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규 교수, 삼국 중국왕조에게 잘 보이려고 서로 경쟁한 것으로 묘사하다

여호규 교수, 중국동북공정논리 그대로 대변해 충격...

 

“서기전108년부터 서기313년까지 낙랑군이 평양에 존속한 것은 문헌사료와 고고학 자료로 명확하게 확인됩니다. 이것은 팩트입니다, 팩트, 그야말로 사실입니다!”

 

중국은 올 3월에 <중국고대동북역사편년총서>를 발간했는데 백제를 중국사로 만들어 버렸다.동북공정의 일환이다. 동북공정은 그동안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는 것으로 만 알려 졌으나, 사실은 훨씬 광범위하다는 것이 우실하 교수의 지적이다. 우 교수는 중국동북공정의 실체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가 시민을 상대로 한 강연이나 발간한 책을 보면 동북공정은 중국의 요하문명론의 한 부분이다. 요하문명론은 홍산문화를 중국이 창조한 것으로 보고 그 주인공이 중국 삼황오제의 한사람인 황제黃帝라고 한다. 곰 관련 상징물이 홍산문화지역에 나오는데 황제도 곰과 관련되었다며 연결시킨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머리 역사인 조선 단군도 황제후손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이에 따르면 단군 후손인 우리도 모두 중국인 후손이고 그 역사도 중국사가 된다. 이번에 백제사를 중국사라고 하는 것도 이런 논리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서진'시기를 나타내는 중국동북공정지도. 북한 지역 대부분이 중국 땅으로 되어 있다. 서기4세기 초반까지 중국 땅이었다는 소리다.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이 이 때 까지 존재했다는 국내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일제가 그랬듯이 중국은 역사침략을 먼저 완료해 놓고 기회가 되면 영토침략으로 이행할 것이다.

지난 4월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習近平)이 미국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과 수뇌회담을 하는 자리에서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고 했다. 시진핑의 이 발언은 동북공정논리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이 관련전문가들의 평이다.

그런데 이 같은 중국동북공정을 시민을 상대로 선전하는 발언이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그것도 사학과 교수의 입에서 나와 파란이 예상된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여호규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여 교수는 서기2017.09.14.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서 한국고대사학회가 주최한 시민강좌에서 이 같이 주장했다. 동북공정의 핵심은 중국 한나라가 고대에 북한지역을 점령하고 4백년이상 식민 지배했다는데 있다. 즉 중국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이 서기전108년에 북한 평양일대를 점령해서 서기313년까지 지배했다고 한다. 이날 시민강좌에서 여 교수가 이것이 확실한 역사 사실이라고 대못을 쳤다.

▲ 서기2017.09.14.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서 한국고대사학회가 주최한 신라사 시민강좌에서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여호규 교수가 강연을 하고 있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 중국 한나라식민기관, 낙랑군이 평양을 중심으로 4백년이 넘게 지배했다고 주장했다. 위 지도 왼쪽 노랑색 부분이 북한 평양은 물론 황해도, 심지어 경기도 일부까지 들어와 있다. 중국땅이라는 소리다. 이는 정확하게 중국동북공정지도와 같다.

그는 문헌사료나 고고학 유물로 확인된 것이라며 ‘팩트(fact)'라고 연거푸 말했다. “말 그대로 사실입니다.” 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 같이 확신에 찬 발언은 강연이 끝나고 방청객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나왔는데, 자신의 발언을 증명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비유와 사례를 들었다. 그가 ‘일제 침략과 식민지배 그리고 조선총독부를 지었다’고 하면 자신이 ‘식민사학자가 되는 것이냐’며 되물었다. 그리고 ‘아니라’며 ‘이것은 팩트’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낙랑군이 평양에 설치된 것도 ‘팩트, 사실’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면서 동북공정논리를 대변한다는 비판을 의식해서 인지, 낙랑군 평양지배 성격이나 내용을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고 했다. 액면 그대로 식민통치가 아니라는 풀이다. 이 말은 술은 마셨으나 음주운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는 성노예로 끌고 갔으나 자발적으로 갔다는 것과 같다. 이는 여 교수가 속한 한국고대사학회 구성원들 주장을 되풀이 한 것이다. 그는 자신도 이 같은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단 10개도 안 되는 문자를 가지고 자신이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는지 '여러분은 아마 모를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를 몰라주는 것이 억울하다는 소리다. 그러면서 개관적 사실과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는 다른데, 낙랑군 평양설 관련 질문자가 이것을 혼동해서 질문을 한 것이라고 몰아 세웠다. 이어 ‘역사학자는 기본적으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서 그 시기의 역사상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렇게 때문에 낙랑군=평양이 역사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는 고구려와 백제가 서기369년에 멸악산맥에서 전투를 벌인 사례도 들었다. 그 전에는 고구려와 백제 사이에 낙랑군과 대방군이 가로막고 있어서 전쟁을 하고 싶어도 못했다는 뜻이다. 고구려가 서기313년과 314년에 각각 낙랑군과 대방군을 멸망시켰기 때문에 장애물이 사라져 국경을 마주하게 된 뒤에 멸악산맥에서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더라도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것은 역사사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낙랑군이 사라지면서 삼국을 신라가 통일하고 고려로 이어지면서 오늘날 한민족이 형성되었다고 외쳤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기 전에는 한민족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는 이어 한국고대사학회의 낙랑군이 완전히 망한 것이 아니고 이사 갔다는 이른바 ‘교치론=교군론’을 펼쳤다. 평양에 있던 낙랑군민 일부가 요서 대릉하 지역으로 이동해서 묘용씨에 의해서 다시 낙랑군이 설치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북위가 멸망하는 6세기 중반까지 약2백년간 존속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 요서에 설치되었다는 낙랑군은 이 교치된 모용부가 설치한 낙랑군을 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나라가 설치한 낙랑군이 아니라는 소리다. 그러나 이것도 조선총독부에서 펴낸 조선반도사에 나오는 소리를 반복한 것이 지나지 않는다. 조선총독부 식민사관 되풀이다. 여 교수는 이 교치론을 확증시키기 위해서 남한에 있는 이북5도민 청을 사례로 들었다. 또한 미국 엘에이에 한국교민들을 모아 미국이 행정관청을 만들어 주면 이것이 교치된 낙랑군과 같은 것이라고 강변했다.

