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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식 교수, 조선총독부사관 축복론 펼치다.하일식 교수, 식민지근대화론 논리 펼치다.
오종홍 기자 | 승인 2017.09.07 03:46

하일식 교수, '황당, 집착, 부풀리기, 열등감' 등 막말 쏟아내다

“<한단고기>는 ‘황당하다’, ‘조잡하다’, ‘유치하다’, ‘단조롭다’, 그래서 위서다”

'바른 역사 찾는 민족사학계는 과거 영광만 찾는 술 주정뱅이다'

 

서기2017.09.06. 한국고대사학회가 국립김해박물관에서 ‘한국고대사의 재발견’ 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고대사 시민강좌를 개시했다. 그제 서기2017.09.05.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신라사 시민강좌와 함께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이날 첫 강의 제목은 ‘<한=환단고기>와 유사역사학’ 이었다. 이 첫 강의를 이 학회장인 연세대 하일식 교수가 맡았다. 내용도 우리민족의 시원과 뿌리를 기록하고 있는 <한단고기>위서론을 첫 강의주제로 삼았다. 이는 이 학회가 어떤 목적으로 이 시민강좌를 연 것인지 가늠할 수 있다. 순수한 역사 강좌라기보다는 시민들에게 자신들의 사관을 주입시켜 민족사학계를 사이비, 유사역사학으로 매도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 학회장인 하 교수가 지난 6월에 도종환 문화체육부장관을 ‘환빠’, ‘유사역사학’에 경도된 사람이라며 장관임명저지에 사활을 걸었다. 이번 시민강좌가 이러한 배경에서 기획된 것으로 보인다.

민족사학계는 하교수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고대사학회가 식민사관을 추종하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이날 하 교수는 이것을 의식해서 인지 식민사관을 먼저 언급했다. 하 교수는 식민사관이 서기1970년대를 거치면서 역사학계서 극복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을 식민사학자라고 비난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했다. 하 교수는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 위치를 예로 들었다. 민족사학계에서는 낙랑군 평양설이 일제식민주의 사관에서 나왔고 이것을 하 교수 같은 사람들이 추종한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과 같은 유학자들이 먼저 거론했다고 했다. 일제식민사학자들이 먼저 주장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니 자기들은 일제식민주의 사관을 이어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 서기2017.09.06. 경남 김해국립박물관에서 한국고대사회가 주최하는 '한국고대사의 재 발견'이라는 주제로 시민강좌가 열렸다. 김해지역 시민들이 모여서 강의를 듣고 있다. 어림잡아 150명 이상이 모여들었다. 이 시민들은 이 강좌가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을 이어받은 자들이 식민사관을 전파하는 자리라는 것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러한 궤변은 마치 서로 짜기라고 한 듯이 다른 식민사학자들도 앵무새처럼 되풀이 하는 소리다. 그러나 이들은 분명히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 부역한 친일식민사학자 이병도의 학맥을 이어받았다. 설사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유학자들은 하교수와 같은 사학자들의 할아버지 격이다. 그리고 조선총독부는 아버지 격이다. 또 이들의 주장이 맞는다고 하더라도 그럼 이들은 유학자들의 중화사대주의 사관을 이어받았다는 말이 된다. 이는 결국 중국동북공정사관과 같다. 그렇다면 이들은 우리민족을 말살하고자 하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동조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실제로 그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이 평양에 있다고 하는 것은 중국동북공정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4월에 중국 시진핑(習近平)이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고 발언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하 교수는 스스로 역사를 팔아먹고 있음을 고백한 것이다. 이 시진핑 발언이 있을 때, 민족사학계에서만 시진핑을 강력하게 규탄하고 학술회의까지 열어 시진핑의 주장이 근거 없음을 밝혔다. 그러나 하 교수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고대사학회는 일제히 묵언수행에 들어갔는지 한마디 성명서도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시핀핑 발언을 비판하는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임명해서 안 된다고 학회명의로 저지 성명서를 발표했을 뿐이다.

