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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대만총독부, 대만 어떻게 유린했나.조선총독부가 있었다면, 대만에는 일제의 대만총독부가 있었다.
오종홍 | 승인 2017.07.03 18:04

조선총독부와 비교되는 일제의 대만총독부,

사료편찬위원회의 음모...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와

어떻게 다른가...

 

최근 역사전쟁이 뜨겁다. 사실 역사전쟁이라기 보다는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자는 전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조선총독부사관의 후예들로 지목되고 있는 강단주류사학계의 기득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몸부림이기도하다. 그런데 조선총독부와 비교되는 일제대만총독부의 대만통치내용을 알 수 있는 주제발표회가 있어 화제다. 지난 서기2017.06.23. 인천 인하대학교에서 대만총독부의 활동을 담은 발표회가 있었다. 인하대학교 융합고고학과 복기대교수와 고조선 연구소가 주최한 이 날 발표회에서 미국 빌트모아 가우처대학(GOUCHER college) 동아시아역사학과 Evan Dawley 교수가 대만총독부의 활동을 소개했다. ‘일본의 대만사편찬위원회 목적과 활동 분석’ 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이날 발표에서 돌리 교수는 대만 총독이 중심이 되어 활동한 사료편찬위원회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서기19세기 아시아에서 서구화에 제일 먼저 성공한 나라가 일본이다.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서양제국주의 열강을 본받아 서구문물을 그대로 이식시켜 동아시아에서 먼저 패권국가로 성장한다. 일본은 서구열강이 그랬듯이 주변 국가를 식민지로 만들어 나간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자 당시 청나라 령인 대만을 할양받는다. 이때가 서기1895년이다. 일본은 우리나라 보다 먼저 대만을 손에 넣고 식민통치를 시작한다. 우리나라와 대만 모두 일본 식민지였다는 점에서 대만은 어떻게 식민통치를 받았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돌리(Dawley) 교수에 의하면 당시 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은 한 번도 식민지를 경영한 역사가 없기 때문에 이전에 대만을 지배한 나라들의 식민통치 자료를 긁어모아 연구해서 식민통치기술을 익힌다. 일본이 점령하기 전에는 청나라가 있었고 그 전에는 정씨의 지배를 받았으며 그 전에는 네덜란드나 스페인이 점령하고 있었다. 일본은 이들 나라가 어떻게 대만을 통치했는지 자료를 수집해서 자신들의 식민지배에 활용했다. 또한 프랑스 등 선발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정책을 따라 한다. 서양열강들이 자신의 식민지를 동화정책으로 통치하면 일본도 그대로 따라했다.

이에 따라 일제는 서기1920년대 초에 문화통치로 전환한다. 그래서 대만 총독도 군 출신에서 민간인 총독으로 바꾼다. 그 첫 총독이 전건치랑田健治郞(서기1919.10.~1923.9.)이다. 당시 조선과 비교해 보면 서기1910년 이래 군 총독은 조선에서 더 많았다. 대만과 조선의 상황이 모든 면에서 달랐기 때문이다. 대만 총독부는 대만을 문화통치로 일관했지만 여기에는 고도의 통치기술이 숨어 있었다. 문화면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풀어 주었으나 정치면에서는 일본화를 가속시켰다.

대만 말을 쓰는 학교도 허용하면서 동시에 일본말을 쓰는 학교교육도 병행했다. 그러면서 일본어 학교를 우대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대만 말 쓰는 학교가 도태되도록 유도했다. 또한 대만사람들의 정치활동을 엄격히 제한했는데 이것도 일본화 정책의 한 모습이었다.

▲ 미국 빌트모아 가우처대학(GOUCHER college) 동아시아역사학과 조교수 Evan Dawley 가 대만총독부의 대만식민통치 근간을 설명하고 있다.

