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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원형제단, 홍산문화 영향받았나...우리는 무의식 가운데 조금 잘 난 것이라면, 모두 밖에서 들어왔다고 생각...
오종홍 기자 | 승인 2017.06.16 20:55

 

서기2017 미사협 전국순회강연, 울산편

 

"울산은 수운 최제우의 동학과 관련이 깊은 곳..."

"식민사관 전파에 식민사학계는 물론 언론까지 공모하여 가세..."

"울산서 홍산문화와 똑 같은 원형제단이 나왔다..."

 

서기2017.06.11. 울산에서 미사협 바른역사 전국순회강연 7번째가 열렸다. 이 날 강연에서는 울산지역에서 발굴된 유물, 유적이 중국 홍산문화 것과 비슷하다는 주장이 나와 눈낄을 끌었다. 기사 중반 부에서 자세히 알아본다.

강연에 앞서 손윤 미사협(미래로가는바른역사협의회) 공동대표가 먼저 축사를 했다. 손 공동대표는 먼저 울산이 역사와 문화의 고장이라고 소개하면서 이 지역에는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의 숨결이 녹아 있다고 했다. 여시골에서 동학 천도교의 효시가 되는 <을묘천서乙卯天書>를 수운水雲이 받았다고 소개했다. 이어 식민사학을 타파해야 하는데 지난 6월 6일 문재인 대통령 현충일 추념사에서 이 같은 의지를 드러냈다고 했다. 일재잔재청산을 하겠다는 의지가 보였다는 것이다. 또한 문 대통령이 가야사를 복원하라고 했는데 이것이 제대로 진행되면 고대판 조선총독부인, 임나일본부설은 원천적으로 뿌리 뽑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더불어 민주당 도종환 의원이 강단식민사학파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는데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리라는 것을 알고, 작년에 미사협을 출범시켜 대비를 해왔다고 했다. 식민사관청산의지를 확고하게 갖고 있는 인사들이 내각에 들어가도록 추진해온 것으로 보인다. 식민사관 청산은 우리 미래세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남북한 평화통일을 위해서도 반드시 청산해야 된다고 역설했다. 이어 미사협에서 그동안 이룬 성과를 소개했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 전 고려대학교 교수 김현구씨의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했다고 해서 재판을 받았는데,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확정을 받았다고 했다. 이 같은 소식을 전하자 방청객에서 환호와 함께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또한 동북아역사재단이 발주한 동북아역사지도집이 중국 동북공정과 일제식민사관을 반영해서 그렸는데 이를 취소시켰다고 했다. 이어 지난 하반기 바른역사 시민강좌를 통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대한민국의 역사적 연원성을 밝혀 박근혜정권의 건국절 논란을 잠재웠고 결국 박근혜정권이 촛불혁명으로 퇴진하게 되었다고 했다.

▲ 미사협 공동대표 손윤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손윤 공동대표는 이날 인사말에서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은 남북평화통일에도 없어서는 안될 과제라고 역설했다.

식민사학계, 언론과 손잡고 도종환 의원 '죽이기'...

언론이 갖는 영향력 막대, 국민들 식민사관 공습에 무방비...

다음으로 한국간도학회 이일걸 회장이 환영사를 이어갔다. 이 회장은 먼저 자신도 울산이 고향이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이 회장은 오늘 참석하여 강연을 해줄 박정학, 이민화, 이덕일 박사를 소개하며 이들의 강연이 참석한 울산시민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정서를 더욱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고 했다. 강사들의 강연내용을 압축해서 소개하여 방청객의 역사문화에 대한 열정을 끌어올렸다. 이는 식민사관과 관련이 있는데 식민사관의 폐해를 깨닫게 해줄 것이라고 했다. 식민사관은 우리역사 강역과 시간을 축소하는 것인데 우리세대와 미래세대의 창의성을 말살한다고 했다. 또한 식민사학계는 간도도 부정한다면서 식민사관 청산을 주장하는 도종환 의원을 연일 공격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최근에 언론도 도종환 의원을 사이비역사학에 물들었다고 비판하는 하는데 이는 식민사학계와 연계한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언론들이 쏟아내는 가짜보도는 국민을 무지목매한 우중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언론 뒤에는 막강한 식민사학계가 버티고 있다며 청산해야 될 대상이 얼마나 거대한지 알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울산시민들도 식민사관 청산하는데 힘을 보태줄 것을 간곡하게 호소했다.