낙랑군은 분명히 중국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자리에 세운 한나라 식민기관이다. 다른 말로는 한나라 땅이 되었고 거기에 한나라 행정기관을 설치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하 교수는 낙랑군과 관련해서 다른 식민사학자들이 한 소리를 되풀이 했다. 낙랑군을 한나라 식민통치기관으로 볼 수 없다고 것이다. 인구비율을 보더라도 조선인이 월등이 많았고, 관리로도 참여했고, 낙랑군이라고 하는 평양에서 발굴된 수천기의 무덤을 보면 중국 한나라 양식도 있지만 조선 것도 많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니 순수하게 한나라가 통치했다기 보다는 조선인도 함께 했으니 이는 식민기관이 아니고 더 나아가 조선역사로 편입하자고 했다. 이 말은 언 듯 보면 맞는 것 같고 그렇게 하자고 할 수 있다. 조선인이 참여했고 조선인이 한족보다 월등히 많았으니 식민통치가 아니라는 논리다. 그러나 이 말은 자세히 뜯어보면 중국 식민통치에 저항하지 말고 순응하자는 소리다. 식민통치가 아니라면 이에 저항하거나 독립투쟁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 하 교수는 <삼국사기>의 기록 중 초반부를 가짜로 몰기 위해서 전두환의 회고록 까지 끌어왔다. <삼국사기> 초기기록이 전두환의 회고록과 같다며, 믿을 수 없다고 했다.

하 교수의 이 말을 일제조선총독부 식민지배에 갖다 대 보자. 당시 조선인 관리, 즉 친일파 관리도 상당했다. 또한 일본군에도 장군까지 진급한 조선인이 있을 정도였다. 식민지인 조선 땅에는 조선인이 대부분이었다. 하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일제식민지배도 식민지배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식민지배에 저항하거나 독립투쟁도 해서는 안 된다. 실상은 일제가 식민지배한 것인데 조선인도 벼슬하고 조선인이 많았으니 우리가 지배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일제식민통치가 우리민족에게 축복이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까지 이어진다. 하 교수의 이런 주장은 실로 있을 수 없는 궤변이다. 일본인이나 중국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이다.

하 교수는 <한단고기>를 ‘황당하다’, ‘조잡하다’, ‘유치하다’, ‘단조롭다’ 등 매도할 수 있는 용어는 모두 동원해서 위서로 몰아갔다. 이것은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방청객용으로 보인다. 연세대학교수라는 직함과 사학자라는 권위를 내세우면 이런 비학문적인 말도 방청객들은 믿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단고기>에 대하여 위서라는 선입관을 갖게 된다. 이것을 노린 것이다. 하 교수는 <한단고기>가 처음 우리나라에 나온 것은 일본인 극우파 학자의 일본어판 <한단고기>였다고 못을 쳤다. 그리고 이 극우파 학자가 얼마나 비학문적이고 황당한지 사설을 늘어 놨다. 여기서 방청객들은 다시 한 번 <한단고기>가 믿을게 못 된다는 인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 교수의 이런 선입관 못 치기는 계속되었다. 하 교수가 즉석에서 꾸며낸 금동관 비유다. 어떤 사람이 신라고분에서 오래된 금동관을 발견했다며 사라고 했다는 비유다. 그런데 도금을 보니 알루미늄으로 되어있다. 알루미늄은 최근 과학물이기 때문에 결국 금동관은 오래된 옛날 것이 아니라 누군가 위조한 것이다. <한단고기>가 이와 같다고 했다. <한단고기>에 나오는 영고탑, 상춘, 문화 등의 용어가 금동관의 알루미늄과 같다는 것이다. 이런 말들은 현대적 용어인데 <한단고기>에 들어가 있으니 <한단고기>가 가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용어는 중국 고대 문헌에서도 등장한다는 것이 이미 밝혀졌다. 현대적 용어가 아니라는 얘기다. 하 교수는 또 <한단고기> 삼성기의 삼성을 트집 잡았다. 삼성은 세 명의 성인을 말하는데 삼성기에는 안함로와 원중동 두 사람으로 표기 되어있으니 가짜라는 것이다. 소중화 조선의 문헌에 안함, 로원, 중동의 세 명의 성인이 나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안함로 삼성기전상, 원동중 삼성기전하 두 권을 보면 바로 드러난다. 이 책들에서 주장하는 삼성, 즉 세 명의 성인이라는 것은 <삼국유사> 고조선기에서도 나오듯이 우리역사의 근원인 한인, 한웅, 단군을 말한다. 이외에 하 교수가 <한단고기> 위서 근거라고 내세운 것도 모두 근거 없는 것으로 재 반박되었다.