대만 총독부는 청일전쟁으로 할양받은 대만을 식민지로 만들어 통치한지 25년째인 서기1920년에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문서를 발간했다. 식민통치의 정당성과 일본이 들어와서 대만이 성공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선전하고 기리기 위함이었다. 일본 식민통치가 대만에 좋았다고 선전했다. 이전의 네덜란드와 청나라의 통치보다 일본이 더 대만에게 이익을 주었다고 교육시킨 것이다. 오늘날 친일부역세력 후예들이 '식민지근대화'론을 펼치면서 일제침략과 식민통치가 축복이었다고 떠벌이는 것과 겹친다. 대만 총독부에서는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이 활동을 펼쳐 나갔는데 대만사료위원회가 활동의 중심에 있었다. 일제가 우리나라 조선총독부에 설치한 조선사편수회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대만사료위원회나 조선사편수회 모두 일제의 식민지 정책을 정당화하고 이론적으로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조선사편수회는 의도적으로 우리역사를 시간과 공간을 축소했다. 반면에 대만 사료위원회는 이런 작업을 하지 않았다. 대만 역사는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광범위하고 복잡하지 않다. 대만 사료위원회는 이 같은 대만의 특성에 맞게 책자를 편찬한다. 서기1928년과 서기1930년 두 차례에 걸쳐 사료 집을 편찬하는데 주로 일본의 식민통치와 이전의 다른 나라들의 식민통치를 비교하면서 일본통치가 대만에 축복이었다는 내용으로 채웠다. 대만에 대한 일제의 치적을 주로 담은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대만 경제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는 것인데, 금융재정이 증가했고 모국을 위해 자원을 수집했고 철도, 항만을 건설했다. 또한 조세제도, 법률제도를 개선시켰고, 이민정책, 남중국과 남중국해에 대한 정책. 사회경제적 변화, 약탈과 무질서 종식, 교육제도개선, 통치제도의 선진화를 들 수 있다.

일제는 대만식민통치와 조선식민통치방법을 달리 했다. 대만은 서기1894년 청일전쟁승리로 전리품으로 얻은 것이다. 청나라가 자국의 영토를 일제에게 전쟁배상으로 떼어 준 것이다. 반면에 조선은 서양열강의 묵인 하에 무력을 앞세워 일방적으로 점령한 것이다. 이외에 식민통치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대만의 역사다. 대만은 인구 구성이 확연히 구분된다. 남방계와 중국 대륙계 그리고 북방계통으로 이루어졌다. 작은 섬나라이다 보니까, 사방에서 끊임없이 들어온 사람들로 이루어진 대만이다. 역사도 길지 않다. 대만사료위원회가 편찬한 사료 집이라는 것도 이러한 대만의 상황에 바탕을 둔 것이다.

사료위원회 구성을 보면 위원장과 비서, 중앙위원회 구성원은 모두 일본인으로 채웠다. 의장 부의장 수석비서관과 비서 4명, 6명의 직원, 8명의 중앙위원과 15명의 위원들도 역시 일본인이었다. 대만인들은 비공식적인 직함으로 참여케 했고 주로 조사와 자료 수집을 도왔다. 20명의 자문위원은 13명이 일본인이었고 7명을 대만인으로 채웠다. 서기1929년에는 사료위원회를 재조직해서 규모를 축소시켰지만 총독과 일본인 중심으로 더 강고하게 만들었다. 이 시기에는 처음으로 대만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인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사료위원회에 참여한 대만인들 중에는 1909년에 설탕사업을 하던 린타이정이나 구시아농이라는 사업가도 보인다. 나중에 일본이 패망하고 물러갔을 때 부역의 정도에 따라 반역자로 몰리기도 한다.

▲ 인하대학교 융합고고학과 복기대 교수가 7월에도 대만 측 학자를 초청해서 대만총독부의 구체적인 식민통치내용을 듣는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이날 발표회가 끝난 뒤에 복기대 교수는 7월 중순경에는 대만인 학자를 초청해 대만 측에서 보는 대만총독부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듣는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질문시간도 있었는데 전라남도 광주에서 올라왔다는 여성의 날카로운 질문이 눈길을 끌었다. 동북공정을 옹호하고 독도를 없애버린 동북아역사지도집제작과 하바드 대학 마크 바잉턴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강사인 돌리 교수가 답변하기에는 버거워 보였다. 그래서 편경범 전 동북아역사재단 실장이 대신 답변해 주었다.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뒤풀이가 있었는데 이 때 돌리교수에게 동북공정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도 있었다. 돌리 교수는 ‘현재 기준으로 과거역사를 구성하는 것인데 이것은 학문적으로도 옳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동북공정’이라는 말을 바로 알아들어 돌리교수가 동아시아 역사전쟁에도 주목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복기대 교수는 미국 등 서양은 중국이나 일본이 퍼뜨려 놓은 역사관으로 우리역사를 보고 있다면서 큰 우려를 했다. 그러나 시간을 가지고 사실대로 알려주면 대부분 우리 측의 주장도 균형 있게 수용하더라고 미국 측 학자와의 대담을 얘기해 주었다. 한마디로 잘못 알려진 우리역사를 바꾸는 일은 우리의 역량과 활동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오종홍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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