▲ 위 지도도 중국 식민기관, 낙랑군과 대방군이 평양과 황해도 일대로 그려져 있다. 아래는 삼한 소국들로 채워져 있다. 모두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을 대변하고 있다.

이러한 되풀이식 강조는 이날 강좌에 참석한 사학전공 대학원생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였다. 이날 강좌준비 실무를 맡은 대학원생들 서너 명이 관심 있게 들었다. 다른 소리에 흔들리지 말고 자신 말이 맞으니 확실히 챙기라는 무언의 지침으로 풀이된다. 그러면서 그는 전문가론을 들고 나왔다. 자신들은 역사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이니 낙랑군=평양설에 의문을 갖고 질문하는 일반인들이 믿고 존중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식민강좌를 하는 것은 이러한 전문가들의 연구를 나누며 소통하기 위함이라고 덧붙였다. 여 교수의 이 같은 발언은 역사는 전문가들이 하는 것이니 일반인은 주입하는 데로 믿으라는 소리다. 의문이나 비판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여 교수는 이 같은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뒤 이어 식민사학자라는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좀 뭐랄까, 너네들이 하는 게 역사학이냐, 이런 식의 말은 안 해 주면 좋겠다.”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여 교수가 이날 한 강좌제목은 ‘지금의 서울, 한강유역과 삼국’이다. 한강유역을 고구려, 백제, 신라가 차지한 역사 이야기다. 삼국이 시간을 달리하여 한강지역을 놓고 각축전을 벌이는 내용으로 채웠다. 여기서도 어김없이 이야기의 대전제로 낙랑군이 등장했다. 낙랑군이 사라지자 삼국이 한강유역을 놓고 각축을 벌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조선총독부가 발명해낸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바탕에 깔고 설명을 이어갔다. 백제가 서기전에 건국한 것이 아니라 서기3세기 이후에 가서야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백제가 영역국가로 발돋움 했다는 말로 표현했다. 그 전에는 낙랑과 대방의 힘에 눌려 고을 수준의 소국이었다고 한다. 이것을 그는 중국 ‘서진의 동방정책 변화 및 낙랑, 대방군의 소멸 등 국제정세 변화를 활용해 백제라는 영영국가로 발돋움 했다’ 는 말로 표현했다. 자주적으로 나라를 세우지 못하고 항상 중국대륙의 종속변수로써 끌려 다니는 모습으로 그렸다.

▲ 여호규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방청객들에게 시민강좌에서 배운 내용을 숙지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방법을 제시했다. 그날 받은 강좌자료는 그날 집에 가서 다시 한번 복습하고, 일요일에는 그 주에 배운 것을 다시 한번 복습하라고 했다.

이날 여 교수는 정치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지금 북핵으로 정국이 혼란스러운데 햇볕정책은 과거 낡은 것이니 답습하지 말라는 훈수도 서슴없이 내놓았다. 삼국의 한강유역 쟁탈전과 중국과의 외교정책을 빗대어 지금도 외교를 잘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외교, 대외정책은 ‘과거 회상을 갖고 그 때가 좋았는데 하면 외교정책을 성공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저희나라’도 냉엄한 국제정세를 실리주의로 대통령이 국가정책을 펴라고 촉구했다. 그는 과거역사에 집착해서 만주를 회복하자는 주장이 있는데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중국과의 외교문제 등을 내세웠다. 일제가 불법적으로 청나라에 넘긴 간도회복노력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국제적 법적으로 아무런 효력도 없기 때문에 하지 말라는 것이다. 외교문제로 비화되면 곤란하니 독도를 침탈하는 일본에 대응하지 말라는 논리와 같다.

이날도 지난번 강좌 비평문을 나눠줬다. 어떤 방청객은 ‘이것 쓰는 것 대단히 어려울 텐데 매번 이렇게 나눠줘서 고맙다’고 했다. 결석해서 못 받은 방청객의 요청으로 지난 비평문도 가져가 내놨다. 강좌 실무 간사인 이승호 동국대 강사도 매번 비평문을 받아갔다. 이번에는 비평문을 보더니 조선일보 논조와 같다고 볼멘소리를 내놨다. 악의적으로 비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승호 간사는 이들의 주장이 식민 사관임을 아무리 지적해 줘도 ‘식민사관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느냐’로 대응한다. 이날도 이런 눈으로 비평문을 대한 것으로 보였다. 다음 강좌는 이영호 경북대 교수가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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