▲ 하일식 교수가 예정에 없던 방청객에게 질문을 받고 대답하고 있다. 방청객은 하 교수의 <한단고기> 일방적 매도, 특히 안경전 역주 <환단고기>를 화면에 띄워놓고 거의 불매운동과 같은 강의진행에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균형잡힌 시각으로 보면 안되겠냐고 정중하게 따졌다. 이에 하 교수는 '가짜, 위서인데 무슨 균형잡힌 시각으로 보냐'며 무시해 버렸다.

하 교수는 민족사학계로부터 무수히 지탄을 받는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도 그대로 주장했다. 불신할 수밖에 없는 근거로 초기기록에 있는 홀해이사금 아버지, 우로 이야기를 들었다. 우로가 105세에 아들을 낳았다고 하는데 이는 상식적으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삼국사기> 초기의 기록이 가짜라는 증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비학문적인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서양 과학적 사고로 본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남자가 105세에 아들을 낳는 것은 현재 일어나는 기이한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현재도 머리가 두 개 달린 사람, 팔이 8개 달린 사람 등 현대과학으로는 도저히 파악이 안 되는 기괴한 일들이 넘쳐나고 있다. 따라서 하교수의 이런 주장은 <삼국사기> 초기의 기록을 어떻게 해서든지 위서로 몰고자 하는 억지다.

또 하 교수는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전두환의 회고록에 비유해 청중들의 빈축을 샀다. 하 교수는 전두환이 회고록에 자기에게 불리한 것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삼국사기> 저자도 삼국초기기록을 불리한 것은 빼고 유리한 것만 날조해서 집어넣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두환 회고록을 <삼국사기>와 등치시키는 발상 자체가 비학문적이다. 하나는 개인사이고, 하나는 국가에서 편찬한 3개국의 역사이고 십 수 명의 당대최고의 학자들이 쓴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같은 것으로 보고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가짜로 모는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일제식민사관을 절대 불변의 진리로 숭배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 교수는 이날 바른 역사를 찾겠다고 나선 수많은 국민들을 능욕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국민들을 정신병자로 취급했다. 국민들이 무조건 오래되고 위대한 역사만 찾고자 하는데 이것이 비정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이유가 하도 궁금해서 자신이 아는 심리학자에게 물어봤다고 했다. 돌아온 답은 ‘열등감’이라고 했다고 한다. 국민들이 심리적으로 열등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역사를 무조건 크게 부풀리는데 집착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상이 아니라면 정신병자일 수밖에 없다. 하 교수는 서양 학자들로 부터 우리나라는 국가주의, 국수주의 역사학을 한다는 지적을 받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족사학자들의 역사관을 히틀러나 일제의 극단적인 국가주의로 몰아붙였다. 하 교수의 이러한 주장을 뒤집어 보면 우리역사는 별 볼일 없는 작은 것이야 하고 좁은 반도를 벗어나면 안 된다.

▲ 하일식 교수의 강의를 듣고 분노한 방청객들 일부가 밖에 나와서 하일식 교수를 성토하고 있다. 어떤 시민은 1차사료 원본을 크게 복사해와서 하일식 교수가 일방적으로 우리역사를 매도하고 있다고 소리쳤다.

하 교수는 이날 강의를 마치면서 다시 한 번 바른 역사 찾고자 하는 국민들을 능욕했다. 또 즉석에서 비유를 들었다. 하 교수의 비유를 보면 이와 같다.

“집에 가장이 맨날 술 먹고 들어와서 집안 살림 두들겨 부순다. 그러면서 지금은 우리가 이렇게 못살지만 옛날에는 잘살았다. 저기 코엑스 건물 있는 곳이 원래 우리 땅이었다. 그러니 잘살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옛날 잘살았다는 과거의 영광만 얘기한다고 해서 잘살아지냐, 아니다.”

