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역사 학술원 역사토론회 바른역사찾기 닻을 올리다...

 

마지막 까지 조선총독부사관 만세를 부르는 「한겨레21」 잡지...

미사협, 김종서박사 '열구' 위치 발표토론에서 어떤일이...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 열구가 어디냐...

 

식민사학이라 비판받는 강단주류사학계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역사관을 검증하겠다며 지난 6월 청문회 전후 집중 공격을 한 바 있다. 특히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침략을 옹호하는 동북역사지도집제작에 참여했던 한국고대사학회(회장, 하일식 연세대교수)는 이례적으로 성명서까지 발표하며 도종환 장관에게 태도를 분명히 하라며 몰아붙였다. 그러나 청문회가 끝나고 도종환 의원이 장관에 임명되자 조용해 졌다. 다만 「한겨레21」만이 비난에 가까운 보도를 계속 쏟아냈다. 동북아역사지도집제작에 참여한 강단사학계의 주장만 적극 대변하면서 매국지도로 확인된 동북아역사지도사업이 좌초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이어 이 잡지는 단군과 민족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매도했다. 그러면서 동북아역사지도사업과 하버드 대학 마크 바잉턴과 연계된 우리 고대사 책 발간 사업을 저지시킨 도종환 장관을 비롯해 지난 국회 때 도종환 장관과 동북아역사왜곡특별위원회에서 함께한 국회의원들과 이때 참고인으로 참여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 인하대 복기대 융합고고학과 교수 및 인하대 고조선 연구소 교수들을 비판했다.

이 잡지는 특히 지난해 6월에 창설된 미래로가는바른역사협의회(미사협)을 염두에 두고 바른역사찾기 투쟁을 벌이고 있는 인사들을 집중 공격했다. 이에 미사협은 보도성명을 연이어 발표하며 강단주류사학계 주장만 일방적으로 보도하지 말고 누가 바른지 토론회를 갖자며 반격에 나섰다. 또한 해당 언론사에 대해서는 공정보도, 사실 보도를 하라며 언론본연의 모습을 지키라고 촉구했다. 미사협에서는 지난 4월 중국 주석 시진핑(習近平)이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게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는 발언에 대해 공식비판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역사학을 책임지고 있다고 하는 강당주류사학계가 시진핑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한마디도 못하고 있다며 제대로 된 학계라면 중국에 대해 한마디라도 해야 할 것이 아니냐고 쏘아붙였다. 이에 강당주류사학계는 시진핑이 그런 말을 할 리가 없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미사협은 시진핑의 발언을 주제로 긴급학술발표회를 지난 5월19일에 서울 서대문구 독립공원에 위치한 순국선열유족회 지하 강당에서 개최했다. 지난 4월 미사협 산하 바른역사 학술원이 만들어진지 약 한 달 만에 첫 학술대회를 가진 것이다. 이날 학술원은 학술발표회 이외에 정기적으로 중국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침탈을 무력화시키는 고대사 토론회를 갖겠다고 했다. 그 첫 토론회가 서기2017.06.22.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강당에서 있었다. 이날 주제발표자로 ‘역사교육을 바로 잡는 사람들의 모임’(역사모)회장인 김종서 박사가 나섰다. 한국 고대사의 뜨거운 쟁점인 한사군의 낙랑군 위치와 관련된 발표였다. 낙랑군과 관련해서 열구 또는 열수가 등장한다. 이번 주제는 이 열수를 찾아가는 토론회였다.

김종서 회장은 먼저 자신이 한국고대사에 일생을 바치게 된 사연을 토로했다. 중견기업을 이끌면서 돈을 제법 벌고 있었는데 우리 고대사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우연히 접하고 역사연구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결국 부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바른 역사를 밝히는데 이후의 삶을 쏟아 부었다고 했다. 중앙대학교에서 「고조선과 한사군의 위치비정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더욱 박차를 가했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의 연구를 언론에서 제대로 보도를 해 주지 않았다고 했다. 이유는 의견을 달리하는 강단주류사학계의 보이지 않는 방해공작이 아니겠냐는 생각을 내비쳤다.

▲ 역사모 회장, 김종서 박사는 이날 토론회에서 낙랑군 속현의 하나로 보이는 열구=열수는 요녕성 태자하라고 했다.

