찐이다.

북핵문제를 조금이라도 자주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문제는 이미 끝났다. 다만 시간이 조금 필요할 뿐이다. 굳이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볼 필요도 없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국민이라면 누가 승자인지 보인다. 판이 빤히 보인다는 얘기다. 그런데 일반인 보다 상상할 수 없는 고급정보를 갖고 있는 정부가 이 상식적인 판단을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소중화 조선이 중화사대주의에 중독되어 있었듯이, 문 대통령을 비롯하여 지금 정권을 구성하고 있는 인물들이 자주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충남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상왕산 개심사 오른쪽 뒷자락에 있는 산신각. 모든 산신각이 그렇듯이 이 산신각도 절간과는 거리를 두고 외롭게 떨어져 있다. 절을 지으면서 구색맞추기로 억지로 지어 놓은 흔적을 외면할 수 없다. 우리의 원형을 담고 있는 산신각에는 흰수염 산신이 옆에 백두산 호랭이를 끼고 소나무 아래 앉아 있다. <삼국유사> 고조선기 마지막 부분에 단군이 뒤에 아사달에 숨어들어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왜, 당당하지 못하고 숨어 들었을까, 주인은 산에 숨어들고 객이 주인행세를 하는 역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대한민국만이다. 북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그렇지 않다. 북은  산으로 숨어든 단군을 다시 주인 자리로 돌려 놓았다. 이 주인정신이 오늘 세계유일의 초 강대국 미국을 갖고 놀고있다.

지난겨울에 일어난 촛불은 자주自主였다. 반면에 문대통령이 당시 보여준 행태는 기회주의였다. 503호를 명예 퇴진시켜야 한다고 했다가 거센 촛불여론역풍을 맞자 촛불여론으로 기울었다. 촛불봉기에도 처음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물어 보니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느 쪽이 더 우세한 지 지켜보다가 우세한 쪽에 줄서야 겠다는 계산이다. 아니나 다를까, 촛불이 대세로 굳혀지자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그것도 처음에는 ‘박근혜는 업무에서 손 떼라’였다. 퇴진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촛불이 탄핵으로 기울자, 그때서야 합류했다. 스스로 의제를 설정하여 주도할 능력이 근본적으로 결여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그 전에 보여준 행태도 여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대선후보시절, 당선되면 북한먼저 가겠다고 했다. 책에 썼다. 이는 대선공약이나 다름없다. 책에 분명히 썼다는 것은 의지가 확고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시 이명박근혜가 파괴한 남북관계를 하루빨리 복원하라는 것이 대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자 정권인수를 할 새도 없이 취임한지 두 달도 안 되어 부랴부랴 미국으로 날아갔다. 막상 대통령이 되고 보니 미국이 대세로 보였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도 호남에서 패할 것 같자, 호남에서 패하면 정계 은퇴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전국에 걸쳐서 성적이 좋지 않을 것 같아 호남에서 만큼은 의미 있는 성적을 거두기 위한 배수진 이었다. 그러나 웬걸 전국에 걸쳐 예상외의 성적을 거두자, 호남에서 처참하게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 없었던 것으로 돌렸다. 503호 세력의 종북몰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503호세력이 국정원 등을 동원하여 종북몰이로 여론을 주도할 때 이를 정면 돌파하지 않았다. 자기가 종북세력이 아니라고 변명하기 바빴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천안함 폭침설을 주장했고 박정희, 이승만 묘에 가서 헌화하며 추켜세웠다. 당시 이게 대세였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성격이 지금 그대로 국정전반에 나타나고 있다. 사드배치문제, 대북제재압박문제, 모두 이 연장선상에 있다.

그는 지금 자기가 무슨 소리,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하고 있다. 확고한 자기주관이 없기 때문이다. 시류에 따라, 상황에 따라 춤추는 성격 때문이다. 이것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북미간 대결전은 이미 승패가 나와 있다. 북한이 하자는 대로 결국 결판날 것이다. 지금 문대통령은 미국보다 더 혹독하게 북한을 공격하고 있다. 참수부대창설해서 김정은을 제거해야 한다느니, 더욱 강력하게 응징해야 한다느니, 송유관을 끊어버려야 한다고 한다. 이러던 그가 언제 이런 말을 했냐는 듯이 뒤집을 날이 올 것이다. 여전히 핵무장을 고수하고 있는 북한과 경제 협력하는 날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전에 청와대에서 나와야 할지도 모른다. 촛불배신과 503호 세력의 공격으로 여론이 악화되면 오래 버티기 힘들 것이다. 벌써부터 어차피 보궐선거로 당선된 것이니 올해 말에 대통령선거 다시 하자는 여론이 일고 있다. 지금 우리는 문재인->문근혜->문재앙을 보고 있다. 또 하나의 ‘숭정기원후’가 아직도 우리 정신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를 믿고 찍은 백성들은 이 배반의 세월을 감내하기가 너무 고통스럽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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