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언제까지 이들의 소모품 노릇할 것인가...

 

분단체제는 우리 양심과 사상을 감시한다. 분단구조 속에서는 북한은 적이다. 적을 찬양, 고무, 선전 하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는다. 무조건 욕하고 비난해야 한다. 말하거나 글을 쓸 때도 이 기조위에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정원이나 경찰 보안대로 끌려간다. 분단 72년, 그동안 이 구조를 깨려고 정권도 바뀌었지만, 상황은 서기1945.08.15. 해방정국 속 좌익 우익간의 사생결단구도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정치와 사상 및 학문 측면에서는 역사가 멈춘 것이다. 특히 역사학  분야에서 조선총독부 식민사관 체제는 오히려 더욱 고착되고 있다. 분단된 남쪽은 일본제국주의 식민사관이 지배하고, 반면에 북쪽은 단군민족주의 사관체제가 지배하고 있다. 분단구조가 낳은 비극이다. 국내외 석학들은 분단체제가 우리사회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진단한다. 반면에 통일은 우리민족에게 축복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단구조로 기생해 온 세력은 국가보안법이라는 기득권을 이용해 분단을 영구화 시키고자 한다. 이에 본지에서는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로 가는 길을 모색하는 글을 3회에 걸쳐서 연재한다. 분단세력의 일방적인 세뇌, 의식화 교육에 맞서 민족 전체의 공동이익을 위해 노력해온 원광대학교 정치학과 이재봉 교수의 담론이다(편집인 붙임).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로 가는 길에 걸림돌은 무엇인가...

패권경쟁으로 날새는 미국과 중국에게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얼마나 만들어진 '좌우이념대립'의 희생양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1980년 나는 대학 2학년이었다. 대학가에서 민주화 시위 없이는 하루해가 지나지 않던 이른바 ‘서울의 봄’을 보내며 한 번도 시위에 참여해보지 않았다. 5월 광주항쟁은 “북괴의 사주를 받은 폭도들의 반란”이고 김대중은 “내란의 수괴 빨갱이”라는 뉴스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야말로 의식 없고 개념 없는 정치학도였다.

2002년 뉴욕의 민족통일학교에서 강연하면서 그 학교를 세웠다는 윤한봉 선생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그 때 나를 초청했던 뉴욕 동포가 2009년 고국을 방문해 ≪윤한봉 회고록 망명≫을 건네며 읽기를 권했다. 광주항쟁을 ‘폭도들의 반란’이라고 생각했던 ‘민주화의 죄인’이 광주항쟁의 ‘주모자’이자 ‘민주화의 대부’를 기리는 자리에 앉게 되어 매우 어색하다.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지 못한 죄를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평화통일운동에 한쪽 발이나마 걸쳐놓은 늦깎이로서, 합수 정신으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고민해보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은 영광스럽기도 하다.

(*'합수'는 '5.18의 마지막 수배자'로 불리던 고 윤한봉 선생의 호입니다.-편집자 주)

1. 분단과 전쟁이 지속되는 한반도

1) 왜 아직도 통일을 이루지 못 하는가

한반도가 1945년 8월 분단된 지 72년이 흘렀다. 남북 양쪽 정부는 다양한 통일방안을 다듬어왔고 양쪽 주민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외쳐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통일은커녕 통일의 문턱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통일보다 분단이 유지되는 상태를 선호하는 세력의 힘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남쪽에서는 반공과 반북을 통해 친일의 죄악을 덮으며 분단을 통해 정권을 유지하고 강화할 수 있었고, 북쪽에서는 적대 관계를 이용해 부자 세습까지 정당화하고 미화할 수 있었다.

