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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以小逆大不可’ 만세인가문재인 정부, 두마리 토끼 잡을 생각마라, '사드'냐 북한이냐 양자택일 해야...
오종홍 기자 | 승인 2017.06.22 11:35

노예, 주인을 물어 뜯다...

사대주의가 여전히 창궐하는 이유는...

역사를 거꾸로 돌린 이성계 위화도 회군...

요 며칠 문재인 정부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미국에서 한 발언이 도마 위에 올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문 특보가 ‘한미동맹이 ’사드‘ 때문에 깨진다면 그게 무슨 동맹이냐’고 했다는 것이다.

이 발언을 가지고 친일부역지, 조선일보를 필두로 친일수구 언론들이 벌떼처럼 일어나서 공격하고 있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을 공격하는 수법 그대로다. 문 특보에게 즉각 사퇴하라고 압박하는 가운데 미국 심기를 건드렸으니 납작 엎드려 사과라는 논조로 연일 비난을 퍼부어 대고 있다. 황교환 전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문 특보의 발언이 부적절하다며 한미동맹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훈수를 두었다. 재작년에는 김무성 의원을 비롯한 일단의 세력이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 참전군인들에게 큰 절을 했다. 또한 주한 미군을 업어 주기까지 했다. 이런 행위는 '한국에서는 존경과 감사 표시'라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덧붙였다.

지난 대통령 보궐선거에서는 홍준표가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게 지지선언을 해달라고 했다. 이들에게는 미국이 하늘이다. 미국의 제가를 받아야 대한민국 대통령도 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박근혜 탄핵을 반대하며 미국 성조기를 흔들어대고, 미국 대사가 칼침을 맞았을 때 위로한다며 한복입고 부채춤을 추고 단식투쟁한 상황과 다르지 않다. 동전의 양면이다. 이러한 짓을 지적하는 듯한 발언을 한 문정인 특보가 그래서 미운 것이다. 조중동 등 주류언론들이 앞을 다투어 문정인 특보를 비난하는 것을 보면 이들의 뿌리가 궁금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나같이 조선총독부 밑에서 부역한 자들의 후손이다.

외세 의존세력의 실체는...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이들의 뇌구조는 왕조시대로 대변되는 수직적 지배질서에 머물고 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버젓이 당연하다는 듯이 상식처럼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이 사회를 지배하는 주류세력이 이러한 짓을 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나라가 아직도 식민지 인줄로 아는 모양이다. 젊고 상당히 깬 의식을 가진 것으로 알았던 인사도 문정인 특보를 공격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국가를 대표해서 국가적 사안을 얘기하면서 자기 생각을 말한 것인데 무슨 큰 죄를 지은 것처럼 몰아가며 죽일 듯이 달려들고 있다. 미국을 상전으로 모시는 노예적 풍토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 외세 의존적 풍토가 녹아있다. 학문분야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 중에서 역사학은 가히 일본사 또는 중국사 일부분이라고 할 만큼 의존적이다. 일본제국주의는 동아시아로 영토를 확장해 감으로써 해당 나라 역사를 일본제국 지방사로 만들어 버렸다. 땅을 차지했으니 그곳에 일어난 역사도 일본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 이것을 중국이 이어받아 동북공정으로 우리역사를 중국 지방사로 만들어 버렸다. 곧 영토만 접수하면 동북공정이 완성된다. 현재 역사학 외세 의존적 풍토는 조선총독부 식민사학으로 남아있다. 국사책이 일본제국 입장에서 서술되어 있다. 이것을 지적하고 비판한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강단식민사학계로부터 십자포화를 맞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대주의 외세의존세력은 자신들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비정상의 중증 사고를 하고 있는지 전혀 문제의식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알면서도 어떤 이유 때문에 고의로 고수하고 있는 것 같다. 이기주의다. 이익, 즉 돈이 되기만 하면 그게 무엇이든지 배를 갈아탈 준비가 되어 있는 기회주의 세력이다. 이익이 된다면 강한 자에게는 노예로 약한 자에게는 지배자로 군림할 준비가 되어 있다. 도종환 의원 장관채택 청문회장에 증인으로 나오겠다고 해놓고 당일 말 같잖은 핑계대고 도망간 연세대 교수 하일식이 대표적이다. 처음에는 하일식과 더불어 단국대학교 교수 심재훈과 머시기 대학교 강사로 나간다는 기경량이 증인으로 채택되었다고 언론에 보도된바 있다.

