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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신 교수의 역사강의(3)'오늘의 학'으로서의 역사학
박정신 | 승인 2015.11.16 17:47

역사란 과거에 관한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오늘을 살고 내일을 열기 위한 과거가 역사라는 말이다. 그러기에 역사학은 인간에 대한 모든 학문과 지식의 ‘산봉우리’ (mountain-top)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인간과 인간사회를 연구하는 다른 학문이 공간의 학문이라면 역사는 공시적 학문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여러 사회과학 이론이 몰역사적이니 비역사적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인간 활동공간과 더불어 인간 활동시간을 함께 인식하려는 역사학이 인간에 대한 모든 지식행위의 ‘산봉우리’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다. 그 위에서 지나온 과거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갈 미래를 전망할 수 있다. 역사가들은 앞으로 어느 길을 어떤 발걸음으로 가야하는가라는 미래에 대한 최선의 감을 갖기 위해 먼저 어느 길을 어떤 발걸음으로 여기까지 왔는가라는 과거에 대한 최선의 감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처럼 역사의 현재성은 지나간 과거를 어떻게 읽어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도 이어져 있다. 우리는 지나간 과거를 ‘모두 그대로’ 복원할 수가 없다. 남아있는 유물이나 기록,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에 기대어 과거를 복원한다. 과거에 존재한 사실(史實)이 아니라 현재 남아있는 과거 (증거), 그러니까 과거의 극히 부분적인 과거를 가지고 과거를 읽을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과거에 인간이 한 말, 생각이나 행위 그리고 과거에 인간이 겪은 고통, 시련이나 번민에 대한 남아있는 지극히 적은 과거 (유물., 기록과 기억)를 통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특별한 것이 있었는지를 읽어내는 작업이 역사다.

역사의 현재성 때문에, 달리 말하면 과거와 현재의 용해 (fusion) 때문에 오늘의 상황이 위기일 때 항상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지도자들은 법조문을 찾아보거나 제도의 적절성이나 기능을 따지지 않고 역사에 기대고 잇대어 오늘의 이 위기가 어디서 시작되고 어떤 과정을 통해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 묻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거나 지혜를 얻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세계 제1차대전 때 젊은 지성 스펭글러 (Oswald Spengler)나 토인비 (Arnold Toynbee) 같은 이들이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유명한 역사학자가 되었다. 세계 제2차대전 때는 블로흐 (Marc Bloch)라는 출중한 역사학자가 나타났고, 일본제국의 식민통치를 받게 된 조선에서는 신채호와 함석헌 같은 역사학자가 나왔다. 이처럼 위기일 때 역사에 대한 관심이 드높았던 것이다. 역사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역사의 현재성과 유용성을 쉬이 이해하기 위해 이들에 대해 좀 더 이야기 해 보자.


18세기부터 1914년 세계 제1차대전이 시작될 때까지 이른바 계몽주의 사상 (The Enlightenment)이 유럽의 사상계를 재배하였다. 이전에는 로마 카톨릭 교회와 봉건 지배세력이 손잡고 민중들이 종교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깨어나지 못하도록’ 가르치고 지배하였다. 백성이 무지몽매하면 통치하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직자들이 성서를 읽고 해석해 주는 대로 믿고 따르고, 봉건 지배세력이 하라는 대로 복종하라는 중세, 그들과 다른 시각이나 다른 생각을 전혀 용인하지 않았던 이른바 '암흑기'(a dark age)였다. 믿음을 강조하고 이성을 죄악시 하였다. 요즘말로 하면 딴 생각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고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이 암흑기의 종교 상황이고 정치 상황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맞선 지성인들이 나타났다.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 그래서 창조주 (The Creator)는 아니지만 인간도 생각하고 모색하며 판단하고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인 이성 (reason)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 그러니 인간은 이 이성을 가지고 사물을 관찰하여 하나님의 법칙 또는 원리, 그러니까 ‘당연한’ (natural) 것으로 받아들이어야 하는 자연법이나 원리 (natural laws,  이것이 과학의 법칙이요 원리다)를 찾아 인간 삶, 그 모든 영역에 적용하여야 한다. 그렇게 되면 개인이나 나라가 지속적으로 진보 (progress)하여 마지막에는 이상향 (utopia)에 이르게 된다는 단순하지만 아주 낙관적인 사상이 바로 계몽사상이었던 것이다. 이 사상은 곧 유럽 전 지역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그만큼 로마 카톨릭 교회와 봉건 지배세력의 오랜 억압적 지배와 통제에 신물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과학이 진보하고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공장이 들어선 곳에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래서 도시가 들어서고, 근대 국민국가도 이 결과로 나타났다.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새 자원과 새 시장’을 개척한다며 아프리카로, 아시아로 그리고 아메리카로 진출하였다. 나라나 지역역사가 아니라 긴 눈으로 세계역사의 큰 흐름을 읽고자 하는 역사가들은 유럽 사람들이 모든 영역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이른바 ‘유럽시대’ (The Era of European Supremacy)가 열렸고 유럽 사람들은 우월감을 가지고 이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아메리카로 진출한 서양 여러 나라는 서로 이해다툼을 하기 시작하였다. 개인의 이해를 넘어 국가의 이해가 걸려 서로 한 치의 양보를 할 수 없는 지경에서 서로 총을 쏘고 대포를 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세계 제1차대전으로 확대되었는데 이것은 엄밀하게 말해 세계대전이 아니라 유럽 나라들이 서로 싸운 ‘유럽대전’이었다.