2) 왜 아직 전쟁을 끝내지 못하는가

한국전쟁은 ‘실질적으로’ 1953년 7월 끝났다. 그러나 ‘법적으로’ 또는 ‘완전히’ 종식되지 않고 있다. ‘정전’협정이나 ‘휴전’협정을 ‘종전’협정이나 ‘평화’협정으로 바꾸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전쟁을 완전히 매듭짓자고 줄기차게 요구해왔지만 미국과 남한은 한사코 거부해왔다. 왜 그럴까? 남한 독재정권과 미국에겐 한반도의 평화정착보다 남과 북의 적대적 공존을 통해 얻는 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냉전시대엔 소련과 공산주의 확장을 저지하고 봉쇄하면서 북한을 겨냥했다. 1958년부터 1991년까지 남한에 핵무기를 배치했던 배경이다. 탈냉전시대엔 중국의 급성장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 북한을 빌미로 삼아왔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완전히 끝나고 평화가 정착되면 주한미군을 유지할 명분이 사라지거나 약해지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데 큰 구멍이 뚫리게 된다. 중국을 군사적으로 압박하기 위해서는 주한미군을 유지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북한과의 군사적 갈등과 긴장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 미합중국 항공모함 칼빈슨호. 한국과 미국은 합동군사훈련을 하면서 미국 항공모함 전단을 참여시키도 한다.

2. 한반도 주변정세의 변화

2010년대 동북아정세가 요동친다. 중국의 급성장과 도전에 따른 미국의 견제와 봉쇄 때문이다. 급속하게 떠오르는 중국과 점진적으로 쇠퇴하는 미국이 동북아 패권을 놓고 격돌하고 있는 것이다.

1) 중국의 급성장과 도전: ‘접근반대 및 지역거부’와 ‘새로운 대국관계’

중국은 1978년부터 개혁개방을 시작해 1992년 본격적으로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며 30년 이상 연 평균 10% 안팎의 경이적인 성장률을 기록해왔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 (WTO)에 가입하면서 무역 규모도 급속하게 증대되었다. 2009년엔 독일을 제치고 세계 제1 수출대국이 되었고, 2010년엔 일본을 추월해 세계 제2 경제대국이 되었다. 2012년엔 미국을 따돌리고 세계 제1 무역대국이 되었으며, 2014년엔 구매력 GDP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1 경제대국이 되었다.

이러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1990년대부터 국방비를 연 평균 10% 이상 늘리며 군사력도 크게 증강시켜왔다. 2010년부터는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군사강국들보다 2배 이상의 국방비를 지출해오고 있다. 특히 해양 전력을 본격적으로 증강시키며 대만해협을 포함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개입을 무력화하는 작전을 세워놓고 있다. 중국과 가까운 바다에서는 미국 함대의 접근을 막고, 조금 더 먼 바다에서는 미국 함대의 작전을 방해하겠다는 내용으로, 이른바 ‘접근반대 및 지역거부 (反介入/区域拒止, anti-access and area-denial)’ 전략이다. 2013년 동중국해 상공에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고, 2014년부터 남중국해 난사군도 주변에 인공섬을 건설한 이유다. 미국과 태평양을 같이 나누어 쓰자며 이른바 ‘새로운 대국관계’를 요구하는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2) 미국의 견제와 봉쇄: 아시아에서의 ‘재균형’, 미일동맹 강화 및 싸드 배치

위와 같은 중국의 급성장과 도전에 미국은 1990년대 초부터 경계태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 끝나자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중국을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국가로 간주한 것이다. ‘중국 위협론’을 내세우며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해왔다.

가장 대표적인 게 일본과의 군사동맹 강화다. 미국은 1996년 ‘미일 안보공동선언’을 내놓고, 1997년엔 일본 자위대의 무력행사 범위를 확장하는 새로운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발표하며, 일본과의 군사동맹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일본의 재무장을 막고 있는 ‘평화헌법’을 수정하여 ‘정상국가’가 되도록 촉구하면서 일본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하도록 지원해왔다. 2013년엔 일본이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동중국해 센카쿠/댜오위다오를 일본의 관할지역으로 인정했다. 아울러 이 지역에 대한 미군의 자동 개입을 확인하고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지지했다. 이에 따라 일본은 2014년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관한 헌법 해석을 변경함으로써 사실상 평화헌법을 고쳤고, 미국은 이를 반영해 자위대가 일본 밖에서도 활동할 수 있도록 2015년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다시 개정했다.