▲ 이일걸 간도협회장은 이 날 환영사에서 언론이 식민사관을 학계와 공모하여 퍼뜨리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홍산문화연구소 정상태 소장이 본 강의에 앞서 홍산문화와 울산과의 연계성 강의를 했다. 정 소장은 한.중수교 시기인 서기1992년경에 홍산문화와 인연을 맺었다고 했다.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와 중국 내몽골 적봉과 홍산에 있는 암각화의 연관성을 조사하면서 부터라는 것이다. 중국 측의 협조로 함께 연구를 했는데 울산지역도 홍산문화와 일정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고 했다. 특히 울산지역은 우리나라 신석기 문화가 밀집된 곳으로써 신석기 시대의 서울과 같은 곳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울산주민들이 이러한 점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정 소장은 홍산문화가 어떻게 우리나라 남단인 울산과 연관되었냐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문화전달 통로는 바닷길 이라고 했다. 만주 동북부를 거쳐 두만강 훈춘의 동해안 바닷길을 따라 울산으로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주장하는 근거는 일본인 학자의 연구다. 일본의 온기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내지로 전파될 때는 5백년이 걸리지만, 동해안을 따르면 수개월내에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울산서 발견되는 수 많은 유물 유적들,

홍산문화 영향 받았을까...

정 소장은 이를 증명하는 다양한 유물을 소개했다.

먼저 전파과정의 증거로써 조개류를 제시했다. 홍산지역의 흥륭와 문화에서 나온 조개와 연해주 아무르 강에서 발견되는 조개류가 같다고 했다. 이는 교류의 증거라고 했다. 또한 러시아 캄차카 반도와 그 축치반도에서 사는 축치족의 고래암각화와 울산 것을 비교하면서 고래잡이 풍습은 축치족에서 기원했다고 했다. 이탈리아의 이마뉴엘 알키 아나키 박사의 견해를 근거로 들었다. 그는 암각화에 대하여 최고의 석학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가 울산을 두 세차례가 거쳐가면서 남기고 간 말이 있는데 울산 반구대 암각화가 해양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는 것이다. 근거로 우리나라에는 고래와 관련해서 반구대 암각화 단 한 개뿐이고 연습해서 조각한 암각화가 다른 나라에서는 보이는데 우리나라에서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축치반도의 선주민들이 울산지역으로 내려와서 새겨놓고 갔다는 것이다. 정 소장은 이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근거로 울산이 동해와 남해의 교류지점이라는 것과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지점이라는 것을 들었다. 동해안에서 해류를 따라 내려와서 머물기가 아주 좋은 곳이 반구대 암각화가 있는 울산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울산이 신석기문화의 보고가 되었다고 했다. 특히 7천년 이전 것으로 보이는 개운포開雲浦 지역의 신석기 유적은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며 우리나라 신석기 문화를 주도했을 것이라고 했다.

▲ 러시아 축치반도의 고래암각화와 울산의 암각화 고래가 판박이다. 배제대학교 스페인어 학과 손성태 교수에 의하면 축치족은 우리나라에서 갈라져 나간 민족이다. 언어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이외에 장승, 무당 굿, 온돌 문화 등으로도 간접증명된다.

이어 홍산문화의 옥결(귀고리)과 강원도 고성 문암리와 울산 처용리에서 출토된 옥결이 비슷한 것을 홍산문화의 영향을 받은 증거로 제시했다. 특히 학계에서 거의 다 홍산문화의 영향으로 믿고 있다고 했다. 처용리에서 나온 옥결은 중국 요녕성의 수암에서 난 옥으로 추정했다. 또한 사천에서 나온 옥결은 서기전 5천년 경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옥이 발견된 지역을 보면 동해안을 따라 해안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정 소장은 이어 홍산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며 토제여인상을 제시했다. 울산에서 홍산지역에서 발굴된 것과 상징이 같은 것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외에 여러 가지 토제 물들을 소개했다. 더구나 대규모 신석기 유적이 발견되고 거기에 홍산문화 것과 같은 돌널무덤(석관묘)이 나왔는데 이는 홍산문화의 영향을 받은 증거라고 했다. 돌을 쌓아 만든 적석총도 발견되는데 이것도 홍산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원형제단으로 보이는 유적이라고 했다. 울산 방기리 알바위 원형제단인데 둘레가 43미터라고 했다.