이들은 숨어서는 도종환 의원을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 거렸지만, 막상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오라고 하니, 머리가 쥐나도록 이것저것 계산했다. 결국 밥줄을 지키는데 크게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판단이 서자, 하루아침에 없었던 일로 해 버린 것이다. 적폐세력이 문재인 정부의 약점이 언제 드러나나 눈을 부라리며 공격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문재인 정부를 부정할 만큼 뒷배가 있기 때문이다. 크게는 미국이고 다음은 일본이며 국내에서는 언론을 장악하고 있고 재벌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열하고 저열한 사대주의 풍토는 언제 생겨났을까.

▲ 서기2015.7.3.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용산에 있는 한미연합사령부를 방문하여 스케퍼로티 사령관을 업어주고 있다. 사진 우측 하단은 같은 해 7.26. 미국을 방문하여 한국전 참전 군인들에게 큰 절을 하는 모습이다. 김무성 의원에게 업힘을 당한 저 미국 군인 속마음이 궁금하다.  김무성 의원이 제안 한 것 처럼 정말 '같이 갑시다' 동지로 여기고 있을까. 혹시 말 잘 듣는 노예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기1388년 5월 을미乙未 압록 강변 위화도,

“만일 상국上國 경계境界를 범하여 天子(명나라 왕 주원장)에게 죄를 지으면 종사宗社와 生民의 화禍가 곧 이를 것이다. 내가 역逆과 순順으로 글을 올려 군대를 돌리게 해달라고 간청했으나, 왕이 살펴보지 않았고 塋(최영)은 늙어서 듣지 않았다. 그러니 어찌 경들과 함께 왕한테 가서 이를 따지고 왕 주변의 악신들을 제거하지 않겠는가. 이는 실로 생령을 편안케 하는 것이다.”

명나라 정벌군 좌군도통사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반란을 앞두고 정벌군에게 반란의 정당성을 외치며 한 선동이다. 반란을 한 이유가 상국을 범하여 천자에게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리고 전쟁을 일으키면 그 화가 생민들에게 이르니 이를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회군반란을 일으키기에 앞서 이성계는 우왕에게 큰 나라(중국 명나라)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간했다. 울면서 호소했다고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는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성계는 소小로써 대大를 섬기는 것은 나라를 보전하는 도리인데 오히려 큰 나라를 범하려고 하니 이는 소로서 대를 거역하는 것으로써 불가하다며 명나라 정벌을 격렬하게 반대한다.

이성계가 이렇게 압록강 주둔지에서 반란에 선동하자, 우군 도통사 조민수를 시작으로 고려군 모든 장수들이 환호했다. 정벌군이 반란군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소중화 조선정권이 개국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쓴 <고려사>인지라 당시 군사들의 반응은 교주 추대식을 방불케 할 정도로 이성계를 미화, 찬양하고 있다.

<고려사>,

이성계 찬양, 미화 도를 넘다...

모든 장수들이 ‘우리 동방 사직의 안위가 공公(이성계)의 일신에 있으니 감히 명령을 쫓지 않겠냐’며 바로 군사를 돌려 압록강을 건넜다고 한다. 모두 반란에 가담한 것이다. 이어 이성계를 묘사한 것을 보면 하늘에서 백마 타고 내려온 천장天將같다. 이성계가 백마를 타고 활과 하얀 깃털 화살을 메고 언덕에 서서 군사가 다 건너기를 기다리는데 군중軍中이 이를 바라보고 말하길 ‘고금 이래로 어찌 이와 같은 사람이 있겠느냐’고 칭송했다고 한다.

그리고 장마가 계속되는 속에서도 물이 크게 불어나지 않다가 군대가 위화도를 다 빠져나가자마자 갑자기 큰물이 쏟아져 섬 전체를 삼켜버렸다고 한다. 이어 이를 본 사람들이 목자득국木子得國을 노래했다고 한다. 군대와 백성이 어른과 어린애 할 것 없이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목자득국은 이성계 성, 이李를 두고 한 말이다. 목자를 가진 사람이 나라를 얻는 다는 뜻이란다. 이성계 성姓에 나무 목木이 들어가 있으니 이성계가 장차 왕이 될 것이라고 이미 하늘이 점지했다는 뜻일 게다.

당시 서경인 평양까지 와서 명나라를 정벌하러 떠나는 고려군을 위로하고 지휘하던 우왕은 고려군 회군 소식을 듣자, 고려군 총사령관인 8도통사 최영과 함께 급히 개경으로 달려간다. 이어 가능한 모든 병력을 끌어 모아 성문을 닫고 항전에 들어간다. 그리고 방을 띄워 반란군 두목 이성계와 그 일당을 참살하는 자는 크게 포상을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고려의 전 국력을 기울여 편성한 최정예 군대를 당해 낼 수 는 없었다.