김 박사는 이 날 발표에서 낙랑군과 관련된 열구는 사기 조선열전에 처음 나온다고 했다. 그러나 한서 지리지의 낙랑군과 관련된 열구하고 한자가 다르다고 했다. 앞에서 것은 차가울 열자인 열구洌口로 표기되어 있고, 한서 지리지에는 벌린다는 뜻의 열구列口로 되어 있음을 지적하며 두 지명이 반드시 같다는 증거가 없다고 했다. 열구 또는 열수가 현재 어디를 가리키는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면 중국 한나라 식민기관, 낙랑군의 위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이날 발표목적이기도 했다. 민족사학계에서는 열구 또는 열수가 조선총독부사관을 이어 받았다는 강단주류사학계가 주장하는 곳과 다르게 본다. 강단주류사학계는 열수를 지금의 북한 평양일대로 보고 있다. 반면에 민족사학계에서는 현재의 요녕성 요하지역 또는 그 서쪽으로 비정하고 있다. 이날 발표는 강단주류사학계의 열수 위치비정은 사료적 근거가 전무하다는 것이 증명되었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래서 열수가 현재 요하 인근이냐 하북성 난하 인근이냐를 두고 토론회를 개최한 것이다.

이날 김종서 박사는 후한서 군국지에 나오는 거리를 가지고 열수 위치를 찾으려고 했다. 지금 기준으로 볼 때 어떻게 수천 리나 되는 거리를 일일이 걸어가서 잿겠느냐는 반론을 의식해서인지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부터 했다. 당시 거리를 재는 잣대가 있었다고 했다. 대나무로 된 인이라는 잣대가 있었는데 1장이 23.4센티미터이고 보통 10장 길이 잣대를 만들어 잿다고 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나라를 다스리려면 거리가 중요한데 교통로, 무역로, 전쟁 시에는 군대이동거리, 보급품 거리 등 거리를 모르면 어떤 것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왕조가 서면 반드시 주요 위치에 대한 거리를 확보해 놓았다고 했다.

김종서 박사는 이 기준에 따라서 당시 낙양에서 낙랑군까지 거리가 나와 있는데 실제로 계산해 보니 대략적으로 현재의 요하지역으로 나온다고 했다. 그리고 사료에 나오는 강 길이를 재서 확인해 보니 열수는 현재 요녕성의 태자하로 나타난다고 했다. 이어 기존의 유력한 학설로 알려진 전 단국대학교 부총장, 윤내현 교수의 학설을 비판했다. 윤 교수는 현재 난하를 패수=요수=열수라고 하는 데 하나의 강을 고대에 이렇게 부를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당시에는 다 다른 물길이었다는 것이다.

▲ 이날 지정 토론자로 나선 황순종 역사저술가는 '사기' 조선열전의 열구에 대한 주석을 인용해서 열구는 현재 천지시 일대 였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하여 토론자로 지정된 황순종 역사저술가가 반론을 제기했다. 사기 조선열전에 한나라 양복이라는 장군이 발해를 떠서 들어간 곳이 열구일 수밖에 없는데, 그 위치를 보면 현재의 하북성 천진시 인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주석에 소림蘇林이라는 사람이 단 주석을 통해서 보면 천진시 부근이 열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김종서 박사는 소림이라는 사람은 조한전쟁이 있은 후 3백년이 훌쩍 넘은 사람이라면서 3백년이 넘은 후대 사람이 단 주석을 어떻게 사실로 믿을 수 있냐며 맞받아쳤다. 이에 대하여 황순종 저술가는 분명히 처음 들르는 곳이라고 나오는데 태자하를 열구라고 본다면 너무 멀다고 다시 반박했다.

이어 방청객에서도 김종서박사의 주장에 대하여 수많은 반박이 이어졌다. 특히 열구=열수는 분명히 요동에 있었다고 하고 당시 요동은 현재의 요하 동쪽 요녕성이 아니라, 난하 인근이었다는 점을 들어 열수는 난하 인근이라고 반박했다. 이날 눈길을 끄는 새로운 관점도 등장했다. 진장성이다. 당시 중국의 동쪽 국경선은 진장성을 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문제가 되는 사기 조선열전에서도 진장성안에서 일어난 것으로 논증했다. 그렇다면 진장성의 끝이 확인 된다면 열구문제도 해결된다는 것이다. 진장성은 현재 아무리 양보해도 하북성 진황도시를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열구는 그 서쪽에서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발표와 토론은 강단주류사학계와 민족사학계사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역사전쟁 못지않게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강단주류사학계를 향해서는 한목소리를 내어 일치단결하던 민족사학계가 이날은 역사전쟁을 방불케 했다. 나중에 뒤풀이에서 주제 발표자로 나선 김종서 박사를 너무 심하게 공격해서 인지 미안하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에 김종서 박사는 전혀 예상 밖의 반응을 보였다. '적극적으로 바라던 바이다. 그렇게 해야 발전이 있다'고 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의외로 전국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장소가 좁아 사전 신청자에 한해서 참여자를 받았는데, 사전신청을 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모여들어 통로까지 가득 메웠다. 학술원 측에서는 앞으로 적어도 1달에 한번은 이런 토론회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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