중국학자들이 와서 보고 갔는데 집단적으로 제사를 지낸 유적으로써 중국 홍산문화의 영향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어 홍산문화의 마름모꼴 암각화와 울산 천전리 암각화를 비교했다. 그리고 사슴과 기타 동물문양 그림기법이 거의 같다고 했다. 사슴은 당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신령스러운 동물로 섬김을 받았다고 했다. 이렇게 해석하는 이유는 그려진 장소가 아주 신성한 곳이라는 것이다. 정 소장은 홍산문화지역의 암각화를 수도 없이 둘러보았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날 정 소장이 내린 결론은 울산의 모든 신석기문화는 홍산지역에서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 울산 방기리에서 발견된 원형제단. 정상태 울산홍산문화연구소장은 이 원형제단이 중국 내몽골 홍산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았다. 중국인 학자들도 현장을 방문하고 나서 홍산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검증해 본 결과 홍산문화에서 왔다는 명백한 증거는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홍산문화가 우리의 영향을 받았다는 다차원 적인 근거가 제시되어 주목된다.

울산지역의 유물, 유적들,

오히려 홍산문화에 영향준 개연성 높아...

정 소장의 이날 발표에 대하여는 많은 이견이 제기된다. 먼저 정 소장은 주요 근거로 외국인 학자들의 견해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일본인 학자들의 견해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데 그들은 기본적으로 자국중심의 역사관을 철저히 바탕에 깔고 우리지역의 역사문화를 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일본인 학자들은 역사, 문화, 고고학, 인류학 등 기타 모든 분야의 학자들이 기본적으로 일제시기 황국사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우리 쪽에서 보면 조선총독부식민사관이다. 홍산문화에 대하여 가장 먼저 손을 댄 자들이 일본제국주의 시절 일본 관학자들이다. 도리이유조(鳥居龍藏)가 대표적이다. 조선은 만주의 일부분이라는 만선사관에 따라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의 전폭적인 재정 지원을 받는 가운데 적봉지역 홍산문화 유물을 발굴했다. 그래서 지금도 일본의 박물관에 가면 적봉시에서 가장 먼저 발굴한 홍산 옥결들이 전시되어 있을 정도다. 이런 유물도 모두 황국사관에 맞추기 위함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정 소장은 이탈이라 학자의 주장도 여과 없이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가 러시아 캄차카지역 위에 있는 축치반도의 축치족이 내려와서 새긴 것이라는 것이다. 축치반도 고래잡이 암각화와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의 경우 고래가 새겨진 암각화는 반구대 암각화가 유일하다는 것이 이유다. 고래암각화는 중간과정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암각화가 없고 완성된 모양의 반구대 암각화만 있다는 것이다. 중간과정이 없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외국산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날 정 소장은 포항에서 부터 전남 남원에 이르기 까지 ‘방패형’ 암각화가 띠를 이루고 있다고 했다. 물론 습작도 있다고 했다. 수백에서 수천 년간의 세월을 잇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다 같은 암각화이고 같은 시대 주민들이 새겼을 수밖에 없는데도 고래잡이 암각화와 방패형 암각화를 별개로 보고 반구대 암각화만 떼어서 외국산이라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 고래잡이가 새겨진 반구대 암각화가 축치반도의 고래 암각화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외국에서 들어왔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안 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축치족의 기원은 어디일까. 축치족의 기원을 알아내면 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 될 수 있다. 배제대학교 스페인어학과 손성태 교수에 의하면 축치족은 우리말의 ‘춥지’,‘추워’라는 말에서 나왔다. 이는 언어학 적으로도 증명된 것이다. 아메리카로 이주하면서 중간에 머문 주민들이 모여 형성된 민족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지역에는 우리의 장승과 똑 같은 문화를 지금도 갖고 있으며 무당들이 우리와 흡사한 굿을 하고 있다.

더구나 축치족이 우리나라에서 나간 것임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온돌을 들 수 있다. 이미 증명된 바와 같이 온돌은 우리 고유문화의 하나인데 울산지역에서 동해안을 따라 함경도, 연해주, 캄차카 반도 그리고 알류산 열도 및 북미로 이어지는 온돌 띠가 형성되어 있다. 온돌문화를 갖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북으로 이주했고 중간 중간에 정착하여 살아가는 부족이 다수라는 것이 밝혀졌다. 손성태 교수에 의하면 이러한 부족으로 축치족 외에 길약족이 대표적이다.