위화도 회군 당시 고려군은 세계최강군대...

당시 명나라 정벌 고려군은 이성계의 좌군과 조민수의 우군을 합하여 38830명이었다. 여기에 이를 돕는 사역자가 11634명이었다. 그리고 말이 21682필이었다. <고려사>는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될 것이 말의 숫자다. 2만1천 필이 넘고 있다. 기마병이 있었다는 것이다. 식량을 운반하는 말이 있다고 치더라도 어림잡아 1만5천 필 이상은 전투용 말이었을 것이다. 기마병이 1만5천이라는 소리다. 명나라를 정복한 청나라 태조 금누루하치가 한 말이 있다. ‘내게 기병 1만 명을 준다면 세계도 정복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만큼 기마병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고려는 또한 당시 세계최강의 활로 무장하고 있었다. 최대사거리 평균 3백 미터를 자랑하는 오늘날로 말하면 첨단개인화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고려군이 요동을 향해 평양을 지날 때 모여든 군중이 10만의 대병력이라며 연호를 했다고 한다. 백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명나라 정벌에 나섰음도 엿보인다. <고려사>에는 병력수를 구체적으로 적시하여 약 4만 명이었다고 하지만 백성들은 그 보다 훨씬 많다고 보았을 수도 있다. 어쩌면 정말 10만 대군이었을 지도 모른다.

▲ 소중화 조선을 연 이성계 영정. 이성계는 독실한 유학자들의 응원 속에서 나라를 세웠으나, 중화사대주의로 일관함으로써 5백년 암흑시대를 열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조상의 얼이 서린 영토는 결코 내 줄 수없다...

그렇다면 왜 우왕과 당시 고려조정은 명나라를 정벌하고자 했을까. 당시 국제정세는 대륙 강남에서 주원장이 이끄는 반란군이 점차 세력을 넓혀 원나라를 잠식해 왔다. 결국 원나라는 수도를 버리고 자신들의 고향 초원으로 퇴각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원나라 땅은 주원장의 명나라 땅이 되어 갔다. 주원장은 원나라의 통치력이 미쳤던 요동도 이제 명나라 땅이 되었다며 그곳에 여러 군사행정기관을 설치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것 중의 하나가 철령위 설치 통보였다. 고려의 입장에서 보면 고려 땅을 명나라가 날로 먹겠다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고려사>에는 이 요동지역이 고려 땅이었음을 알 수 있는 여러 기록이 보인다. 정벌군을 편성한 우왕 자신이 요심遼審(요양과 심양)과 공험진(길림성 동북방향)까지 옛날은 물론이고 당시 까지도 고려 땅이었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 고려 땅을 날로 먹으려는 주원장의 명나라가 아무리 강하고 큰 나라라고 하더라도 영토는 내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원나라에게 잠시 눌려 요동지방을 고려가 통치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이제 원나라가 물러갔으니 그 지역은 다시 고려 땅으로 돌아오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명나라가 아무리 크고 강해도,

영토 도적질은 참을 수 없다, 무력으로 제압해야...

명나라 정벌에 앞서 우왕은 조정회의를 열고 대신들의 의견을 물었다. “명나라가 철령지역을 달라고 하는 데 줄까?” 라고 물었다. 이에 조정은 ‘불가하다’고 만장일치로 반대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명나라를 무력으로 제압하는 길 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성계는 이를 극구 반대했다. 그 이유는 이른바 4불가론이다. 그러나 이 4불가론도 따지고 보면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이전에도 4불가론과 같은 상황 하에서 수년 동안 왜구토벌과 원나라의 요청으로 토벌군을 보내 전장에 있었고 요동 등 만주에도 여러 번 출병하여 전투를 수없이 벌였다. 이성계가 말한 날씨나 식량이나 왜구가 명나라 정벌을 불가하게 만드는 변수가 못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사>는 철저하게 이성계 입장에서 서술되어 있다. <고려사>는 이성계의 입을 빌려, 설사 요동을 우리가 차지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일시적이고 원나라를 구축한 명나라가 다시 돌아오면 뺏길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당시 원나라는 북원으로 남아 있었고 완전히 망한 상태가 아니었다. 이를 안 최영은 원나라에 사람을 보내 연합군을 편성해 명나라를 제압하자고 했다. <고려사절요>는 당시 고려군이 회군하지 않고 그대로 요동으로 진군했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2부에서 계속).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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