그들이 삶을 꾸리고 있는 바로 이 유럽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스펭글러나 토인비가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왜 유럽 사람들은 서로 총질하고 대포를 쏘아대면서 서로 죽이게 되었는가, 낙천적인 계몽사상을 따라 유럽문명을 세계에 우뚝 세워 놓았는데 그 문명을 유럽 사람들 스스로가 파괴하고 있지 않는가, 유럽문명은 어디에 있고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하게 되었다. 당연히 이 물음들은 유럽문명은 언제부터, 어디에서, 무엇이 잘못되어 서로를 파괴하는 위기를 맞게 되었는가의 문제와 이어져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과거와 현재의 용해, 역사의 현재성을 쉬이 이해하게 된다. 현재의 위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역사에 대한 관심을 드높인다. 서양 역사가 두 사람을 이야기 했으니, 세계 제2차대전 때의 마크 블로흐에 대한 논의는 뒤로 미루자.


신채호나 함석헌도 우리 겨레가 일본제국의 식민통치를 받으며 신음하고 있을 때 우리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세기 말 유학자 양성기관인 성균관에 다니고 있던 신채호는 한가하게 공자나 맹자의 서책을 읽는 유생으로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주변 열강들이 우리 겨레를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나라를 삼키려고 하는 때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러일전쟁으로 나라가 일본제국의 식민지가 되어가는 현실을 보고 성균관을 박차고 나와 언론에 뛰어들었다. 신문지면을 통하여 우리 겨레에게 무너져 가는 나라사정을 알리고 위기 때마다 우리 선조들은 목숨을 내어놓고 나라를 지켰다는 겨레의 역사를 이야기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겨레의 역사에 대해 깊이 연구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러는 과정에서 신채호는 역사란 ‘우리’ (我)와 ‘그들’ (非我)의 쟁투라며 역사연구와 국권회복운동전선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함석헌도 그렇다. 1901년에 태어났으니 만 아홉 살 때부터 일본제국의 식민통치를 받으며 성장하였다. 1919년 평양고등보통학교 3학년 때 학업을 중단하고 삼일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그 후 일본인 교장의 복학권유를 뿌리치고 정주에 있는 민족교육의 요람인 오산학교로 편입한다.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 가 동경고등사범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1926년에 졸업하였다. 그 후 모교에 돌아와 역사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천재’라고 널리 알려진 그가, 그래서 잘 먹고 잘 사는 관리나 변호사나 의사가 되는 교육을 받지 않고, 굳이 권력이나 경제적인 안정과는 거리가 먼 역사를 전공한 이유다. 나라를 빼앗기고 겨레가 식민지민으로 고초를 당하고 고통 속에서 삶을 꾸리고 있고, 식민통치세력은 장대한 우리 역사를 축소, 왜곡하여 우리 겨레가 우매하여 항상 주변 강국에 의존하면서 살 수밖에 없었다는 식민교육을 받으며 살아온 함석헌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 역사를 공부해 학생들에게 ‘참 우리 역사’를 가르치고 그 ‘역사의 특별한 뜻’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역사 선생의 길을 선택했다. 그가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벗 김교신이 펴내고 있는『성서조선』에 연재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1933년이었다. 일본 식민통치세력이 신도국가주의 (神道國家主義)에 기대어 우리 겨레의 정기를 말살시키려는 의도로 조작하고 왜곡한 조선사편수회의 『조선사』가 1932년부터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에 맞서 함석헌은 ‘우리 역사’를 쓴 것이다. 여튼 함석헌도 일제식민통치아래서 겨레가 고통 받으며 신음할 때 역사에 길을 묻고 길을 찾으려고 한 것이다.


그렇다, 역사는 이처럼 유용하고 이처럼 중요하다. 위기일 때 더욱 그렇다. 그래서 오래전 체체로 (Cecero)는 “네가 태어나기 전에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모른다는 것은 항상 어린 아이로 머물러 있는 것이다”고 했고, 나폴레옹 (Napoleon)은 “내 아들이 자주 역사를 읽고 또 되돌아보게 하라. 이것이 나의 유일한 교육 (philosophy)이다”라고 했다. 우리 겨레의 역사학자 신채호도 “역사를 잊은 겨레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했고, 앞서 언급했지만,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스페인이 낳은 세계적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는 “역사를 모르는 사람은 계속 그 역사를 반복하게 된다”고 했다. 역사는 오늘과 내일의 삶에 이처럼 유용하고 그래서 중요하다.

 

글 박정신(전 숭실대학교 부총장)

박정신  koreahiti@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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