▲ 홍산문화와 울산의 석관묘가 똑 같다. 정 소장은 석관묘의 원조가 홍산문화라고 했으나,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에 의하면, 우리나라가 원조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석관묘(돌널무덤)을 사용하는 곳이 있다. 필자의 선친先親도 석관묘에 안장된 바 있다.

유물의 양으로 보나 분포면적으로 보나 홍산문화가 울산지역 신석기문화보다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반대 증거도 만만치 않은데 자동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역발상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정 소장 스스로 소개 한 것에 더하여 외국으로부터 암각화의 백과사전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공인된 것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고래사냥만 새겨져 있지 않다. ‘백과사전’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암각화에 나오는 모든 소재가 다 새겨져 있을 만큼 다양하다.

이것이야 말로 암각화의 원조가 우리나라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이는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이 세계전역으로 퍼져나가 암각화 문화를 심어 놓았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시기 또는 그 이전의 문화로 평가되는 고인돌과 연개 시키면 더욱 확실해 진다. 고인돌은 우리나라만 빼 놓고 외국인 학자들은 고인돌의 원조가 우리라고 한다. 특히 중국의 양식 있는 학자들은 우리가 원조라고 한다. 전라도 지역이라고 한다. 고인돌에 새겨진 별자리와 울산의 반구대, 천전리 암각화가 같은 시기, 같은 문화권 사람들이 남긴 것이라고 볼 때 종합적인 사고가 충분히 가능하다.

▲ 충북 소로리에서 발견된 약 1만5천년된 볍씨. 야생 볍씨가 아니라 야생볍씨를 개량한 인공 볍씨라는 것이 밝혀졌다. 더구나 현대 물농사 볍씨와 같다는 것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시대가 너무 많이 올라가 조금 내려서 국제학계에서 인정했는데 1만 2천년 선에서 정했다고 한다. 물 벼농사 볍씨라면 여기에 따라 붙는 밥을 해먹는 토기, 저장토기가 나올 수 밖에 없고, 이는 정착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서양 제국주의 고고학에서는 흔히 신석기 시대를 8천년경으로 잡는다. 그런데 그 보다 4천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 시대에 우리는 이미 벼농사를 짓고 살았다. 서양 기준으로 말하면 이 때는 구석기 시대다. 결국 서양 고고학이 얼마나 자의적으로 제국주의 침략사관에 맞게 만들어져 있는지 드러나는 사건이 소로리 볍씨 발굴이다.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의 탁월한 태고사 관점...

이것을 실증해 보인 사람이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신용하 명예교수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국제학계가 인정한 충북 소로리 볍씨가 최소한 1만2천 년 전의 것이라는 것에 착안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 태고역사를 새롭게 재조명해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그는 이른바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를 이어주는 증거로 동굴을 들고 있다. 우리나라 중부만 하더라도 사람이 살 수 있는 동굴이 1천여 개가 넘는 다고 한다. 이러한 동굴은 동아시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한다. 신 명예교수는 지난 서기2015.05.02.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고조선단군학회가 주관한 학술발표에서 이 같이 밝혔다. 신 명예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당시의 기후변화, 지형, 구석기, 신석기 유물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동아시아 문명은 한반도에서 태동했다고 결론 내렸다. 기후 변화에 따라 한반도인들이 북상했고 현재의 홍산문화지역에 정착하여 홍산문화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따라서 반구대 암각화로 대변되는 고래잡이문화도 우리가 원조라는 결론에 이른다. 더구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8천 년 전의 고래잡이배와 닮은 배가 경남 창녕에서 발굴된 것에 주목하면 이러한 결론이 일방적인 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안의 식민사관 어디까지...

정 소장은 울산지역과 홍산문화지역의 고고유물이 같거나 비슷하다고 하여 결정적인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홍산지역에서 울산으로 전파되었다고 당연시 하고 있다. 이는 이날 손윤 회장과 이일걸 간도학회 회장이 지적했듯이 알게 모르게 식민사관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한다. 식민사관의 하나가 타율성론이다. 우리가 한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밖에서 들어온 선진문물 덕이라는 사관이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외국의 다스림을 받을 때만이 사람 노릇할 수 있다는 것이 골자다. 정확하게 일제식민통치이념과 맞닿아 있다. 이것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은 ‘우리안의 식민사관’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본 강연기사는 2부에서 계속).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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