바른 역사 찾기 하는 국민들을 술 먹고 집안 살림이나 다 때려 부수고 과거 잘 살았다는 것에 만 집착하는 주폭으로 묘사한 것이다.

한편 이번 시민강좌 장소를 제공한 국립김해박물관직원, 최영삼이 갑자기 나타나 취재목적용 동영상 촬영을 저지했다. 이 때문에 강연장에서 고성이 오가고 몸싸움으로 까지 번지려고 했다. 위에서 촬영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초상권을 들이대며 동영상 촬영은 안 된다고 밀어붙였다. 이에 수원서 내려온 역사의병대 오병관 선생이 왜 못 찍게 하냐며 조목조목 따졌다. 그리고 “초상권이 문제라고 하는데 누가 뭘 팔아먹는데 이 짓이냐, 그런 식이라면 이 강연장에 누구도 들여보내지 마라.” “하일식 교수 강연은 사람 눈이든, 녹화기 눈이든 보는 것은 마찬가지다.” “뭐가 두려워서 못하게 하냐, 뭐 숨기고 싶은 것이라도 있는 것이냐.” 라며 호통 쳤다. 결국 중간선에 타협하고 강연이 진행되었다.

동영상 촬영을 저지한 최영삼이 목에 걸치고 있는 증을 보니 ‘공무원’, ‘문화체육관광부’라고 적혀 있었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왜 장관이 되었는지 의구심이 드는 순간이었다. 최영삼의 집요한 촬영방해를 당하고 나니 일제 조선총독부의 조선인 순사가 떠올랐다. 독립 투쟁하는 독립투사를 잡아가두어 놓고 고문하는 조선인 순사처럼 보였다. 조선총독부 식민사관 해체 투쟁을 도와주지 못할망정, 조선총독부 사관 추종자를 위해서 취재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박물관 측은 공개 강연이라면서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신청을 받아 수많은 시민들을 끌어 모아 놨다. 더구나 우리가 낸 세금으로 공무원이 운영하는 기관이 벌이는 일이다. 주인으로 참여해서 필요한 것을 할 권리가 당연히 있다. 그럼에도 저지 받은 것이다. 더구나 취재목적이고 절대로 외부에 동영상을 유출하지 않겠다고 서약 증까지 써주겠다고 했는데도 처음에는 응하는 듯하더니 이내 태도를 바꾸어 절대 안 된다며, 불응하면 강제로 제압하겠다고 협박했다.

▲ 국립김해박물관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설치되어 있는 가야관련 조형물들. 바닥에서 부터 입상에 까지 수백미터가 가야관련 역사물로 채워져 있었다. 가야문화의 깊이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 위에는 조선총독부사관이 그물처럼 옥죄고 있다.

통상 강연이 끝난 뒤에는 질의응답을 받는데 이 강연은 그렇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주최 측의 사관을 방청객들에게 주입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보다 못한 한 방청객이 정중하게 질문을 하기도 했다. 울산에서 온 한 문화재연구소장은 이런 수준의 강의인줄 알았다면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분노를 터뜨렸다. 강연에 분노한 일부 시민들이 강연이 끝나고 강당 밖에서 모여 하 교수의 바른 역사에 대한 일방적 매도와 식민사관 주입을 성토했다.

 저녁에 서둘러 서울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저녁 먹을 시간이 없어 급하게 빵한개와 우유를 사들고 탔다. 박물관에서는 지금 우리가 낸 세금으로 강사를 비롯한 주최 측 인사들에게 고급식당에서 풍성한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있을 것이다. 장관은 바뀌었지만 우리가 낸 세금으로 조선총독부사관 주총 자들을 위한 잔치는 계속되고 있다. 일제로 부터 해방되었다고 하나 여전히 식민지 시대, 엄혹한 세월이다. 다음 강좌는 서기2017.09.13. 수요일에 열린다. 정인성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변한과 낙랑군’이라는 제목으로 맡는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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