또한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 2011년부터 아시아로 ‘회귀 (pivot)’한다거나 아시아에서 ‘재균형 (rebalancing)’을 이루겠다는 정책을 펼쳐왔다. 중국의 미국에 대한 ‘접근반대 및 지역거부’ 전략을 무력화하겠다며 대외전략의 중심축을 유럽에서 아시아로 옮기겠다는 새로운 전략지침을 확정했다. 2020년까지 미국 해군함정의 60%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증강 배치하면서 일본, 한국 등과의 군사동맹 및 호주, 필리핀 등과의 군사협정 그리고 이 지역에서 실시해 온 양자 및 다자간의 군사훈련을 강화하겠다는 등의 내용이다. 나아가 일본과의 군사동맹 강화를 넘어 한미일 군사공조 강화도 추진해왔다. 2015년 한일 간의 ‘위안부 협상’을 강요했던 이유와 2017년 남한에 싸드 배치를 강행하는 배경이다.

▲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지켜 보는 가운데 대한민국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일본 아베 수상이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미국은 대한민국과 일본사이에 일제침략에 따른 벽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중국견제를 위해 한미일 동맹을 강요했다.

3. 남한의 통일정책과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1) 남한의 통일정책

2017년 현재 남한의 통일방안은 1989년 노태우 정부가 처음 만들고 1994년 김영삼 정부가 조금 고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다. 자주, 평화, 민주의 3대 원칙을 바탕으로 (1) 화해협력, (2) 남북연합, (3) 완전통일이라는 3단계를 거쳐 통일을 실현한다는 내용이다. 오랜 세월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 아래서 살아온 남과 북이 갑자기 하나로 합쳐지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2) 대북정책의 변화

1998-2008년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남한의 통일방안 1단계인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대북정책으로 ‘햇볕정책’ 및 ‘평화번영정책’을 폈다. 2000년 6월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한과 북한의 통일정책 가운데 공통점을 바탕으로 통일을 모색하자는 ‘6.15합의’를 도출했다. 2007년 10월 제2차 정상회담에서는 갈등과 긴장의 서해 북방한계선 (NLL) 주변 해역을 평화협력지대로 만들자는 ‘10.4선언’을 불러왔다. 이에 반해 2008-2017년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대북정책으로 ‘비핵.개방.3000’ 및 ‘한반도 프로세스’ 정책을 내세우며 북한이 핵무기를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대화와 협력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제재와 압박을 통한 북한 체제의 붕괴를 추구하기도 했다.

3)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2017년 5월 10일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이어가겠다고 공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유세와 민주당 대선공약집을 통해, 그리고 6.15 기념식을 통해 2000년 ‘6.15합의’와 2007년 ‘10.4선언’을 중시하겠다고 했다. 취임사에서는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다”며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1급 회담 기술자’라는 별명을 지닌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정상회담은 필요하다”며 거들었다. 두 번의 정상회담에서 실무역할을 했던 조명균 통일장관은 2008년 중단된 금강산관광과 2016년 폐쇄된 개성공단을 재개하겠다고 강조했다.

2017년 6월 30일 문 대통령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한미동맹을 강화하며 북한에 대해 ‘최대의 압박’을 가하되 북한과 대화로 문제를 풀겠다고 합의했다. 아울러 한반도의 평화 통일 환경 조성에 남한이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점을 명시했다. 같은 날 전략국제연구센터 (CSIS) 초청 연설을 통해서는 이른바 ‘대북 4노 (no) 원칙’을 밝혔다. 북한에 대해 ‘적대시 정책’을 추진하지 않고, 북한을 ‘공격’할 의도가 없으며, 북한 정권의 ‘교체나 붕괴’를 원치 않고, ‘인위적 통일’을 가속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 이른바 '베를린 구상'을 발표하는 문재인 대통령.

나아가 문 대통령은 2017년 7월 6일 독일 베를린 쾨르버 (Korber) 재단 초청 연설에서 포괄적 대북정책을 제시했다.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및 2007년 제2차 정상회담을 비롯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노력을 계승하면서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담대한 여정”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무시했던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 이행을 강조하며, 북한 붕괴 및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거듭 밝혔다. ‘항구적 평화 체제 구축’ 또는 ‘항구적 평화구조 정착’을 위한 ‘종전’과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했다. “북핵문제와 평화체제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으로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인도적 대북지원을 비롯한 ‘비정치적 교류협력 사업’은 정치 군사적 상황과 분리해 추진하겠다는 점도 밝혔다. 이른바 ‘정경 분리 원칙’이랄 수 있다(2부에서 계속).

글: 이재봉(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 통일경제포럼 공동대표, pbp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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